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왕세녀의 대본

계약 결혼의 열세 번째 조항 · 2026. 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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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세녀의 소응접실 의자는 주인을 위해 만들어진 물건처럼 보이지 않았다.

등받이는 어깨보다 높았고, 발판은 한 뼘쯤 멀었다. 아델라 로엔은 그 높은 의자에 등을 붙인 채 앉아 있었지만 두 발은 바닥을 밟지 못했다. 발끝이 공중에서 아주 조금 흔들릴 때마다, 옆에 선 시녀가 들고 있던 대본 카드의 모서리도 같이 떨렸다.

“아베른 공녀께서 대공 전하와의 혼인을 무사히 등록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아델라의 목소리는 고르고 얇았다. 너무 일찍 배운 문장들이 혀끝에서 깨끗하게 떨어졌다.

“공동심리권 청구는 왕실 법전 제이십칠권, 가문 보존 편의 예외 조항에 근거합니다. 왕실은 정당한 절차에 따라…….”

시녀가 다음 카드를 넘겼다. 아델라는 그보다 반 박자 늦게 “절차에 따라”를 다시 말했다. 같은 단어가 두 번 놓이자 시녀의 손가락이 카드 옆면을 눌렀다.

리디아는 틀린 문장을 고쳐 주지 않았다. 이 방에서 자신이 먼저 고치기 시작하면, 아델라는 또 다른 어른의 답을 외워야 했다. 대신 찻잔 받침과 의자 발판 사이 거리를 보았다. 누군가 후계자를 높게 앉히고 싶어 했고, 누군가는 아이의 발이 어디에 닿는지 묻지 않았다.

카시안은 문 가까이에 서 있었다. 왕세녀의 요청 때문에 동석은 허락받았으나, 그의 위치는 경비와 손님 사이 어디쯤이었다. 그는 아델라가 틀린 문장을 반복해도 끼어들지 않았다.

“전하께서도 들으셨으면 하는 문장입니다.” 아델라가 말했다.

카시안이 고개를 들었다.

아델라는 카드 아래쪽을 보았다. “왕세녀 아델라 로엔은 섭정 후보자들의 성실한 보좌를 믿으며, 왕국의 안정을 위해 모든 조언을 공손히 듣겠습니다.”

카시안의 손이 검집 위에서 멈췄다. 리디아는 그가 어떤 단어에 반응했는지 묻지 않았다. ‘모든 조언’은 공손한 말이었지만, 거절할 수 없다는 말과 너무 가까웠다.

“소응접실 면담은 왕세녀 전하께서 원하실 때만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리디아가 말했다. “지금 문장은 기록합니까?”

아델라는 처음으로 카드를 보지 않았다. “기록하지 마십시오.”

시녀가 곧바로 펜을 내려놓았다. 카시안은 문을 열어 두고 한 걸음 물러났다.

“전하.” 아델라가 그를 불렀다. “문 밖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방 안의 공기가 짧게 굳었다. 시녀가 카드 뭉치를 더 세게 잡았고, 카시안은 왕세녀가 아니라 열린 문 너머의 경비를 보았다. 그가 남으면 안전은 강해졌다. 대신 질문은 약해졌다.

“문은 닫지 않겠습니다.” 카시안이 말했다.

“그렇게 해 주십시오.”

그는 대답 대신 문턱 밖으로 나갔다. 장화 끝이 문선 밖에 멈추었고, 그림자는 안쪽 바닥에 닿지 않았다. 리디아는 그 작은 경계를 확인한 뒤 아델라에게 몸을 돌렸다.

아델라는 대본 카드 한 장을 무릎 위에 엎어 놓았다. 뒷면에는 작은 글씨가 줄을 벗어나 있었다. 아이가 몰래 적은 것처럼 비뚤었지만, 궁정에서 아이가 몰래 적을 수 있는 문장은 많지 않았다.

“공녀께서는 대공 전하의 명령을 거절하셨습니까?”

리디아는 찻잔을 들지 않았다. “명령이라고 부를 수 있는 말들을 거절했습니다.”

“그 뒤에 안전했습니까?”

문 밖의 장화가 움직이지 않았다. 리디아는 카시안이 듣고 있다는 사실을 방패로 쓰지 않기로 했다.

“계약서가 저를 안전하게 만든 것은 아닙니다.” 리디아는 단어를 천천히 골랐다. “공명석도 안전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말한 문장만 남길 뿐입니다. 그 뒤에 대공 전하가 보복하지 않기로 선택했고, 주변 사람이 그 선택을 볼 수 있게 했기 때문에 어제보다 안전해졌습니다.”

아델라는 “선택”이라는 말을 입 안에서 굴리듯 작게 반복했다.

“그 선택을 하지 않으면요?”

“그러면 기록은 증거가 됩니다. 안전 그 자체는 아닙니다.”

아델라는 한동안 높은 의자의 팔걸이를 잡고 있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보였지만 목소리는 다시 교본으로 돌아가려 했다.

“왕국의 안정은 후계자의 사적인 불안을 앞섭니다.”

“그 문장은 누가 썼습니까?”

“베아트리체 왕대비 전하께서 고쳐 주셨습니다. 처음 문장은 더 길었습니다.”

리디아는 왕대비의 이름에 평가를 붙이지 않았다. “전하께서 동의하셨습니까?”

아델라의 발끝이 한 번 더 흔들렸다. “동의하면 더 안전해집니다.”

질문이 답을 밀어냈다. 리디아는 그 사실을 말하지 않고 기다렸다.

아델라는 엎어 둔 카드 뒷면을 다시 보았다. 거기에는 원래 문장 중 하나가 지워져 있었다. ‘모든 조언을 공손히 듣겠습니다’ 아래로 작은 글씨가 이어졌다.

“필요한 조언을 듣고, 위험한 명령은 확인하겠습니다.”

아델라는 그 문장을 소리 내어 읽지 못했다. 카드만 리디아 쪽으로 조금 밀었다.

“제가 섭정을 거절하면 누가 저를 지킵니까?”

리디아는 답이 목까지 올라오는 것을 눌렀다. 카시안이라고 말하는 것은 쉬웠다. 왕대비라고 말하는 것도, 법이라고 말하는 것도, 모두 이 방의 누군가를 대신 선택하는 일이었다.

“그 답은 전하께서 거절을 들려줄 사람 앞에서 물어야 합니다.” 리디아가 말했다. “저는 대신 고를 수 없습니다. 다만 질문을 기록할 수는 있습니다. 전하가 원하신다면요.”

아델라는 펜을 보았다. 시녀가 숨을 죽였고, 문 밖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지금은 기록하지 마십시오.” 아델라가 말했다. “아직 제가 묻는 법을 틀립니다.”

“틀린 질문은 없습니다. 다만 질문 뒤에 책임질 이름이 필요합니다.”

아델라는 그 말을 듣고도 바로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대신 대본 카드의 한 줄을 손톱으로 긁어 지웠다. 잉크가 완전히 마르지 않아 검은 가루가 손톱 밑에 끼었다.

공개 회의실에는 높은 의자가 없었다. 대신 왕세녀의 자리 뒤에 세 개의 의자가 더 놓여 있었다. 베아트리체 왕대비, 오스윈 재상, 그리고 아직 비어 있는 섭정 후보석이었다. 후계자의 등 뒤에 어른들이 앉는 구조는 방금 전 소응접실의 의자보다 더 정확했다.

아델라는 들어오며 리디아를 보았다. 조금 전 카드의 뒷면은 소매 안에 감춰져 있었다.

“오늘의 첫 안건은 왕세녀 전하의 안전 보장입니다.” 오스윈이 부드럽게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회의장의 먼 쪽까지 무리 없이 닿았다. “국왕 폐하의 유고 중 왕실 친위대만으로는 북문과 수도를 동시에 안정시킬 수 없습니다. 아베른 삼항구 함대의 일부를 비상 담보로 지정하는 안을 제출합니다.”

함대라는 말에 리디아의 손이 무릎 위 문서 가장자리를 눌렀다. 삼항구의 배는 군함만이 아니었다. 얼음이 오기 전 소금과 밀, 사람을 옮기는 배까지 같은 항구 명부에 묶여 있었다.

“담보라 하셨습니까.” 리디아가 물었다.

오스윈은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징발이 아닙니다. 왕세녀 전하의 안전에 필요한 최소한의 보증입니다. 왕실은 삼항구의 자치를 존중합니다. 그래서 먼저 담보라는 온건한 표현을 선택했습니다.”

온건한 표현은 항구 노동자에게 임금을 늦게 주지는 않았다. 배가 묶이면 늦었다.

아델라가 손에 쥔 카드를 들었다. “왕세녀 아델라 로엔은…….”

베아트리체가 아주 낮게 말했다. “준비한 문장으로 충분합니다.”

아델라의 손이 멈췄다. 리디아는 소매 끝에서 보이는 검은 잉크 가루를 보았다. 아이는 자기 문장을 가지고 왔지만, 공개된 자리에서는 꺼내지 못했다.

“왕세녀 아델라 로엔은 왕국의 안정을 위해 충성스러운 가문들의 협조를 요청합니다.” 아델라는 결국 그렇게 읽었다.

오스윈은 그 뒤를 받았다. “아베른이 거절한다면, 왕실은 왕세녀의 안전을 외면한 가문을 임시 대표석에 앉혀야 하는지 다시 검토할 수밖에 없습니다.”

회의장 서쪽 줄에서 낮은 웅성거림이 일었다. 선택지는 단정했다. 함대를 내놓으면 항구가 흔들리고, 거절하면 왕세녀의 안전을 버린 사람이 된다.

리디아는 발언권 표식을 들었다. 베아트리체의 시선이 먼저 표식으로 내려갔다가 그녀의 얼굴로 올라왔다. 배우자석에 앉은 사람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작은 은막대였다. 아직 임시 대표석 표결도 끝나지 않았지만, 어제의 회의록은 오늘 그녀에게 질문할 권리 하나를 남겼다.

“담보로 지정되는 배의 명단을 공개해 주십시오.”

오스윈은 서류 한 장을 들었다. “안전상 세부 선명은 공개하지 않습니다.”

“그럼 삼항구는 어떤 배를 움직일 수 없는지 모릅니다.”

“왕실이 필요할 때 지정합니다. 항구가 미리 알 필요는 없습니다.”

“임금 지급일도 왕실이 정합니까?”

회의장 뒤쪽에서 누군가 낮게 웃으려다 멈췄다. 리디아는 그 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보지 않았다. 웃음이 아니라 불편함이 필요했다.

“한 척이 묶이면 선원 스무 명의 다음 항해가 늦습니다. 소금 배가 묶이면 보존 창고가 비고, 곡물 배가 묶이면 내륙으로 보낼 자루가 늦습니다. 왕세녀 전하의 안전을 두고 흥정하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담보라는 말이 어느 사람의 식탁에서 먼저 빠지는지 묻는 겁니다.”

오스윈은 잠깐 손에 든 서류를 내려다보았다. 그가 모른다는 표정은 아니었다. 알고도 질문의 위치를 바꾸려는 얼굴이었다.

“공녀께서는 왕세녀 전하의 안전과 선원 임금을 같은 저울에 올리십니까?”

리디아는 대답을 서둘러 고르지 않았다. 이 질문은 분노를 유도했다. 분노하면 왕세녀와 임금 중 하나를 가볍게 여긴 사람이 되었다.

“같은 저울에 올린 사람이 누구인지 회의록에 적어 주십시오.” 리디아가 말했다. “저는 두 비용을 분리해 기록하자는 입장입니다.”

아델라의 손이 카드 위에서 멈췄다. 리디아는 그 작은 움직임만 보았다. 왕세녀는 자기 안전이 다른 사람의 배와 임금으로 계산되는 말을 처음 듣는 얼굴이었다. 누군가는 아이에게 ‘안전’이라는 단어만 건넸고, 그 단어가 어느 항구의 밧줄을 묶는지 알려 주지 않았다.

베아트리체가 부드럽게 끼어들었다. “공녀, 후계자의 안전은 숫자보다 먼저입니다.”

“그래서 숫자를 숨기면 안 됩니다.” 리디아가 답했다. “먼저라면 먼저 얼마가 필요한지 적어야 합니다.”

아델라가 카드 뒷면을 엄지로 눌렀다. 검은 잉크 가루가 소매 끝에 묻었다. 공개석상에서 아이가 할 수 있는 반항은 아직 그 정도였다.

카시안이 리디아 옆으로 와 섰다. 그는 오스윈에게 바로 반박하지 않았다. “표결 연기를 요청합니다.”

“대공 전하께서 시간을 원하십니까?”

“아베른 함대 명부와 북문 배급표를 같은 회의에 올렸습니다. 어느 쪽도 즉답으로 처리할 수 없습니다.”

“북문은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잘못된 명령을 남기면 안 됩니다.”

오스윈은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여섯 시간 뒤, 비상회의는 두 안건을 함께 표결하겠습니다.”

여섯 시간. 리디아는 그 숫자가 너무 가지런히 놓였다고 생각했다. 왕세녀의 안전과 항구의 배, 임시 의석과 북문 보급이 같은 시각으로 묶였다.

회의실 밖 군사 지도대에서는 도리안 크레프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장갑은 한쪽 손목까지 젖어 있었고, 지도 위 북문 관문에는 붉은 말이 꽂혀 있었다.

“북문 곡물선 세 척이 하류에서 묶였습니다.” 도리안이 말했다. “관문 교대 전 통과하지 못하면 첫 요새는 일주일치 식량을 잃습니다. 남은 시간은 여섯 시간입니다.”

카시안은 지도를 보았다. 리디아는 그가 먼저 자신을 보지 않은 것이 오히려 정확하다고 느꼈다. 이 문제에는 물살과 관문과 배가 먼저였다.

“현장 지휘가 필요합니까?” 카시안이 물었다.

“전하가 가지 않으면 관문장은 책임을 서로 넘깁니다. 제가 가면 한 척은 버릴 겁니다.”

“한 척을 버리는 이유는.”

“두 척을 살리려고요.”

짧은 답이 회의실의 온건한 표현보다 더 거칠고 분명했다.

리디아는 지도 옆에 놓인 회의 시간표를 보았다. 임시 대표석 표결도 여섯 시간 뒤였다. 카시안이 북문으로 가면 표결장에는 남지 못한다. 남으면 첫 요새가 굶는다.

“대리 의결 규정은 있습니까?” 리디아가 먼저 물었다.

카시안이 그제야 그녀를 보았다. “배우자에게 제 표를 맡기는 규정은 있습니다. 그러나 전하의 뜻을 대리하는 표가 됩니다.”

“뜻을 미리 정해 주신다는 말입니까?”

그는 답하기 전 지도에서 손을 뗐다. “아니요. 제가 없을 때도 귀하의 판단으로 표를 행사할 수 있습니까?”

도리안의 눈썹이 움직였다. 리디아는 그 반응까지 보았다.

“원본 보고서를 봐야 합니다.” 리디아가 말했다. “북문 곡물선과 함대 담보안 모두. 요약본은 받지 않겠습니다.”

카시안은 도리안에게 손을 내밀었다. “원본.”

도리안은 거칠게 접힌 보고서 뭉치를 꺼냈다. 표지에는 젖은 손자국이 남아 있었다. 카시안은 그걸 리디아에게 넘겼다. 빠른 동작이었지만 밀어 넣지는 않았다.

“여섯 시간 뒤 저는 북문에 있을 겁니다.” 카시안이 말했다. “표결 시계와 저쪽 모래시계가 같은 시간을 가리킬 때, 이쪽에는 귀하만 남습니다.”

리디아는 보고서 첫 장을 펼쳤다. 붉은 말 옆 모래시계의 모래가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회의장 안쪽에서는 표결 시계가 같은 속도로 움직였다.

“제가 전하께 불리한 판단을 해도 됩니까?”

도리안의 턱이 굳었다. 카시안은 그 반응을 막지 않았다. 대신 대답을 그녀 쪽에 놓았다.

“그 질문에 제가 허락한다고 답하면 위임이 아닙니다.”

리디아는 보고서 젖은 부분을 손끝으로 눌렀다. 북문 곡물선의 선명은 번져 있었고, 함대 담보안의 배 이름은 가려져 있었다. 보이는 정보와 보이지 않는 정보가 같은 책상 위에 놓였다.

“그러면 제가 먼저 확인할 것은 전하의 뜻이 아니라 결재권의 빈칸입니다.” 리디아가 말했다. “북문에 가십시오. 저는 빈칸을 보고 표를 행사하겠습니다.”

카시안은 아주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동작에는 신뢰라는 말이 붙지 않았다. 대신 그가 지도대에 있던 두 번째 원본 봉투를 밀어 주었다. 봉투 입구는 열려 있었고, 봉인 왁스는 깨져 있었다.

“제가 본 것과 같은 보고서입니다.”

리디아는 봉투를 받았다. 종이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문 밖에서는 말 준비를 알리는 금속 소리가 났다. 여섯 시간은 이제 회의장에도, 강에도, 그녀의 손 안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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