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선에 끼어든 중계기
갑오년, 전보국 주사는 군량을 훔쳤다 · 2026.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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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식 납땜은 비가 오기 전인데도 축축하게 빛났다. 장문수는 비밀 중계기가 있다는 사실을 이미 확인했다. 오늘 해야 할 일은 누가 달았다고 이름 붙이는 것이 아니라, 어느 구간에서 얼마만큼 신호를 빼 가는지 재는 일이었다. 틀리면 아군 회선을 스스로 끊거나, 거짓 신호를 진짜 명령처럼 퍼뜨릴 터였다.
한성 외곽 점검소에는 전선 세 가닥이 들어왔다. 정식 전보국 선, 북쪽 중계소 선, 벽 판자 뒤에서 나온 가는 구리선. 장문수는 세 선 끝에 번호표를 달았다.
“첫째, 전지를 떼고 자연 저항을 잽니다. 둘째, 짧은 시험 신호를 보냅니다. 셋째, 다른 운용자가 같은 값을 재시험합니다.”
임관필이 보낸 포졸이 물었다. “외국식 나사면 외국 병참이 달았겠지?”
“이것은 추정입니다.”
장문수는 나사 머리의 홈을 종이에 떴다. “이것은 흔적입니다.”
그는 중계기 덮개를 열지 않았다. 먼저 정식 선의 저항값을 쟀다. 건조한 날보다 높았다. 비구름이 몰려오며 절연포가 습기를 먹은 탓일 수도 있었다. 가는 구리선을 분리하자 값이 조금 내려갔다.
“몰래 붙인 선이 신호를 먹는 건 맞습니까?” 포졸이 재촉했다.
“한 번으로는 모릅니다.”
장문수는 절연포를 새것으로 갈고 다시 쟀다. 값은 또 내려갔지만 처음 차이 전부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습기와 중계기가 함께 영향을 주고 있었다.
“습기 탓만은 아닙니다.”
“그러면 범인은?”
“측정값에는 범인 이름이 없습니다.”
그는 납땜 자국을 확대경으로 보았다. 정식 전보국 납은 회색이고 거칠었다. 비밀선 납은 더 밝고 매끈했으며 송진 냄새가 달랐다. 외국식 재료일 가능성은 높았다. 그러나 재료를 산 상인, 설치한 기술자, 사용한 조직은 서로 다를 수 있었다.
점검소 문이 열리고 윤해준이 들어왔다. 포승은 풀리지 않았고 감찰 포졸 둘이 따라붙었다.
“남은 것은?” 해준이 물었다.
“복제 범위와 지연 시간. 설치자는 모릅니다.”
“첫 위조 전보는 복제됐습니까?”
“일부 점·선 묶음이 종이띠에 남았습니다. 전체인지는 재시험해야 합니다.”
해준은 비밀선을 보자마자 잘라 버리자고 하지 않았다. “감청되는 상태를 이용할 수 있습니까?”
장문수는 손을 멈췄다. “무엇을 보내려 합니까?”
“제한된 거짓 신호. 군량이 서강 나루로 이동한다는 짧은 문구를 흘리고, 누가 수레와 말먹이를 사들이는지 봅니다.”
포졸이 웃었다. “좋군. 적을 속이면 되겠어.”
“아직 좋지 않습니다.” 장문수가 말했다. “비밀선이 어느 방향으로 이어지는지 모르고, 거짓 신호가 정식 중계소에도 도착하면 아군 수레가 실제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해준이 물었다. “분리할 수 있습니까?”
“시험 신호는 가능합니다. 실행 명령은 다릅니다.”
“차이는?”
“시험이라고 알아볼 검증 부호를 정식 수신자에게 미리 줍니다. 비밀 중계기 쪽에는 그 부호가 없는 문구만 복제되는지 봅니다.”
해준은 짧게 생각했다. “검증 부호를 누가 가집니까?”
“전보국 운용자 둘과 감찰 입회자. 당신은 갖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제가 거짓 문구를 제안했는데도?”
“그래서 더더욱.”
해준은 반박하지 않았다. 자신이 신호 내용과 진위를 가르는 부호까지 가지면 또 혼자 결정을 잠그게 된다.
장문수는 시험 절차를 종이에 세 칸으로 나눴다. 측정 사실, 자기 해석, 정치적 사용 제안. 첫 칸에는 저항값과 납땜 상태만 적었다. 둘째 칸에는 ‘복제 가능성 높음, 방향·설치자 미확인’이라고 썼다. 셋째 칸에는 해준의 거짓 신호 제안을 그대로 적고, 승인 전 실행 금지라고 둘러쌌다.
“이 문서를 누구에게 보냅니까?” 해준이 물었다.
“감찰, 전보국, 북쪽 중계소. 세 곳이 다른 운용자로 재시험합니다.”
“청국 기술망에는?”
장문수의 붓이 잠깐 멈췄다. 그가 쓰는 측정기와 절연포 일부는 청국 기술자들에게서 배운 것이었다. 부품 번호를 물으면 더 빨리 출처를 좁힐 수 있었다. 대신 측정 원본이 그쪽 손에 먼저 들어가면 어느 국가가 증거를 소유하는지 흐려졌다.
“원본은 보내지 않습니다. 부품 치수와 납 성분 질문만 보냅니다. 답에는 출처와 작성자를 요구합니다.”
“그들이 조건을 붙이면?”
“조건도 답과 함께 공개합니다.”
포졸이 혀를 찼다. “전선은 국경을 모르지만 세관은 구리를 아는군.”
장문수가 그를 보았다. “그 농담은 제가 먼저 했습니다.”
점검소 안에 짧은 웃음이 흘렀다. 곧 빗방울 하나가 지붕을 때렸다.
장문수는 첫 시험을 시작했다. 정식 선에는 짧은 점 두 개, 긴 선 하나, 다시 점 두 개를 보냈다. 전보국 수신자는 미리 받은 검증 부호를 붙여 되돌려 보냈다. 정식 회선 왕복은 열두 박자였다.
첫 시험을 마친 장문수는 측정표를 뒤집어 놓았다. 재시험 운용자 최석구를 안으로 불렀지만 앞선 값도, 비밀선이 있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세 선을 번호대로 재시오. 이상을 찾으려 하지 말고 나온 값만 적으시오.”
최석구는 젖은 신발을 벗고 마른 헝겊으로 손을 닦았다. 전지 접촉면을 한 번 갈고, 절연포의 물기를 같은 무게의 마른 천으로 눌렀다. 첫 선에서는 장문수보다 한 눈금 높고, 둘째에서는 같고, 셋째에서는 한 눈금 낮은 값이 나왔다.
포졸이 말했다. “값이 다르니 실패 아닙니까?”
장문수는 허용 오차 표를 내밀었다. “사람 손과 습기가 있으니 같은 숫자만 나오면 오히려 먼저 값을 본 겁니다. 세 값 모두 범위 안입니다.”
최석구가 비밀선 납땜을 보고 물었다. “이 선은 장부에 없습니까?”
“없소.”
“그러면 제 보고서에는 장부 밖 접속이라고만 씁니다. 외국식이라는 말은 재료 대조 뒤에 붙이죠.”
장문수는 그 문장을 고치지 않았다. 다른 운용자가 자기 해석까지 베끼지 않는 것이 재시험의 보상이었다.
비밀선 끝의 종이띠는 여섯 박자 늦게 움직였다. 같은 점·선 묶음이 찍혔지만 검증 부호는 없었다.
“복제는 됩니다.” 장문수가 말했다. “적어도 이 구간에서는.”
“어디로 갑니까?”
“아직 모릅니다.”
그는 두 번째 시험에서 빈 문구를 보냈다. 내용 없이 길이만 같은 신호였다. 비밀선 종이띠도 따라 움직였다. 장치가 뜻을 골라 듣는 것이 아니라 들어오는 전류를 통째로 베끼는 쪽에 가까웠다.
해준이 물었다. “그러면 제한된 거짓 신호도 갑니까?”
“갑니다. 정식 수신자도 받습니다.”
“검증 부호로 거를 수 있죠.”
“운용자가 부호를 알고 지킬 때만.”
바깥에서 천둥이 울렸다. 북쪽 중계소로 갈 기별꾼이 비를 보고 발을 멈췄다. 빠른 통신을 검증하려면 사람이 진흙길을 걸어 부호를 먼저 전달해야 했다.
기별꾼은 짚신 위에 새끼줄을 감다가 물었다. “부호를 잃으면 회선도 못 씁니까?”
“잃었다는 기별이 돌아올 때까지 못 씁니다.” 장문수가 답했다.
“그럼 제 왕복이 늦으면 한성이 멈추겠군요.”
“그래서 출발·도착 시각과 동행자 이름을 적습니다.”
기별꾼은 길을 아는 심부름꾼을 증인으로 골랐다. 장문수는 두 사람 신발의 짚 매듭 모양을 그려 봉투 뒤에 붙였다. 도중에 사람이 바뀌면 문서보다 발이 먼저 드러날 터였다.
두 사람이 비 속으로 나간 뒤 점검소 시계가 한 번 울렸다. 정식 회선은 그 순간부터 검증 부호 도착까지 봉인됐다. 대치를 지키는 급한 기별도 같은 한 식경을 기다려야 했다.
장문수는 거짓 신호 제안 옆에 비용을 적었다. 기별꾼 왕복 두 시진. 북쪽 회선 정지 한 식경. 오독 시 아군 수레 이동 가능. 비밀선 상대가 시험을 눈치챌 가능성.
해준이 말했다. “그래도 합시다.”
“승인은 누가 합니까?”
“감찰과 전보국 운용자. 현장 수레 대표도 문구를 봐야 합니다.”
“왜 수레 대표까지?” 포졸이 물었다.
“거짓 군량 이동이 실제 가격을 올리면 그들이 먼저 비용을 냅니다.”
마포 수레 대표 조만식이 불려 왔다. 그는 거짓 신호 초안을 읽자 첫 줄부터 붓으로 그었다.
“‘군량 수레 전부 서강으로.’ 전부라는 말은 안 됩니다. 이걸 들은 말먹이 장수가 값을 세 배로 올리면 빈 수레까지 서강으로 몰립니다.”
해준이 물었다. “어디까지 허용하겠습니까?”
“시험 수레 두 대. 실제 출발 금지. 계약 문의만. 말먹이 선금 금지.”
“그러면 상대가 미끼로 보지 않겠습니까?”
“그건 당신 계산이고, 말이 굶는 건 내 계산입니다.”
조만식은 초안 옆에 중지 조건을 썼다. 수레가 한 대라도 실제로 움직이거나 사료값이 평소의 두 배를 넘으면 즉시 회선 차단. 자기 이름과 수레 번호 두 개를 적고 서명했다.
해준은 ‘전부’를 지우고 ‘두 대 계약 문의’로 고쳤다. 속임수의 크기가 줄자 얻을 정보도 줄었다. 대신 시험 때문에 현장 물가가 무너질 위험도 줄었다.
“중지 판단은 조 대표가 합니다.” 해준이 포졸에게 말했다. “감찰 승인 뒤라도 현장에서 끊을 수 있습니다.”
조만식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수정된 문구를 끝까지 다시 읽은 뒤에야 장문수에게 넘겼다.
장문수는 정치 질문을 회로 밖으로 밀어내려던 자기 습관을 알아차렸다. 신호가 거짓이어도 오른 말먹이값과 붙잡힌 수레꾼은 진짜였다.
“그 조건을 적습니다.”
그는 승인 칸 아래에 수레 대표 열람과 중지권을 추가했다. 거짓 신호가 시험 범위를 넘으면 현장 대표가 회선을 끊도록 했다.
세 번째 재시험은 다른 운용자에게 맡겼다. 젊은 운용자는 장문수가 쓴 수치를 보지 않은 채 저항값을 재고, 납땜 흔적을 따로 그렸다. 값은 완전히 같지 않았지만 허용 오차 안이었다.
장문수는 그제야 보고서 맨 위에 썼다. 외부 중계기 접속 및 일부 신호 복제 확인. 설치자·수신지 미확인.
포졸이 물었다. “외국 병참이라고 쓰지 않습니까?”
“쓰면 추정이 사실 자리를 차지합니다.”
해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보고서와 거짓 신호 제안을 분리해 보내십시오.”
“당신 이름은?”
“제안서에만 씁니다. 측정 보고서에는 장문수와 재시험 운용자 이름만.”
장문수는 두 문서를 서로 다른 봉투에 넣었다. 기술 사실이 해준의 계획을 증명하는 장식이 되지 않게 한 것이다.
빗줄기가 굵어졌다. 북쪽으로 갈 기별꾼은 신발에 짚을 더 감고 출발했다. 정식 회선은 검증 부호가 도착할 때까지 멈췄다. 비밀선은 자르지 않은 채 봉인했다.
그때 점검소 밖에서 부상자 수레 하나가 멈췄다. 빈 창고를 임시 구호소로 바꾼다는 기별이었다. 수레 뒤에는 윤순화가 앉아 환자들의 이름을 하나씩 묻고 있었다.
“다친 시각도 말해 주세요. 그때 받은 명령이 있으면 같이요.”
장문수는 문틈으로 그녀의 장부를 보았다. 사람 이름 옆에 시각과 명령이 붙고 있었다.
회선에서 복제된 신호보다 느렸지만, 누가 그 신호의 비용을 냈는지는 저 장부가 더 정확히 남길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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