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두 채널의 상충

야간 민원은 사람도 완료 처리한다 · 2026.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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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터는 보류하라고 했다.

전화기는 완료하라고 했다.

둘 다 회사 로고를 쓰고 있었다.

백도원은 로고 대신 벽 안의 선을 들었다.

유나의 이름 옆 숫자가 00:24로 줄었다. 처리자 이동 막대는 절반을 넘지 않았지만 멈추지도 않았다. 휴게실 프린터가 종이를 한 장 밀어 냈다. 평소 용지가 나올 때보다 롤러 소리가 길었다.

`처리 상태: 보류`

`현장 회선 확인 전 완료 금지`

미진이 종이를 뽑지 않고 배출구 양쪽을 잡았다. 종이를 잡아당기면 찢어질 위치였다. 서하는 회사 로고 아래 인쇄 시각부터 보았다.

01:34:06.

벽시계도 1시 34분 6초를 지나고 있었다. 초침은 움직였다.

그때 휴게실 안 전화가 울렸다. 발신 표시는 야간 이관 대표 번호였다. 서하가 스피커를 켜자 자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처리자 변경을 막으려면 현재 티켓을 완료하십시오. 완료 후 후보자 상태는 복원됩니다.”

숫자가 00:19가 됐다.

유나는 자기 이름을 손가락으로 가리지 않았다. 대신 노트북 화면 한쪽에 새 문서를 열었다.

“전화는 완료. 프린터는 보류. 둘 중 하나는 구라. 아니, 위조 가능.”

“둘 다 위조일 수도 있어요.” 서하가 말했다.

“희망적인 제3안 감사합니다.”

농담 끝에서 유나의 손이 미끄러졌다. 키 하나가 두 번 눌렸다. 유나는 지우지 않고 오타 옆에 시각을 달았다. 자기 손이 흔들렸다는 기록이었다.

서하는 수화기를 들지 않았다. “지금 말고, 순서대로요. 프린터는 어디에 물려 있죠?”

도원이 프린터 전원선 아래로 몸을 낮췄다. 통신선은 벽 몰딩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렌치 손잡이로 몰딩을 두 번 두드렸다.

“배선실 거쳐 현장망. 전화는?”

“대표 번호니까 외부 회선.” 미진이 답했다.

도원이 전화기 뒤를 뒤집었다. 전원 어댑터만 남아 있었다. 랜선 홈은 비어 있었고 전화선 잭에는 먼지가 박혀 있었다. 서하는 먼지 위에 손가락 자국이 없는 것을 확인했다.

전화에서는 여전히 서하의 목소리가 나왔다.

“완료 처리가 지연되고 있습니다.”

00:13.

미진이 수화기와 유나 사이에 사원증을 세워 놓았다. 대신 눌러 줄 수 있는 버튼은 없었다. “저 목소리가 맞다는 증거는?”

“없어요.”

서하는 화면의 완료 단추 위로 커서를 가져갔다가 멈췄다. 프린터 종이도 믿지 않았다. 두 명령을 빈 칸 두 개로 나눠 적었다.

전화—완료. 물리 출처 미확인.

프린터—보류. 현장망 연결 추정.

“가설 둘. 확인은 서로 다른 물건으로.”

도원이 배선실 열쇠와 절연 장갑을 챙겼다. 유나의 숫자는 00:09였다.

“내가 내려가면 시간 끝나.”

“그래도 확인해.” 서하가 말했다. “한 채널 명령으로 유나 씨를 완료 처리하지 않아.”

유나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물었다. “저 살아 있는 쪽으로 보류 맞죠?”

“그걸 확인하러 가는 겁니다.”

근거 없이 괜찮다고 말하는 대신, 서하는 도원에게 무전기를 건넸다. 도원이 버튼을 두 번 눌렀다. 서하도 두 번 답했다.

00:06.

도원이 문을 나섰다.

건물 배선실은 센터 아래 반 층에 있었다. 계단 네 칸을 내려가면 천장이 낮아졌고, 오래된 케이블 표찰이 새 배선 위에 겹쳐 매달려 있었다. 도원은 철문을 닫지 않았다. 퇴로가 한눈에 보이게 쐐기를 끼웠다.

“배선실 도착. 손 안 댄다.”

무전기 너머에서 유나가 숫자를 읽었다. “5, 4, 3.”

도원은 절단기를 꺼내지 않았다. 검전기와 적외선 온도계, 손바닥만 한 진동계를 바닥에 놓았다. 배선도에는 프린터 현장망이 P-17로 적혀 있었다. 실제 단자함 P-17에는 펌프장 원격 경보선이라는 낡은 라벨이 붙어 있었다.

“번호 다르다.”

“어느 쪽이요?” 서하가 물었다.

“도면은 프린터. 벽은 펌프장. 둘 다 17.”

00:02에서 휴게실 전화가 더 크게 울렸다. 유나가 숫자를 읽지 못했다. 대신 키보드를 세 번 눌렀다. 무전기 마이크가 그 소리를 받아 왔다.

도원은 손을 뻗지 않고 P-17 케이블에 진동계를 댔다. 프린터가 한 줄을 찍을 때마다 바늘이 움직였다. 서하가 프린터의 급지 버튼을 한 번 눌렀다. 배선실 바늘이 한 번 튀었다.

“프린터 신호 확인.”

“전화는요?”

도원은 대표 회선 단자에 검전기를 댔다.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전화벨이 울릴 때도 열과 진동은 그대로였다. 그는 단자를 바꿔 세 번 확인했다. 외부선 어디에도 신호가 없었다.

“전화는 선을 안 쓴다.”

숫자가 00:00이 됐다.

서하는 완료 대신 보류를 눌렀다.

화면이 희게 번쩍였다. 유나 이름 옆 주황색이 테두리부터 벗겨졌다. 처리자 이동 막대가 서하와 유나 사이에서 멈췄다. 이름은 사라지지 않았다.

전화 속 서하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말을 틀렸다.

“완료 상태가 정상적으로 보류되었습니다.”

유나는 그 문장을 그대로 받아 적었다. 완료와 보류가 한 문장에 들어간 순간이었다. 미진은 전화기 전원을 뽑았다. 벨은 한 번 더 울리고 끊겼다.

도원은 아직 배선실에 있었다. “보류 먹혔나.”

“유나 씨 이름 유지. 막대 정지.”

“됐고, P-17에서 다른 진동 온다.”

도원은 진동계를 옆 케이블에 옮겼다. 펌프장 원격 경보선이라고 적힌 세 가닥이 차례로 떨렸다. 사용 중인 회선의 고른 진동이 아니었다. 누가 문을 세 번 두드리는 것처럼 간격이 달랐다.

첫째는 짧고 짧았다.

둘째는 길고 짧았다.

셋째는 한참 쉬었다가 길었다.

유나의 노트북에서 대기열 알림이 세 번 울렸다.

서하는 새 티켓을 열지 않고 미리보기만 펼쳤다. 세 건 모두 접수 주소가 같았다.

`서북 제4 가압펌프장`

운영 종료 6년째인 시설이었다.

설명은 달랐다. 첫 티켓에는 지하 물소리, 둘째에는 엘리베이터 갇힘, 셋째에는 야간 열람실 정전이 적혀 있었다. 펌프장에는 엘리베이터도 열람실도 없었다.

도원의 무전이 잡음 사이로 들어왔다.

“됐고, 주소 세 개다.”

“아직 열지 마.” 서하가 말했다.

“안 열었다. 선이 먼저 왔다.”

도원이 단자함에서 한 발 물러났다. 그는 도면에 맞춰 선을 자를 수도 있었지만, 실제 케이블 번호가 어긋난 상태에서 절단하면 어디가 멈출지 알 수 없었다. 절단기를 가방 안쪽에 다시 넣었다.

서하는 프린터 보류지를 종이 교대표 위에 놓았다. 전화가 요구한 완료 문구도 옆에 받아 적었다. 어느 쪽도 규칙이라는 제목을 달지 않았다.

유나는 새 문서에 네 칸을 만들었다.

가설. 증거. 반례. 비용.

“가설 하나. 현장망에 연결된 프린터 지시를 우선한다.”

“증거.” 서하가 말했다. “프린터 급지와 P-17 진동 시각 일치.”

“반례. P-17 라벨이 도면과 다름. 프린터도 언제든 다른 데 물릴 수 있음.”

유나는 마지막 칸에서 손을 멈췄다.

도원이 무전으로 대신 말했다. “비용. 확인 기다리는 동안 펌프장 쪽 세 건 열림.”

미진이 유나의 이름 옆을 가리켰다. 주황색은 사라졌지만 회색 테두리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후보 상태 미해제. 멈춘 것뿐.”

유나는 `생존`이라고 쓰려다가 지웠다. `현재 이름 유지`로 바꿨다.

“패치 성공 아님. 강제 종료 지연.”

“그 표현으로 기록해요.” 서하가 말했다.

서하는 비용 칸을 채우려다 펜을 멈췄다. 이미 적은 문장을 되풀이하는 대신, 펌프장 원격 상태를 조회했다. 폐쇄 시설이라면 회색이어야 할 수위계 아이콘이 파란색으로 차오르고 있었다. 12퍼센트, 14퍼센트, 17퍼센트. 실제 물이 움직이는지 화면만으로는 알 수 없었다.

도원이 배선실 바닥에 무릎을 대고 귀를 기울였다. 세 케이블이 떨릴 때마다 벽 너머 굵은 관에서 금속이 식는 소리가 났다. 그는 그 소리를 무전 마이크 가까이 들려줬다. 유나는 센터 화면의 수위 상승 시각과 소리 간격을 나란히 찍었다. 첫 간격은 4초, 다음은 3초였다.

“닫힌 펌프가 도는 소리는 아냐.” 도원이 말했다. “역류 방지판이 눌릴 때 나는 소리다. 물이 오거나, 누가 신호만 흉내 내거나.”

미진은 시설 비상 연락망을 펼쳤다. 제4 가압펌프장 당직 칸에는 번호 대신 폐쇄 승인 문서 번호가 있었다. 그녀가 그 번호로 전화를 걸자 센터 안의 선 없는 전화기가 먼저 울렸다. 미진은 통화를 받지 않고 발신 시각만 종이에 적었다.

유나는 비용 칸에 새 문장을 넣었다.

`보류 후 폐쇄 펌프장 수위 표시 상승. 배선실 관 소리와 시각 근접. 실제 수위 미확인.`

그제야 서하는 자기 선택의 비용을 적었다. 유나의 이름은 남았지만 후보 회색 테두리는 지워지지 않았고, 현장에 없는 펌프장에서는 두 채널로도 아직 판정할 수 없는 신호가 늘고 있었다. 정답을 맞혔다는 말은 어느 칸에도 없었다.

도원이 배선실 문턱의 쐐기를 발로 확인했다. “나 올라간다. 선은 그대로 둔다.”

그가 일어서자 작업복 무릎에 검은 물기가 묻었다. 배선실 바닥은 들어올 때 말라 있었다. 도원은 닦지 않고 절연 장갑 하나를 그 자리에 눌러 두었다. 올라간 뒤에도 젖는지 확인할 표식이었다. 유나는 장갑의 위치와 바닥 타일 번호를 비용 칸 아래에 덧붙였다.

“두 번 눌러.”

무전 확인음이 두 번 왔다. 서하는 두 번 돌려줬다.

대기열의 세 줄이 동시에 갱신됐다. 주소는 그대로였다. 설명만 한 칸씩 서로 바뀌었다. 지하 물소리가 엘리베이터 갇힘으로, 엘리베이터 갇힘이 열람실 정전으로 옮겨 갔다.

변경 시각은 모두 같았다.

01:43:17.

벽시계 초침이 17초에서 한 번 멎었다가 다시 갔다.

유나가 화면 글자를 세고 말했다.

“주소 하나. 설명 셋. 다음에는 어느 쪽을 두 채널로 잡죠?”

서하는 폐쇄된 펌프장 주소를 종이에 옮겼다. 종이 아래에는 아직 `현장 회선 확인 전 완료 금지`가 찍혀 있었다.

“주소부터요. 화면 말고, 문이 실제로 있는지.”

그때 세 티켓의 담당자 칸이 동시에 열렸다.

세 칸 모두 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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