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최정호는 서류를 서류가방에서 꺼내지 않았다

야간 민원은 사람도 완료 처리한다 · 2026.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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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호는 서류를 서류가방에서 꺼내지 않았다.

초코바 밑에서 꺼냈다.

3시 41분, 센터 휴게실 탁자에는 펌프장 흙과 품질감사실 봉인 테이프가 같이 묻어 있었다. 서하는 손목 두 곳에 투명 보호 필름을 붙인 채 앉아 있었다. 오른손 원은 자주색이었고 왼손 원은 아직 연했다. 도원은 신발 밑창의 물기를 닦고도 현장 무전을 끄지 않았다. 유나는 센터 화면에 열린 티켓을 남겨 두고 휴게실 문턱에서 노트북을 들고 있었다.

미진이 문을 열자 정호가 종이 상자를 안고 들어왔다. 회사 출입증은 목에 없었다. 정지 처분 통지서를 받은 사람은 정문 게이트를 통과할 수 없어서, 상자 옆면에는 노조 사무실 택배 스티커가 세 겹 붙어 있었다.

“정직원 출입은 막아도 야식 배달은 받더라고요.”

정호는 웃지 않고 상자를 탁자 가운데 내려놓았다. “2026년 8월 11일 3시 36분, 서남서비스 야간센터 후문 인계. 받은 사람 강미진. 상자 외관 훼손 없음. 맞습니까?”

미진이 상자 모서리를 확인했다. “맞아. 그리고 반가운 인사는 나중에.”

“그건 회의록에서 빼도 됩니다.”

정호는 덮개를 열었다. 초코바 여덟 개, 소금 과자 두 봉지, 캔커피 여섯 개가 먼저 보였다. 도원이 과자 봉지를 옆으로 치우려 하자 정호가 손등으로 막았다.

“순서대로 봅시다. 위에 있던 물건 수부터.”

유나가 휴대폰 오프라인 촬영을 켰다. 여덟, 둘, 여섯. 서하는 자기 손목이 화면에 들어가지 않게 팔을 빼지 않았다. 양손 멍도 현재 상태의 일부였다.

정호가 초코바 칸의 종이 받침을 들어 올렸다.

기름종이 아래 낡은 사고 보고서 일곱 장이 눌려 있었다. 회사 내부 양식보다 종이가 누렇고 얇았다. 왼쪽 위에는 수신 도장이, 오른쪽 아래에는 서로 다른 지점 서명이 찍혀 있었다. 접힌 자국마다 검은 복사 먹지가 번져 손가락에 묻었다.

일곱 장의 사고 보고서에는 같은 번호가 찍혀 있었다.

`예외계약 사고번호 SN-7-017.`

마지막 장의 발생 일자는 오늘이었다.

휴게실 환풍기 소리만 남았다.

서하가 보고서에 손을 대지 않고 물었다. “원본 몇 장이에요?”

정호가 대답했다. “한 장.”

“지금 여기 있는 사본은요?”

“일곱 장 전부 외부 수신본입니다. 다만 첫 장만 먹지 압인이 남은 원본이고 여섯 장은 지점 팩스 수신본.”

“다른 보관처.”

정호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질문을 예상했지만 답할 곳까지 정해 오지는 못한 얼굴이었다.

“노조 사무실에 촬영본 한 세트.”

“그게 전부예요?”

“전부라고 말하면 압수 목록이 됩니다.”

서하는 양손을 탁자 위에 올렸다. “그럼 자료를 보기 전에 정해요. 몇 명이 받고, 누가 빠지고, 불리한 조항이 뭔지. 정호 씨 설명만 원본이 되면 안 돼요.”

정호는 날짜를 적던 펜을 멈췄다. 예전이었다면 자료의 출처부터 길게 설명했을 것이다. 그는 첫 장을 자기 쪽으로 당기는 대신 상자 덮개에 사본 수를 적었다.

`현재 종이 7 / 외부 촬영본 1세트 / 미공개 보관처 수 미확정.`

“좋습니다. 먼저 불리한 조항.”

그는 보고서 뒷면의 작은 글씨를 읽었다. “이 문서는 회사 원계약 사본이 아닙니다. 지점이 노조와 외부 보험사에 보낸 사고 통보서입니다. 계약 본문이 빠져 있어서 번호가 같은 이유를 법적으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제 정지 처분 뒤 취득한 한 장은 회사가 불법 반출이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도원이 짧게 물었다. “사람은?”

정호가 일곱 장의 발생 결과 칸을 펼쳤다. “여섯 명이 근무 중 실종. 한 명은 오늘 열린 티켓. 과거 여섯 건은 7년 동안 서로 다른 시설에서 발생했습니다.”

미진이 초코바 하나를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포장지가 마른 소리를 냈다.

“간식비보다 위험하네.”

아무도 웃지 않았다.

정호도 농담을 이어 가지 않았다. 첫 장에는 지하 주차장 배수실, 둘째에는 공공도서관 자료실, 셋째에는 하천 수문 제어반이 적혀 있었다. 펌프장과 같은 주소는 하나도 없었다. 실종자 직급도 경비, 이관 기사, 계약 상담원으로 달랐다.

“같은 장소 사고는 아닙니다.” 정호가 말했다. “번호는 시설 번호도 아닙니다. 외부 보험사 답변에는 ‘동일 예외계약 계열 사고 추적용’이라고만 돼 있습니다. 그 이상은 저도 모릅니다.”

서하는 오늘 장을 유나 쪽으로 돌렸다. 발생 대상 칸에는 이름 대신 `미완료 티켓 담당자`가 적혀 있었다. 발생 장소는 `서북 제4 가압펌프장 외 연결 주소`였다. 인쇄 시각은 03:27. 펌프장에서 붉은 기록의 시각을 확인한 뒤였다.

“오늘 장은 어디서 났어요?”

“노조 공용 팩스로 03:31에 들어왔습니다. 발신 지점은 비어 있고 수신 번호는 맞습니다.”

유나가 센터 팩스 로그와 맞췄다. 센터에서 외부로 보낸 기록은 없었다. 노조 수신 기록은 별도 채널이었지만 누가 보냈는지는 아직 비어 있었다.

정호는 그 빈칸을 설명으로 채우지 않았다. “현재 티켓과 옛 사고가 같은 번호로 묶인 사실까지만입니다. 같은 원인이라고 쓰면 안 됩니다.”

유나는 일곱 장의 번호와 수신 시각을 맡았다. 화면 복사 대신 종이에 한 줄씩 적고, 각 줄 옆에 사진 파일 해시의 앞 여덟 자리만 붙였다. 같은 `SN-7-017`이 일곱 번 반복됐지만 종이 질감과 수신 도장은 달랐다.

도원은 분실 물건 칸을 읽었다. 몽키스패너 하나, 황동 열쇠 세 개, 빨간 손전등, 절연장갑 한 켤레, 반납되지 않은 무전기. 오늘 장에는 `밸브 표찰 4721 / 회수 금지`가 적혀 있었다.

“사람보다 물건이 먼저 남았네.”

“결과 칸은?” 서하가 물었다.

도원이 턱으로 가리켰다. 여섯 장 모두 사람 이름은 빈칸이거나 검은 줄로 지워져 있었다. 대신 물건 미반환 여부에는 붉은 체크가 남아 있었다. 현재 장의 담당자 칸도 이름이 아니라 4721이었다.

서하는 서명 시각을 맡았다. 사고 발생 시각보다 승인 시각이 늦은 장이 네 장, 같은 분에 찍힌 장이 두 장, 승인 시각 자체가 없는 장이 하나였다. 붉은 문장으로 덧씌운 부분은 원래 문장보다 잉크가 새것이었다. 하지만 현주 도장2와 같은 흠집은 보이지 않았다. 지점 도장은 서로 달랐다.

“붉은 기록하고 편집 방식은 닮았어요.” 유나가 말했다.

서하가 바로 선을 그었다. “닮았다는 것까지만. 같은 작성자 아님.”

정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계약 번호는 조직 연결 단서. 괴이 규칙은 아닙니다.”

한 장씩 넘기던 도원의 손이 부속도면에서 멈췄다. 지도는 서로 다른 건물을 그렸는데, 여백 표시는 같은 자리에 있었다.

`7구역 내선.`

도서관은 지하 2구역까지, 수문 사무실은 4구역까지였다. 어느 시설에도 7구역은 없었다. 그런데 도면 여백에는 모두 같은 단어가 인쇄돼 있었다. 내선 번호 칸은 검은 먹으로 덮였고 마지막 한 자리만 희미하게 7처럼 보였다.

도원은 시설 도면의 공구 반입구를 짚었고, 유나는 여백의 내선 칸을 짚었고, 서하는 그 옆 승인 시각을 짚었다. 세 손가락이 다른 이유로 같은 모서리에 모였다.

“주소는 다르다.” 도원이 말했다.

“문구는 같아요.” 유나가 말했다.

“시각은 사고 뒤.” 서하가 말했다.

정호는 세 말을 한 문장으로 합치지 않았다. 서로 다른 관찰로 대조표에 남겼다. 7구역이 장소인지, 계약 상태인지, 단순 양식 오류인지 아직 가설이었다.

이제 사본을 나눌 차례였다.

정호는 원본 한 장을 다시 기름종이 사이에 넣었다. “회사 복사기 로그가 남습니다. 제 계정은 정지됐고, 이걸 돌리면 야간조 사용 기록으로 잡힙니다. 원본은 제가 외부로 가져가고 요약만—”

“그러면 또 정호 씨 한 사람이 보험이 돼요.” 서하가 끊었다.

“압수되면 끝나는 것보다 낫습니다.”

도원이 복사기 쪽 출구를 확인했다. “혼자 들고 나가다 뺏기면 더 끝나.”

미진은 유나에게 복사 지시를 하지 않았다. 예전처럼 막내 계정으로 로그를 떠넘기지도 않았다. 대신 복사기 사용 화면과 자기 반장 카드를 탁자 위에 놓았다.

“유나야. 네 계정 안 쓴다. 사진만 갖고 빠질지, 여기 남아 해시를 맡을지 네가 골라.”

유나는 미진의 카드를 보다가 말했다. “사진과 해시 맡을게요. 복사는 반장님 카드. 로그에는 우리 다섯 명 공동 확인이라고 수기로 붙여요.”

“그래.”

미진은 농담 없이 답했다.

복사기 앞에서 역할을 나눴다. 미진이 카드 로그를 남기고, 정호가 원본을 한 장씩 유리판에 놓았다. 도원은 복사된 장의 누락 모서리를 확인했다. 서하는 사본마다 `원계약 아님 / 원인 미확정 / 현재 보유자`를 손으로 썼다. 유나는 전체 사진 묶음의 해시를 계산해 각자 수기 요약 마지막 줄에 같은 값을 적었다.

복사 한 세트는 센터 증거함, 한 세트는 미진, 한 세트는 유나의 오프라인 저장장치, 한 세트는 도원의 공구함 이중 바닥, 한 세트는 서하의 방수 봉투로 갔다. 정호의 간식 상자에는 원본 한 장과 사본 수 표가 남았다.

복사기 로그에는 미진의 카드 사용 시각 03:55와 출력 42장이 찍혔다. 징계 위험은 숨기지 않았다. 미진이 로그를 촬영해 정호에게 먼저 보냈다.

“정지 처분 하나로 끝날 일이면 회사 복지가 좋아진 거지.”

정호가 계산하듯 말했다. “복사비 장당 50원, 총 2천1백 원. 회사 위기관리 예산보다 싸고 노조 간식 예산보다는 비쌉니다.”

이번에는 유나가 짧게 숨을 웃었다. 실종자 이름이 지워진 칸을 덮는 웃음은 아니었다. 누가 비용을 내는지 확인한 뒤 나온 소리였다.

마지막 부속도면이 출력됐다.

종이가 절반쯤 나오다 멈췄다. 복사기 옆 사내 전화기의 내선 표시창이 켜졌다. 평소 네 자리 숫자가 떠야 할 자리에 글자가 먼저 나타났다.

`7구역.`

그 아래 번호는 비어 있었다.

아무도 수화기를 들지 않았다. 유나는 센터 교환기 화면을 확인했다. 활성 통화는 0, 외부 회선도 0이었다. 종이 도면과 전화 표시창, 두 채널에 같은 글자가 있었지만 전화가 어디로 이어지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복사기 안에서 마지막 장이 다시 움직였다. 도면 여백의 검게 지워진 내선 칸 위로 새 토너가 한 줄을 덧그렸다.

`현재 연결 03:56.`

정호는 상자 안 원본 한 장을 주머니에 넣으려다 멈췄다. 손이 종이 위에 오래 머물렀다. 압수당할까 두려워 혼자 들고 사라졌던 예전 습관이 손끝에 남아 있었다.

그는 원본을 꺼내 미진과 유나 사이에 놓았다.

“원본 보관도 투표합시다.”

다섯 사람이 보관처와 인계 시각을 적었다. 정호는 자기 몫 사본 한 장만 재킷 안주머니에 넣었다.

“혼자 하지 맙시다.”

그가 말을 끝내자 사내 전화가 울렸다.

표시창에는 여전히 번호가 없었다.

존재하지 않는 7구역만 세 번 깜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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