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강미진은 커피를 끓이는 척했다

야간 민원은 사람도 완료 처리한다 · 2026.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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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진은 커피를 끓이는 척했다.

포트에는 물이 없었다.

3시 57분, 복사기 옆 사내 전화는 번호 없이 울리고 있었다. 표시창의 `7구역`이 세 번 깜박일 때마다 휴게실 문턱의 고무 패킹이 가늘게 떨렸다. 유나는 교환기 화면에서 활성 통화 0과 외부 회선 0을 다시 확인했다. 정호는 SN-7-017 원본을 탁자 가운데 두고 보관 투표 용지를 접었다. 도원은 펌프장 무전과 센터 무전을 나란히 놓았다.

미진은 다섯 사람의 얼굴을 봤다. 서하는 양손 보호 필름 가장자리가 들떠 있었고, 도원은 젖은 신발을 벗지도 못했다. 유나는 해시를 세 번 읽느라 목이 쉬었다. 정호는 정지 처분 뒤 처음 돌아온 센터에서 계속 연도를 말했다.

쉬게 해야 했다.

휴게실은 실제 남은 일을 하는 동안 전화 벨이 문턱을 넘지 못했다. 4화에서 물을 끓이고, 컵을 씻고, 교대표를 썼을 때 확인한 가설이었다. 미진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실제 일을 하나 더 시키면 누구 하나는 쓰러질 것 같았다.

미진은 포트 뚜껑을 열어 안을 보지 않았다. 손잡이를 잡고 받침대에 올린 뒤 전원 버튼만 눌렀다. 빨간 불이 들어왔다. 빈 바닥에서 금속이 데워지는 냄새가 얇게 났다.

“커피 취향 받습니다. 회사가 야근수당은 안 줘도 뜨거운 물 냄새는 무료로—”

전화 벨이 휴게실 안에서 울렸다.

미진은 문장을 끝내지 못했다.

지금까지 벨은 문턱 바깥에서 작아졌다. 이번에는 탁자 아래에서 난 것처럼 선명했다. 첫 소리에 컵 선반 유리가 떨렸고, 두 번째 소리에 휴게실 의자 다섯 개가 벽 쪽으로 한 뼘씩 밀렸다.

세 번째 소리 뒤, 출입문 위 초록 비상등이 흰색으로 바뀌었다.

`대기.`

미진은 포트 전원을 끄려 했다. 손을 뻗는 순간 휴게실 문이 안쪽으로 반쯤 닫혔다. 문짝은 누구 팔을 끼우지 않았는데 미진의 왼팔 안쪽에 네모난 붉은 선이 나타났다. 세로 두 줄, 가로 한 줄. 출입문 틀과 같은 폭이었다.

통증은 한 박자 늦게 왔다. 팔을 문 사이에 오래 끼운 것처럼 뼈까지 눌렸다.

미진은 소매를 내리려 했다.

유나가 먼저 봤다. “반장님, 팔.”

“문짝이 반장 복지보다 열심히—”

말끝이 끊겼다. 자국이 팔꿈치 위로 한 줄 더 깊어졌다. 농담하는 동안 문이 또 닫힌 것처럼 피부가 패였다.

서하가 빈 포트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물 한 방울 없었다. 열선만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이거 실제로 한 일 아니야.”

미진은 반박하지 못했다.

휴게실 벽지가 복도와 같은 회색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창 없는 벽 아래에는 없던 플라스틱 의자가 한 개씩 이어졌고, 탁자 모서리의 둥근 보호대는 번호표 발급기 같은 검은 홈으로 변했다. 정호가 손을 대지 않고 세었다. 원래 의자 다섯, 새 의자 셋. 사람 수보다 많았다.

사내 전화는 더 이상 벨을 울리지 않았다. 대신 낮은 안내음이 나왔다.

“업무 처리 순서를 기다려 주십시오.”

도원이 문턱에 드라이버를 세웠다. 금속 손잡이의 그림자가 안쪽으로 넘어왔다. “휴게실 아니다.”

“아직 완전히 바뀐 건 아니에요.” 유나는 컵 선반을 열었다. 머그잔 손잡이와 세제, 어제 흘린 수프 자국은 그대로였다. “남은 일이 있어요. 진짜로 끝낼 수 있는 것.”

미진이 명령하려 했다. “유나는 로그, 도원은 문—”

“아니요.”

유나가 잘랐다. 빈정거리지 않았다. 탁자 위에 네 가지를 놓았다. 물때 낀 머그잔 두 개, 비어 있는 포트, 수프가 말라붙은 전자레인지 받침, 아직 3시 이후가 비어 있는 휴게 교대표.

“고르는 걸로 해요. 컵 씻기, 포트 물 채우기, 전자레인지 닦기, 교대표 쓰기. 이미 깨끗한 데 문지르면 안 되고, 빈 포트 버튼만 누르면 안 돼요. 끝난 결과를 서로 확인해요.”

정호가 물었다. “누가 무엇을 맡았는지도 기록합니까?”

“끝낸 뒤에요. 지금은 일을 먼저.”

도원이 빈 포트를 들었다. “물.”

서하는 컵 두 개를 집었다. 양손 멍 때문에 손목을 꺾지 않고 손잡이에 행주를 감아 들었다. “컵.”

정호는 쓰레기통 옆에서 기름 묻은 초코바 포장과 복사 먹지 보호지를 분리했다. “목록엔 없지만 이건 실제로 남았습니다. 분리수거.”

유나는 전자레인지 받침을 뺐다. 굳은 수프 자국이 손톱만 하게 붙어 있었다. 교대표만 탁자에 남았다.

미진이 펜을 잡으려 하자 왼팔의 네모 자국이 조였다. 손가락 힘이 풀렸다.

“교대표는 서하 씨가—”

서하가 컵을 싱크대에 내려놓고 미진을 봤다. “반장 이름 내가 대신 쓰면 실제 업무야?”

“내가 확인하면 되지.”

“그건 확인 흉내일 수도 있어.”

미진은 존댓말로 물러나려 했다. “현재 부상 상태에서는 업무상 대리 작성이—”

“그 말로 또 선택 묶지 마.”

서하의 목소리는 높지 않았다. 보호를 이유로 빈칸을 대신 채우는 순간 무엇이 사라지는지 이미 겪은 사람의 말이었다.

유나가 전자레인지 앞에서 말했다. “반장님 몫은 반장님이 하세요. 글씨 한 줄이면 돼요. 못 하면 못 한다고 적는 것도 결과예요.”

미진은 펜을 놓지 않았다. “먼저 다른 일 끝내.”

도원이 수도를 틀었다. 그는 포트 눈금 1.0리터에 정확히 물을 맞추고 뚜껑을 닫았다. 받침대에 올려 전원을 누르자 이번에는 물 안에서 작은 기포가 올라왔다.

복도 안내음의 뒤쪽 한 마디가 사라졌다.

`업무 처리 순서를 기다려—`

서하는 컵 안쪽의 굳은 커피 자국을 세제로 벗겼다. 물로 두 번 헹군 뒤 마른 수건 위에 엎어 놓았다. 유나가 손전등을 비춰 남은 갈색 테두리가 없는 것을 확인했다.

벽 아래 새 의자 하나가 소리 없이 사라졌다.

정호는 종이와 비닐을 나눠 휴게실 분리수거 표와 맞췄다. 먹지 보호지는 일반 종이가 아니라 오염 비닐 칸이었다. 마지막 조각을 넣고 뚜껑을 닫자 번호표 발급기 같은 탁자 홈이 원래 둥근 보호대로 돌아왔다.

유나는 전자레인지 받침을 물에 불리지 않고 젖은 행주로 닦았다. 수프 자국이 실제로 떨어져 행주에 주황색으로 묻었다. 깨끗한 척 닦는 동작이 아니라 오염이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옮겨 보였다. 받침을 다시 끼우고 문을 닫았다.

사내 전화의 안내음이 문턱 밖으로 밀려났다. 휴게실 안에서는 진동만 남았다.

교대표 한 줄이 비어 있었다.

미진은 왼팔을 탁자에 얹었다. 소매를 팔꿈치 위로 걷었다. 출입문 모양 자국은 붉은 네모가 아니라 자주색 압박 멍으로 변하고 있었다. 세 사람 앞에서 숨길 수 없게 놓았다.

“내 판단 수정한다.”

정호가 펜을 들지 않고 기다렸다.

“누가 움직이는 척하면 잠깐 버틴다고 생각했어. 틀렸어. 필요한 물, 도구, 남은 결과가 있어야 하고 실제로 끝나야 해. 빈 포트 전원은 업무 아님. 내가 팀 쉬게 한다고 가짜로 돌렸다가 방을 대기실로 바꿨어.”

미진은 웃지 않았다. 자기 부상보다 안에 있던 사람 수를 먼저 적었다. `노출 인원 5. 가짜 업무 수행자 강미진. 왼팔 출입문형 압박 자국.`

서하가 물었다. “규칙은?”

“한 번 더 확인 전까지 수정 가설. 실제 남은 휴게 업무 완료가 경계를 밖으로 민다. 흉내는 안 된다.”

미진은 교대표의 03:58 칸에 자기 이름을 썼다. 왼손이 떨려 `강`의 마지막 획이 비뚤어졌다. 덧쓰지 않았다. 옆에 `포트 실제 급수 확인 / 교대표 작성`을 적고 서명 대신 현재 시각을 남겼다.

4시 03분.

마지막 획이 끝나자 흰색 비상등이 초록색으로 돌아왔다. 회색 벽지는 원래 베이지색이 됐고, 남아 있던 새 의자 두 개가 사라졌다. 도원의 드라이버 그림자는 문턱 바깥으로 물러났다.

휴게실은 다시 안전해졌다.

완전히는 아니었다.

유나는 초록 비상등을 복구 완료로 기록하지 않았다. 먼저 미진에게 양팔을 같은 높이까지 들어 보라고 했다.

“팔 들어 봐요”

오른팔은 귀 옆까지 올라갔다. 왼팔은 어깨 높이에서 멈췄다. 더 들자 문틀 모양 멍의 위쪽 가로선이 안으로 접히며 통증이 손가락 끝까지 번졌다. 미진은 이를 악물었고, 유나는 각도를 92도에서 멈춰 적었다.

서하는 휴게실 문을 다시 움직이지 않고 열린 폭을 쟀다. 문짝과 미진 팔이 있던 자리 사이에는 19센티미터가 남아 있었다. CCTV 03:57:18 프레임에도 실제 접촉은 없었다. 반면 도원이 잰 문틀 고무 패킹의 세 변은 미진 팔의 붉은 세 변과 오차 3밀리 안에서 맞았다. 모양은 일치했지만 무엇이 피부에 압력을 옮겼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접촉 부상 아님. 원인은 미확정.” 도원이 말했다.

정호는 산업재해란 말을 먼저 쓰지 않았다. 발생 시각, 가짜 업무, 대기 상태 전환, 비접촉 영상, 관절 제한을 각각 다른 칸에 적었다. 미진이 농담으로 빈칸을 막으려 하자 이번에는 펜이 먼저 멈췄다.

“통증 몇 점입니까”

“반장 월급보단 낮고—”

서하가 보자 미진이 말을 고쳤다. “가만히 있으면 넷. 들면 일곱.”

유나는 휴게실 구급함의 냉찜질 팩 봉인을 미진이 직접 뜯게 했다. 대신 팔에 대 주지는 않았다. 미진은 오른손으로 팩을 꺼내 왼팔에 올리고, 4시 20분 교대 병원 연락과 운전 제외를 자기 이름 옆에 적었다. 안전이 돌아온 뒤에도 반장 권한과 몸은 원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미진 팔의 문틀 자국은 사라지지 않았다. 포트 물은 끓었지만 누구도 바로 커피를 타지 않았다. 유나는 멍의 네 변을 자로 재고 촬영했다. 서하는 미진 대신 기록하지 않고 사진 파일명만 함께 확인했다.

미진은 교대표 원장 아래에 수정안을 붙였다.

`실제 남은 업무와 관찰 가능한 결과가 있어야 함.`

`완료된 일을 반복하거나 필요한 재료 없이 동작만 재현하는 것은 안전 업무로 세지 않음.`

`한 번의 복구 관찰. 일반화 금지.`

그녀는 팔을 소매로 가리지 않았다.

사내 전화 진동이 멎었다.

대신 휴게실 인터폰이 켜졌다. 센터 안내 방송과 다른 낮은 목소리였다.

“업무 미완료자 한 명.”

유나의 노트북에서 열린 티켓 담당자 칸이 한 번 깜박였다. 4721 아래에 새 빈 줄이 생겼다.

인터폰이 이름을 불렀다.

“김유나. 완료 서명 대기.”

미진은 다친 팔로 인터폰을 끄지 않았다.

교대표 펜을 탁자 가운데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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