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한 아이의 열

기적은 곡물을 먹는다 · 2026. 7. 20.

조회수 5

아이 어머니는 배급표와 작업 증명을 함께 내밀었다. 치료를 청하면서, 그녀는 적선을 구하지 않았다.

자기 가족이 방아에서 일한 시간과 받지 못한 성분의 양을 적은 종이를 함께 올렸다. 요안 세렌은 그 두 장을 받아 들었다.

기적조차도 절차와 자원에 묶여 있었다. 아무나 치료받는 것이 아니라, 증명을 갖춘 자가 줄을 설 수 있었다.

요안은 그 사실이 늘 마음에 걸렸으나, 오늘은 그 절차 덕분에 이 아이가 줄 앞에 설 수 있었다.

어머니의 손은 떨리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한 번 자식을 잃어 본 사람의 손을 하고 있었다.

두 번째 자식 앞에서, 그녀는 울지 않기로 작정한 듯했다. 우는 대신 셈했고, 빌지 않는 대신 증명을 갖췄다.

요안은 그 손에서 마라를 떠올렸다. 이 도시의 어머니들은 빛에 매달리는 법을 버리고, 빛을 청구하는 법을 배워 가고 있었다.

그것이 좋은 변화인지 슬픈 변화인지, 요안은 가늠하지 못했다. 다만 그 손 앞에서 함부로 위로를 건넬 수는 없었다.

아이는 열에 들떠 있었다. 작은 가슴이 빠르게 오르내렸고, 입술이 말라 있었다.

요안은 성분 재고를 확인했다. 파업으로 줄어든 재고였다.

한 아이를 살릴 만큼은 남아 있었다. 그는 치료 의례를 준비하며, 오래된 비용 고지 절을 떠올렸다.

그 절은 치료에 앞서 ‘이 빛이 누구의 무엇을 빌려 오는지’를 고지하는 구절이었다. 길고, 느리고, 효율이 낮았다.

요안은 그 절을 건너뛰었다. 짧고 효율 높은 의례를 택했다.

아이의 상태가 급했고, 긴 절을 외울 시간에 한 모금의 성분이라도 더 풀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성분 항아리는 절반이 비어 있었다. 어제까지 가득했던 것이, 파업 두 시간으로 줄었다.

요안은 그 줄어든 양을 손으로 가늠하며, 이 한 아이의 치료가 다음 아이의 몫을 당겨 쓰는 일임을 알았다. 재고가 줄면, 누구를 먼저 살릴지를 사제가 정해야 한다.

그것은 사제가 질 무게가 아니었으나, 그 무게는 늘 사제에게 떨어졌다. 그는 아이 어머니가 내민 작업 증명을 한 번 더 보았다.

증명이 있는 자를 먼저. 그 규칙이 잔인한지 공정한지, 그는 오늘도 답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그 절을 건너뛴 진짜 이유를, 그는 절반쯤 알았다. 그 절은 비용을 입 밖에 내는 구절이었고, 비용을 말하면 이 치료가 무엇을 대가로 하는지가 드러났다.

요안은 그것을 말하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 앞에서, 죽어 가는 아이 앞에서.

그 절을 건너뛰는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그는 지난겨울부터 조금씩 그 구절을 줄여 왔다.

처음에는 한 행을, 다음에는 두 행을. 줄일 때마다 의례는 짧아졌고, 짧아진 만큼 그는 더 많은 사람을 치료할 수 있었다.

효율은 자비처럼 보였다. 그러나 줄어든 것은 시간만이 아니었다.

줄어든 행마다, 누군가에게 알릴 의무 하나가 함께 사라졌다. 요안은 자기가 효율의 이름으로 무엇을 묻어 왔는지, 오늘에야 또렷이 보았다.

그는 그 구절을 입속으로만 한 번 외워 보았다. 소리 내지 못한 채.

리우가 치료실 문가에 있었다. 절뚝이는 다리로 성분 줄을 도우러 온 그가, 요안의 의례를 들었다.

그는 작업 리듬을 평생 몸으로 익힌 사람이었다. 그 의례에는 늘 따라붙던 한 구절이 있었다.

박자처럼 익숙한 구절. 오늘 그 구절이 비어 있었다.

리우는 그 빈칸을 귀로 느꼈다. 노래의 한 소절이 사라진 것처럼.

그는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지만, 무언가 빠졌다는 것은 분명히 알았다.

리우는 그 빈 구절을 머릿속에서 채워 보았다. 방아를 돌릴 때 노동자들이 박자를 맞추던 옛 가락의 한 소절과, 그 의례의 빠진 구절이 어쩐지 닮아 있었다.

그는 그 닮음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다만 발끝으로 바닥을 가만히 두드려, 그 빠진 박자를 혼자 짚어 보았다.

일정한 박자였다. 그가 잠결에도 두드리던 그 박자.

요안은 리우가 바닥을 두드리는 것을 곁눈으로 보았으나, 그것이 무엇인지 묻지 않았다. 두 사람은 각자의 빈칸을, 각자의 방식으로 느끼고 있었다.

흰 성분이 물에 풀렸다. 물에 풀린 성분은 잠깐 흰 소용돌이를 그리다 사라졌고, 그 소용돌이가 도는 동안 요안은 숨을 멈췄다.

빛이 도는 것을 그는 수백 번 보았으나, 오늘은 그 빛이 어디서 왔는지를 처음으로 의식하며 보았다. 요안이 그 물을 아이의 입술에 적셨다.

잠시 후 아이의 호흡이 느려지고 깊어졌다. 들떴던 열이 가라앉았다.

마른 입술에 천천히 핏기가 돌았다. 아이가 천천히 눈을 떴다.

어머니가 아이의 손을 잡았다. 그 손은 아직 열의 끝자락으로 미지근했다.

요안은 그 순간을 서두르지 않았다. 어머니가 아이의 이름을 부르고, 아이가 어머니를 알아보고, 두 사람이 한참 손을 맞잡는 시간을, 그는 끊지 않고 두었다.

기적은 거짓일지 몰라도, 이 아이가 살아난 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요안은 그 긍정의 보상을 아끼지 않았다.

그것이 그가 사제로 남아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아이는 살아난 직후 물을 찾았다. 어머니가 우물물을 떠 먹였다.

아이는 그 물을 마시고 인상을 찌푸렸다.

“미지근해.”

아이가 말했다. 어린 입은 거짓을 모른다.

겨울 우물물이 미지근하다는 것을, 아이가 가장 먼저, 가장 정직하게 말했다. 요안은 그 한마디를 흘려듣지 않았다.

어른들은 미지근한 물을 보고도 묻지 않는 법을 익혔지만, 아이는 그저 느낀 대로 말했다. 그 정직이 요안의 가슴 한구석을 찔렀다.

감사 기도가 올라갔다. 어머니가 무릎을 꿇고 빛에 감사했다.

바로 그 순간, 제단 아래 계단에서 소란이 일었다. 노동자 둘이 쓰러져 들것에 실려 나갔다.

그들의 얼굴은 창백했고, 손은 늘어져 있었다. 요안은 그것을 보았다.

그는 그 둘이 방금 자기가 푼 성분과 직접 관련이 없다고, 누가 묻기도 전에 먼저 말했다.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어머니의 눈도, 들것의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그의 시선은 바닥을 향했다. 치료 한 건과 붕괴 둘이 같은 시각, 같은 건물에서 일어났다.

그것이 우연인지 인과인지, 요안은 단정하지 않았다. 단정하지 못하는 것이, 그의 죄책감의 모양이었다.

들것에 실린 둘 중 하나가 요안이 아는 얼굴이었다. 지난달 그가 직접 축복을 내린 노동자였다.

그때 그 사람은 건강했다. 요안은 그가 왜 제단 아래에 있었는지 물으려다, 답을 이미 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단 아래에서는 누군가 늘 발판을 밟고 있었다. 치료가 한 건 있을 때마다, 그만큼의 발판이 더 빠르게 돌아야 했다.

위에서 빛이 풀리면, 아래에서 누군가 숨을 더 몰아쉬었다. 요안은 그 위아래를 한 번도 같은 그림으로 보려 하지 않았다.

오늘 들것 둘이 그 그림을 그의 눈앞에 억지로 펼쳤다.

어머니는 들것을 보지 못했다. 그녀는 아이의 회복에 감사하느라 등을 돌리고 있었다.

요안은 그것이 다행이라 생각했다가, 그 생각 자체가 부끄러웠다. 한쪽의 감사가 다른 쪽의 붕괴를 보지 못하도록 등을 돌리게 만드는 구조.

그 구조를 설계한 것은 그가 아니었으나, 그 구조 안에서 의례를 집전한 것은 그였다. 그는 어머니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진실을 말할 용기도, 거짓을 지어낼 뻔뻔함도 그에게는 없었다.

치료수를 길어 온 우물가로 요안이 나갔다. 우물지기가 두레박을 올리며 불평했다.

“물맛이 달라졌소. 그리고 이상하게, 겨울인데 미지근하오.”

요안은 우물에 손을 넣었다. 정말 미지근했다.

한겨울 우물물이 얼지 않고, 사람의 체온처럼 미지근했다. 그는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것 같았고, 동시에 알고 싶지 않았다.

치료에 쓰인 빛이 어디선가 열을 빌려 왔다면, 그 빌린 자리가 어딘가는 차가워지고 어딘가는 더워졌을 것이다. 미지근한 우물은 그 빌림의 흔적일 수 있었다.

우물지기는 며칠 전에는 물이 얼기 직전이었다고 했다. 그러다 성당에서 큰 치료가 있던 날 밤부터 미지근해졌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것을 빛의 은총이라 여겼다.

“성분이 우물까지 따뜻하게 했나 보오.”

그가 웃으며 말했다. 요안은 그 웃음에 함께 웃지 못했다.

우물지기에게는 은총인 것이, 요안에게는 빚의 영수증처럼 보였다. 따뜻해진 우물 어딘가에, 그만큼 차가워진 곳이 있을 것이었다.

그곳이 사람의 몸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는 두레박을 내려놓았다.

요안의 손에서 작은 성분 그릇이 미끄러졌다. 그릇이 우물가 돌바닥에 떨어져 깨졌다.

흰 가루가 눈 위에 흩어졌다. 그는 그것을 줍지 못하고 한참 서 있었다.

미지근한 우물물과 깨진 그릇 사이에서, 그는 자기가 오늘 건너뛴 그 한 구절을 떠올렸다. 비용을 고지하는 구절.

그 구절을 빼먹은 대가가, 어쩌면 이 미지근한 물과 들것에 실린 둘이었다. 요안은 그 생각을 끝까지 따라가지 못했다.

따라가면, 자기가 평생 섬긴 빛이 무엇인지 마주해야 했다. 그는 깨진 그릇 조각을 손바닥에 모았다.

흰 가루가 손금 사이로 미지근하게 스몄다.

눈 위에 흩어진 흰 가루는 곧 녹지 않았다. 겨울 눈 위에서, 그 가루만 작은 김을 올렸다.

요안은 그 김을 보았다. 성분에도 빌려 온 열이 남아 있었다.

그는 손바닥의 가루를 우물가 돌 위에 가만히 내려놓았다. 다시 거두어 쓰기에는, 오늘 그가 본 것이 너무 많았다.

그는 깨진 그릇을 그대로 둔 채 성당으로 돌아갔다. 등 뒤에서 우물지기가 두레박을 다시 내리는 소리가 났다.

그 우물물로 누군가 또 밥을 짓고, 그 미지근함을 은총이라 부를 것이었다. 요안은 그 부름을 멈출 말을 아직 갖지 못했다.

이번 화가 재미있었나요?

좋아요와 평점은 언제든 변경할 수 있습니다.

독자 평점 아직 없음

댓글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