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부상자와 명령 시각

갑오년, 전보국 주사는 군량을 훔쳤다 · 2026.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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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옆의 시각이 맞지 않았다.

김덕칠. 왼쪽 정강이 짓눌림. 묘시 삼각에 들것 도착. 그 아래 윤순화가 밤새 세 번 확인해 적은 것은 부상과 함께 보고된 명령의 발신 시각이었다. 묘시 오각. 명령보다 사람이 먼저 다쳤으니 원인은 다시 확인해야 했다.

순화는 붓대를 입술에 대지 않고 내려놓았다. 빈 군량 창고 바닥에는 뜯은 가마니가 열두 장 깔려 있었다. 서른한 명이 누워 있었고, 앉을 수 있는 사람은 아홉뿐이었다. 끓인 물은 두 동이, 깨끗한 헝겊은 마흔세 폭. 다음 솥이 식기까지 반 각이었다.

“이름부터요.”

들것을 메고 들어온 병사가 숨을 몰아쉬었다.

“군영 취사병입니다. 배에 파편이—”

“그분 이름이요.”

“최, 최원석입니다.”

순화는 최원석의 배를 눌렀다. 손바닥 아래가 단단했고 맥은 가늘었다. 바로 옆에서는 부두 짐꾼 강만복이 젖은 숨을 토했다. 갈비뼈 아래로 피가 번져 가마니 자락이 검어졌다. 두 사람 모두 기다릴 수 없었다.

창고 문에서 군관 하나가 봉한 종이를 들었다.

“아군 병사 우선이다. 대치선 유지에 필요한 자부터 살리라는 명령이다.”

순화는 최원석의 허리띠를 잘라 압박포를 밀어 넣었다. 손은 멈추지 않았다.

“누가 몇 시에 보냈습니까.”

“명을 먼저 받들어라.”

“발신 시각과 서명자를 말씀하세요. 치료 순서는 제가 정합니다.”

군관이 종이를 펴 보였다. 묘시 이각, 서명은 임관필 휘하 군수 참령. 종이가 창고에 닿은 것은 진시 초였다. 한 각 넘게 늦은 명령이었다. 그 사이 강만복의 입술은 푸르게 식고 있었다.

순화는 종이를 명부 옆에 놓았다.

“최원석 씨는 뱃속에서 피가 나는 듯합니다. 손을 떼면 더 나빠져요. 강만복 씨는 숨길이 먼저 막힙니다. 이분부터 열겠습니다.”

“노동자를 군병보다 앞세우겠다는 거냐.”

“출혈을 앞세우겠다는 겁니다.”

완문 뒤의 말은 짧았다.

“안 됩니다.”

순화는 삶은 칼을 집었다. 오복례가 강만복의 어깨를 눌렀고, 젊은 군의가 최원석 곁에 무릎을 꿇었다. 순화는 군의에게 압박 위치를 손가락으로 짚어 주었다.

“맥이 끊기면 바로 부르세요. 지금은 둘 다 놓치지 않습니다.”

칼끝이 강만복의 옆구리 피고임을 열자 검붉은 피가 쏟아졌다. 오복례는 욕을 삼키며 사내의 이름을 연달아 불렀다.

“만복아. 강만복. 집에 누가 기다려?”

“누, 누이 둘…….”

“들었지? 둘이나 기다린다. 숨 쉬어.”

순화는 대답까지 명부 여백에 적었다. 누이 둘. 마포 염리. 하역 넷째 줄. 숫자 하나로 줄이면 다음 물 배급에서도, 보상에서도 가장 먼저 지워질 정보였다.

군관은 명령서를 도로 거두려 했다. 오복례의 피 묻은 손이 종이 귀퉁이를 눌렀다.

“그건 여기 둬.”

“군영 문서다.”

“우리 사람 피가 묻은 시각이야. 높은 분들 종이는 가마니보다 가벼워서 잘도 떠내려가더군.”

“손을 치워라.”

오복례는 손 대신 고개를 돌렸다. 창고 기둥마다 밤새 적어 둔 이름표가 매달려 있었다. 이름 아래에는 다친 곳, 들어온 시각, 누구 명령을 옮기다 다쳤는지가 적혔다. 아직 원인을 모르는 칸에는 빈 줄만 있었다.

“감출 생각 없어. 내 사람들도 다 보게 붙일 거야.”

“동요를 만들 셈이냐?”

“멈출 줄 모르면 사람이 죽어. 명단 보고 제 동무 이름 있으면 밧줄 놓으라고 할 거다.”

순화가 고개를 들었다. 그것은 자신이 생각한 방법이 아니었다. 치료 기록을 공개하면 환자의 사정도 함께 드러났다. 강만복의 누이, 최원석의 소속, 숨어 치료받는 병사의 이름이 권력자 손에 넘어갈 수 있었다.

“전부 붙이면 안 돼요.”

오복례의 눈썹이 치켜올랐다.

“아까는 이름을 지우지 말라며.”

“이름을 남기는 것과 아무나 가져가게 하는 건 달라요. 작업 중지에 필요한 항목만 공개해요. 이름, 작업조, 다친 시각, 중지해야 할 일. 가족과 병세는 안쪽 명부에 둡니다.”

오복례는 잠시 순화를 보았다. 강만복이 신음하자 둘 다 동시에 손에 힘을 주었다.

“누가 안쪽 걸 보지?”

“환자 본인, 치료한 사람, 각 작업조가 고른 한 명. 군영이 가져가려면 세 사람이 함께 열어요.”

“또 열쇠 셋 타령이군.”

“열쇠는 두 개면 돼요. 대신 읽은 사람 이름은 셋 남겨요.”

오복례가 짧게 웃었다.

“살아 있는 사람은 보고서 양식에 안 맞는다더니, 양식을 하나 더 만드네.”

문밖에서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아버지 이름 있어요?”

열 살쯤 된 계집아이가 젖은 짚신을 벗지도 못한 채 명단으로 다가왔다. 오복례가 몸으로 종이를 가렸다. 아이가 찾는 사람은 목에 깊은 화상을 입은 조칠성이었다. 그는 살아 있었지만 아직 말을 못 했고, 군영 탄약 상자를 나르다 다쳤다는 사실을 적으면 허가 없는 운반 책임이 그에게 씌워질 수 있었다.

순화는 아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버님 성함이 조칠성 맞지?”

아이가 세차게 끄덕였다.

“안에 계셔. 지금 숨 쉬고 있고 약도 썼어. 하지만 무슨 일을 하다 다쳤는지는 아버님이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밖에 안 붙일 거야.”

“그럼 제가 왔다고 적어 주세요.”

순화는 안쪽 명부에 ‘딸 조분이 진시 일각 방문’이라고 썼다. 조분이는 글자를 읽지 못했다. 순화가 소리 내어 읽어 주자 아이는 자기 이름이 맞다는 표시로 작은 동그라미를 그렸다.

오복례가 물었다.

“이것도 세 사람이 봐야 하나?”

“아뇨. 가족이 자기 기록을 확인하는 건 막지 않아요. 다만 베껴 가는 사람은 남겨야 해요.”

군관이 코웃음을 쳤다.

“아이 동그라미까지 증거로 삼겠다는 건가.”

순화는 붓을 씻었다. 물이 금세 붉어졌다.

“증거가 아니라 약속이에요. 누구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 잊지 않겠다는.”

조분이가 창고 안으로 들어가자 순화는 명부 두 권의 겉장을 다르게 접었다. 바깥 것은 모서리를 네모지게, 안쪽 것은 삼각으로 접었다. 글을 모르는 사람도 잘못 집지 않게 하려는 표시였다. 오복례는 거기에 굵은 밧줄 조각과 가는 실을 각각 묶었다.

“종이보다 이게 낫지. 손으로도 구별하니까.”

“제가 틀렸어요. 밤새 혼자 적으면 제가 쓰러질 때 명부도 끝나요.”

그 말은 입 밖에 내기 어려웠다. 순화는 손끝 떨림을 감추려 칼을 내려놓았다. 어젯밤부터 물 한 모금 외에는 삼키지 못했다. 자신이 멈추면 환자가 죽는다는 생각이 판단을 전부 움켜쥐게 했다. 오빠가 위기 때마다 하던 짓과 닮아 있었다.

“사람을 나눠 주세요. 이름을 묻는 사람, 시각을 확인하는 사람, 물을 끓이는 사람. 치료 순서는 제가 맡되 기록은 같이 맡겠습니다.”

오복례가 문 쪽을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석구야, 글 읽는 애 둘 데려와. 한 명은 군병 쪽에서 골라. 또, 이 명단 보고 자기 조 이름 나오면 작업 멈출 권리가 있다고 써.”

최석구가 데려온 필기자는 부두 회계 심부름꾼 임춘배와 수비대 졸병 최병수였다. 순화는 두 사람에게 같은 환자를 따로 물어 적게 했다. 첫 대상은 오른손 두 손가락이 으깨진 나옥동이었다.

“이름, 다친 곳, 다친 시각, 그때 받은 명령. 모르면 모른다고 쓰세요.”

춘배는 ‘수레 밀라는 명’이라고 썼고, 병수는 ‘군량 수레 접근 금지’라고 썼다. 같은 고함을 서로 반대로 들은 셈이었다. 나옥동이 이를 악문 채 고개를 저었다.

“밀라 한 놈도 있었고 막으라 한 놈도 있었소. 둘이 동시에 소리쳤지.”

순화는 두 기록을 지우지 않고 나란히 붙였다. 발신자가 아니라 현장에서 외친 사람 이름은 둘 다 몰랐다. 빈칸에는 ‘확인 필요’라고만 썼다.

“맞추려고 하지 마세요. 다른 기록은 실패가 아니라 다음 질문이에요.”

오복례가 나옥동의 작업조를 확인했다.

“서쪽 도르래 셋째 줄. 같은 도르래는 지금 멈춰. 춘배, 가서 축이 갈라졌는지 보고 와. 병수는 군영에서 누가 금지 명령을 외쳤는지 찾아.”

군관이 헛웃음을 쳤다.

“부두 일이 멈추면 구호 쌀도 끊긴다.”

“그래서 다 멈추겠다는 게 아니야.” 오복례가 피 묻은 손가락으로 공개 명단의 첫 줄을 짚었다. “같은 밧줄, 같은 도르래, 같은 수레만 멈춘다. 다친 까닭을 확인하고 다른 조가 인수할 때까지. 품삯은 멈춘 사람 탓으로 깎지 않는다.”

순화는 그 조건을 받아 적었다. 작업 중지는 벌이 아니라 재발을 막는 치료였다. 그러나 구호소에 남은 쌀은 아침 죽으로 스물여섯 그릇분뿐이었다. 일이 길게 멈추면 저녁 솥이 비었다.

“중지한 조의 식량은요?”

“공개 장부에서 먼저 떼. 다친 사람 밥을 벌로 끊으면 누가 이름을 말하겠어.”

“그 몫을 누가 승인합니까.” 군관이 물었다.

오복례가 대답하기 전에 순화가 명부 아래에 자기 이름을 썼다.

“오늘 아침분은 제가 책임집니다. 다음 끼니 전에는 배급 책임자가 와서 확인해야 해요. 오지 않으면 이름과 시각을 빈칸 그대로 밖에 붙이겠습니다.”

그때 최원석 곁의 군의가 불렀다. 맥이 더 가늘어졌다. 순화는 강만복의 피를 빼는 관을 고정하고 곧장 자리를 옮겼다. 최원석의 손이 허공을 더듬었다.

“어머니께…… 전하지 마시오. 탈영한 줄 아실라.”

“성함과 소속은 남기되 가족 주소는 안쪽에 둘게요. 그 사람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순화는 군의에게 절개할 자리를 잡게 하고 자신은 호흡을 셌다. 하나, 둘, 셋. 창고 밖에서 종이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노동자와 병사 한 명씩이 공개 명단을 베껴 기둥에 붙이고 있었다. 누군가는 자기 동무 이름을 발견하고 서둘러 나갔다. 잠시 뒤 도르래 하나가 멎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군관이 문턱을 넘어서며 말했다.

“명령 거부와 작업 중지를 함께 보고하겠다.”

“발신 시각도 함께 보고하세요.” 순화는 최원석의 상처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도착한 시각도요.”

한 식경 뒤, 강만복의 입술에 핏기가 조금 돌아왔다. 최원석은 의식을 잃었지만 맥은 남았다. 살아났다고 적을 수는 없었다. 순화는 두 사람 이름 옆에 ‘치료 계속’이라고 썼다. 성공 대신 다음 교대가 해야 할 일이었다.

공개 명단에는 열세 이름이 올랐다. 밧줄 작업 두 곳과 부서진 수레 한 대가 멈췄고, 다섯 명이 다른 조로 옮겨 갔다. 구호소 물은 반 동이, 헝겊은 열일곱 폭 남았다. 오복례는 마지막 이름 아래 엄지를 찍고, 군병 대표 최병수에게 먹을 묻힌 붓을 건넸다.

“네 동무도 네가 확인해. 우리 이름만 진짜인 척하지 말고.”

최병수가 서툰 글씨로 이름을 적었다. 그 순간 창고 밖에서 말발굽 소리가 멎었다.

젖은 군복을 입은 전령이 봉서 하나를 내밀었다. 수비대 취사 책임자 박상호 체포 명령. 장교 몫을 먼저 퍼내라는 지시를 거부하고 병사 솥에 쌀을 넣었다는 이유였다.

봉서 아래의 발신 시각은 아직 먹이 마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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