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 가마니의 두 솥
갑오년, 전보국 주사는 군량을 훔쳤다 · 2026.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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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가마니가 잔불 위로 내려오다 밧줄째 미끄러졌다. 오복례는 예순 가마니를 오늘 밤 두 솥에 넣어야 했다. 서두르면 사람이 불 속으로 떨어지고, 멈추면 부두 구호소와 성문 교대조가 빈 솥을 긁을 판이었다.
“당기지 마!”
오복례가 밧줄을 발로 밟았다. 서쪽 조 네 명이 반사적으로 힘을 주다가 멈췄다. 가마니는 불에 그을린 판자 한 뼘 위에서 흔들렸다. 총성이 강 건너에서 두 번 울렸고, 말 한 필이 놀라 수레 채를 걷어찼다.
“칠성아, 왼쪽 매듭 풀어. 석만이는 말 눈 가려. 사람부터 세!”
박칠성이 다친 검지를 펴지 못한 채 손바닥으로 매듭을 밀었다. 석만이는 절뚝거리며 말머리로 갔다. 오복례는 밧줄의 보풀을 보았다. 낮에 마른 줄이라고 골라 둔 것이었지만, 가마니 모서리에 쓸린 부분이 하얗게 일어나 있었다.
“이 줄 버려.”
수레꾼이 소리쳤다. “새 줄 갈면 반 식경 늦습니다!”
“끊어지면 사람 하나가 평생 늦어.”
오복례는 자기 허리의 보조줄을 풀어 가마니 아래로 걸었다. 둘이 무게를 받치고 나서야 낡은 줄을 잘랐다. 첫 가마니가 땅에 닿았을 때 노동자 누구도 환호하지 않았다. 오복례는 포대를 두드려 젖은 소리가 없는지 듣고, 봉합선을 벌려 마른 알곡을 확인했다.
“하나.”
장부를 든 김원중이 숫자를 적었다. 마포 창고에서 수레에 실을 때 한 번, 부두 야적장에 내릴 때 한 번. 같은 가마니가 두 장부에 같은 번호로 남았다.
군영 군관이 지급 허가서를 흔들었다. “감찰과 탁지 인장이 모두 찍혔다. 즉시 전량 옮겨라.”
오복례가 낡은 밧줄을 그의 발 앞에 던졌다.
“전량은 사백이십칠 석이고, 지금 허가 난 건 예순 가마니야. 높은 분 눈에는 숫자가 줄을 대신 잡아 줍니까?”
“총성이 들리지 않나?”
“들리니까 줄부터 봐.”
군관이 칼집으로 둘째 수레를 가리켰다. “성문 교대가 비면 네 창고부터 빼앗긴다.”
“사람이 깔리면 네 성문까지 들고 갈 손이 없어.”
오복례는 동쪽 조와 서쪽 조를 여섯 명씩 나누고, 한 조가 여섯 가마니를 내리면 다른 조와 바꾸게 했다. 낮에 합의한 스물넷 전부를 한꺼번에 붙이면 빨랐다. 대신 총성에 놀란 말과 잔불, 어두운 판자 위에서 한 번 삐끗한 몸이 다음 가마니까지 끌려갈 터였다.
“여섯 개마다 교대. 매번 줄 훑어. 손바닥에 보풀 걸리면 멈춰.”
군관이 말했다. “그 속도로는 해 지기 전에 못 간다.”
“해는 이미 졌어.”
오복례는 둘째 가마니에 어깨를 댔다. 가장 위험한 줄은 남에게만 맡기지 않았다. 그러나 셋째 가마니까지 직접 들었을 때 오른쪽 팔꿈치가 떨렸다.
한서린이 야적장으로 들어온 것은 그때였다. 그녀는 수레가 아니라 사람 줄부터 세었다. 은궤 대신 작은 봉투 스물넷을 든 상단 서기 둘이 뒤따랐다.
“복례야. 팔 내려.”
“돈 가져왔으면 거기 놔. 줄 바꾸는 중이야.”
“그래서 먼저 연다.”
서린은 작업 장부 옆에 봉투를 펼쳤다. 이름, 어젯밤 품삯, 오늘 야간 위험수당, 부상 보상. 박칠성과 석만의 봉투에는 다른 사람보다 항목이 하나씩 더 붙어 있었다. 서린은 자기 손으로 첫 봉투의 매듭을 풀었다.
“오복례. 금액 확인해.”
오복례는 밧줄을 놓지 않았다. “내 것부터 주면 다른 놈들이 맞는지 누가 봐?”
“네 것부터가 아니라 명단 순서야. 네 이름이 첫 줄이고.”
“순서 바꿔. 다친 놈 먼저.”
서린은 장부 첫 줄에 가는 선을 긋고 박칠성을 위로 올렸다. “칠성 씨, 오른손 말고 왼손으로 세세요. 서기는 입으로 금액을 읽고.”
김원중이 은전 수를 읽었다. 박칠성은 왼손으로 하나씩 옮겨 세었다. 맞다고 답한 뒤에도 서린은 봉투를 닫지 않았다.
“수령 표시는 본인이 하세요.”
박칠성이 왼손 엄지를 먹에 찍었다. 석만은 오늘 수레 면제와 품삯 보전 문구를 소리 내 다시 들은 뒤 자기 손도장을 눌렀다. 글자를 읽는 사람과 읽지 못하는 사람이 같은 조건을 확인하는 데 시간이 들었다.
군관이 혀를 찼다. “쌀보다 품삯이 먼저인가?”
서린이 대답했다. “쌀은 명령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 손들이 움직입니다.”
오복례가 덧붙였다. “품삯은 지금.”
봉투 열둘이 확인되었을 때 멀리서 세 번째 총성이 났다. 동쪽 조의 어린 노동자가 밧줄을 다시 잡으려 했다. 오복례가 손목을 쳐 냈다.
“네 봉투 아직 안 열었어.”
“시간 없잖아요.”
“그래서 네 돈 떼어먹기 좋지.”
서린은 남은 봉투를 두 줄로 펼쳤다. 노동자들은 교대 순서대로 은전을 확인하고 장부에 이름이나 손도장을 남겼다. 마지막 오복례 차례가 왔다.
서린이 물었다. “금액 맞아?”
“위험수당은 맞아. 어젯밤 체불분도.”
“부상 보상은?”
“내 건 없어.”
“팔 떨리는 거 봤어.”
“아직 안 다쳤어.”
“다친 뒤에만 돈을 주면 작업 중지권이 아니야.”
서린은 빈 항목을 하나 더 만들었다. 통증 발생 시 치료비 선지급. 오복례가 코웃음을 쳤다.
“돈으로 나 멈추게 할 셈이야?”
“네가 멈출 때 돈 잃지 않게 하려는 거야.”
오복례는 그 문장을 장부에서 직접 읽었다. 마음에 든다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자기 이름 아래 서명하고, 작업 중지 판단자 칸에 크게 썼다. 오복례.
“이제 넌 돈 냈고, 멈추는 건 내가 정해.”
“그래.”
“나중에 딴말하면?”
“장부 두 부에 다 남았어.”
서린은 노동대 사본을 오복례에게 건넸다. 좋은 고용주가 베푼 봉투가 아니라, 누가 어떤 위험을 얼마에 맡았고 언제 멈출 수 있는지 적힌 계약이었다.
그녀는 두 사본의 지급일 칸에 같은 문구를 썼다. 갑오년, 첫 전보 발신 당일, 해진 뒤 첫 경. 약속한 해 지기 전보다 늦었다는 말도 괄호 안에 남겼다. 오복례는 스물넷의 수령 표시와 시각을 다시 맞춘 뒤 두 장부에 대표 서명을 했다.
작업이 다시 시작됐다.
열두 번째 가마니에서 새 밧줄 하나가 갈라졌다. 오복례는 즉시 손을 들었다. 군관이 욕을 했지만 스물넷의 손이 동시에 멎었다. 갈라진 부분을 잘라 내고 매듭을 다시 묶는 동안 부두 구호소에서 여인 하나가 빈 솥을 들고 찾아왔다.
“아이들이 물만 마셨습니다. 한 가마니라도 먼저 주시면 안 됩니까?”
군관이 가로막았다. “배분표는 구호소 스물, 성문 마흔이다. 수레가 모두 출발한 뒤—”
오복례가 말을 끊었다. “솥이 여기까지 왔는데 쌀을 다시 수레에 태워 갔다 올 셈이야?”
서린이 배분표를 보았다. 구호소 몫 스물은 목적지만 정했지 한꺼번에 도착하라고 하지는 않았다.
“구호소 몫에서 두 가마니 먼저 내줘. 수령인 이름과 시각을 적고.”
군관이 지급 허가서를 들이밀었다. “명령을 또 바꾸겠다는 건가?”
“총수는 안 바뀝니다. 도착 순서를 바꿉니다.”
오복례는 구호소 여인에게 물었다. “이름?”
“정분이요. 구호소 솥은 제가 봅니다.”
“몇 명 먹어?”
“마흔셋. 아이 열둘.”
“김 서기, 마흔셋하고 아이 열둘 적어. 정분이 손도장 받고.”
정분이는 두 가마니를 받은 뒤 울지 않았다. 쌀알을 손바닥에 펴 말랐는지 확인하고, 노동자 둘과 함께 구호소로 직접 옮겼다. 첫 쌀은 장부 속 목적지가 아니라 솥 옆에 닿았다.
스무 번째 가마니를 내릴 때 야적장 가장자리에서 불꽃이 튀었다. 총알 하나가 기름 묻은 널판에 박힌 것이었다. 노동자들이 엎드렸다. 작은 불이 짚 부스러기를 타고 번졌다.
“물 붓지 마! 쌀 쪽으로 흘러!”
오복례가 모래통을 걷어차 불 위에 쏟았다. 박칠성이 다친 손을 숨기고 가마니를 끌려 하자 그녀가 목덜미를 잡았다.
“너 교대 끝났어.”
“불 붙으면 다 타요.”
“그래서 다음 조가 있어.”
서쪽 조가 모래 자루로 불길을 덮었다. 동쪽 조는 수레를 반대편으로 옮겼다. 전원이 달라붙었으면 더 빨랐겠지만, 지친 사람들이 같은 판자에 몰려 두 번째 사고를 냈을 것이다. 오복례는 예순 가마니보다 사람 수를 먼저 셌다.
“스물넷?”
“스물넷!” 여기저기서 답이 돌아왔다.
“다친 사람?”
석만의 무릎이 다시 부었고, 수레꾼 하나가 말발굽에 정강이를 스쳤다. 서린은 지급 장부 뒤에 두 이름을 더 적었다. 작업은 한 식경 멈췄다.
군관이 이를 갈았다. “이러다 성문이 먼저 무너진다.”
오복례가 잔불을 신발로 눌렀다. “성문에 밥 줄 사람을 태워 죽이면 더 빨리 무너져.”
다시 줄을 검사하고 교대를 바꿨다. 구호소로 먼저 간 두 가마니를 포함해 서른여섯 번째 번호가 내려왔을 때, 야적장에는 새로 내린 서른넷이 있었다. 그중 열여덟을 실은 첫 수레 세 대가 성문으로 출발했다. 말에게는 사료 한 줌씩을 먹였고, 수레마다 노동자 둘과 군졸 하나가 탔다. 서린은 출발 시각을 적고 봉인끈을 묶었다. 열여섯 가마니는 번호표를 단 채 야적장에 남았다.
아직 수레에서 내리지 않은 스물넷까지 합치면 남은 것은 마흔이었다. 오복례는 그것을 구호소 열여덟, 성문 스물둘로 나눴다. 먼저 보낸 구호소 둘과 성문 열여덟을 더하면 최종 배분은 구호소 스물, 성문 마흔이었다. 마지막 수레가 떠날 때 야적장 바닥에는 젖은 쌀 한 줌도 흘리지 않았다.
“예순.” 김원중이 말했다.
오복례는 숫자를 믿지 않고 빈 수레와 남은 번호표를 맞췄다. 예순 개 번호가 출발·수령 장부에 하나씩 있었다.
부두 구호소에서는 첫 솥물이 끓었다. 정분이가 두 가마니 중 하나를 열어 아이 열둘과 부상자부터 그릇을 놓았다. 오복례는 자기 몫을 받지 않았다. 그 대신 은전 봉투를 다시 세어 귀가할 노동자 손에 직접 쥐여 주었다.
성문 쪽에서는 늦은 전령이 돌아왔다. “마흔 가마니 인수했습니다. 박상호 하사가 교대조 솥으로 바로 나눴습니다.”
군관이 처음으로 입을 다물었다.
작은 성과였다. 육백 석도, 마른 사백이십칠 석 전부도 아니었다. 예순 가마니와 스물넷의 품삯, 두 솥의 첫 김이었다.
오복례는 환호 대신 귀가 인원을 셌다. 스물넷. 석만은 부은 무릎을 펴지 못하면서도 자기 봉투와 작업 면제 문구를 품에 넣고 있었다.
그때 성문에서 온 두 번째 전령이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이토의 선발대가 지정 창고에 닿았습니다. 문은 열려 있는데 군량은 비었습니다. 수비대에게 무기를 내놓으라 했지만, 박상호 하사가 배급표와 남은 솥을 보이며 거부했습니다.”
“싸움은?” 오복례가 물었다.
“양쪽이 문 앞을 잡고 섰습니다. 저쪽도 빈 창고 때문에 바로 밀어붙이지 못합니다. 점거가 끝난 게 아니라 대치가 됐습니다.”
오복례는 빈 야적장과 김이 오르는 두 솥을 번갈아 보았다. 예순 가마니가 전쟁을 끝내지는 못했다. 다만 누군가의 무기를 오늘 밤 거두지 못하게 만들었다.
궁궐 쪽 총성은 멎었다. 대신 오래 버틸 사람들이 솥을 두드리는 소리가 어둠을 타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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