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보국 주사 체포
갑오년, 전보국 주사는 군량을 훔쳤다 · 2026.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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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운용석에서는 전지가 탄 시큼한 냄새가 났다. 임관필은 오늘 안에 사람과 증거 중 무엇을 먼저 묶을지 정해야 했다. 잘못 고르면 위조자는 달아나고, 더 서두르면 군량과 함께 굶는 사람까지 봉해 버릴 터였다.
윤해준은 조사실 의자에 앉아 있었다. 손목에는 포승이 감겼지만 얼굴에는 맞은 자국이 없었다. 아직은.
군영에서 따라온 군관이 물통을 탁자에 내려쳤다.
“주리 한 번이면 누구 지시인지 나옵니다.”
임관필은 대답하지 않았다. 빈 발신대의 접점을 천 조각으로 집어 흰 종이 위에 놓았다. 나사 머리에 그을음이 묻었고, 황동판에는 급히 조인 흔적이 남았다. 전지 눈금은 붉은 선 아래에 멎어 있었다.
“선후를 말하시오.”
해준이 마른 입술을 열었다. “세 명령이 같은 육백 석을 요구했습니다. 마포와 수비대가 굶는다는 기별이 왔고, 그 뒤 제가 우선부호를 썼습니다.”
“누가 쓰라고 했소?”
“제가 정했습니다.”
“누가 이익을 보오?”
“쌀을 받으면 부두 노동대와 성문 교대조가 봅니다.”
“당신은?”
“지금처럼 잡힙니다.”
군관이 해준의 뒤통수를 치려 손을 들었다. 임관필이 손등으로 탁자를 한 번 쳤다.
“진술 전에 폭행하면 어느 말이 본래 말인지 가를 수 없소.”
“대감, 역모가 벌어지는 판입니다.”
“그 사실은 별개입니다.”
임관필은 포졸에게 세 가지를 지시했다. 발신 일지를 봉할 것. 전지함의 남은 액과 접점을 따로 담을 것. 세 전보의 인장이 종이에 닿은 깊이와 접수 시각을 각각 베낄 것.
“원본을 한 상자에 넣지 마라. 누가 손댔는지 상자마다 적고, 옮길 때마다 두 사람이 서명한다.”
포졸 하나가 전지액 병과 접점을 같은 함에 넣으려 했다. 병마개에서 번진 액이 황동판에 닿으면 그을음과 손자국이 씻길 판이었다. 임관필은 함 뚜껑을 손바닥으로 막았다.
“전지는 유리병째 세우고, 접점은 마른 종이에 싸라. 운용석에서 떼어 낸 시각은?”
“기록하지 못했습니다.”
“그럼 지금 시각과 기록하지 못한 사실을 함께 써.”
포졸이 머뭇거리자 임관필은 자기 붓을 건넸다. 잘못을 숨기면 증거가 깨지고, 잘못한 시각을 남기면 증거의 한계를 셀 수 있었다. 그는 빈 칸을 정답처럼 꾸미지 않았다.
다른 포졸은 세 인장의 탁본을 한 장에 겹쳐 올렸다. 임관필이 종이를 다시 갈라 각 탁본 아래 채취자 이름을 받았다. 종이 세 장과 봉인끈 세 줄이 더 들었다. 그만큼 마포로 보낼 사람이 늦어졌다.
군관이 비웃었다. “그 사이 쌀도 위조자도 사라지면요?”
“사람은 포승으로 남기고, 쌀은 지급할 것과 증거로 남길 것을 나눈다.”
“누가 나눕니까?”
문밖에서 정중한 목소리가 들렸다. “합계가 맞는 사람이 나눠야겠지요.”
민채옥이 조사실로 들어왔다. 탁지아문 서리 둘이 장부 상자를 들고 뒤따랐다. 그녀는 해준보다 봉인되지 않은 전지함을 먼저 보았다.
“감찰께서 사람을 잡는 동안 제 장부가 마포에서 두 번 고쳐졌습니다.”
임관필이 물었다. “고친 것이 죄요?”
“허가 없는 수정이면 누수입니다. 다만 원래 숫자가 거짓이면 그 예외를 누가 갚을지부터 봐야 합니다.”
민채옥은 마포에서 온 사본을 펼쳤다. 육백 석 아래에 마른 쌀 사백이십칠, 젖음 일흔아홉, 폐기 서른여섯, 미발견 쉰여덟이 적혀 있었다. 옆에는 오복례가 쓴 ‘노동대 책임 아님’이 굵게 남았다.
“합계는 육백입니다.” 그녀가 말했다. “실물 확인은 오백사십이. 즉시 급식에 쓸 수 있는 것은 사백이십칠. 미발견 쉰여덟은 조사 대상입니다.”
군관이 말했다. “그러니 전량 봉해야 합니다.”
민채옥이 시선을 들었다. “젖은 쌀까지 봉해 두면 내일은 폐기 서른여섯이 아니라 백 석이 될 수 있습니다. 마른 쌀을 묶으면 수비대가 성문을 비우고요. 그 손실은 누가 갚습니까?”
“국가 재산을 빼돌린 자가 갚겠지.”
“잡히지 않은 범인에게 오늘 저녁 배급을 청구할 수는 없습니다.”
임관필은 그녀가 가져온 압수 명령을 읽었다. ‘관련 장부와 군량 전량.’ 전량이라는 말 하나가 증거와 식량을 합쳐 놓았다.
“민 주사,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보낼 생각이오?”
“미발견 쉰여덟의 이동표와 원장 원본은 압수합니다. 젖음·폐기 표본은 가마니마다 한 되씩 봉하고 나머지는 말리거나 버립니다. 마른 사백이십칠 가운데 이미 배분표에 오른 예순 가마니는 지급 허가를 내되 수령인과 시각을 적습니다.”
군관이 고함쳤다. “위조 명령을 집행하겠다는 겁니까?”
“위조 여부는 감찰께서 가리십시오.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쌀과 증거로 남겨야 할 쌀은 제가 가릅니다.”
민채옥은 압수 명령의 ‘전량’ 위에 가는 선을 긋고 썼다. 증거 수량과 지급 수량 분리. 그 아래 자기 이름과 시각을 적었다.
임관필은 그 행동을 막지 않았다. 자기 수사가 늦어지는 동안 쌀이 썩는다면 증거를 보존한 것이 아니라 사건을 하나 더 만든 셈이었다.
그는 해준 앞에 세 전보를 놓았다. 원본은 아니고, 압인 윤곽을 먹으로 떠낸 종이였다.
“셋이 같은 시각에 접수됐다고 했소.”
“일지에는 그렇습니다.”
“모양은 셋 다 다르오. 탁지 인장은 둥글고 먹이 덜 말랐고, 군영 것은 네모지며 종이 뒤까지 눌렸소. 외국 병참 확인인은 작고 얕은데 접수 시각보다 먼저 말랐소.”
해준은 잠시 눈을 감았다. “저도 봤습니다.”
“그런데 어느 것이 가짜라고 말하지 않았소.”
“가짜인지 몰랐으니까요. 셋 다 진짜일 수도 있습니다.”
“진짜 명령 셋이 같은 쌀을 요구하면?”
“먼저 보낸 사람이 죄인이 됩니다.”
임관필은 침묵했다. 그 답이 해준을 무죄로 만들지는 않았다. 권한 없는 위조는 실제로 일어났다. 다만 배후를 캐겠다며 고문부터 하면 인장의 선후와 전지 소모, 장부 수정, 마포의 증인들이 모두 한 자백 아래 묻힐 수 있었다.
군관이 다시 재촉했다. “지금이라도 형틀을 들이겠습니다.”
임관필은 체포 기록을 펼쳤다. 죄목 칸에 전보 위조 혐의라고 쓰고, 횡령은 쓰지 않았다.
“쌀 한 톨이 이 사람 주머니에서 나왔소?”
“결과가 같지 않습니까?”
“그 사실은 별개요.”
그는 해준의 포승을 의자 고리에 묶되 손가락은 움직일 수 있게 풀어 주었다.
“발신 문구를 다시 쓰시오. 기억나는 글자와 기억나지 않는 글자를 구분하고, 모르면 빈칸으로 두시오.”
해준이 붓을 들었다. “제가 사본을 남겼습니다.”
“어디에?”
“전보국 장부 사이 한 부, 한서린 장부에 한 부. 나머지는 중계수가 보관했을 겁니다.”
군관의 얼굴이 밝아졌다. “마포부터 뒤지면 되겠군.”
임관필은 그를 보았다. “사본을 찾는다는 이유로 지급 장부까지 태우면 증거 인멸로 적겠소.”
민채옥이 끼어들었다. “제 서리들이 원본을 압수합니다.”
“감찰 봉인 두 개를 함께 붙이시오.”
“재정 장부 보관권은 탁지에 있습니다.”
“위조 수사 증거 보관권은 감찰에 있소.”
두 사람은 한동안 서로를 보았다. 군영 군관은 그 틈을 이용해 수레 전량 동결 명령을 다시 밀었다.
민채옥이 장부 사본 한 장을 찢어 두 칸으로 나눴다. 왼쪽에는 증거, 오른쪽에는 지급이라고 썼다.
“원본 상자는 두 봉인을 붙입니다. 지급표 사본은 마포와 수령지에서 각각 서명합니다. 어느 쪽도 혼자 고치지 못합니다.”
임관필은 자기 인주를 꺼냈다. “그렇게 하시오.”
두 인장이 같은 봉인끈 위에 나란히 찍혔다. 신뢰의 표시가 아니라 서로를 감시하는 장치였다.
조사실 바깥에서 포졸이 뛰어왔다.
“감찰 나리, 서강 나루에서 외국 병참 통역이 수레꾼들을 모읍니다. 마포 길이 막힐 것을 알고 조수 시간과 빈 창고를 묻고 다닌답니다.”
임관필이 물었다. “누가 알려 줬나?”
“수레가 멈춘 걸 봤답니다. 돈도 두 배를 불렀고요.”
민채옥이 낮게 말했다. “전보를 못 읽어도 빈 수레는 읽는군요.”
임관필은 지도를 펴지 않았다. 이토라는 병참 장교가 어느 나루를 택할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마포 길을 막는 순간 상대가 더 싼 길을 찾으리라는 것은 증거가 있었다. 선착장으로 향한 통역과 오른 수레값이었다.
“서강 수레를 잡습니까?” 군관이 물었다.
“아니. 이름과 계약 시각을 적어. 잡으면 다른 나루로 간다.”
“보고만 있으라고요?”
“어디로 가는지 알아야 다음 길을 막을 수 있소.”
임관필은 사람을 한 명 더 보내 통역이 묻는 창고와 가격을 기록하게 했다. 즉시 체포보다 느린 수였다. 그 사이 이토는 수레를 살 수 있고, 군량 일부가 새 길로 샐 수도 있었다. 느린 수사의 비용은 언제나 현장이 먼저 냈다.
민채옥은 마포로 보낼 지급 허가서에 예순 가마니라고 썼다. 수령지는 부두 구호소와 궁궐 성문 교대조, 수량은 각각 스물과 마흔. 그 아래 지급 시각과 수령인 서명 칸을 비워 두었다.
“이 칸이 채워지지 않으면 다음 지급은 없습니다.”
임관필이 물었다. “품삯은?”
“한서린의 은으로 선금이 나갔고 잔금은 해 지기 전입니다. 그것도 지급 장부에 붙입니다.”
“사인 돈으로 국가 군량을 움직인 선례가 남소.”
“그래서 압수하는 겁니다. 선례를 숨기지 않고 누가 갚을지 적으려고요.”
해준이 붓을 멈추고 두 사람을 보았다. “쌀은 갑니까?”
임관필은 그에게 위안을 주지 않았다. “허가서는 간다. 쌀이 도착하는지는 별개요.”
해준이 다시 붓을 들었지만 손끝이 떨려 먹방울이 빈칸에 떨어졌다. 임관필은 그 종이를 버리게 하지 않았다. 방울 옆에 중단 시각을 쓰게 하고 새 종이에서 이어 쓰게 했다. 불완전한 진술을 깨끗한 한 장으로 바꾸는 순간, 어디까지가 기억이고 어디서부터 정리된 이야기인지 사라질 수 있었다.
민채옥은 그 과정을 보다가 지급 허가서 뒤에 운반인의 이름과 말 상태를 적는 칸을 더했다. “허가만 보내고 굶은 말을 타게 하면 중간에서 종이가 먼저 도착합니다. 말 교대 비용은 탁지 임시금에서 냅니다. 나중에 한서린 담보와 섞지 않겠습니다.”
임관필이 물었다. “그 예외는 누가 갚소?”
“제가 결산에 올립니다. 숨기지 않으면 예외고, 숨기면 누수입니다.”
민채옥이 허가서에 인장을 눌렀다. 임관필도 증거 보존 조건 아래 감찰인을 찍었다. 군영 군관은 끝내 서명하지 않았다.
포졸이 허가서를 들고 문밖으로 달려 나갔다. 말 한 필이 전보국 마당을 차고 마포 쪽으로 향했다.
그때 멀리서 한 번 총성이 울렸다.
두 번째 총성은 더 가까웠다.
임관필은 해준의 포승을 풀지 않았다. 대신 형틀을 들이라는 명령서를 접어 봉투 안에 넣었다. 오늘은 쓰지 않기로 한 증거였다.
마포로 가는 허가서는 총성보다 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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