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보류음
야간 민원은 사람도 완료 처리한다 · 2026.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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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류 음악은 늘 열두 마디였다.
그날은 열세 번째 마디가 있었다.
그 뒤에 남상호의 목소리가 나왔다.
임서하는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폐쇄된 서북 제4 가압펌프장 주소를 단 세 티켓 가운데 가운데 줄이 먼저 깜박였다. 담당자 칸은 비어 있었고, 통화 모니터에는 발신 번호 대신 `현장 확인 중`이라는 상태만 떴다. 유나는 스피커 출력과 녹음 파일을 분리해 놓았다. 같은 소리가 두 파일에 동시에 들어가면 독립 증거가 아니었다.
서하는 재생 단추를 누르지 않았다. 먼저 평소 보류 음악을 열었다. 사내 표준 음원은 열두 마디 뒤 처음으로 돌아갔다. 지금 스피커에서는 열두 번째 마디가 끝난 뒤 낮은 건반 세 음이 더 이어졌다. 노래라고 부르기에는 짧았고, 오류음이라고 하기에는 박자가 맞았다.
유나가 손가락을 접어 음을 셌다. “열셋. 정확히 한 마디 추가.”
미진은 식은 커피를 내려놓았다. 컵 바닥이 종이 교대표의 빈 줄 하나를 가렸다. 그녀는 바로 컵을 옮겼다.
추가 마디가 끝났다.
“거기 누구 있어?”
남상호가 현장 무전에서 늘 먼저 하던 질문이었다. 목소리는 쉰 부분까지 같았다. 서하는 책상 아래에서 안전화 끈을 찾던 손을 멈췄다. 목소리에 답하면 가장 먼저 나올 말도 알고 있었다.
그 이름은 말하지 않았다.
“제4 가압펌프장 3번 밸브. 잠글 때 손잡이를 어느 쪽으로 돌립니까?”
스피커에서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났다. 미진의 손이 커피 컵을 꽉 잡았다. 유나는 문서에 `발신자 이름 질문 안 함`이라고 적고 시각을 붙였다.
“시계 방향.”
서하는 오래된 배선도 옆 시설 도면을 펼쳤다. 도면의 3번 밸브 옆에도 같은 답이 인쇄돼 있었다. 너무 쉽게 맞았다. 회사 파일을 읽은 목소리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대답이었다.
“손잡이 색은요?”
“빨강.”
도면에는 적색이라고 돼 있었다. 미진이 입술을 열었다가 닫았다. 아직 맞는 세부는 두 개뿐이었다.
서하는 다음 질문을 골랐다. “겨울에 잠길 때 어느 공구부터 씁니까?”
“육각 렌치. 반 바퀴 풀고 시계 방향.”
배선실 무전에서 도원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틀렸다.”
스피커의 숨소리가 멎었다.
도원이 말했다. “3번은 역나사다. 도면 교체 안 됐어. 반시계. 렌치 쓰면 축 부러진다.”
잠깐 뒤 스피커에서 낮은 욕설이 들렸다.
“백 기사, 그 종이 아직도 안 갈았냐. 3번은 반시계야. 손잡이 얼면 고무망치로 밑을 두 번 쳐. 축에 렌치 대면 야근수당으로도 못 갚아.”
도원의 무전이 조용해졌다. 그 문장은 남상호가 겨울 점검 때마다 하던 수정이었다. 렌치 비용과 야근수당을 한 문장에 넣는 버릇까지 같았다.
미진이 속삭였다. “저건 상호 씨만—”
서하는 손바닥을 들어 말을 막지 않았다. 대신 빈 기록 칸을 미진 쪽으로 밀었다. 미진은 자기 문장을 끝까지 말하지 않고 `상호가 쓰던 수정 문구와 일치`라고 적었다. `상호` 앞에 `발신자`를 덧붙였다.
발신자 상호 가능성.
확정은 아니었다.
“지금 3번 밸브 옆에서 무슨 소리가 납니까?” 서하가 물었다.
스피커가 대답하지 않았다. 금속을 일정하지 않게 두드리는 소리만 들렸다. 짧게 두 번, 길게 한 번. 6화에서 P-17 세 가닥이 떨던 간격과 비슷했다. 그 뒤로 물이 좁은 관을 거꾸로 밀고 올라오는 소리가 섞였다.
도원이 배선실에서 진동계를 옮겼다. 무전기 너머로 플라스틱 케이스가 바닥에 닿는 소리가 났다.
“P-17 두 번째 선. 짧게 둘, 길게 하나.”
유나는 스피커 파형과 도원 무전의 시각을 나란히 놓았다. 통화 쪽이 0.8초 빨랐다. 같은 녹음이 되먹임된 것이라면 사무실 출력이 늦어야 했다. 그렇다고 발신자가 펌프장에 있다는 증거도 아니었다. 신호가 배선보다 먼저 센터에 도착한 경로는 아직 없었다.
“맞는 세부 하나 더. 현재 소리 일치.” 유나가 말했다. “틀린 세부도 하나. 통화가 현장선보다 빠름.”
“아직 모름.” 서하가 덧붙였다.
유나는 ledger를 세 칸으로 나눴다.
맞는 세부. 틀린 세부. 아직 모름.
첫 칸에는 역나사, 고무망치 두 번, 야근수당 문구를 넣었다. 둘째 칸에는 통화와 현장 진동의 0.8초 차이를 적었다. 셋째 칸에는 발신자 진위와 실제 위치, 소리를 누가 먼저 만들었는지를 남겼다.
미진은 커피를 마시지 못했다. 추가 마디가 다시 시작될 때마다 컵 표면에 작은 원이 생겼다. 그녀는 감정 대신 시각을 적었다. 첫 추가 마디 01:47:12, 수정 문구 01:49:03, 현장음 교차 01:50:26.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다시 나왔다.
“서하야.”
유나의 손이 키보드 위에서 멎었다. 이름을 물은 사람은 없었다. 발신자가 먼저 이름을 불렀다.
통화를 붙들고 있던 가운데 티켓의 왼쪽 테두리가 먼저 흰색으로 번쩍였다. 빛은 행 구분선을 한 칸 올라가 첫째 티켓의 담당자 칸에서 멈췄다. 그제야 빈 칸에 `서`가 나타났다. 통화가 다른 행으로 건너간 것이 화면에 순서대로 보였다.
유나는 화면 녹화 단추를 누르지 않았다. 시스템 내부 녹화라면 행 이동 시각까지 함께 바뀔 수 있었다. 대신 오프라인 휴대폰을 모니터 앞에 세우고, 종이 위에 그어 둔 세 줄과 화면의 세 행이 한 프레임에 들어오게 했다. 가운데 행 점멸 01:51:08, 첫째 행 전이 01:51:09, 담당자 조각 표시 01:51:10. 프린터도 같은 순서로 빈 종이를 세 번 반 칸씩 밀었다.
행 이동은 관찰됐다. 이름이 새 주소가 됐는지는 아직 몰랐다.
유나는 모니터 전원을 끄지 않고 첫째 행 위에만 종이를 세워 가렸다. 이름 조각을 화면에서 지우려다 원본까지 없애지 않기 위해서였다.
“답하지 마요.” 미진의 목소리가 길어졌다. “아니, 답은 해야 하는데, 이름 말고. 지금 필요한 것만.”
서하는 자기 이름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3번 밸브에서 출입문까지 바닥 타일이 몇 칸입니까?”
“열여섯.”
도원이 바로 반박했다. “폐쇄 전 공사로 열여덟.”
목소리가 웃지 않았다. “도면에는 열여섯이지. 지금은 열여덟. 마지막 두 칸은 회색 아니고 노랑. 바닥 뜯었다가 돈 없어서 다른 타일 깔았어.”
도원이 무전 버튼을 두 번 눌렀다. 인정 신호인지 경고인지 서하는 묻지 않았다.
“현장 사진 있습니까?”
“내 공구함 밑에. 문 안쪽은 물 차서 안 보여.”
현재 위치처럼 들리는 문장이 처음 나왔다. 펌프장 문 안쪽에 물이 찼다는 말. 하지만 그것도 과거 점검 기록을 읽은 모방일 수 있었다.
유나가 농담 없이 말했다. “도원 기사님, 현장 사진 원본이 필요해요. 생성 시각이랑 렌즈 흠집까지.”
“배선실 올라가서 공구함 확인한다.”
“혼자 가지 마세요.”
유나는 부탁을 한 문장으로 끝냈다. 서하는 그 문장을 기록에 넣지 않았다. 대신 배선실 계단으로 미진의 사원증과 자기 무전기를 보냈다. 미진이 도원을 맞으러 문밖으로 나갔다. 유나를 보호 대상으로 남겨 두고 둘이 움직이는 배치가 아니었다. 유나는 센터에서 원본과 신호를 붙드는 역할을 맡았다.
도원이 올라온 뒤 낡은 공구함을 열었다. 밑바닥에는 코팅이 벗겨진 현장 사진이 붙어 있었다. 3번 밸브에서 문까지 노란 타일 두 칸을 포함해 열여덟 칸. 사진 모서리에는 남상호의 엄지에 늘 묻던 청색 실란트 자국이 찍혀 있었다.
사진은 현재 물을 증명하지 못했다. 대신 목소리가 최신 공사 뒤 타일 수를 알고 있다는 두 번째 물건 증거가 됐다.
유나는 사진 원본을 스캔하지 않았다. 렌즈 흠집과 실란트 자국이 복사 과정에서 뭉개질 수 있었다. 화면 캡처 대신 사진 자체를 투명 봉투에 넣고, 봉투 위에 관찰 시각을 썼다.
“상호 가능성 올라감.”
서하는 말했다. “진위 미확정.”
“네. 위치도 미확정.”
둘은 같은 문장을 서로 빼앗지 않았다.
전화가 조용해졌다. 보류 음악의 열세 번째 마디만 세 번 반복됐다. 그때 현주의 태블릿 호출이 센터 화면 위에 떴다.
“통화를 종료하십시오. 폐쇄 시설 주소는 예외권으로 봉쇄합니다.”
미진이 스피커 음량을 낮췄다. 끄지는 않았다. “봉쇄하면 다음 시설로 갑니다.”
“현재 센터 인력 보호가 우선입니다.” 현주가 말했다. “발신자 신원 추정은 구조 근거가 아닙니다.”
“맞습니다.” 서하가 안전화를 꺼냈다. “그래서 신원으로 출동하지 않겠습니다. 현재 배관음, 수위 표시, 타일 정보로 확인합니다.”
도원이 절단기 대신 고무망치와 수동 수위계를 골랐다. 공구를 하나씩 바닥에 놓고 말했다. “내가 먼저 문 본다. 서하는 밖에서 시각 기록. 안쪽 물 확인 전 밸브 손 안 댄다.”
“단독 진입 안 해.”
“그 말, 이번엔 보고서에도 써.”
서하는 현장 출동 칸에 두 사람 이름을 넣지 않았다. 사번과 역할만 적었다. 현장 확인 4721, 배선·밸브 확인 3184. 이름이 주소가 될 가능성을 확인하기 전까지 호출 문구에 이름을 쓰지 않았다.
유나는 센터 잔류 칸에 자기 사번을 입력했다. 회색 후보 테두리는 그대로였지만 손을 떼지 않았다. “원본 로그는 제가 잡을게요. 농담 없이 요청. 두 분 4분마다 물건 하나씩 말해 주세요.”
“무슨 물건?” 도원이 물었다.
“지금 손에 든 거. 다음 동작까지.”
서하는 무전기를 들어 보였다. “무전기. 배터리 61퍼센트. 다음은 현관에서 두 번 확인.”
도원은 고무망치를 들었다. “망치. 손잡이 갈라짐 없음. 다음은 문 두드린다.”
미진은 센터에 남아 현주 통화를 기록하기로 했다. 그녀는 식은 커피를 버리지 않고 컵 뚜껑에 01:57이라고 썼다. 웃음도 야근수당 말도 없었다.
안전화 끈을 조이던 서하의 손이 멈췄다.
스피커에서 보류 음악이 끊겼다.
“2019년 11월 6일, 02시 14분 38초.”
서하는 그 시각을 알고 있었다. 남상호 현장 이탈 보고서의 완료 서명을 자신이 누른 때였다. 원본에서 지워지고 교육용 사본에도 남지 않은 초 단위 시각이었다.
목소리가 말했다.
“그 서명, 네가 했지.”
서하는 펜을 놓치지 않았다. 현장 출동 기록 아래에 시각을 한 번 더 적었다.
02:14:38.
그 옆에 `발신 경로 미확인`이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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