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죽어야 했던 구조대원

내가 구한 사람들 때문에 미래가 틀렸다 · 2026.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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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야 했던 구조대원

장유라는 케이블 타이를 완전히 버리지 않았다. 잘린 플라스틱 끝이 내 손목에 남아 움직일 때마다 살을 긁었다. 그녀는 그걸 일부러 보이게 놔뒀다.

“07:08이라고 했죠.”

“가스 점화 시각입니다.”

“위치는.”

“B구 환기 제어실.”

“확신해요?”

나는 대답을 한 박자 늦췄다. 1화에서 이미 시각이 무너졌다. 확신이라는 단어는 이제 사치였다.

“기록으로 읽었습니다. 직접 본 건 아닙니다.”

장유라는 구급 장갑을 벗지 않은 손으로 직원 화장실 뒤 점검문을 밀었다. 문은 반쯤 열리다 멈췄다. 안쪽에 전동 청소차가 비스듬히 박혀 있었다. 원래 보고서에는 없던 장애물이었다. 대피 방송 때문에 청소 노동자가 장비를 밀고 나오다 버린 흔적이었다.

내가 사람을 움직였고, 사람이 장비를 움직였고, 장비가 통로를 막았다.

장유라는 내 얼굴을 한 번 봤다.

“이런 것도 계산했어요?”

“못 했습니다.”

“그럼 밀어요.”

우리는 청소차를 옆으로 밀었다. 손목이 묶여 힘을 제대로 쓰기 어려웠다. 장유라는 욕하지 않았다. 대신 내 어깨 위치를 바꿨다.

“허리 말고 다리. 숫자 잘 세면 박자도 세요.”

셋에 밀었다. 바퀴가 바닥 홈을 넘었다. 점검문 안쪽에서 더운 공기가 흘러나왔다. 금속과 먼지 사이에 얇은 달큰한 냄새가 끼어 있었다. 가스였다.

환기 제어실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기억 속 B구 계기판은 폭주 직전 붉은 바늘을 보였어야 했다. 지금 B구 압력은 정상 범위 안에서 떨고 있었다. 대신 C구 하단 압력계가 느리게 올라갔다.

나는 B구 차단 레버에 손을 뻗었다.

장유라가 손등을 쳤다.

“지금 뭘 봤는데요.”

“B구가 원래 터졌습니다.”

“원래 말고 지금.”

그녀는 바닥에 무릎을 대고 환기구 덮개 틈에 손등을 갖다 댔다. 공기는 B구가 아니라 C구에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내 기억은 시각만 틀린 게 아니었다. 위치도 내려갔다.

뒤쪽에서 기침 소리가 났다. 회색 작업복의 남자가 계단 아래에서 올라왔다. 헬멧에는 먼지가 두껍게 앉아 있었고, 가슴 주머니에는 오경태라는 이름표가 비스듬히 달려 있었다.

“거기 레버 만지지 마. 지금 닫으면 아래층에 가스 고인다.”

장유라가 바로 물었다.

“설비 담당이세요?”

“이 역에서 나사 빠진 거 보면 내가 욕먹은 지 이십칠 년이오. 뭘 막으려는지는 모르겠는데, B구는 헛다리야.”

오경태는 손전등을 들고 필터함을 열었다. 필터 표면에 주황색 분진이 묻어 있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조금 문질러 냄새를 맡더니 얼굴을 찡그렸다.

“이건 터널 먼지가 아닌데. 보강재 갈린 가루 같네. 누가 아래 공사 통로를 열어 놨나.”

“공사 통로요?”

“옛 방벽 쪽으로 난 환기축. 지도에는 막혔다고 돼 있지. 지도 믿고 일하면 기계가 삐진다니까.”

오경태는 농담처럼 말했지만 손은 빨랐다. 그는 B구 레버를 끈으로 묶어 고정하고, C구 댐퍼 쪽으로 몸을 숙였다. 최신 제어 화면은 오류 표시만 냈다. 그는 화면을 보지 않고 옆 벽의 수동 축을 두드렸다.

“전면 차단하면 터져. 두 댐퍼를 번갈아 닫아야 해. 사십 초 간격. 길게 막으면 아래 청소원들 숨 막힌다.”

“청소원들?” 장유라가 바로 반응했다.

“아까 청소차 있었습니다. 한 명은 못 나왔을 수 있습니다.”

나는 시계를 봤다. 07:02. 기억 속 점화까지 여섯 분. 이미 위치가 빗나갔으니 시간도 줄었을 수 있었다.

“C구 하단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장유라는 케이블 타이를 내 손목에서 완전히 잘랐다. 풀어 준 게 아니라 도구로 쓰라는 뜻이었다. 그녀는 잘린 플라스틱을 내 손에 쥐여 주고 말했다.

“시각 세요. 틀리면 바로 말하고.”

“말하겠습니다.”

“숨기면 끌고 나갑니다.”

오경태가 코웃음을 쳤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구조도 계약서 쓰고 하나.”

“말로 하면 안 지켜서요.”

짧은 대화가 긴장을 아주 조금 눌렀다. 대신 시간은 눌리지 않았다. 우리는 터널 측 통로로 내려갔다. C구 하단에는 연기가 아니고 투명한 열기가 깔려 있었다. 공기가 흔들리는 모양이 눈에 보였다. 바닥에는 청소 노동자의 반사 조끼가 떨어져 있었다.

장유라가 먼저 몸을 낮췄다.

“소리 내요. 계시면 벽 두드려요.”

대답은 없었다. 나는 환기 팬 소리 사이에 금속이 긁히는 소리를 들었다. 왼쪽 배관 뒤. 기억에는 없는 위치였다. 장유라는 내 시선을 보고 바로 움직였다. 그녀는 내 지시를 기다리지 않았다. 배관 사이로 팔을 넣고, 걸린 조끼 끈을 칼로 잘랐다.

청소 노동자는 배관 사이에 상체가 끼어 있었다. 의식은 있었지만 말을 못 했다. 장유라는 그의 목을 받치고 기도부터 열었다.

“경태 선생님, 여기 산소 줄어듭니다.”

“알아. 그래서 빨리 해야지. 한이겸 씨라 했나. 숫자 세는 양반, 초 세.”

나는 손목시계를 봤다. 네트워크 시계와 11초 차이가 났다. 어느 쪽이 맞는지 모른다. 그래도 기준은 하나여야 했다. 나는 벽에 붙은 아날로그 압력계 초침을 골랐다.

“첫 댐퍼 닫습니다. 셋, 둘, 하나.”

오경태가 레버를 당겼다. 통로 안쪽 바람이 방향을 바꿨다. 장유라가 청소 노동자의 팔을 뺐다. 남자는 기침을 하며 바닥에 손톱을 세웠다.

“이십 초.”

“아직!” 오경태가 외쳤다. “압력 떨어지는 거 보고 닫아야지. 시간표만 보면 기계가 사람 잡아.”

나는 입을 다물고 계기판을 봤다. 바늘이 한 칸 내려갔다가 다시 튀었다. 기억의 07:08은 이제 참고 자료였다. 현재 계기판이 명령권을 가져갔다.

“지금. 둘째 댐퍼.”

오경태가 두 번째 레버를 눌렀다. 장유라는 노동자의 허리를 끌어냈다. 그의 신발이 배관에 걸렸다. 나는 무릎으로 배관을 밀며 신발끈을 끊었다. 손에 주황 분진이 묻었다. 거칠고 마른 감촉이었다.

불꽃은 폭발처럼 오지 않았다. 터널 끝에서 푸른빛이 한 번 접히고, 짧은 압력파가 통로를 밀었다. 닫힌 B구 쪽이 아니라 C구 하단 댐퍼 사이로 열이 빠졌다. 바람이 우리 쪽으로 오지 않게 방향이 꺾였다.

장유라는 노동자의 머리를 팔로 감싼 채 바닥에 엎드렸다. 나는 계기판을 붙잡고 버텼다. 오경태는 레버를 놓지 않았다. 그의 손등에 낡은 흉터가 하얗게 솟았다.

압력파가 지나간 뒤 통로는 남아 있었다. 벽 타일 몇 장이 떨어졌고, 필터함 하나가 찌그러졌지만 문은 열려 있었다. 대형 폭발은 피했다. 원래 사망자가 셋 더 줄었다.

장유라는 노동자의 호흡을 확인하고 내게 물었다.

“사망자 명단에도 이 사람 있어요?”

나는 주머니의 영수증을 꺼냈다. 아직 명단 원본은 없었다. 기억 속 사망자 줄에는 장유라 이름이 가장 선명했고, 청소 노동자는 기록의 하단에 있었다. B구 화재 사망자. 이름은 흐렸다. 직접 본 명단이 아니라 사고 요약표였다.

“기록에는 있었습니다. 이름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럼 확실하지 않다고 말해요. 사람 앞에서.”

나는 노동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들것 위에서 눈만 깜박였다.

“당신 이름은 모릅니다. 원래 기록에는 이 구역 사망자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살아 있습니다.”

장유라는 그제야 내 손목을 보았다. 묶였던 자국이 붉었다. 그녀는 사과하지 않았다. 대신 구급 파우치에서 거즈를 꺼내 던졌다.

“감아 둬요. 다음에 묶을 때 살 뜯기면 귀찮으니까.”

오경태가 웃었다가 기침했다.

“둘 다 성격 좋네. 역이 무너져도 심심하진 않겠어.”

임시 응급 구역으로 올라오자 구조 인원판이 새로 적혀 있었다. 장유라가 숫자를 확인하는 동안 나는 역무용 단말에 남은 사고 로그를 훑었다. B구는 정상. C구 하단 점화. 환기 방향 변경 사유는 공란. 주황 분진 채취 필요.

그리고 구조 대상 명단 옆에 장유라의 이름이 있었다.

원래 시간선 사망자. D-27 명진역. 06:53.

살아 있는 장유라가 내 앞에서 장갑을 벗고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에는 정비공의 피와 주황 분진이 함께 묻어 있었다. 나는 영수증 뒷면에 줄을 그었다.

장유라 사망 예정. 결과 X.

B구 환기 폭발. 위치 X.

가스 점화 시각. 부분 일치.

장유라가 내 노트를 빼앗았다. 눈이 글자 위에서 멈췄다.

“내 이름이 왜 여기 있어요.”

나는 대답할 수 있는 말과 해서는 안 되는 말을 나눴다. 회귀라고 말하면 그녀는 믿지 않을 것이다. 믿어도 더 큰 문제가 생긴다. 아직 내가 가진 건 증거가 아니라 틀리기 시작한 기억뿐이었다.

“당신은 오늘 죽을 예정이었습니다.”

“예정?”

“기록상으로는.”

그녀는 노트를 접지 않았다. 찢지도 않았다. 살아 있는 자기 얼굴 아래에 적힌 06:53 사망 글자를 오래 봤다. 그런 뒤 내게 돌려주지 않았다.

“다음 구조부터는 이거 같이 봅니다.”

“위험합니다.”

“나한테 내 사망 기록 숨기는 게 더 위험해요.”

역무 방송이 2차 사고 종료를 알렸다. 나는 방송 시각을 확인했다. 07:06. 원래 점화보다 두 분 빨랐다. 장유라는 노트를 자기 가슴 포켓에 넣었다.

장유라는 그 말을 끝내고도 곧장 묻지 않았다. 그녀는 먼저 들것 위치를 바꿨다. 청소 노동자의 머리 쪽을 통로 바깥으로 돌리고, 정비공에게 남은 산소통을 붙였다. 질문보다 처치가 먼저였다.

나는 그 순서가 불편했다. 내게는 답하지 않은 질문이 커 보였고, 그녀에게는 아직 숨이 가쁜 사람이 먼저였다. 원래 시간선의 명단은 죽은 사람을 한 줄씩 정리했지만, 현재의 장유라는 사람을 눕히는 방향부터 바꿨다.

오경태가 필터 봉투를 역무 지휘관에게 내밀었다.

“이거 버리면 나중에 또 컴퓨터 탓만 한다. 봉인해. 날짜 쓰고, 누가 집었는지도 써.”

지휘관은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증거 놀이 할 때입니까?”

“증거 놀이 안 해서 이 꼴 난 거면 어쩔 건데.”

오경태의 말은 거칠었지만 필요한 절차가 있었다. 그는 봉투 입구를 접고, 테이프를 찾았다. 역무원이 테이프를 늦게 가져오자 그는 자기 공구함에서 절연 테이프를 꺼냈다.

“색깔은 마음에 안 드는데 없는 것보다 낫지.”

나는 봉투에 적힌 시각을 확인했다. 07:07. 원래 점화 시각보다 1분 빠른데, 사고는 이미 끝났다. 점화라는 단어를 그대로 쓰면 틀린 기록이 된다. 나는 노트에 압력파라고 고쳐 적었다. 작은 수정이지만 다음 판단을 바꾸는 수정이었다.

장유라가 내 손끝을 봤다.

“방금 지운 건 뭐예요.”

“폭발이라고 쓰려다 고쳤습니다. 통로가 보존됐으니까 압력파가 맞습니다.”

“그 차이가 중요해요?”

“다음 사람이 B구를 폭발 지점으로 착각하지 않게 합니다.”

그녀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믿음의 표시라기보다 쓸모를 인정하는 동작이었다.

청소 노동자가 들것 위에서 이름을 말했다. 박인호. 목소리는 갈라졌고, 끝음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장유라는 이름을 두 번 확인했다. 나는 그 이름을 노트 하단에 적었다. 원래 기록에서는 이름을 모른다고 했지만, 현재에는 이름이 생겼다. 모른다고 적은 정보도 사람을 만나면 바뀐다.

“박인호 씨는 사망자 명단 어디쯤이었어요?” 장유라가 물었다.

“하단입니다. 직접 본 명단이 아니라 사고 요약표였습니다.”

“그럼 명단이라고 부르지 말아요. 요약표죠.”

나는 말을 고쳤다.

“사고 요약표에는 이 구역 사망자가 있었습니다.”

“좋아요. 그렇게 말하면 제가 판단할 수 있어요.”

그녀가 요구한 것은 고백이 아니었다. 출처였다. 출처가 있어야 현장 판단자가 움직일 수 있었다.

역무 단말에서 새로운 알림이 떴다. 환기 동선 변경 이력. 명진역 조기 대피 방송으로 승강장 자동문이 열린 시간이 앞당겨졌고, 자동문 개방 때문에 지하 공기 흐름이 바뀌었다. 숨은 적의 손이 아니라 우리가 누른 비상벨의 결과였다.

나는 화면을 장유라와 오경태에게 보였다.

“B구가 틀린 이유입니다. 대피 동선이 바뀌면서 공기가 C구로 당겨졌습니다.”

오경태가 턱을 긁었다.

“그러니까 네가 살리려고 종을 쳤고, 종 친 바람에 바람길도 바뀌었다는 거네.”

“예.”

“다음엔 종 치기 전에 바람도 봐라.”

그 말은 비난이 아니라 현장 교육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상벨은 사람을 움직였고 공기도 움직였다. 같은 행동의 두 결과를 함께 봐야 했다.

장유라는 노트의 장유라 사망 줄 아래에 작은 점을 찍었다.

“내가 살아서 바뀐 것도 적어요.”

“아직 범위를 모릅니다.”

“모르면 모른다고 적고요.”

나는 그 아래에 썼다. 장유라 생존. 영향 범위 미확인. 다음 구조 판단에 공개 필요.

장유라는 그 문장을 읽고서야 노트를 접었다. 접는 방식도 달랐다. 사망 시각이 안쪽으로 들어가지 않게, 바깥에서 바로 보이게 접었다. 숨기지 말라는 표시였다.

살아 있는 장유라의 얼굴 아래, 노트에는 06:53 사망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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