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걸음의 안전
탑은 구조된 사람을 지운다 · 2026. 4. 16.
안전한 길은 세 걸음뿐인데, 한이결은 그 세 걸음을 혼자 볼 수 없다.
출구 문턱을 넘은 곳은 밖이 아니었다. 붕괴 복도였다. 앞으로 열 걸음, 그다음은 바닥이 접힌 구간. 접힌 폭은 사람 두 명 길이. 건너편에 다시 문이 있고, 남은 시간은 오십이 초.
“측량사님. 판정.” 새벽이 방패를 앞으로 세웠다. “돌아가는 길 없습니다. 뒤는 이미 닫혔습니다.”
이결은 접힌 구간을 봤다. 콘크리트가 아래로 꺼지면서 철근이 세 군데 남아 있었다. 하중을 받는 점은 세 개인데, 어느 세 개인지는 보이지 않았다. 그가 보는 것은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있어야 할 것이 없는 자리, 즉 빈 곳만 또렷했다.
그는 그 눈을 위험을 피하는 데만 쓰기로 오래전에 정해 두었다. 그 규칙을 지켰다면 유라는 아직 장비함 뒤에 있었다.
빈 곳으로는 발을 디딜 수 없다.
“도현.”
“가능한 값 세 개.” 도현이 말했다. “첫째, 철근 세 개 다 살아 있음. 둘째, 두 개만 살아 있고 하나는 부러진 채 걸쳐 있음. 셋째, 지금 우리 무게로 계산하면 셋 다 못 버팀. 가장 나쁜 값부터 가정하면 셋째입니다.”
“셋째면 아무도 못 건넙니다.” 이결이 말했다.
“그래서 표본이 더 필요하고, 표본을 얻으려면 누가 먼저 밟아야 하고, 밟으면 표본이 사람입니다.” 도현이 펜으로 공중에 괄호를 그렸다. “저는 이 계산 안 좋아합니다.”
유라가 벽에 붙어 앉아 있었다. 왼발은 이미 쓸 수 없었다. 붕대 위로 피가 한 번 번지고 멈춰 있었다.
미래가 복도 입구에서 카메라를 낮게 들었다. 촬영 중이라는 붉은 점이 켜졌다가 꺼졌다.
“파일명부터. 붕괴복도_철근세개_오십이초.” 미래가 말했다. “측량사님, 지금부터 하는 거 기록해도 됩니까?”
“기록하세요.”
“동의 필요한 사람 두 명 더 있는데요.”
“그럼 두 명한테 물으세요.”
미래가 새벽과 도현을 차례로 봤다. 둘 다 손짓으로 허락했다. 그가 유라 앞에 쭈그려 앉았다.
“진유라 씨도 프레임에 들어갑니다. 어디까지 됩니까?”
“다리는 빼 주세요.” 유라가 말했다. “얼굴은 괜찮아요. 이름은 아직요.”
“다리 빼고, 이름 보류.” 미래가 파일명을 고쳐 불렀다. “붕괴복도_철근세개_익명.”
“한 번 쓰겠습니다.” 이결이 말했다.
새벽의 시선이 옮겨 왔다. 그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고 있었다.
“조건.” 새벽이 방패를 내려놓았다. “차단되는 감각, 시간, 종료 신호, 그리고 누가 멈출 수 있는지. 네 개 다 말하세요.”
“두 사람 감각을 빌립니다. 새벽 대원 시야, 도현 청각. 빌리는 동안 두 분은 그 감각이 끊깁니다. 새벽 대원은 앞이 안 보이고, 도현은 소리가 안 들립니다.”
“시간.” 새벽이 손가락으로 방패 테두리를 짚었다. 초를 셀 자리를 정하는 동작이었다.
“열두 초 예정. 종료 신호는 제가 손을 내리는 것으로 합니다. 그 전에 두 분 중 한 명이 멈추라고 하면 그 자리에서 끊깁니다. 끊기면 좌표는 사라집니다. 다시 못 씁니다.”
“비용은요.” 도현이 물었다.
이결은 반 박자 쉬었다.
“구조한 사람에 관한 기억 하나가 빠집니다.”
“어떤 기억.” 도현이 되물었다.
“고를 수 없습니다.” 이결이 대답했다.
도현이 화면을 껐다. 소수점이 없는 침묵이었다.
“그럼 물어볼 게 있습니다.” 도현이 말했다. “그거, 재현됩니까? 매번 하나씩 빠집니까?”
“두 번째입니다.” 이결이 말했다. 여기서 그는 처음으로 시선을 옮겼다.
“첫 번째는 언제였습니까.” 도현이 물었다.
“작년입니다.” 그는 그 이상 말하지 않았고, 도현도 더 캐지 않았다.
“그럼 표본 하나요.” 도현이 가방을 내려놓았다. “동의합니다. 대신 제 청각이 꺼지는 동안 저는 손가락으로 제 맥을 셉니다. 초를 못 들으니까 박동으로 셉니다. 열두 초는 제 맥으로 열여섯 번쯤입니다. 열여섯에서 제가 손을 들면 그건 끝내라는 신호입니다. 측량사님 신호보다 제 신호가 빠를 수도 있습니다.”
“빠르면 그때 끝냅니다.” 이결이 말했다.
“동의.” 새벽이 방패를 바닥에 내려놓고 헬멧 바이저를 올렸다. 손이 바이저 걸쇠에서 한 번 미끄러졌다. 그는 다시 잡아 올렸다. “저는 앞이 안 보이는 동안 유라 씨 어깨에 손을 얹습니다. 유라 씨, 제가 흔들리면 미시면 됩니다.”
“밀어요?” 유라가 물었다.
“밀어요. 세게.”
“왜 저한테요?”
“유라 씨가 제일 가까이 있고, 제일 안 봐 줄 것 같아서요.”
유라가 새벽의 손목 아래에 자기 손을 넣었다. 밀 준비였다.
이결은 두 사람 사이에 섰다. 왼손을 새벽의 어깨에, 오른손을 도현의 손목에 얹었다.
새벽의 시야가 먼저 왔다. 자기 눈 위에 남의 각도가 얹혔다. 새벽이 보고 있던 것은 접힌 구간의 왼쪽이었다. 철근 사이에 작업 장갑 한 짝이 끼여 있었고, 눌린 방향이 위였다. 아래에서 무엇이 밀어 올렸다는 뜻이었다.
“앞 안 보입니다.” 새벽이 말하면서 오른손을 유라의 어깨에 얹었다. “유라 씨, 지금부터요.”
“잡았어요.”
“지금부터 안 들립니다.” 도현의 목소리가 뒤에서 왔다. “손으로 셉니다.”
도현의 청각이 들어왔다. 마찰음이 세 군데. 정확히는 두 군데가 크고 한 군데는 죽어 있었다.
두 감각과 그의 빈 좌표가 겹쳤다. 없던 것이 있는 것으로 바뀌었다. 발 디딜 세 점. 왼쪽 철근 앞 한 걸음, 중앙에서 오른쪽으로 반 걸음, 건너편 문턱 앞 한 걸음. 세 번째 점은 물이 고여 눈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여섯.” 도현이 자기 맥을 셌다. 소리를 못 듣는 사람의 목소리는 반음 높았다.
“세 점.” 그가 말했다. “왼쪽 앞, 중앙 오른쪽 반, 문턱 앞. 그 사이는 다 빕니다.”
새벽은 눈을 감은 채 대답했다. “복창합니다. 왼쪽 앞, 중앙 오른쪽 반, 문턱 앞.”
“열둘.” 도현이 손가락 두 개를 접었다. “아니, 열셋.”
새벽의 어깨가 반 뼘 뒤로 밀렸다. 유라가 밀었다.
“흔들렸어요.”
“고맙습니다.” 새벽이 눈을 감은 채 자리를 고쳤다.
네 번째 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문 너머였다. 그것을 보면 다음 층의 경로까지 알 수 있었다. 이결은 그것을 보고 싶었다.
“열넷.”
네 번째 점은 다음 층 계단의 세 번째 칸에 있었다. 거기까지 보면 이 붕괴가 어디서 시작됐는지 알 수 있었다. 알면 다음 사람을 더 빨리 찾을 수 있었다. 대가는 유라에 관한 기억 하나가 아니라 둘이 될 수도 있었다.
그는 손을 내렸다.
감각이 빠져나가는 것은 들어올 때보다 빨랐다. 새벽이 눈을 뜨고 두 번 깜빡였다. 도현이 귀를 한 번 털었다.
“열넷에 끝났습니다.” 도현이 말했다. “열여섯 전에요. 그건 기록해 둡니다.”
“왜 열넷에 끝냈습니까.” 새벽이 물었다.
“네 번째가 보이기 시작해서요.”
“그래서요?”
“그래서 끊었습니다.” 이결이 말했다.
새벽이 방패를 들었다. 더 묻지 않겠다는 동작이었다.
“그건 판단 잘한 겁니다.” 새벽이 말했다. “그리고 열둘이라고 했는데 열넷 썼습니다. 그건 잘못한 겁니다.”
“두 초 초과했습니다.” 이결이 수첩에 열넷이라고 적었다.
“다음엔 그 두 초를 먼저 말하세요.” 새벽이 말했다.
도현이 무게 순서를 읽었다. 가장 무거운 사람과 가장 느린 사람의 이름만 불렀고, 누가 어디에 설지는 정하지 않았다.
“제가 첫 번째입니다.” 새벽이 말했다. “제가 제일 무겁습니다.”
“무게는 도현이 계산했습니다.”
“계산은 도현이 하고 밟는 건 제가 합니다.” 새벽이 방패를 등에 걸었다. “측량사님이 밟으면 좌표를 준 사람이 사라집니다. 그건 최악의 순서입니다.”
“두 번째 유라 씨.” 새벽이 말했다. “보폭 맞추세요. 왼발 못 쓰니까 오른발로 세 번 디딥니다.”
“제가 등 뒤에서 셉니다.” 도현이 덧붙였다. “아까는 못 들었으니까 손으로 셌는데, 지금은 들립니다. 소리 내서 세겠습니다.”
“소리 나면 위험한 거 아니에요?” 유라가 물었다.
“위험한 건 조용히 떨어지는 겁니다.”
미래가 카메라를 들었다가 내렸다. 세 점을 찍으면 구도가 좋겠지만, 그러면 유라의 다리가 프레임에 들어왔다. 그는 카메라 대신 벽에 초크로 세 점의 위치를 표시했다. 남는 기록이 필요했고, 얼굴은 필요하지 않았다.
새벽이 첫 점을 밟았다. 철근이 울렸다. 울렸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뜻이었다. 두 번째 점에서 그는 반 걸음 오른쪽으로 몸을 틀었다. 세 번째 점 앞에서 멈췄다.
“여기 물 고였습니다. 안 보입니다.” 새벽이 말했다.
“밟으세요.” 이결이 말했다. “물 밑에 있습니다. 제가 봤습니다.”
“봤습니까, 계산했습니까.” 새벽이 물었다. 그것은 신뢰의 문제가 아니고 책임 소재의 문제였다.
“빌려서 봤습니다.” 이결이 말했다. “도현 귀와 새벽 대원 눈으로요.”
새벽이 밟았다. 물이 튀고, 발이 멈췄다. 서 있었다.
유라가 건널 때 오른발이 두 번째 점에서 미끄러졌다. 새벽이 팔을 뻗었고 유라는 그 팔을 잡지 않았다. 대신 방패 테두리를 잡았다. 사람보다 쇠가 덜 흔들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잘했어요.” 새벽이 말했다.
“제가 잡을 걸 제가 골랐어요.” 유라가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결이 건넜다. 세 점 위에 발을 얹으면서 그는 네 번째 점이 있던 자리를 보지 않았다. 문 너머는 아직 그의 몫이 아니었다.
문이 열리고, 현실측 응급 조명이 여섯 사람의 얼굴을 하얗게 만들었다.
유라가 담요를 받고 앉았다. 그가 이결을 올려봤다.
“고맙습니다. 두 번요.”
“두 번.” 이결이 되물었다.
“통로에서 한 번, 여기서 한 번.”
이결이 유라를 봤다. 젖은 작업복, 왼쪽 다리에 감긴 붕대, 팔찌를 돌리는 손가락. 전부 보였다. 그런데 눈이 안 보였다. 눈이 있는 자리는 보이는데, 그 색이 없었다. 방금 십 분 전에 마주 본 눈이었다.
“측량사님?”
“구조 순서 확인하겠습니다.” 그가 말했다. “장비함 뒤 틈, 배관 아래 지렛대, 방향 수정은 유라 씨 지시. 주 통로 열두 걸음. 붕괴 복도 세 점. 맞습니까?”
“맞아요.” 유라가 말했다.
“다 기억합니다.” 그가 말했다. 문장은 맞았고 사실은 아니었다.
유라가 그를 오래 봤다.
“제 눈 색 뭐예요?” 유라가 물었다.
이결은 대답하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그가 말했다.
유라는 더 묻지 않았다. 대신 담요 밑에서 손가락을 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이번에는 이결이 그것을 세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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