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까지 기록하시오
계약 결혼의 열세 번째 조항 · 2026. 7. 27.
조회수 4
공동 대기실에는 지도와 계약서가 같은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카시안은 북문 수치를 숨기지 않았다. 요새 보조 배급은 사흘 줄었고, 관문 교대는 아직 불안정했으며, 함대가 있으면 강 하구의 우회 수송로를 하루 반 앞당길 수 있었다. 그는 숫자를 말할 때 리디아를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설득보다 더 건조한 방식으로 자신이 원하는 답을 드러냈다.
“저는 함대 일부를 쓰는 쪽을 선호합니다.” 그가 말했다.
리디아는 제3조 원본의 접힌 자국을 눌렀다. “일부가 아니라 즉시 전면 징발안입니다.”
“압니다.”
“동의하라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카시안은 탁자 위 손을 거두었다. “동의하면 북문은 쉽습니다. 거절하면 다른 보급선을 찾아야 합니다.”
“그 대답은 회의장에서도 같습니까?”
“회의장에서는 더 짧아질 겁니다.”
리디아는 그를 보았다. 그는 피곤해 보였지만, 피곤을 권리처럼 쓰지는 않았다. 젖은 장갑은 새것으로 바뀌었고, 북문 손실표는 이미 세 부로 복사되어 있었다.
“제가 거절하면 전하께서 잃는 것은 무엇입니까?”
“북문군 지지표 일부. 관문 우회 시간. 도리안의 인내.”
“마지막은 이미 적자 아닙니까?”
그의 입가가 아주 작게 움직였다. 웃음이라고 부르기에는 짧았다. “그렇습니다.”
리디아는 계약서 제13조를 펼쳤다. ‘상대의 거절을 배신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문장은 여전히 얇았다. 오늘 회의장에서는 그 얇은 문장이 왕세녀의 안전과 북문 배급, 항구의 배를 상대해야 했다.
“거절 뒤 무엇을 하실 겁니까?”
“대체 보급선을 찾습니다. 셋째 배 손실을 메우고, 내륙 청문 전까지 임시 곡물 차입을 요청합니다.”
“저를 설득하지 않고요?”
“회의 전에는 설득할 수 있습니다.” 카시안은 잠깐 말을 끊었다. “명령할 수는 없습니다.”
둘은 믿는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말이 들어갈 자리에 손실표와 계약서가 있었다. 리디아는 함대 징발안 사본을 접어 들고 회의장으로 향했다.
섭정회의장은 처음부터 리디아에게 불리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왕세녀의 자리는 중앙에 있었고, 베아트리체는 그 뒤에 앉았다. 오스윈은 기록대 옆에 서서 서기관의 펜이 잘 보이는 위치를 골랐다. 카시안의 자리는 리디아와 한 줄 떨어져 있었다. 서로 같은 문서에 묶인 두 사람이지만, 오늘은 같은 자리에 앉지 않았다.
오스윈은 함대 징발안을 읽었다. “국왕 유고 중 왕세녀의 이동로, 북문 배급, 수도 곡물선 보호를 위해 아베른 삼항구 함대 전체를 왕실 비상 지휘 아래 둡니다. 기간은 유고 해소 또는 섭정 확정일까지입니다.”
그는 이어서 숫자를 붙였다. 북문 보조 배급의 손실, 수도 창고의 남은 일수, 왕세녀 이동로에 배치된 친위대 수. 숫자는 실제였다. 리디아는 그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오스윈의 위험한 점은 거짓말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데 있었다. 그는 맞는 숫자를 한 줄로 세운 뒤, 그 숫자들이 한 명령만 요구하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북문 첫 요새는 사흘 뒤 보조 배급을 줄입니다.” 오스윈이 말했다. “수도 동쪽 창고는 열이틀분입니다. 왕세녀 전하의 이동로는 강 하구를 지나야 합니다. 아베른 함대가 움직이지 않으면, 우리는 세 위험을 따로 막아야 합니다.”
도리안이 군부석에서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는 함대를 원했다. 그 욕망에는 병사들의 빈 식판이 들어 있었다. 리디아는 그를 멍청한 반대자로 만들 수 없었다. 그래서 더 어려웠다.
“전체입니까?” 셀레네가 물었다.
“일부 지정으로는 지연이 발생합니다.”
“보상 규정은요?”
“생존 뒤에 논의할 수 있습니다.”
오스윈의 답은 부드러웠다. 그래서 더 위험했다. 보상은 뒤로 가고, 명령은 앞으로 왔다.
아델라는 왕세녀석에 앉아 있었다. 오늘은 대본 카드를 들지 않았다. 대신 무릎 위에 접힌 종이 한 장을 놓고 있었다. 리디아는 그 종이가 어제 고친 문장인지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으므로 단정하지 않았다. 다만 아델라의 엄지가 종이 접힌 선을 계속 문지르는 것만 보았다.
베아트리체는 아이의 손을 말리지 않았다. 그 역시 동의인지 계산인지 알 수 없었다.
리디아가 발언권 표식을 들었다. “아베른 삼항구는 함대 전체 징발을 거절합니다.”
서기관의 펜이 멈췄다. 회의장은 잠깐 소리를 잃었다가, 곧 여러 방향에서 되찾았다.
“북문을 버리겠다는 뜻입니까?”
“왕세녀 전하의 안전을 항구 이익보다 낮게 본 겁니까?”
“왕족 배우자가 남편의 군을 배신했습니다.”
리디아는 가장 큰 목소리 쪽을 보지 않았다. 서기관의 펜을 보았다. “거절 문장을 먼저 적으십시오. 대안은 다음 문장입니다.”
오스윈이 조용히 웃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대안 토론이 아닙니다. 명령입니다. 왕세녀 전하께서 이동 중 공격받으면, 공녀께서는 선박별 협의를 열겠다고 답하시겠습니까?”
“선박별 협의와 삼십 일 시한부 보호 항로 제공안을 제출합니다.” 리디아는 준비한 종이를 펼쳤다. “왕세녀 이동로에 필요한 선박은 이름과 기간을 지정해 협의하고, 북문 배급선에는 항구 조합이 별도 호위 계약을 붙입니다. 전체 지휘권은 넘기지 않습니다.”
“호위 계약이라.” 오스윈은 단어를 천천히 되풀이했다. “공녀께서는 국가 위기를 상업 계약으로 바꾸십니다.”
“징발도 계약 없이 남의 배를 쓰는 방식입니다. 저는 계약서를 보이게 만들자는 쪽입니다.”
“배가 공격받으면 협의 상대도 함께 가라앉습니다.”
“그래서 선박별 위험과 보상을 적자는 겁니다. 전체 함대라는 말은 어떤 배가 먼저 가라앉는지 숨깁니다.”
도리안이 낮게 말했다. “숨기는 게 아니라 빨리 움직이는 겁니다.”
리디아는 그쪽을 보았다. “빠른 명령이 필요한 배부터 적으십시오. 저는 그 배를 논의하겠습니다. 빠르다는 이유로 모든 배를 지우지는 않겠습니다.”
도리안은 반박하려다 카시안을 보았다. 카시안은 아무 신호도 주지 않았다. 리디아에게도, 도리안에게도.
“협의할 시간이 없다면요?”
“그러면 시간이 없다는 기록과 필요한 선박 수를 적으십시오. 전체 함대라는 말로 빈칸을 덮지 마십시오.”
베아트리체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공녀, 후계자의 안전은 빈칸이 아닙니다.”
“그래서 더 정확해야 합니다.”
회의장 서쪽 줄에서 귀족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건 반역 혐의 가문의 오만입니다. 남편의 군이 굶는데 아내가 배를 숨깁니다. 이 혼인은 왕실을 속이기 위한 도구였습니까?”
카시안이 움직였다. 리디아는 그가 자신을 향해 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서기관 쪽으로 걸어갔다. 회의장의 시선이 그의 장화 소리를 따라갔다.
“방금 발언자 이름을 적으시오.” 카시안이 말했다.
귀족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서기관이 펜을 들었다. 카시안은 리디아를 대신 보지 않았다. 그녀가 거절한 이유를 변호하지도 않았다. 그는 기록대 위에 계약서 사본을 놓았다.
“리디아 아베른은 아베른 삼항구 함대 전체 징발을 거절했다. 대안으로 선박별 협의와 삼십 일 시한부 보호 항로 제공안을 제출했다. 북문대공 카시안 로엔은 그 거절을 배우자의 배신으로 간주하지 않으며, 거절을 이유로 보복하거나 위임을 철회하지 않는다.”
서기관의 펜이 따라가지 못해 잠깐 멈췄다. 카시안은 기다렸다.
“거절까지 기록하시오.”
그 문장은 한 번만 울렸다. 회의장이 감동한 것은 아니었다. 군부 대리인 둘은 서로를 보았고, 셀레네는 계산표 가장자리를 접었다. 오스윈은 처음으로 미소를 완전히 거두었다.
아델라의 종이가 무릎 위에서 조금 구겨졌다. 리디아는 그 소리를 들은 듯했다. 왕세녀는 고개를 들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말하면 어른들이 그 말을 자기 편으로 끌고 갈 것을 아는 얼굴이었다. 침묵도 선택일 수 있었다. 다만 아직은 다른 사람들이 해석하기 쉬운 선택이었다.
베아트리체가 부드럽게 말했다. “대공 전하, 후계자 앞에서 배우자의 거절을 이렇게 세우는 것이 왕실의 권위를 돕는다고 보십니까?”
카시안은 왕대비에게 예를 갖춰 고개를 숙였다. “권위가 거절 한 문장으로 무너지면, 이미 다른 곳이 비어 있습니다.”
회의장 안쪽에서 짧은 숨소리들이 겹쳤다. 리디아는 그 문장에 기대지 않기로 했다. 기대는 순간, 자신의 거절이 그의 말 뒤로 숨었다.
“제 대안안 두 번째 장을 이어 기록하십시오.” 그녀가 말했다.
“대공 전하께서는 북문군 지휘관으로서 이 손실을 감수하십니까?” 오스윈이 물었다.
“감수한다는 말로 손실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카시안이 답했다. “손실표를 제출하겠습니다.”
리디아는 그를 보지 않았다. 보면 고맙다는 말이 나올 것 같았다. 지금 그녀가 해야 할 일은 감사가 아니라 대안안의 두 번째 장을 기록시키는 것이었다.
“항구 조합 호위 계약의 비용 주체도 적어 주십시오.” 리디아가 말했다. “삼항구가 부담할 몫과 왕실이 부담할 몫을 나눕니다.”
오스윈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렇다면 삼항구가 내륙 구호 곡물을 먼저 공여하는 조건으로 임시 대표석을 유지하는 수정안을 붙이겠습니다. 자치가 책임을 말한다면, 먼저 곡물을 내야 합니다.”
셀레네가 바로 고개를 들었다. “내륙 구호 곡물이라면 수량을 명시해야 합니다.”
“명시하겠습니다.” 오스윈은 준비된 종이를 꺼냈다. 너무 빨랐다. 조건은 즉석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삼항구는 칠 일 안에 내륙 구호 창고로 밀가루 오백 말 상당을 선공여한다. 미이행 시 임시 대표석은 자동 정지됩니다.”
리디아는 그 종이의 접힌 자국을 보았다. 이미 접혀 있던 문서였다. 오스윈은 거절을 예상했고, 거절의 값을 준비했다. 그것은 그가 전능하다는 뜻이 아니라, 그녀가 거절할 때 무엇을 지킬 수밖에 없는지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셀레네가 말했다. “오백 말은 내륙 한 군의 일주일분입니다. 하지만 삼항구가 갑자기 내면 항구 배급이 흔들립니다.”
“그래서 책임입니다.” 오스윈이 답했다.
“책임과 과시는 다릅니다.”
셀레네는 리디아 편을 든 것이 아니었다. 숫자가 맞지 않는 곳을 찌른 것뿐이었다. 리디아는 그 차이를 고맙게 소비하지 않기로 했다.
“오백 말의 수송 시한과 배분 명부를 함께 요구합니다.” 리디아가 말했다. “삼항구가 내는 곡물이 어느 창고에서 누구에게 가는지 기록되지 않으면, 임시 의석 조건이 아니라 다른 장부의 빈칸이 됩니다.”
오스윈은 잠깐 그녀를 보았다. “기록하십시오.”
그 허락은 양보가 아니었다. 기록이 늘 리디아 편이 되지는 않았다. 오백 말이라는 숫자는 회의록에 남는 순간 삼항구가 갚아야 할 빚이 됐다. 항구 사람들이 왕실 징발을 피했다는 소식을 듣기 전에, 내륙으로 보낼 밀가루부터 세게 될 것이다.
카시안은 그 숫자를 듣고도 대신 낮춰 달라고 말하지 않았다. 셀레네도 항구 사정을 들어 조건을 없애 주지 않았다. 각자가 자기 비용을 들고 서 있었고, 그 때문에 거절은 더 이상 깨끗한 승리로 보이지 않았다.
승리의 모양이 바뀌었다. 징발안은 보류됐지만, 임시 의석은 곡물 조건에 묶였다. 리디아는 손끝에 묻은 잉크를 보았다. 거절은 무료가 아니었다.
회의 후 기록실에는 축하할 사람이 없었다. 엘리어스는 손실표와 곡물 조건을 나란히 놓고 계산했다. 카시안은 북문군 지지표가 얼마나 흔들렸는지 적힌 짧은 메모를 읽었다.
“축하 대신 이것부터 보십시오.” 그가 리디아에게 종이를 건넸다. “삼항구가 오백 말을 먼저 내면 항구 배급은 열흘 뒤 줄어듭니다. 마르셀의 상단을 통하지 않으면 현금이 부족합니다.”
“후회합니까?”라는 말이 목끝에 왔다가 리디아는 버렸다. 그 질문은 그에게 답을 요구하는 척하며 자기 불안을 맡기는 말이었다.
“다음에도 기록합니까?” 그녀가 물었다.
카시안은 회의록의 ‘거절’ 아래쪽을 보았다. “조항이 남는 동안은.”
“조항이 끝나면요?”
그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대신 손실표를 접어 그녀 쪽으로 돌렸다. “그 전까지 습관을 만들어야겠지요.”
기록실 문이 열리고 사비네가 들어왔다. 그녀는 젖지 않은 봉투 하나를 들고 있었다. 봉투에는 삼항구 상인평의회 인장이 찍혀 있었다.
“마르셀 오르테 의장의 제안서입니다.” 사비네가 말했다. “부족분을 대겠답니다. 조건도 있습니다.”
리디아는 봉투를 열었다. 제안서 끝에는 유난히 둥근 서명이 있었다. 웃는 얼굴을 닮은 서명 아래에 작은 문장이 붙어 있었다.
공작님도 묻지 않은 조건을, 저는 먼저 적겠습니다.
이번 화가 재미있었나요?
좋아요와 평점은 언제든 변경할 수 있습니다.
독자 평점 아직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