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이 간 전지판은 물을 먹은 기와처럼 갈라져 있었다
갑오년, 전보국 주사는 군량을 훔쳤다 · 2026.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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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이 간 전지판은 물을 먹은 기와처럼 갈라져 있었다.
백무정은 틈에 끼운 아연 조각을 집게로 눌렀다. 검은 전지액이 지익 소리를 내며 끓었다. 접점에서 파란 불꽃이 튀자 제자 석범이 손을 뻗었다.
“대지 마.”
무정이 그의 손목을 밀어냈다. 전보기가 방금 임관필의 답신 첫 글자를 찍었지만 회선은 다시 죽어 있었다. 이대로 전류를 더 밀면 금 간 판이 갈라지고, 가까이 선 사람이 액을 뒤집어쓸 수 있었다.
“두 번.”
무정은 작업대 가장자리에 분필로 획 두 개를 그었다.
“한 번에 긴 전보 하나가 아닙니다?” 전보 운용자가 물었다.
“두 번의 접속. 글자 수는 회선이 정해. 판은 내가 정한다.”
그는 전지통을 분리했다. 아연 조각을 빼자 가장자리가 벌써 검게 삭아 있었다. 규격판에서 자른 조각이 아니었다. 버려진 지붕 홈통을 펴서 모서리를 다듬은 것이었다. 두께가 고르지 않아 접점 한쪽에만 힘이 몰렸다.
석범이 새 나사를 내밀었다. 무정은 끼우지 않고 나사산부터 손톱으로 긁었다.
“맞지 않아.”
“구멍은 들어갑니다.”
“들어가는 것과 버티는 건 달라.”
원래 나사는 산이 좁고 새것은 성겼다. 억지로 조이면 구멍까지 망쳤다.
작업대 아래 부품 궤짝은 거의 비었다. 장부에는 규격 전지판 넉 장, 구리선 여섯 타래, 같은 나사 스무 개가 남았다고 되어 있었다. 실제로는 전지판이 없고, 구리선은 휘어진 두 토막뿐이었다. 나사 셋은 모두 산이 달랐다.
윤해준이 수리실로 들어왔다. 그는 무정의 손이 아니라 분필 획부터 보았다.
“남은 것은?”
“접속 두 번. 그 뒤는 몰라.”
“군량 전보가 셋입니다. 서쪽 수레 귀환, 부두 배분, 북문 수비대.”
“그러면 하나를 버려.”
운용자들이 해준을 쳐다봤다. 무정은 전지판을 닦았다. 높은 사람이 무엇을 먼저 보낼지는 그의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판이 세 번 버틴다고 거짓말하는 일은 자기 손의 죄였다.
해준이 장부를 펼쳤다.
“구리선 여섯 타래는 누가 확인했습니까?”
창고 필사자가 대답했다.
“전임 수리관의 이월 수량입니다. 봉함을 인계받았습니다.”
“궤짝을 열었습니까?”
“봉함이 멀쩡했습니다.”
무정이 궤짝 뚜껑을 뒤집었다. 봉함 종이는 쇠고리에 붙어 있었고, 쇠고리 둘 중 하나가 새것이었다. 나무 안쪽에는 넓은 판을 비스듬히 끌어낸 긁힘이 남았다.
“종이는 안 뜯었지.” 무정이 말했다. “고리를 뽑았어.”
필사자의 얼굴이 하얘졌다.
“제가 열지는 않았습니다.”
“네가 훔쳤다는 말 안 했어.”
무정은 구리선 두 토막을 나란히 놓았다. 하나는 붉은빛이 짙고 굵기가 일정했다. 다른 하나는 누렇게 뜨고 곳곳에 납땜 자국이 있었다. 장부의 규격 칸에는 둘 다 ‘구리선’으로만 적혀 있었다.
“같은 한 타래가 아니야. 이건 전보 접점용, 이건 등잔 심지 받침에서 뽑은 것.”
해준이 물었다.
“누가 구분해서 셉니까?”
“지금까진 나.”
“무정 씨가 없으면?”
무정의 손이 멎었다. 관청은 치수표를 가져가고 공방에는 싼 품삯으로 만들라 했다. 틀리면 장인 탓, 맞으면 지식은 관청 것이 됐다.
“내 제자가 잰다.”
“석범 씨만 압니까?”
“그걸 왜 당신이 알아야 하지?”
해준은 빈 부품 궤짝을 가리켰다.
“당신만 아는 규격이라 장부가 ‘구리선’ 한 칸으로 끝났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관가가 규격을 몰라서 훔쳤나?”
“그 사실은 별개입니다. 도난 여부도 아직 모릅니다.”
무정은 집게를 작업대에 내려쳤다. 석범이 움찔했다.
“밖으로.”
해준이 한 걸음 물러났지만 나가지는 않았다.
“작업대 밖으로 서겠습니다. 수리 한계는 먼저 발신하겠습니다.”
“군량부터 보내면 끝이야.”
“그래서 한계부터 보냅니다.”
해준은 군량 전보 세 장을 내려놓고 새 종이를 꺼냈다. ‘현재 회선은 접속 두 번만 보장. 두 번째 뒤 즉시 중지. 추가 발신 금지.’ 그는 운용자 전원이 읽을 수 있게 짧은 문장으로 썼다.
무정이 종이를 빼앗아 ‘보장’ 밑에 선을 그었다.
“내가 보장하는 건 판이 붙어 있는 두 번이야. 두 번째 문장이 끝난다는 보장은 없어.”
해준은 문구를 고쳤다.
‘임시 접속 기회 두 번. 각 접속은 중단될 수 있음. 두 번째 시도 뒤 전지 해체.’
“누가 서명합니까?”
“작업 중지는 나. 발신 순서는 당신.”
무정이 먼저 이름을 썼다. 해준은 그 아래에 서명했다. 운용자 셋도 각자 사본을 베껴 자기 자리 앞에 붙였다. 한 사람이 성공했다는 소리를 질러도 다른 운용자가 세 번째 전보를 걸지 못하게 한 것이다.
해준이 첫 접속에 한계 공지를 올리자 운용자 하나가 막았다.
“그걸 보내면 군량 전보는 한 번밖에 못 보냅니다.”
“공지 없이 군량을 먼저 보내면 다른 국에서 회선이 살아난 줄 알고 계속 호출합니다.”
“서쪽 수레가 기다립니다.”
“기다리는 시각까지 씁니다. 살아 있다고 속이지는 않습니다.”
무정은 아연의 두꺼운 쪽을 갈고 얇은 쪽에 종이를 받쳤다. 가장자리는 밀랍으로 막았다. 압력을 잠깐 나누는 받침이었다.
“석범. 다시 재.”
석범은 아연 조각 세 곳의 두께를 쟀다. 처음에는 가운데만 불렀다. 무정은 대답하지 않고 자를 돌려 주었다.
“가장자리 둘, 가운데 하나. 가운데만 맞으면 꺾여.”
석범이 수치를 다시 읽었다. 한쪽이 머리카락 두 올만큼 두꺼웠다. 그는 숫돌로 두 번 밀고 멈췄다. 무정이 손가락으로 표면을 훑었다.
“됐어. 네가 끼워.”
석범의 눈이 커졌다.
“제가요?”
“다음에 내가 없으면 누가 해.”
제자는 집게로 조각을 잡았다. 첫 시도에서 접점이 기울었다. 전류를 넣기 전이라 사고는 없었다. 무정은 대신 손을 대지 않았다.
“빼. 다시.”
석범은 종이를 새로 받치고 판이 흔들리지 않는 지점에서 나사를 멈췄다.
무정이 분필 획 하나를 손바닥으로 지웠다.
“아직 접속 안 했습니다.” 석범이 말했다.
“시험편 하나 썼어. 물건만 재고 사람 시간은 안 세면 관가 장부랑 같아져.”
그는 세 치수와 받침 위치, 나사를 멈춘 지점을 그렸다. 처음 조각의 한쪽이 두꺼웠다는 자기 오차도 적었다.
해준이 그 종이를 집으려 하자 무정이 손등을 눌렀다.
“원본은 공방에 둬.”
“운용자마다 알아야 합니다.”
“치수는 가져가도 돼. 누가 고쳤고 누가 다쳤는지 빼지 마.”
“품삯과 사고 기록까지 붙이겠습니다.”
무정은 손을 거뒀다. 치수만 빼앗기는 표준이 아니라, 작업자 이름과 실패 비용이 붙은 공정 사본이었다. 석범이 첫 사본을 직접 베꼈다.
첫 접속이 시작됐다. 아연과 전지액 사이에서 잔 거품이 일었다. 전보기의 팔이 떨리다가 일정한 간격을 찾았다.
해준은 접속 두 번, 중단 가능, 두 번째 뒤 해체라는 공지를 먼저 쳤다. 가까운 두 곳은 확인했고 먼 한 곳은 끝 부호를 받지 못했다.
무정은 분필 획 하나를 지웠다.
“남은 건 하나.”
해준은 군량 전보 세 장을 펼쳤다. 서쪽 수레 귀환 명령과 사료 구매 승인을 한 장으로 합치려다 멈췄다.
“합치면 누가 어느 항목에 서명했는지 흐려집니다.”
“그럼 고르라고 했지.”
해준은 부두 배분 전보를 내려놓았다. 북문 수비대 전보도 내려놓았다. 서쪽 수레의 귀환 사료 승인만 골랐다. 이미 길 위에 있는 말과 마부가 돌아오지 못하면 다음 운송 자체가 끊겼다.
“부두와 북문에는 발신 보류 시각을 공개 사본에 적습니다.”
“그건 전기가 아니라 사람이 가져가.”
기별꾼 둘이 종이를 받아 달렸다. 회선을 살린 뒤에도 발이 필요했다.
두 번째 접속에서 전지판이 낮게 울었다. 석범이 즉시 전지통 아래 모래 상자를 밀어 넣었다. 무정은 아연 조각의 휨을 보며 전류를 낮췄다. 부호 사이가 길어졌다.
“끊깁니다.” 운용자가 말했다.
“짧게.” 해준이 답했다.
그는 사료 수량을 되풀이하지 않고 승인 항목과 귀환 우선부호만 보냈다. 조독구의 제한 노선 조건도 바꾸지 않았다. 수신 확인이 절반쯤 들어왔을 때 접점에서 불꽃이 튀었다.
“손 떼.”
무정이 전지선을 끊었다. 마지막 확인 부호는 받지 못했다. 성공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승인 본문이 건너갔다는 점뿐이었다. 상대가 끝까지 읽고 행동했는지는 기별이 돌아와야 알았다.
석범이 전지판을 꺼냈다. 아연 조각은 가운데가 휘었고 종이 받침은 검게 물러 있었다. 다시 쓰면 갈라진 판까지 깨질 모양이었다.
“해체.” 무정이 말했다.
운용자 하나가 항의했다.
“북문 전보가 남았습니다.”
“두 번 썼어.”
“한 번은 공지였잖습니까.”
“공지 때문에 네가 세 번째를 안 거는 거야.”
무정은 전지판을 분리해 작업대에 올렸다. 해준도 작업 중지 서명 아래에 발신 보류 두 건을 적었다. 임시 수리를 승리로 고쳐 쓸 빈칸은 남기지 않았다.
이제 구리가 문제였다. 무정은 빈 궤짝과 남은 두 토막을 마당으로 옮겼다. 운용자·필사자·공방 노동자 앞에서 장부 수량을 읽게 했다.
“여섯 타래라고 썼지.”
필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실물은 전보 규격 한 토막, 다른 규격 한 토막. 전지판 없음. 나사 셋, 전부 다름.”
무정은 구리 토막의 절단면을 보여 주었다. 전보용 구리는 날이 곧게 들어갔고, 누런 토막은 비틀어 끊은 자국이 있었다. 그것만으로 누가 가져갔는지는 알 수 없었다. 궤짝 안쪽 긁힘과 바뀐 쇠고리도 도난과 잘못된 이월 사이를 확정하지 못했다.
해준은 ‘횡령’이라 쓰려던 필사자의 붓을 막았다.
“부족 확인. 원인 미확정.”
무정이 덧붙였다.
“규격도 따로 써. 같은 구리가 아냐.”
공개 사본 세 부에 길이·굵기·절단면·궤짝 고리를 적었다. 무정과 석범의 측정값이 다르면 둘 다 남겼고, 필사자는 이전 인계서를 가져오겠다고 서명했다.
마당 밖에서 말발굽 소리가 멎었다. 검은 관복을 입은 전령이 봉서를 들고 내렸다. 그는 수리 한계 공지가 먼저 퍼졌다는 말을 듣자 얼굴을 굳혔다.
“누가 회선의 허용 전보를 정했소?”
해준이 작업 중지표를 내밀었다.
“수리 한계는 공방 책임자가, 발신 순서는 제가 서명했습니다.”
전령은 북문 보류 항목보다 ‘모든 운용자에게 공개’라는 문구를 오래 보았다.
“앞으로 회선 발신은 지정 관청의 허가를 먼저 받으라는 뜻이 내려올 것이오.”
그가 돌아서자 다른 기별꾼이 골목에서 뛰어왔다. 이겸의 인장이 찍힌 짧은 서찰이었다.
해준이 봉함을 뜯었다. 첫 줄에는 회선을 한 파벌의 손에 넘기지 않으려면 개혁 동맹이 필요하다고 적혀 있었다. 그 아래, 대가를 논할 시각과 장소가 비어 있었다.
무정은 빈칸을 보지 않았다. 전령이 가져온 허가 명령의 붉은 끈이, 방금 해체한 전지선 주위를 한 바퀴 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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