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 있는 의자
계약 결혼의 열세 번째 조항 · 2026.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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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측은 리디아를 피고라고 부르지 않았다.
“피보호자 리디아 아베른.” 회색 법복을 입은 대리인은 그 호칭을 세 번 반복했다. “급박한 반역 심리, 국왕 유고, 왕족과의 혼인. 이 세 조건 아래 행사된 표가 자유 의사였는지 재판부는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임시 심리실에는 큰 창이 없었다. 대신 회의장으로 이어지는 좁은 문이 열려 있었다. 리디아는 그 문 너머로 아직 비어 있는 아베른 의자의 등받이를 볼 수 있었다. 봉인끈은 어제와 같은 자리에 묶여 있었고, 그 위에 왕실 인장이 눌려 있었다.
“공녀께서는 보호가 필요합니다.” 대리인이 말했다. “북문대공은 군권과 왕실 혈통을 모두 가진 분입니다. 피보호자가 거절했다고 주장하더라도, 그 거절이 실제로 안전했는지 별도 입증이 필요합니다.”
리디아는 손에 쥔 위임서를 펼쳤다. 불쾌하다는 말을 먼저 꺼내면 상대가 원하는 틀이 완성됐다. 피해자가 아니라고 소리치면, 피해자가 부정하는 장면으로 기록될 수 있었다.
“피보호자라는 호칭을 거절합니다.” 리디아가 말했다. “다만 원고 측이 제기한 문제는 기록할 가치가 있습니다. 권력 차이가 있는 혼인에서 표가 강요될 수 있다는 주장 자체는 배척하지 않습니다.”
원고 대리인의 눈이 잠깐 움직였다. 리디아가 화를 낼 거라고 예상한 얼굴이었다.
재판관은 안경을 밀어 올렸다. “그렇다면 강요가 없었다는 증거를 제출하십시오. 계약 조항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조항은 말입니다. 행동이 필요합니다.”
엘리어스가 리디아 옆에 놓인 서류함을 열었다. 그 안에는 카시안의 위임서와 북문 보고서 사본, 오늘 회의 안건표가 들어 있었다.
원고 대리인은 그 서류함을 보고도 물러서지 않았다. “피보호자가 서류를 많이 가졌다는 사실은 권력에서 벗어났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준비된 각본일 수 있습니다. 북문대공이 없는 자리에서 공녀께 유리한 장면을 만들도록 지시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가능성은 기록하십시오.” 리디아가 말했다. “가능성만으로 제 표를 지우지는 마십시오.”
“공녀께서는 자신이 위협받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어제와 오늘 위협받았습니다.”
심리실 안쪽이 조용해졌다. 원고 대리인의 눈에 짧은 만족이 떠올랐다. 리디아는 그 만족을 그대로 두지 않았다.
“오스윈 재상에게도, 왕대비 전하의 의전에도, 북문대공의 군사 필요에도 위협받았습니다. 다만 위협이 있었다는 사실과 제가 특정 문장에 따라 표를 던졌다는 사실은 다릅니다. 원고 측은 두 문장을 섞고 있습니다.”
재판관이 처음으로 펜을 들었다. “계속하십시오.”
“저는 강요가 없었다고 주장하기 위해 권력 차이가 없었다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권력 차이는 있습니다. 그래서 제 표가 누구에게 불리하게 작동하는지, 그 뒤 보복이 있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엘리어스가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표정에는 칭찬이 아니라 항목이 정리되는 기색이 있었다.
“오늘 안건 중 북문군 비상지출 감사 수정안이 있습니다.” 엘리어스가 건조하게 말했다. “대공 전하께 불리한 안입니다. 통과되면 북문군 임시 지출마다 도시 감사관의 사후 확인이 붙습니다. 늦어지고, 귀찮아지고, 군부가 싫어합니다.”
“그 표현은 기록하지 마세요.” 리디아가 말했다.
“귀찮아진다는 말만 빼겠습니다.”
재판관이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공녀께서는 그 수정안을 지지하겠다는 뜻입니까?”
리디아는 위임서의 문장을 보았다. ‘사전 지시가 아니라 독립 판단권.’ 카시안이 쓴 글씨는 군사 보고서처럼 짧고 눌려 있었다.
“수정안 내용을 확인한 뒤 결정하겠습니다. 대공 전하께 불리하다는 이유만으로 찬성하지도, 배우자라는 이유로 반대하지도 않겠습니다.”
원고 대리인이 바로 끼어들었다. “그 자체가 연출일 수 있습니다. 소송을 피하기 위한 표라면 독립성의 증거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록이 필요합니다.” 리디아는 위임서를 재판관에게 밀었다. “제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는지 함께 적어 주십시오.”
섭정회의장은 전날보다 더 붐볐다. 카시안의 자리는 비어 있었고, 그의 대리 군관 둘이 리디아 쪽을 보지 않으려 애썼다. 북문군 비상지출 감사 수정안이 상정되자 군관 중 한 명이 먼저 발언권을 들었다.
“북문은 이미 관문 교대 지연으로 손실을 봤습니다. 전시 지휘에 도시 감사관을 붙이면 다음 관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리디아는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연은 실제로 사람을 굶겼다. 그렇다고 지출 기록이 사라지면 손실은 다음 사람에게 밀렸다.
“감사관의 현장 사전 허가가 아니라 사후 확인입니다.” 리디아가 말했다. “구조 명령을 멈추지 않습니다. 다만 버린 곡물, 배상할 화물, 부상자 이름이 빠지지 않게 합니다.”
“북문군을 의심하십니까?”
“이름 없는 손실표를 의심합니다.”
군관의 얼굴이 붉어졌다. “대공 전하께서 돌아오시면 이 결정을 이해하지 못하실 겁니다.”
리디아는 위임서를 펼쳤다. “대공 전하께서는 이해할 권리를 남기셨습니다. 제 판단을 미리 정하지는 않았습니다.”
회의장 뒤쪽에서 누군가 “배우자의 반란”이라고 중얼거렸다. 서기관이 그 말을 적으려 하자, 리디아가 고개를 돌렸다.
“발언자 이름을 함께 적으십시오.”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름을 붙이면 농담은 의견이 됐다.
표결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군부 대리인들은 반대했고, 오스윈 계열 일부는 이상하게 기권했다. 셀 수 없는 침묵보다 셀 수 있는 기권이 더 불편했다. 리디아는 찬성표를 던졌다. 수정안은 근소하게 통과됐다.
그 표는 그녀에게 유리한 증거가 됐다. 동시에 카시안에게 돌아갈 첫 불편이 됐다.
군부 대리인 중 나이 든 장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수정안 때문에 북문에서 말 한 필이 멈추면, 그 책임은 누가 집니까?”
리디아는 회의록 가장자리의 빈칸을 보았다. 책임이라는 단어는 늘 빈칸을 찾았다.
“명령을 멈추는 조항이 아닙니다. 사후 확인 조항입니다.”
“그 확인을 위해 지휘관이 보고서를 쓰는 동안 병사는 기다립니다.”
“보고서를 쓰지 않아 손실이 사라지는 동안, 병사의 이름도 사라집니다.”
장교의 입술이 굳었다. 리디아는 그가 틀렸다고 느끼지 않았다. 장교는 기다림을 두려워했다. 리디아는 사라진 이름을 두려워했다. 두려움의 종류가 다르다고 어느 한쪽이 거짓이 되지는 않았다.
“수정안에 현장 명령 우선 문장을 추가하겠습니다.” 리디아가 말했다. “다만 손실표 제출 시한은 유지합니다.”
엘리어스가 빠르게 문장을 고쳤다. 군부 대리인은 만족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반박할 문장을 새로 골라야 했다. 그 사이 표결 종이 울렸다.
심리실로 돌아왔을 때 재판관은 이미 회의장 기록 사본을 받아 들고 있었다. 원고 대리인은 보호라는 단어를 한 번 더 꺼내려 했지만, 재판관이 손을 들어 막았다.
“강요의 가능성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오늘 표결에서는 피고가 북문대공의 즉각 이익에 반하는 안을 공개 지지했고, 위임서에는 사전 지시 금지와 사후 철회 금지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현 단계에서 표 무효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합니다.”
리디아는 승리라는 말을 떠올리지 않았다. 재판관의 다음 문장이 아직 남아 있었다.
“다만 아베른 가문의 정식 의석 복구는 반역 심리 종결 전까지 계속 봉인합니다. 임시 대표석은 이번 비상회의에 한정합니다.”
봉인끈이 묶인 빈 의자가 문 너머에 보였다. 리디아는 그 의자를 자기 자리라고 부르지 않았다. 오늘 얻은 것은 의자가 아니라 의자 앞에 서서 말할 좁은 바닥이었다.
엘리어스가 서류를 챙기며 낮게 말했다. “살았습니다. 절반쯤.”
“절반은 어디에 있습니까?”
“북문대공의 표정에 있을 겁니다.”
카시안은 해가 기울기 전에 돌아왔다. 회랑 끝에서 그의 장화 소리가 먼저 들렸다. 젖은 흙이 아직 밑창에 남아 있었고, 장갑 한쪽은 말안장에 묶인 채였다. 그는 리디아 앞에 멈춰 섰지만 곧바로 축하하거나 질책하지 않았다.
“북문군 비상지출에 도시 감사관이 붙었습니다.” 그가 말했다.
“제가 찬성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의 문장은 짧았다. 불만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불만을 다른 사람에게 명령으로 옮기지 않으려는 시간이 그 사이에 있었다.
리디아가 먼저 물었다. “이 결정 뒤에도 원본 자료를 공유합니까?”
카시안은 손에 든 봉투를 내밀었다. “다음 표결 자료입니다. 함대 담보안 수정본과 북문 손실표.”
“철회하지 않습니까?”
“늦어지는 건 싫습니다.”
“그건 답이 아닙니다.”
그는 리디아가 받지 않은 봉투를 조금 낮췄다. “철회하지 않습니다.”
그 말은 다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쓸모가 있었다. 리디아는 봉투를 받았다. 봉투 안쪽에는 강가에서 젖은 손으로 넘긴 흔적이 남아 있었다.
도리안이 회랑 바깥에서 말했다. “전하, 북문 장교들이 이 소식을 들으면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나도 좋아하지 않는다.” 카시안이 답했다.
“그런데도 그대로 둡니까?”
카시안은 리디아가 아니라 도리안을 보았다. “내가 싫어한다고 지우면, 위임서가 명령서가 된다.”
도리안은 입을 다물었다. 받아들인 침묵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이 자리에서 반박하지 않았다. 그 또한 카시안이 무엇을 잃는지 보고 있었다.
“공녀의 독립은 확인했습니다.”
낯선 목소리가 회랑 옆 기둥에서 들어왔다. 검은 추모 리본을 단 여인이 서 있었다. 장식은 화려하지 않았고, 리본 끝에는 작은 곡물 문장이 수놓여 있었다.
“셀레네 카르스트입니다.” 여인은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였다. “오늘 찬성하신 감사 수정안 때문에 내륙 한 가구가 이번 겨울 잃을 밀가루는 평균 두 말 반입니다. 도시 감사관 비용이 어디서 나오는지 계산해 보셨습니까?”
리디아는 답을 바로 찾지 못했다. 셀레네는 그 틈을 공격처럼 쓰지 않고, 접힌 계산표를 빈 아베른 의자 위에 올렸다.
“공녀의 독립은 확인했습니다.” 셀레네가 다시 말했다. 이번에는 칭찬처럼 들리지 않았다. “이제 그 값을 누가 냅니까?”
리디아는 계산표 첫 줄을 읽었다. 내륙 한 가구, 겨울 배급, 밀가루 두 말 반. 숫자는 사람을 지우기도 했지만, 때로는 지워진 사람을 다시 불러냈다.
“내일 계산실을 빌리겠습니다.” 리디아가 말했다.
셀레네의 눈썹이 아주 조금 올라갔다. “반박하시려고요?”
“먼저 확인하겠습니다.”
“확인 뒤에도 제 숫자가 맞으면요?”
리디아는 빈 의자 위의 봉인끈을 보았다. 오늘 지킨 자리는 아직 자기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지키는 동안 누군가의 겨울을 덜어 냈을지도 몰랐다.
“그때는 틀린 쪽이 아니라 비싼 쪽을 논의해야겠지요.”
셀레네는 그 대답을 칭찬하지 않았다. 대신 계산표 두 번째 장을 펼쳤다. 거기에는 감사관 숙박비보다 작은 숫자들이 줄지어 있었다. 종이값, 이동 중 잃는 하루 품삯, 세금 고지서를 읽어 줄 서기의 수고비. 리디아가 회의장에서 ‘사후 확인’이라고 부른 절차가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통째로 빼앗는 비용이었다.
“이건 내일 안건입니까?” 리디아가 물었다.
“오늘 질문입니다. 내일 안건으로 올리기 전에 공녀께서 먼저 보셔야 할 숫자입니다.”
“왜 제게 먼저 줍니까?”
셀레네는 빈 의자 위에 놓인 계산표를 손끝으로 눌렀다. “공녀께서 남편에게 불리한 표를 던질 수 있다는 건 확인했습니다. 이제 자기 편에게 불리한 숫자를 읽을 수 있는지 보려 합니다.”
카시안은 그 말에 끼어들지 않았다. 리디아는 그의 침묵이 조금 전보다 무거워진 것을 느꼈다. 북문군에 불리한 표를 지킨 사람이, 항구에 불리한 숫자 앞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멈출 수 있는지 묻는 자리였다.
엘리어스가 계산표를 받아 들고 눈을 가늘게 떴다. “이 비용을 모두 인정하면 수정안 시행 재원이 비어 버립니다.”
“그럼 빈칸이라고 적으세요.” 리디아가 말했다. “없는 돈을 있는 것처럼 쓰지 마십시오.”
셀레네가 처음으로 리디아의 얼굴을 똑바로 보았다. “좋습니다. 내일 계산실에서 봅시다.”
그녀가 물러난 뒤에도 계산표는 빈 아베른 의자 위에 남았다. 봉인된 의자와 내륙 곡물 숫자가 같은 자리를 차지했다. 리디아는 그 종이를 들고 갈 수 없었다. 아직 그 의자는 열리지 않았다.
대신 엘리어스에게 사본을 만들게 했다. 원본은 빈 의자 위에 남고, 사본만 그녀의 손에 들어왔다. 오늘 얻은 권한의 모양도 그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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