27화

석범의 스승 다이스는 밤새 작업대 위에 놓여 있었다

갑오년, 전보국 주사는 군량을 훔쳤다 · 2026.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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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범의 스승 다이스는 밤새 작업대 위에 놓여 있었다.

열한 줄 어디에도 맞지 않는 쇳조각. 손잡이 한쪽은 오래 쥔 자국으로 번들거렸고, 날 안쪽에는 숫자 대신 세 번 찍은 점이 있었다. 백무정은 새벽 불을 켜자마자 그 점부터 종이에 베꼈다.

석범이 문 앞에서 신을 털었다.

“버릴 겁니까?”

“아직 안 골랐어.”

“고르면요?”

무정은 대답 대신 다이스에 기름을 먹였다. 어제는 대답하지 못했다. 오늘도 답이 생긴 것은 아니었다.

공방 벽은 비어 있었다. 밤마다 걸어 두던 장인들의 암나사틀과 줄, 각도쇠 절반이 사라졌다. 주인이 품에 안고 돌아간 것이다. 남은 못에는 기름 그림자만 검게 맺혔다.

군수 장교가 해 뜨기 전에 들이닥쳤다. 뒤에는 수리 대기표를 든 병사가 셋이었다.

“성문 가용 총이 어제보다 네 정 줄었소. 오늘 하나를 정합시다.”

“무엇으로?”

“가장 정교한 것으로.”

무정은 열한 번호표 가운데 골이 가장 곱고 깊이가 일정한 것을 집었다. 일본 상사 창고에서 온 갑이었다. 그 나사와 맞는 다이스는 공방에 하나뿐이었다. 주인 장인이 어젯밤 들고 가 버린 바로 그 틀이었다.

그가 빈 못을 가리켰다.

“그걸로 누가 깎지?”

장교가 입을 다물었다.

“정교한 건 종이에 있소.”

“총은 종이로 안 잠겨.”

무정은 작업대 위에 열한 나사를 한 줄로 눕혔다. 그 아래에 어제 만든 시험 칸을 다시 그었다. 첫 결합. 열 번 왕복. 현장 재조립. 오늘은 오른쪽에 칸을 셋 더 보탰다.

사용 가능한 도구. 한 개를 깎는 시간. 같은 결과를 낸 사람 수.

“장인은 손 떼. 견습만.”

공방에서 낮은 욕이 흘렀다. 나사틀을 들고 돌아온 장인 둘이 문턱을 넘다 멈췄다. 한 사람은 자기 제자에게 손도 대지 말라는 눈짓을 했다.

무정이 번호표를 뒤집었다. 갑부터 계까지 이름이 가려졌다.

“누구 물건인지 모르고 깎는다. 기존 도구만 써. 세 번.”

“쇠는 누가 냅니까?” 장인이 물었다.

“군수에서.”

“부러진 날은?”

장교가 말했다.

“선정된 규격이면 보상하겠소.”

무정은 집게를 놓았다.

“그럼 시험 못 해.”

“왜요?”

“떨어진 규격에서 먼저 부러지니까.”

그는 보상 칸이 빈 채로는 불을 올리지 않았다. 성문 병사는 대기표를 말아 쥐었고 장교는 해 뜨는 쪽을 세 번 봤다. 결국 시험 중 깨진 날과 버린 쇠도 군수 인수표에 넣는다는 문장이 붙었다. 서명자는 장교였고, 확인자는 각 도구 주인이었다.

그제야 무정이 풀무를 밟았다.

첫 시험은 갑이었다. 석범이 일본식 다이스를 빌리려 하자 주인 장인이 손잡이를 잡았다.

“기름 먼저.”

“말하지 마.” 무정이 잘랐다.

장인의 손이 굳었다.

석범은 기름 없이 두 바퀴를 돌렸다. 쇳소리가 높아졌다. 날 끝에 가루가 뭉쳤다. 세 바퀴째에서 나사가 비뚤어졌다.

장인이 코웃음을 쳤다.

“봐라. 손도 모르는 놈이 무슨 규격이냐.”

“네 손 없으면 안 되는 규격이야.”

웃음이 끊겼다.

두 번째 견습은 기름을 발랐지만 손 압력을 늦게 풀었다. 세 번째는 모따기를 먼저 했고 겨우 들어맞았다. 같은 다이스, 같은 쇠, 세 사람 중 하나.

무정은 갑 아래에 하나를 적었다.

을은 공방의 큰 암나사틀에 물릴 수 없었다. 병은 지름을 맞추려면 줄질이 길었다. 정은 빠르게 깎였지만 열 번 왕복 뒤 골 끝이 뭉개졌다. 시험 나사가 늘어날수록 바닥의 쇳가루 색이 달라졌다.

점심 종이 울릴 때까지 통과한 것은 넷이었다.

가장 고운 갑은 한 사람. 정은 세 사람 모두 첫 결합에 성공했으나 반복 시험에서 탈락. 무는 세 사람 중 셋이 깎았고, 열 번 왕복 뒤에도 쇳가루가 거의 없었다. 다만 갑보다 한 개를 깎는 데 반 시진이 더 걸렸다.

경은 처음부터 빠르게 들어갔다. 너무 빠른 것이 문제였다. 노리쇠를 세게 닫자 나사 머리가 반 바퀴 돌아 나왔다. 석범이 조이려 하자 무정은 흰 먹선을 머리와 몸체에 이어 그었다.

“닫아.”

석범이 노리쇠를 열고 닫았다. 다섯 번째에 먹선이 갈라졌다. 열 번째에는 손톱 하나만큼 어긋났다.

“들어가는 것과 잠기는 것은 다릅니다.”

“표에 써.”

신은 조선식 암나사틀로 깎을 수 있었지만 왼손으로 손잡이를 돌리는 견습의 골만 한쪽이 깊었다. 무정은 사람을 바꾸지 않고 손잡이 끝에 같은 무게의 쇳덩이를 달았다. 세 번째 시험에서 편차가 줄었다. 규격의 문제가 아니라 도구 손잡이의 문제였다.

“그럼 신도 살릴 수 있잖습니까?”

“새 손잡이 값과 시간을 붙이면.”

석범은 신을 통과 칸으로 옮겼다가 멈췄다. 장교가 재촉했지만 무정은 쇳덩이 무게와 고정 끈 길이를 잰 뒤에야 표를 옮기게 했다.

임은 열을 먹은 접점에서 뽑은 나사였다. 같은 모양을 새 쇠로 깎으면 들어맞았으나 낡은 접점에서는 두 바퀴째 걸렸다. 접점 암나사 쪽이 이미 눌려 있었다. 무정은 새 나사만 합격시키지 않았다. 나사와 받는 구멍을 한 쌍으로 묶어 ‘교환 전 암나사 검사’라고 적었다.

계는 망치로 박혔던 흔적 때문에 원래 골이 한 줄밖에 남지 않았다. 세 견습이 서로 다른 시험편을 만들었다. 어느 것이 옳은지 판정할 원본 공구가 없었다. 무정은 계를 가장 아래로 내리고 붉은 먹으로 ‘재현 불가’라고 썼다.

“열한 개를 찾았는데 하나는 버립니까?”

“버리는 게 아니야. 모르는 걸 합격시키지 않는 거지.”

통과한 넷도 같은 이유로 순위가 달랐다. 빨리 깎이는 것, 오래 잠기는 것, 현재 도구로 만드는 것, 여러 손이 같은 결과를 내는 것. 어느 한 칸도 혼자서는 답이 아니었다.

군수 장교가 무를 집었다.

“느리군.”

“다시 깎을 수 있어.”

“가장 좋은 것은 아니잖소.”

무정은 갑 옆의 하나와 무 옆의 셋을 가리켰다.

“좋다는 사람이 하나야, 셋이야?”

장교는 답하지 않았다.

오후에 감찰소 심부름꾼이 접은 종이를 가져왔다. 봉인은 없었다. 겉면에는 ‘결정문 아님’이라고 두 번 쓰여 있었다. 윤해준이 돌려보낸 시험표였다.

그에게는 발신 인장도 우선부호 패도 없었다. 숫자 옆에 명령을 적을 권한도 없었다. 대신 열한 후보 아래 질문이 하나씩 붙어 있었다.

현 도구 몇 개. 재현한 사람 몇 명. 망가진 날 몇 개. 한 정을 수리하는 동안 성문에서 빠지는 총 몇 정.

마지막에는 짧은 문장이 있었다.

‘가장 정교한 것 말고, 세 사람이 현재 도구로 되풀이한 중간 것을 택합니다. 제 표는 한 장으로만 세십시오.’

서명도 관직도 없이 이름만 적혀 있었다.

장교가 종이를 낚아채려 했다. 무정이 집게로 눌렀다.

“명령으로 쓰면 태운다.”

“저자가 시작한 사업이오.”

“지금은 표 하나야.”

무정은 종이를 다른 견습들의 표 사이에 놓았다. 해준의 것은 붉지도 크지도 않았다. 석범이 세어 보니 무에 찍힌 표가 다섯, 갑이 둘, 경이 하나였다. 장인 셋은 아무 데도 찍지 않았다.

“기권도 적어.” 무정이 말했다.

장인이 팔짱을 꼈다.

“내 치수를 내놓고 내 물건을 떨어뜨리라는 표에는 안 찍소.”

무정은 자기 표를 들었다. 그의 손이라면 갑을 깎을 수 있었다. 갑의 골은 깨끗했고 짧은 나사에서도 물림 면이 넓었다. 무는 투박했다. 같은 힘을 받으려면 길이를 늘려야 했고, 좁은 단자판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갑으로 만든 시험편을 엄지로 굴렸다. 날이 고르게 선 감촉이 좋았다. 자기 방식과 가까웠다. 공방에 남은 장인 가운데 갑을 세 번 되풀이할 수 있는 사람은 무정뿐이었다.

석범이 물었다.

“사부님 것은 어디에 찍습니까?”

무정은 무의 칸에 먹점을 찍었다.

자기 손으로는 떨어지는 쪽에 표를 던졌다.

“왜 무입니까?”

“내가 없어도 셋이 했어.”

“느립니다.”

“시간을 적으면 줄일 수 있어. 손은 적을 수 없어.”

그는 곧바로 ‘표준’이라고 쓰지 않았다. ‘공방 수리용 임시 공통 나사산’이라고 적었다. 적용할 곳도 제한했다. 소총 노리쇠의 교환 가능한 두 자리, 전신 단자판의 여유 있는 한 자리. 압력을 크게 받는 총열 결합부와 좁은 접점에는 쓰지 않음.

첫 결합만 통과한 갑도 폐기하지 않았다. 원래 장비 수리용으로 출처와 도구를 붙여 보관했다. 나머지 아홉 종류에는 맞는 기계와 남은 수량을 적었다. 하나를 뽑았다고 열을 거짓 불량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장교가 인수표를 내밀었다.

“그럼 무로 백 개.”

“열 개.”

“성문 수리를 생각하시오.”

“도구 세 개, 견습 셋. 오늘 열 개. 열 번 왕복 뒤 불량률 보고 다음 수량.”

“해준이라면 더 빨리—”

무정이 그 종이를 뒤집었다. 뒷면은 비어 있었다.

“그 사람도 중간을 골랐어. 빠른 걸 고른 게 아니야.”

장교는 백을 지우고 열을 적었다. 무정은 그 옆에 부러진 날 보상과 대조 총 반환 시각을 붙였다. 표를 고른 일보다 지켜야 할 칸이 많았다.

해가 기울 무렵, 무의 치수표를 벽에 걸려던 석범이 멈췄다.

종이 가운데가 칼끝으로 길게 긁혀 있었다. 골 각도와 깊이 칸만 읽을 수 없게 벗겨졌다.

공방 뒤문이 열려 있었다. 아침에 자기 나사틀을 가져온 장인 둘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제자도 풀무에서 손을 뗀 채 서 있었다.

“누가 했습니까?” 석범이 물었다.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잠시 뒤 늙은 장인이 자기 치수 장부를 품에 넣었다.

“오늘 무를 내놓으면 내일은 관에서 우리 손까지 관물이라 하겠지.”

“치수를 베끼고 나면 우릴 다시 부를 까닭도 없소. 부러진 날 값 한 번 받고 평생 주문을 잃으라는 게 보상이오?”

그 말은 협박이 아니었다. 장인의 집에는 그 나사틀에 맞춰 배운 제자와 아직 받지 못한 주문값이 있었다. 무정이 오늘 시험표에 적은 재훈련 하루는 그 집에서는 밥 한 끼가 아니라 다음 달 품삯이었다.

그가 나가자 다른 장인도 줄과 각도쇠를 챙겼다. 남은 사람들은 망치를 느리게 내렸다. 같은 쇠를 세 번 달구고도 한 번만 쳤다. 불량을 만들지는 않았다. 납기만 늘어졌다.

군수 장교가 병사를 불렀다. 무정은 공방 문을 막고 섰다.

“끌어내면 치수는 영영 없어져.”

“그럼 어떻게 합니까?”

무정은 긁힌 표와 비어 가는 벽을 봤다. 제자들이 재현할 규격을 골랐는데, 그 규격을 만드는 지식이 먼저 숨고 있었다.

작업대 끝에는 오늘 만들기로 한 열 개의 인수표가 놓여 있었다.

완성품 칸은 모두 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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