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교보다 먼저 먹는 병사
갑오년, 전보국 주사는 군량을 훔쳤다 · 2026.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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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교 식탁 앞의 놋그릇 열두 개가 비어 있었다.
그 곁에 놓일 작은 배급솥도 바닥을 드러냈다. 대신 취사장 뒤편 큰 솥에서는 묽은 죽이 끓었다. 박상호는 솥 가장자리를 국자로 긁었다. 마른 쌀 스물네 되, 물 일곱 동이. 백열세 명에게 한 그릇씩 돌리면 남는 것은 솥바닥 한 국자였다.
“하사 박상호.”
문 앞의 군관이 체포 봉서를 폈다.
“장교 배급 전용 열두 되를 병졸 솥에 섞고 상관 명령을 거부했다. 칼을 풀어라.”
상호는 국자를 내려놓지 않았다. 첫 줄 병사 스물한 명은 벌써 그릇을 받았고, 뒤에는 아흔두 명이 남았다. 지금 불을 끄면 앞줄만 먹는다. 그것이 부대를 가르는 가장 싼 방법이었다.
“죽 다 푸는 데 일각입니다.”
“즉시 집행이다.”
“그 명령, 몇 명이 듭니까.”
군관 뒤의 병사 넷이 서로를 보았다. 둘은 아침부터 굶은 취사병이었고, 하나는 박상호가 장화를 꿰매 준 신병이었다. 상호는 그들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친분으로 칼을 늦추게 하면 죄를 나누는 척하며 선택을 떠넘기는 셈이었다.
“국자 두 개 더 가져와라. 팔 번은 줄 세고, 십일 번은 받은 놈 엄지 확인해.”
“하사님.” 팔 번 이도식이 움직이지 않았다. “계속 따르면 저희도 항명입니까?”
“내 명령을 따르는 것도 네 선택이다. 싫으면 지금 칼 내려놓고 줄 뒤로 가.”
취사장에 숟가락 부딪는 소리만 남았다. 이도식은 입술을 깨물다 국자를 집었다. 십일 번 김태준은 칼을 풀어 바닥에 놓았다.
“저는 못 하겠습니다.”
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줄 뒤로 가. 네 몫은 있다.”
군관이 비웃었다.
“명령 거부자를 또 먹이겠다고?”
“빈 솥은 계급장도 항명죄도 못 읽습니다.”
상호는 군관을 지나 배급표가 붙은 판자로 갔다. 어젯밤까지 맨 위에는 참령과 부관 열두 명의 이름이 있었다. 그는 새 종이를 덧대고 첫 줄에 자기 이름을 썼다.
박상호. 장교 전용 열두 되 병졸 공동 솥에 투입. 이유—전초 교대 백열세 명 중 전날 저녁을 먹은 자 스물여덟 명. 집행 시각 유시 이각. 체포 명령 도착 유시 삼각.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보탰다.
민간 창고 징발 없음. 다음 끼니 확보 안 됨.
“몰래 빼돌린 게 아니다.” 상호가 말했다. “수량과 이유, 내 이름이 여기 있다. 장교 몫을 돌려놓으라면 병사 그릇에서 몇 숟갈씩 거둘지 직접 쓰시오.”
군관은 배급표를 뜯으려다 멈췄다. 취사병과 줄 선 병사들이 보고 있었다. 종이를 없애는 순간 열두 되가 어디로 갔는지 설명할 책임이 자기 손으로 옮겨 왔다.
“장교들이 굶으면 지휘가 무너진다.”
“병사가 굶으면 명령을 들고 갈 사람이 없습니다.”
“장교 전부를 탐식가로 모는군.”
“아닙니다. 전초에 나간 소위 둘 몫은 남겼습니다. 오늘 걸어서 명령을 든 사람 몫입니다. 식탁에 앉아 있던 열 명 몫만 솥에 넣었습니다.”
상호는 작은 항아리를 가리켰다. 된죽 두 그릇분이 따로 봉해져 있었다. 적어도 모든 장교를 한 덩어리로 벌하지는 않았다. 군관은 항아리 봉인을 확인한 뒤 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기준을 정하면 내일은 병사들이 저마다 명령을 고른다.”
그 말은 맞았다. 상호가 두려운 것은 처벌만이 아니었다. 오늘 열두 되를 살린 방식이 내일 탄약 운반이나 철수 명령까지 개인 판단에 맡기는 구실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표에 씁니다. 다음에는 이 표를 보고 제 판단까지 처벌하십시오. 병사들 선택을 제 뒤에 숨기지는 않겠습니다.”
김태준이 줄 뒤에서 소리쳤다.
“그럼 하사님 잡혀가면 다음 솥은 누가 풉니까?”
상호는 대답하지 못했다. 오늘 먹이는 데만 눈을 박은 대가였다. 후임 취사 책임자도, 다음 쌀도 정하지 않았다.
그때 문밖에서 들것 둘과 윤순화가 들어왔다. 순화는 환자보다 먼저 죽 냄새를 맡은 듯 솥을 보았다. 들것의 병사는 열도 상처도 없었지만 손이 떨리고 입술이 말라 있었다.
“언제 먹었습니까.”
“어제 새벽입니다.”
“이름은요.”
“서정국.”
순화는 명부에 이름과 시각을 적은 뒤 약상자를 열지 않았다.
“죽부터 반 그릇 주세요.”
군의가 뒤따라 들어오며 막았다.
“환자로 분류되지 않은 자다. 군 약품과 구호식은 상처 입은 자에게 먼저—”
“맥이 빠르고 손이 떨립니다. 빈속에 약을 먹이면 토해요. 이분은 약보다 죽이 먼저예요.”
“굶은 병사를 전부 환자로 받으면 구호소가 무너진다.”
“전부 받지 않아요. 마지막 식사 시각, 맥, 서 있을 수 있는지를 봅니다. 죽 반 그릇 뒤 다시 줄로 돌려보낼 사람과 눕힐 사람을 나눌게요.”
상호가 물었다.
“몇 그릇을 빼야 합니까.”
“우선 여섯 반 그릇. 대신 약은 쓰지 않겠습니다. 먹고도 맥이 돌아오지 않는 사람만 구호소로 옮겨요.”
상호는 남은 양을 셌다. 여섯 반 그릇을 먼저 떼면 줄 끝 열두 명의 몫이 더 묽어졌다. 순화의 기준이 옳아도 비용은 사라지지 않았다.
“줄 끝에서 여섯 그릇 모자랍니다.”
“반 그릇씩 나누면 열두 명이 기다릴 수 있어요.”
“기다리는 동안 교대가 늦습니다.”
“쓰러진 뒤 들것으로 나르는 것보다 빠릅니다.”
상호는 국자를 들어 반만 채웠다. 순화는 서정국이 단숨에 삼키지 못하게 세 번 나눠 먹였다. 두 번째 들것의 조우진은 죽 냄새만 맡고 구역질했다. 순화는 그를 눕히고 약상자를 열었다.
“한 기준으로 다 살릴 수는 없어요.”
그녀는 배급표 옆에 작은 치료표를 붙였다. 이름, 마지막 식사, 맥, 죽을 받은 시각, 다시 선 시각. 명령 발신 시각만 적던 명부가 몸이 회복되는 시간까지 품기 시작했다.
상호가 물었다.
“내 체포 명령도 적습니까.”
“그 명령 때문에 누가 다치면요. 지금은 배급표에 도착 시각을 남기세요.”
그녀는 오빠의 편도, 상호의 편도 들지 않았다. 원인과 결과 사이의 빈칸을 먼저 남겼다.
죽 반 그릇을 먹은 서정국은 한 식경 뒤 혼자 일어섰다. 조우진은 일어나지 못해 구호소로 옮겨졌다. 줄 끝 열두 명은 죽이 다시 끓을 때까지 반 각을 더 기다렸다. 그중 셋이 욕을 했고 둘은 줄에서 빠져 장교 창고 쪽으로 걸어갔다.
“왜 저들만 먼저 먹습니까?”
“쓰러져야 이름이 생기는 겁니까?”
동요는 이유가 있었다. 상호는 그들을 군율로 누르지 않고 배급표 앞으로 불렀다.
“먼저 먹은 여섯 이름과 이유가 여기 있다. 반 각 기다린 너희 이름도 적어라. 다음 솥에서 먼저 받는다.”
“다음 솥 쌀은 있습니까?”
대답은 여전히 없었다.
취사병 하나가 목소리를 낮췄다.
“동문 밖 민가에 쌀독이 남았답니다. 밤에 여섯이 가면 두 말은 가져올 수 있습니다.”
상호의 시선이 그에게 박혔다. 오늘 먹일 사람만 보면 가장 빠른 답이었다. 군복 여섯 벌이면 민가 하나는 저항하지 못한다. 장교 몫을 거부한 명분으로 더 약한 사람 몫을 빼앗는 순간, 배급표 첫 줄의 자기 이름은 변명이 됐다.
“그 집 주인 이름은?”
“모릅니다.”
“몇 식구인지, 돈을 받을지, 내일 먹을 게 있는지도?”
취사병은 입을 다물었다.
“징발은 안 한다.” 상호가 말했다. “사겠다면 가격과 주인 이름을 먼저 적어. 거부하면 돌아온다.”
“돈이 어디 있습니까?”
상호는 자기 허리춤의 전대를 풀었다. 은전 세 닢과 동전 스물일곱 닢. 두 말 값에는 모자랐다.
“이걸 계약금으로 걸고 한 말만 묻는다. 나머지는 내 미지급으로 써.”
“잡혀가는 사람 빚을 누가 받습니까?”
“그러니 주인이 싫다면 끝이다. 굶는 쪽이 우리가 된다.”
그는 배급표 아래에 새 칸을 그었다. 민간 구매 제안—동문 밖, 주인 미확인, 한 말, 계약금 은전 세·동전 스물일곱, 거부권 보장. 병사 보호가 민간 피해로 넘어가지 않았다는 증거가 아니라, 넘어갈 뻔한 선택과 미지급 책임을 감추지 않는 기록이었다.
순화가 물었다.
“누가 가나요?”
“내 부하만 보내면 군복이 협박이 됩니다. 취사병 하나와 구호소 사람 하나가 같이 가야 합니다.”
“구호소에서는 조분이 어머니가 시장값을 알아요. 다만 환자 물을 길어 올 사람이 한 명 줄어요.”
상호는 배급표에 그 비용도 적었다. 물 긷기 한 식경 지연. 작은 거래 하나에도 빈자리는 생겼다.
취사병은 불만스러운 얼굴로 엄지를 찍었다. 동의가 아니라 제안을 들고 갔다는 확인이었다. 그는 구호소 사람을 데리러 떠났고, 다음 솥의 쌀 칸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
상호는 배급표 맨 아래에 ‘미확보’라고 썼다. 이도식이 국자를 내려놓고 말했다.
“하사님 잡혀가시면 이 표를 들고 어디로 갑니까?”
“너희가 뽑아라. 표를 맡을 사람 하나, 솥을 맡을 사람 하나. 같은 놈에게 둘 다 주지 마.”
병사들은 즉시 합의하지 않았다. 글을 아는 이도식을 표 담당으로 하자는 말과, 아까 거부한 김태준이 더 믿을 만하다는 말이 맞섰다. 상호는 끼어들지 않았다. 자신에게 충성하는 사람을 후임으로 세우면 공개 표는 다른 모양의 사유물이 된다.
결국 김태준이 표를, 이도식이 솥을 맡았다. 서로의 수량을 매 끼니 맞춰 보기로 했다. 김태준은 칼을 바닥에 둔 채 배급표에 엄지를 찍었다.
그제야 상호는 허리의 칼을 풀었다.
군관이 포승을 꺼냈다. 그러나 체포조 병사 하나가 배급표를 가리켰다.
“이 종이도 함께 가져갑니까?”
군관은 잠시 계산했다. 가져가면 장교 열 명의 빈 몫과 굶은 병사 백열세 명이 심문 기록에 들어간다. 두고 가면 병사들이 거부 이유를 계속 베낀다.
“사본 한 장만 뜬다. 원본은 봉해 두어라.”
상대도 이미 공개 사본의 힘을 배운 것이다. 없애는 대신 자기 기록 안에 가두려 했다.
순화가 상호의 손목에 포승이 감기는 시각을 적었다. 유시 오각. 상호는 줄 끝에서 마지막 죽을 받은 병사 이름을 확인했다. 백열세 번째, 노경수.
“먹고 움직입니다.”
노경수가 그릇을 들고 경례했다. 환호는 없었다. 몇은 시선을 피했고, 몇은 체포조 뒤를 따르려 했다. 상호는 그들을 멈췄다.
“솥 지켜. 나 따라오면 다음 끼니가 먼저 잡혀간다.”
취사장 밖에서 낯선 상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군관에게 작은 봉투와 접힌 운송 지도를 내보였다. 봉투 겉에는 이토 마사루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면책 문서와 현금이 준비됐습니다. 대신 새 운송로가 표시된 지도를 요구합니다.”
포승 끝이 당겨졌다. 상인이 펼친 것은 새 길이 비어 있는 지도였다. 그 위에는 윤해준의 짧은 회답이 붙어 있었다. ‘확인된 구노선만 제공. 상대가 먼저 고치는 지명을 기록할 것.’ 상인은 이미 군영에 드러난 구노선 위에만 손가락을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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