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년의 연극
기적은 곡물을 먹는다 · 2026.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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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렐 성교회가 ‘증식 기적’을 선포했다. 성무 정지가 길어지며 신자들이 흔들리자, 아우렐 성교회는 광장에서 한 가지 기적을 보였다.
사제가 마른 곡물 한 가마를 축복하자, 그 가마가 부풀어 두 가마가 되었다. 굶주린 시민들 앞에서, 빈 곡물이 신의 손길로 늘어나는 광경.
그것은 성무 정지로 잃은 신앙을 한 번에 되찾으려는 연극이었다. 사제는 곡물 가마 위로 향유를 뿌리고, 긴 축문을 외웠다.
축문이 길어질수록 곡물은 천천히 부풀어, 마치 신의 응답처럼 보였다. 실은 향유의 물기와 축문의 시간이 마른 곡물에 습기를 먹이는 시간이었으나, 굶주린 군중의 눈에는 기적의 더딘 강림으로 비쳤다.
연극에는 연극의 박자가 있었다. 사제는 그 박자를 정확히 알았다.
시민들은 그 부푼 곡물을 보고 술렁였다. 교회가 정말 곡물을 늘릴 수 있다면, 겨울헌장도 변경백도 필요 없었다.
그 술렁임이야말로 교회가 노린 것이었다. 성무 정지로 흔들린 신앙을, 굶주림을 이용해 한 번에 되찾으려는 셈.
굶주린 자에게 곡물이 늘어나는 광경보다 강한 설교는 없었다. 사제는 군중의 굶주림을 정확히 겨냥했다.
레아는 그 겨냥을 알아보았다. 교회는 신앙을 호소한 것이 아니라, 배고픔을 자극한 것이었다.
레아 바렌은 그 광경을 막지 않았다. 막을 군사도, 막을 명분도 지금은 없었다.
성무 정지로 도시가 흔들리는 이때, 신의 기적을 칼로 막는 변경백은 가장 빠르게 미움을 샀다. 막으면, 변경백이 신의 기적을 시기한다는 말이 됐다.
대신 그녀는 한 가지를 요구했다. 축복 전후의 무게를 공개로 재자는 것.
26화에 에드릭이 시장에서 했던 그 방식이었다. 적에게서 배운 저울을, 이번에는 교회를 향해 들었다.
“신의 기적이라면, 무게를 재는 것을 두려워할 까닭이 없겠지요.”
레아가 말했다. 그 말은 도전이 아니라 절차의 청이었다.
떳떳한 기적이라면 저울 앞에 설 수 있었다. 사제는 그 요구에 잠깐 멈췄다.
거절하면 자기들이 보인 기적을 스스로 의심하는 꼴이 됐고, 받아들이면 무게가 드러났다. 군중 앞에서 거절할 수는 없었다.
방금 ‘신의 손길’이라 외친 곡물을, 무게 재기를 거부할 수는 없었다. 사제는 마지못해 응했다.
레아는 그 마지못함을 시민들이 보게 두었다. 떳떳한 자는 저울을 마다하지 않는다.
머뭇거림 자체가 첫 번째 답이었다.
사빈이 법정 계량추를 가져왔다. 그는 저울을 광장 한복판, 사제가 곡물을 부풀린 바로 그 자리에 세웠다.
구경하던 시민들이 둥글게 모여들었다. 사빈은 무게를 재기 전, 한 가지를 분명히 했다.
“나는 기적이 거짓이라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무게가 몇인지를 잴 뿐입니다. 무게는 사제 편도, 변경백 편도 아닙니다.”
그 말이 시민들의 경계를 풀었다. 그는 어느 편을 들려는 것이 아니라, 숫자를 보이려 했다.
숫자는 누구의 편도 아니라는 것. 그것이 사빈이 평생 지켜 온 한 가지였다.
축복받기 전, 마른 곡물 한 가마의 무게를 쟀다. 그리고 축복받은 뒤, 부푼 두 가마의 무게를 쟀다.
부피는 두 배가 됐으나, 무게는 거의 같았다. 곡물의 알갱이 수가 늘어난 것이 아니었다.
마른 곡물이 물기를 머금어 부풀었을 뿐이다. 같은 무게의 곡물이, 물을 먹어 부피만 커진 것.
그것은 곡물의 증식이 아니라, 마른 알갱이의 흡습이었다. 사빈은 그 무게를 시민들 앞에서 소리 내어 읽었다.
축복 전 한 가마, 축복 후 한 가마와 한 줌. 늘어난 한 줌은 곡물이 아니라 물의 무게였다.
사빈은 그 한 줌의 정체를 더 정확히 보였다. 그는 부푼 곡물 한 줌을 화로 곁에 두어 말렸다.
물기가 날아가자, 그 한 줌은 다시 처음의 부피로 줄었다. 시민들은 자기 눈으로, 늘어났던 곡물이 마르며 도로 줄어드는 것을 보았다.
신의 손길로 늘어난 곡물이라면, 마른다고 줄어들 까닭이 없었다. 물을 먹어 늘고 물이 날아가 주는 것은, 기적이 아니라 젖은 빨래와 같은 이치였다.
사빈은 그 이치를 설교하지 않았다. 그저 곡물을 말려 보였을 뿐이다.
증명은 말이 아니라 줄어드는 곡물 한 줌이 했다.
요안 세렌이 그 자리에 있었다. 파문 예고된 사제로서, 그는 교회의 선전을 가장 아프게 보았다.
그러나 그는 ‘교회가 전부 사기’라고 외치지 않았다. 그는 기적과 선전을 구분했다.
“성분으로 사람을 살리는 것은 진짜입니다. 저는 그것을 보았고, 그 비용도 보았습니다. 다만 마른 곡물을 적셔 두 배라 부르는 것은, 기적이 아니라 연극입니다. 진짜 기적을 가진 자들이 왜 가짜 연극까지 하는지, 그것이 더 슬픈 일입니다.”
요안은 그 말을 하며 자기 사제복을 보았다. 곧 벗어야 할지 모르는 그 옷을 입은 채, 그는 교회의 선전을 비판하고 있었다.
교회 안의 사람이 교회의 거짓을 짚는 것은, 밖의 사람이 짚는 것과 무게가 달랐다. 시민들은 그 차이를 느꼈다.
변경백이 교회를 비판하면 정치로 들렸으나, 파문 예고된 사제가 교회의 연극을 슬프다 하면, 그것은 신앙 안에서 나온 아픔으로 들렸다. 요안은 자기 위치의 그 무게를 알았고, 그래서 더 조심스럽게, 그러나 더 분명하게 말했다.
그 말은 교회를 통째로 부정하지 않으면서, 선전만을 무너뜨렸다. 진짜와 가짜를 가르는 그의 구분이, 단순한 폭로보다 더 깊이 시민의 신앙을 흔들었다.
시민들은 부푼 곡물 앞에서 조용해졌다. 어떤 이는 속았다는 분노로, 어떤 이는 그래도 성분 치료는 진짜였다는 혼란으로.
신앙은 한 번에 무너지지 않았다. 다만 금이 갔다.
어떤 노인은 끝까지 ‘그래도 신의 뜻’이라며 부푼 곡물을 받아 갔고, 어떤 젊은이는 ‘젖은 보리를 두 배라 속였다’며 침을 뱉었다. 같은 광경을 두고 신자와 의심하는 자가 갈렸다.
레아는 그 갈림을 한쪽으로 몰지 않았다. 신앙을 버리라 외치면, 굶주린 사람들은 마지막 위안마저 잃었다.
그녀가 무너뜨린 것은 신앙이 아니라 한 번의 연극이었고, 그 구분을 시민이 스스로 하게 두었다. 교회가 진짜 기적을 가졌으면서도 가짜 연극을 했다는 사실이, 신자들의 마음에 작은 의심을 심었다.
진짜를 가진 자가 왜 거짓을 보태는가. 그 질문은 답하기 어려웠고, 답하기 어려운 질문일수록 오래 남았다.
한 노파가 요안에게 다가와 물었다.
“그럼 내 손주를 살린 그 빛도, 이 부푼 곡물처럼 거짓이오?”
요안은 그 물음 앞에서 거짓말하지 않았다.
“아닙니다. 손주를 살린 빛은 진짜였습니다. 다만 그 빛이 어디서 왔는지를, 교회는 당신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부푼 곡물은 가짜지만, 손주의 목숨은 진짜고, 그 진짜 목숨의 값도 진짜입니다.”
노파는 그 답을 다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자기 손주가 거짓으로 산 것은 아니라는 말에 안도했고, 동시에 그 목숨에 값이 있었다는 말에 무거워졌다.
요안은 신앙을 빼앗지 않으면서, 그 신앙에 정직을 더했다. 그것이 파문 예고된 사제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사목이었다.
사빈이 그 부푼 곡물을 마저 조사했다. 그는 곡물을 적신 물이 어디서 왔는지 셈했다.
광장 한쪽 우물의 물이 평소보다 줄어 있었고, 그 우물가 돌은 한겨울인데 미지근했다. 사빈은 그 미지근함을 적어 두었다.
9화의 우물처럼, 여기서도 어딘가의 열이 옮겨 온 흔적이었다. 그만큼의 물기를 곡물에 더하려면, 어딘가의 물을 끌어와야 했다.
그리고 그 물기를 다시 빼 ‘건조한 성분’으로 만들려면, 그만큼의 열이 필요했다. 사빈은 성분 창고의 반출표를 떠올렸다.
줄어든 곡물 무게만큼, 성분 창고에서 무언가가 반출된 표가 있었다. 부푼 곡물의 연극 뒤에서, 진짜 성분이 그만큼 빠져나가고 있었다.
시민의 눈은 부푼 곡물에 쏠렸고, 그 사이 성분 창고의 뒷문이 열렸다. 사빈은 그 시점의 일치를 셈했다.
증식 기적이 광장에서 펼쳐진 바로 그 시각, 성분 창고에서 큰 반출이 있었다. 군중이 한 곳을 보면, 다른 곳이 비었다.
연극은 사람의 시선을 모으는 도구였고, 모인 시선이 비운 자리에서 진짜 일이 벌어졌다. 사빈은 그것을 도둑의 오래된 수법으로 알아보았다.
시장에서 소매치기가 한쪽에서 소란을 피우는 동안, 다른 손이 지갑을 터는 것과 같았다. 다만 여기서 터는 손은 교회였고, 지갑은 도시 전체의 성분이었다.
연극은 사람들의 시선을 한곳에 모으는 일이기도 했다. 사빈은 그 반출표의 행선지를 보았다.
27화에서 본 그 마을들, 그리고 그 수도의 병원이, 다시 거기 적혀 있었다. 사빈은 그 일치 앞에서 잠깐 손을 멈췄다.
부푼 곡물의 연극과, 사라진 마을 곡물과, 수도 병원으로의 이전이, 하나의 줄로 이어지려 했다. 교회의 선전이 시민의 눈을 광장에 묶어 두는 동안, 진짜 성분은 같은 그 마을들에서 빠져 같은 그 병원으로 흘렀다.
사빈은 그 줄을 함부로 잇지 않았다. 다만 이번에는, 우연이라 부르기에 일치가 너무 많았다.
곡물이 사라지는 마을, 성분이 반출되는 행선지, 그리고 그것을 가린 광장의 연극. 세 가지가 같은 이름들 위에서 만났다.
그는 그날의 반출표를 정확히 베껴, 27화의 그림 옆에 나란히 두기로 했다. 두 그림이 겹치는 자리에, 답이 있을 것이었다.
레아는 사빈의 보고를 듣고, 부푼 곡물의 폭로보다 그 반출표의 일치를 더 무겁게 받아들였다. 오늘 도시가 얻은 것은 선전 하나를 무너뜨린 통쾌함이었고, 그 통쾌함 뒤로 더 큰 그림자가 길어지고 있었다.
부푼 곡물은 마르면 줄었으나, 그날 빠져나간 진짜 성분은 어디서도 줄지 않고 그대로 어딘가로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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