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은 구조된 사람을 지운다

1여섯 번째 발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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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발자국

탑은 구조된 사람을 지운다 · 2026. 4. 15.

천장은 아흔 초 뒤 내려앉는다.

이결은 계수기를 보지 않았다. 8층 환승 플랫폼은 정면 열두 걸음이 주 통로였고, 왼쪽 벽 아래가 배수 홈이었다. 물은 홈을 따라 오른쪽으로 흘렀다. 발자국은 그 물을 밟은 자리에만 남았다.

공식 구조 인원은 다섯이었다. 젖은 바닥에는 여섯 줄이 있었다.

한 줄은 뒤꿈치가 얕고 앞볼이 깊었다. 절며 걸은 사람의 압흔이었다.

“측량사님, 출구 확인.” 새벽이 방패 뒤에서 호흡을 셋 세었다. “주 통로. 열두 걸음. 넘어지면 끌고 나갑니다.”

“좌측 두 칸.” 이결은 장비함 뒤를 가리켰다. “저기서 숨소리가 납니다.”

새벽의 방패가 반 뼘 돌아왔다. 돌아온 각도만큼 주 통로의 사선이 좁아졌다.

“지도에 없습니다.” 새벽이 말했다. 판정부터였다. “배수 홈 뒤는 벽입니다. 기관 도면 3판, 8층 좌측 폐쇄.”

“도면은 물이 어디로 흐르는지 안 적습니다.” 이결은 새벽의 판정을 지우지 않고 그 옆에 근거를 하나 더 요구했다.

이결은 무릎을 꺾고 바닥에 손등을 댔다. 물은 홈으로 곧게 가지 않았다. 장비함 옆에서 한 번 밀렸다가 다시 홈으로 붙었다. 밀린 폭은 두 걸음. 벽이라면 물이 그렇게 돌아 나오지 않는다.

“도현.”

“센서엔 없어요.” 도현이 화면을 두 번 문질렀다. “반향 없음, 열원 없음, 벽 두께 균일, 습도만 삼 퍼센트 높고요. 그건 데이터가 아니라 소원입니다, 측량사님.”

“그럼 표본 하나 더.”

새벽이 방패 안쪽에서 이결을 봤다. 반대할 시간이 몇 초 남았는지 세는 눈이었다.

도현이 잠깐 멈췄다. 자기 문장을 자기가 돌려받은 얼굴이었다. 그는 센서를 끄고 장비함 옆에 이마를 붙였다.

“물소리가 두 개.” 소수점이 붙지 않은 문장이었다. “하나는 홈, 하나는 더 아래.”

천장이 삼십 센티 내려왔다. 조명 하나가 각도를 잃고 배수 홈을 비췄다. 물결이 장비함 옆에서 두 번 접혔다. 벽에 부딪힌 물은 한 번만 접힌다.

강도훈이 주 통로 입구에서 뒤를 돌아봤다. 팀의 다섯 번째이자 통신 중계였고, 이 현장에서 관리국 단말을 든 유일한 사람이었다.

“먼저 나가세요.” 이결이 말했다. “통로 끝에서 우리 수를 세 주세요. 여섯입니다.”

“다섯입니다.” 강도훈이 정정했다. 악의는 없었다. 그의 단말에 다섯이 떠 있었고, 그는 자기가 본 것을 말했다. 그 다섯은 등록된 구조 인원이었다. 이결, 새벽, 도현, 미래, 그리고 강도훈 자신.

이결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면 설명해야 하고, 설명하면 열두 걸음이 사라졌다.

새벽이 방패를 어깨에서 뽑았다. 아무도 지시하지 않았다.

“열 초 줍니다.” 새벽이 방패 하단을 장비함 뒤 문틀에 박았다. 쇠가 콘크리트를 물었다. “측량사님, 열 초 뒤에 이건 접힙니다. 그때 제가 멈추라고 하면 손 떼세요.”

“멈추라고 하면 뗍니다.” 이결은 바닥에 진압봉 끝으로 짧은 선을 그었다. 방패가 물러날 자리였다.

“그 선 밖으로는 안 들어갑니다.” 새벽이 말했다. “들어가면 제가 끌어냅니다. 측량사님이 뭘 보고 있어도요.”

방패가 벽을 밀었다. 벽이 두 걸음 폭으로 물러났다. 검게 열린 틈 안에서 손 하나가 방패 가장자리를 잡았다.

명단에 없는 손이었다.

붕괴 사십삼 초 전. 틈은 안쪽도 두 걸음 폭이었다. 어깨를 정면으로 두면 한 사람만 지나갔다. 여자는 왼발이 접힌 배관과 바닥 사이에 끼어 있었다. 이결의 등 뒤로 방패가 삐걱거렸다.

“여섯이에요.” 여자가 말했다. 숨이 반씩 끊겼지만 숫자는 끊기지 않았다. “여기 처음에 여섯이 있었어요. 다시 세어 봐요.”

이결은 반 박자 쉬었다. 사람 이름을 물을 때 그는 늘 그만큼 늦었다.

“이름.”

“진유라.”

“진유라 씨, 발이 어디 끼었습니까.”

“몰라요. 안 보여요.” 유라가 손바닥으로 바닥을 두 번 쳤다. 두 번의 간격이 같았다. “여기 두드리면 소리가 얇아요. 여기는 안 얇고요. 얇은 쪽이 비었어요.”

겁에 눌린 말투였는데 손은 박자를 잃지 않았다. 이결은 그 박자를 정보로 받았다.

이결은 얇은 쪽을 짚었다. 배관은 바닥에 놓인 것이 아니고 한쪽 끝만 걸쳐져 있었다. 지렛대를 넣을 자리는 발목 바깥이었다.

“새벽 대원, 방패 각도 십 도. 왼쪽.”

“팔 초.” 새벽이 방패를 왼쪽으로 눕히면서 오른손을 뒤로 뻗었다. 방패와 구조를 한 몸으로 했다. “유라 씨, 살아 있으면 대답. 내 손 잡지 말고 내 팔뚝 잡아요.”

“팔뚝.” 유라가 그대로 따라 말하고 팔뚝을 잡았다. 자기가 할 몫을 확인하는 복창이었다.

이결이 진압봉을 배관 아래 삼십 도로 밀어 넣었다. 무게가 옮겨 가는 순간 배관이 오 센티 들렸다. 유라의 발은 나오지 않았다. 각도는 맞았고 방향이 틀렸다.

“오 초.” 도현이 통로 밖에서 셌다. 숫자 뒤에 이름이 붙었다. “오 초, 새벽 씨.”

유라가 이결의 손목을 쳤다. “반대로요. 아까 들어올 때 이쪽으로 밀렸어요.”

이결은 방향을 바꿨다. 정확히는, 바꾸라는 말을 들었다. 배관이 반대로 돌면서 발목이 빠졌다. 구조 대상이 지목한 방향이 측량사의 각도를 이겼다는 사실이 손끝에 먼저 닿았다.

“멈춰.”

새벽의 목소리였다. 이결은 손을 뗐다. 이유를 묻지 않았고, 묻지 않은 만큼 빨랐다. 방패 상단이 접히고 문틀이 이십 센티 내려앉았다. 세 사람이 굴러 나온 뒤 측면 통로는 두 걸음 폭째 닫혔다.

“통로 잃었습니다.” 새벽이 방패의 접힌 하단을 봤다. 자기 장비였고, 자기 판단으로 박은 자리였다.

“통로는 잃었고 사람은 얻었습니다.” 이결이 말했다. 위로로 들릴 문장이었지만 그는 계산을 하고 있었다. 남은 열두 걸음에 유라의 왼발이 더해졌으니 속도를 다시 배분해야 했다.

“계산 말고 순서를 주세요.” 새벽이 접힌 방패를 등으로 돌렸다. “누가 앞이고 누가 뒤입니까.”

“주 통로.” 이결이 말했다. “열두 걸음. 유라 씨 왼발은 못 씁니다. 새벽 대원 오른쪽, 도현 왼쪽. 저는 뒤에서 셉니다.”

“뒤에서 세면 앞이 안 보입니다.”

“앞은 새벽 대원이 봅니다.”

새벽이 처음으로 대답 없이 움직였다. 동의였다.

여섯이 뛰었다. 젖은 바닥에 다섯 줄이 그어지고, 그 뒤로 한 줄이 더 그어졌다. 이결은 뛰면서 셋을 셌다. 앞의 어깨 넷과, 자기 팔에 걸린 무게 하나, 그리고 자신.

세 걸음째에서 천장 패널이 주 통로 왼쪽에 떨어졌다. 새벽이 오른쪽으로 팀을 밀었다. 밀린 폭만큼 유라의 왼발이 바닥에 닿았고, 유라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소리를 내면 팀이 속도를 줄일 것을 알고 있었다.

강도훈이 문턱 앞에서 손을 들어 인원을 셌다. 그의 입은 다섯까지 갔고, 눈은 여섯까지 갔다.

“유라 씨. 아프면 아프다고 하세요.” 새벽이 뛰면서 말했다. “참으면 제가 계산을 틀립니다.”

“아파요.”

“속도 낮춥니다. 사 초 씁니다.”

사 초를 썼다. 사 초 뒤에 문턱이 있었다.

붕괴 육 초 전. 출구 전실의 인원 카운터는 다섯에서 멈춰 있었다.

유라가 손목을 단말에 댔다. 표식은 읽히지 않았다. 두 번, 세 번. 화면은 다섯이었다.

세 번째에 유라가 손을 뒤로 뺐다. 놀란 속도는 아니었다. 익숙한 속도였다.

“전에도 이랬어요?” 이결이 물었다.

“모르겠어요.” 유라가 팔찌를 돌려 안쪽을 보였다. 각인된 번호 뒷자리가 긁혀 있었다. “읽히기도 하고 안 읽히기도 해요.”

이결은 긁힌 부분을 봤다. 손톱으로 긁은 흠인지 벽에 쓸린 흠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그는 구분되지 않는다는 사실만 수첩에 옮겼다.

미래가 통로 밖에서 단말을 세로로 들었다. 그는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지나온 자리를 찍는 것이 그의 위치였다.

“파일명부터.” 미래가 말했다. “8층_환승_인원카운터_05시39분. 좋아, 최악.”

“체온 세겠습니다.” 도현이 열화상 화면을 소리 내어 읽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여섯입니다. 오차 범위 아닙니다.”

“기록 단말.” 이결이 말했다. “카운터와 바닥, 한 화면에.”

미래가 단말을 낮췄다. 다섯을 표시한 숫자와 여섯 줄의 발자국이 같은 프레임에 들어갔다. 셔터 소리가 두 번 났다.

“원본 살아 있어.” 미래가 말했다. “업로드 말고 보관.”

“측량사님. 이거 뭡니까.”

“모릅니다.” 이결이 말했다. 그는 그 문장을 수첩에도 그대로 적었다. 지울 생각은 없었다.

문이 내려왔다. 여섯이 문턱을 넘었다. 이결은 마지막으로 뒤를 봤다. 마른 콘크리트 위에 젖은 발자국은 한 사람 몫만 남아 있었다. 유라의 것이었다. 다섯 사람의 자리는 이미 말라 있었다.

“이름 확인.” 이결이 수첩에 적었다. 여섯 칸을 그리고 다섯 칸을 채웠다. 여섯째 칸에는 진유라라고 썼다. 자기 손으로 쓴 글씨였는데, 단말 화면에는 그 줄이 없었다.

미래가 수첩을 한 장 찍었다. 찍고 나서 유라를 봤다.

“진유라 씨. 이 사진, 어디까지 나가도 됩니까.”

유라가 잠깐 생각했다. 구조된 사람에게 묻는 질문이 아니라고 여기는 표정이었다.

“……제가 정해도 돼요?”

“정하세요.” 미래가 말했다. “안 정하면 제가 정하게 되니까요.”

“그럼 관리국 말고, 저 사진 먼저 보여 주세요.”

미래가 화면을 돌렸다. 유라는 자기 발자국이 찍힌 부분을 손가락으로 짚고, 얼굴이 나온 부분은 밀어냈다.

“그럼 관리국은요.” 유라가 물었다. “관리국이 이걸 보면 고쳐 줘요?”

미래가 카메라를 내렸다. 도현은 열화상 화면을 접었고, 새벽은 방패 손잡이를 두 번 눌렀다. 세 사람 다 대답할 자료를 갖고 있지 않았다.

새벽이 옆에 섰다. 접힌 방패를 아직 들고 있었다.

“측량사님. 아까 멈추라고 했을 때 왜 안 물었습니까.”

“멈추라고 했으니까요.”

“앞으로도 그러세요.” 새벽이 장갑 벨크로를 두 번 눌렀다. “저는 십 초라고 했는데 팔 초에 접혔습니다. 제 계산이 틀렸습니다.”

“그럼 다음엔 여섯 초로 적겠습니다.” 이결은 수첩의 십 초를 지우고 육 초를 썼다. 사과 대신 숫자를 고쳤다. “다음 진입에서 방패 시간은 새벽 대원이 정합니다. 제가 아니라요.”

“그건 이미 제 몫이었습니다.” 새벽이 말했다.

“그럼 제가 늦게 인정한 겁니다.”

유라가 벽에 등을 대고 앉아 손가락을 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다시 하나부터.

“여섯이었어요.” 유라가 말했다. “내가 세어 봤어요.”

이결은 그 손가락을 봤다. 여섯까지 갔다가 하나로 돌아오는 손이었다. 그는 수첩의 여섯째 칸에 밑줄을 그었다. 답을 적은 밑줄은 아니었다. 다음에 물을 자리였다.

천장에서 먼지가 다시 떨어졌다. 8층은 닫혔다. 그런데 발밑의 진동은 아래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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