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결혼의 열세 번째 조항

3아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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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 날

계약 결혼의 열세 번째 조항 · 2026.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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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심리원의 방청석은 아직 절반도 차지 않았는데, 처형 시각을 적은 판은 이미 걸려 있었다.

리디아는 그 판을 먼저 보았다. 제라드 아베른, 첫 종 후 두 번째 심리, 즉결 판정 가능. 판정 가능이라는 말은 친절했지만, 시간을 가진 사람의 친절이었다. 피고석 옆의 왕실 경비는 쇠사슬을 정리하고 있었고, 재판관의 책상에는 재산 동결 목록이 두꺼운 묶음으로 놓여 있었다.

카시안은 리디아보다 반 걸음 앞에 섰다가 멈췄다. “왕족 배우자 공동심리권을 청구합니다.”

그 한 문장 뒤 그는 옆으로 비켜섰다.

재판관은 다음 말을 기다리듯 카시안을 보았다. 카시안은 더 말하지 않았다. 리디아는 봉인된 계약 사본을 들고 기록대 앞으로 나갔다. 미레유는 그녀의 오른쪽에 섰다. 동생의 손에는 후견 명령서가 접히지 않은 채 들려 있었다.

“청구 취지는 제가 읽겠습니다.” 리디아가 말했다.

오스윈은 방청석 첫 줄에 앉아 있었다. 오늘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혼인 등록 후 여덟 시간도 지나지 않은 계약입니다. 공녀께서 감사청에서 어떤 압박을 받았는지 모두 압니다. 강요된 혼인이라면 공동심리권도 효력을 다툴 수밖에 없습니다.”

리디아는 공명석 사본을 올렸다. “공명석은 강요 여부를 판정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신뢰할 수 없지요.”

“그래서 문장만 보겠습니다.” 리디아는 별지를 펼쳤다. “제13조는 제가 추가했습니다. 상대의 거절을 배신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강요된 계약에서 굳이 제 거절권을 넣을 이유가 없습니다.”

오스윈은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 “강요받은 사람은 때로 강요한 사람에게 유리한 문장도 씁니다. 공녀께서 카시안 전하를 두려워했다면, 그 조항은 오히려 전하의 책임을 줄이는 장치가 될 수 있습니다.”

카시안의 손이 허리의 장갑 끝으로 갔다가 멈췄다. 리디아는 그가 나서기 전에 입을 열었다.

“그래서 제13조 하나만 증거로 삼지 않겠습니다. 등록 원장에는 아베른 이름 병기가 남아 있습니다. 함대 일상 지휘권도 제게 남아 있습니다. 후계 의무 없음과 별도 침실 조항도 있습니다. 강요자가 제게 줄 이유가 적은 조항들입니다.”

재판관은 서기관에게 손짓했다. 서기관은 리디아가 말한 조항 번호를 적었다. 조항이 말싸움에서 기록으로 옮겨 가자, 오스윈의 표정이 아주 조금 느려졌다.

“두 시간 안에 쓴 문장입니다.”

“두 시간 안에 찢은 자백서도 있습니다.”

방청석 뒤쪽에서 낮은 웅성거림이 일었다. 재판관이 망치를 한 번 쳤다. 리디아는 그 소리가 멎기 전에 다음 문장을 읽었다.

“공동심리권은 무죄를 선고해 달라는 청구가 아닙니다. 즉결 절차를 중지하고 공개 심리를 준비할 시간을 달라는 청구입니다. 제 아버지의 혐의가 사실이라면, 왕실은 공개 심리에서 입증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오늘의 처형은 증거가 아니라 시간으로 판결하는 일입니다.”

오스윈은 부드럽게 물었다. “그리고 미레유 양은요. 공녀께서 후견 명령까지 대신 거절하실 겁니까?”

미레유가 한 걸음 나왔다. “제 이름은 제가 말하겠습니다.”

리디아의 손이 본능적으로 움직이려다 멈췄다. 미레유는 그 손을 보았고, 보았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왕실 후견 명령은 제 실험실 접근권과 항로등 계산 자료를 함께 가져갑니다.” 미레유의 목소리는 처음에 조금 빨랐지만, 숫자를 말하자 안정됐다. “저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명령이라면 왜 경비 동행권과 자료 봉인이 붙었는지 설명해 주십시오. 저는 보호를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제 일을 저 없이 가져가는 방식을 거절합니다.”

오스윈이 말했다. “미레유 양의 기술은 왕국 자산입니다. 전쟁 위기에서 개인의 불안보다 공공 안전이 우선됩니다.”

“그럼 저를 기술자로 부르세요.” 미레유는 후견 명령서의 아래쪽을 폈다. “이 문서에는 제 이름 옆에 미성년 피후견 예정자라고 적혀 있습니다. 저는 열아홉이고, 항로등 조율 시험을 세 번 통과했습니다. 제 계산 자료가 필요하면 증인으로 부르시면 됩니다. 짐처럼 옮기면 자료 설명은 누가 합니까?”

방청석에서 누군가 작게 웃었다가 바로 멈췄다. 미레유는 그쪽을 보지 않았다. 대신 명령서의 두 번째 인장 아래에 손가락을 댔다.

“그리고 이 인장은 오늘 새벽에 찍혔습니다. 잉크가 덜 말랐어요. 제가 보호받아야 할 위험이 오래전부터 있었다면, 왜 집행 문서는 오늘 급히 만들어졌습니까?”

재판관의 눈이 명령서로 내려갔다. 카시안도 그 부분을 보았다. 리디아는 미레유가 떨지 않는 척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동생은 숫자를 말할 때 겁을 감춘다. 오늘은 숫자 대신 잉크의 마른 정도를 붙잡았다.

재판관은 문서 두 장을 번갈아 보았다. 공동심리 청구서와 후견 명령서. 둘 다 왕실 인장이 있었고, 둘 다 누군가의 시간을 가져가려 했다.

오스윈은 마지막으로 재판관에게 몸을 돌렸다. “아베른 가문이 시간을 얻으면 증거를 없앨 수 있습니다.”

리디아는 바로 반박하지 않았다. 그 말에는 일부 힘이 있었다. 아버지가 무엇을 숨겼는지 그녀도 몰랐다.

“그 위험을 인정합니다.” 리디아가 말했다. “그래서 공개 심리 준비 기간 동안 항구 기록 봉인을 수용하겠습니다. 다만 왕실 단독 봉인이 아니라 공동 봉인입니다. 왕실 서기관, 아베른 서기관, 제3 감찰관이 함께 열람 기록을 남겨야 합니다.”

엘리어스가 뒤에서 빠르게 적기 시작했다. 그 조건은 즉석에서 완벽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 조건 없이 시간을 달라는 것보다 나았다.

판결은 무죄가 아니었다.

“제라드 아베른 공작의 즉결 절차를 중지한다. 공개 심리 준비 기간은 90일. 재산 몰수는 유예하되, 항구 자산 동결은 유지한다. 미레유 아베른에 대한 왕실 후견 명령은 본 심리 종료까지 집행 유예한다. 다만 왕궁 출석 의무와 기술 자료 보존 명령은 유지한다.”

리디아는 숨을 크게 쉬지 않았다. 숨을 쉬면 이긴 것처럼 보일까 봐서가 아니었다. 판결의 마지막 줄이 이미 다음 족쇄였기 때문이다.

미레유는 명령서를 접었다. “유예면, 아직 제 거네요.”

“아직 네 거야.” 리디아가 말했다. “그리고 아직 묶여 있어.”

카시안은 축하하지 않았다. “90일입니다. 항구 동결은 풀리지 않았고, 출석 의무도 남았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오늘 얻은 건 시간입니다.”

“시간이 없어서 결혼했습니다.”

그는 잠깐 리디아를 보았다. “그 말은 기록하지 않는 편이 낫겠습니다.”

리디아는 아주 짧게 웃을 뻔했다. 웃음은 나오지 않았다. 제라드를 면회할 허가증이 재판관의 손에서 내려왔고, 허가증에는 삼십 분이라는 시간이 적혀 있었다.

심리원을 나오자 방청석 뒤편에 있던 삼항구 대리인들이 다가오려 했다. 왕실 경비가 그들을 막았다. 한 사람은 리디아에게 모자를 들어 보였고, 다른 사람은 동결 목록을 가리켰다. 그들 역시 판결의 절반만 들었다. 처형은 미뤘지만 항구 자산은 얼어붙었다. 항구 노동자들의 급료도 그 안에 들어 있을 가능성이 컸다.

“동결 목록 사본을 확보해야 합니다.” 리디아가 말했다.

엘리어스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서기관에게 요청했습니다. 거부하면 거부 사실도 기록하겠습니다.”

카시안은 방청석 출구 쪽을 보았다. “재상은 항구 동결을 유지한 채 회의를 열 겁니다. 공녀의 표는 아직 묶여 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만나야 합니다. 그가 어떤 장부를 숨겼는지 모르면 제 표도 가문도 남의 손에 있습니다.”

지하 면회실은 물소리가 먼저 들렸다. 돌벽 사이로 스며든 물이 좁은 배수로를 따라 흘렀다. 제라드 아베른은 유리 너머에 앉아 있었다. 쇠사슬은 손목에 있었지만, 그는 그것보다 리디아 뒤의 카시안을 먼저 보았다.

“혼인 조건은.”

첫 질문이 축복도 걱정도 아니라는 사실은 놀랍지 않았다. 그래도 리디아는 잠깐 손을 접었다.

“기간 1년. 공동심리권 청구. 미레유 비인질화. 함대 지휘권 유지. 몇 가지 공개 행사와 정보 공유.”

“카시안 전하께 삼항구 협의권을 줬겠군.”

“30일입니다.”

제라드는 카시안을 향해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 “짧은 기간을 길게 쓰는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카시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리디아가 물었다. “아버지, 증거가 필요합니다. 오스윈이 무엇으로 아버지를 묶었습니까. 회색 장부가 있습니까?”

제라드의 눈가가 굳었다. “세 번째 인장을 믿지 마라.”

“무슨 뜻입니까.”

“왕실 인장이 찍힌 문서라고 모두 왕의 뜻은 아니다.”

“그건 너무 넓은 말입니다. 어떤 문서입니까. 누가 찍었습니까.”

제라드는 유리 너머의 물방울을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손목의 쇠사슬이 짧게 울렸다. 그 소리는 답을 밀어내는 데 쓰였다.

“네가 지금 알아도 쓸 수 없다.”

“제가 쓸 수 있을지 없을지는 제가 판단합니다.”

“너는 아직 항구의 절반도 모른다.”

“그 절반을 모르게 만든 사람이 누구입니까.”

제라드의 입매가 굳었다. 딸에게 그런 질문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얼굴이었다. 그는 억울한 사람처럼 앉아 있었지만, 억울함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침묵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미레유를 수도 밖으로 보내라.”

리디아는 유리 가까이 다가갔다. “아버지, 방금 미레유가 자기 후견 명령을 직접 유예시켰습니다. 수도 밖으로 보낼지 말지는 미레유와 상의할 일입니다.”

제라드는 처음으로 딸을 보았다. 그 눈에는 걱정이 있었고, 그 걱정이 또 다른 명령처럼 놓였다. “너는 가문을 지켜야 한다.”

“가문 안에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말하는 것이다.”

“아니요. 아버지는 사람을 지킨다는 이유로 정보를 숨기고 있습니다.”

면회실 끝에서 종이 울렸다. 삼십 분은 아직 지나지 않았다. 경비가 당황해 시계를 보았다. 그 종은 면회 종료음보다 낮고 무거웠다. 두 번째, 세 번째 울림이 지하 벽을 밀고 들어왔다.

제라드의 얼굴이 변했다. 아주 짧게, 그가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표정이 지나갔다.

“리디아.”

“아버지, 세 번째 인장이 뭡니까.”

“믿지 마라. 그리고 공명석도 너무 믿지 마라. 말한 문장만 남는다. 말하게 만든 손은 남지 않는다.”

경비가 면회 종료를 알렸다. 제라드는 더 말하지 않았다. 리디아는 유리 너머의 손목을 보았다. 쇠사슬보다 그의 침묵이 더 단단했다.

면회실 문이 닫히기 직전, 제라드는 아주 낮게 덧붙였다.

“회색 장부는 네가 생각하는 반격문이 아니다.”

리디아가 돌아보았을 때 문은 이미 닫히고 있었다. 그 말은 변명으로도, 경고로도 부족했다. 다만 제라드가 완전히 억울한 피해자가 아니라는 가능성을 방 안에 남겼다.

지하 계단을 올라오자 왕궁 안뜰의 사람들이 모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리디아는 무슨 종인지 몰랐다. 국왕의 생일에도, 군 출정식에도 이런 종은 울리지 않았다. 비는 멎었지만 바닥은 아직 젖어 있었고, 무릎을 꿇은 사람들의 옷자락이 물을 먹었다.

누군가 울고 있었지만, 누구도 소리 내어 묻지 않았다. 왕궁에서 가장 큰 질문은 대개 가장 늦게 허락된다. 리디아는 그 침묵 속에서 자기 낡은 면회 허가증의 삼십 분이 아무 의미 없이 접히는 것을 보았다.

카시안은 계단 중간에서 멈췄다. 그의 얼굴에는 놀람이 없었다. 대신 계산해야 할 목록이 한꺼번에 늘어난 사람의 정지가 있었다.

“국왕 유고 종입니다.”

“사망입니까?”

“아직은 아닙니다. 의식불명 또는 국정 수행 불능.”

그는 즉시 방향을 바꿨다. 리디아는 따라가기 전에 안뜰 건너편을 보았다. 오스윈의 전령이 검은 봉투를 들고 뛰어오고 있었다. 봉투 위에는 왕실 인장이 둘, 델마르 내각의 표식이 하나 있었다.

“섭정 후보와 그 배우자는 즉시 회의장으로.” 전령이 숨을 고르지 못한 채 말했다. “재상께서 30일 비상회의를 소집하셨습니다.”

배우자.

등록청에서 생긴 줄 하나가 벌써 다른 방의 문을 열고 있었다. 리디아는 면회실에서 가져온 허가증을 접지 않은 채 쥐었다. 제라드는 세 번째 인장을 믿지 말라고 했다. 눈앞의 봉투에는 두 개의 인장이 있었다.

카시안은 그녀가 들을 만큼만 낮게 말했다. “이제 아베른 공작의 90일만 문제가 아닙니다.”

“알고 있습니다.”

“회의장에서는 제 뒤에 서라는 지시가 나올 겁니다.”

리디아는 안뜰의 젖은 돌 위에 시선을 두었다. 사람들이 아직 무릎을 꿇은 사이로 물길이 갈라졌다. “그 지시도 기록하겠습니다.”

두 사람은 같은 회의장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서로 다른 이유로 늦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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