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민원은 사람도 완료 처리한다

10시 17분의 무기명 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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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시 17분의 무기명 민원

야간 민원은 사람도 완료 처리한다 · 2026.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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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수된 민원은 30초 안에 완료 처리하십시오.”

야간 민원 이관 담당 임서하는 그 문장을 읽고 이미 파일을 열었다.

발신자도 주소도 없었다.

담당자 칸에는 방금 전까지 없던 자기 사번이 찍혀 있었다.

계약 첫날의 첫 실수치고는 화면이 지나치게 친절했다. 우측 상단에 붉은 숫자가 떴다. 00:27. 숫자는 1초마다 줄었다. 평소라면 그 아래에 있어야 할 닫기와 보류 버튼은 사라지고, 파란 완료 버튼만 남아 있었다.

서하는 마우스에서 손을 뗐다.

서남도시시설서비스 야간센터의 이관 순서는 단순했다. 주소를 확인하고, 시설 코드를 붙이고, 당직 현장반에 넘긴다. 현장 확인이 오면 완료한다. 신입 교육 영상도 같은 순서를 세 번 반복했다. 발신자도 주소도 현장도 없는 민원을 먼저 완료하라는 항목은 없었다.

00:23.

그녀는 화면 왼쪽 아래 시각을 확인했다. 오전 0시 17분. 벽시계도 0시 17분을 가리켰다. 초침은 움직이지 않았다.

“유나 씨. 4번 프린터 용지 잡아 주세요.”

옆자리 김유나가 의자 바퀴를 밀어 몸을 내밀었다.

“첫날부터 종이 민원 감성인가요? 아니 근데, 그거 완료 버튼밖에 없는데요.”

“그러니까 출력부터요. 화면 캡처도. 지금 말고, 순서대로요. 0시 17분, 파일 열림. 발신자 빈칸. 주소 빈칸. 담당자—”

서하는 말을 멈췄다. 담당자 칸의 숫자는 4721이었다. 자기 사원증 사진 아래 찍힌 번호와 같았다.

00:18.

유나가 단축키를 눌렀다. 캡처 알림은 떴는데 저장 폴더에 파일이 생기지 않았다. 대신 프린터가 깨어났다. 급지 롤러가 빈 종이를 한 번 삼켰다가 밀어냈다.

출력물의 발신자와 주소 칸은 비어 있었다. 담당자 칸에는 4721. 화면과 종이가 같은 말을 했다.

서하는 출력 시각 옆에 펜으로 0:17을 적었다. 두 채널이 맞아야 믿는다. 예전 현장에서 남상호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었다. 그 이름을 찾으러 돌아온 첫날, 이름 없는 민원이 먼저 그녀를 찾았다.

00:13.

“완료 누르지 마세요.”

강미진 반장이 탕비실 쪽에서 뛰어오며 말했다. 한 손에는 종이컵 두 개가 들려 있었다. 커피가 손등에 쏟아졌지만 컵은 놓지 않았다.

“근거는요?”

“십 초 남았을 때 묻기 좋은 질문은 아닌데.”

“누르면 어떻게 됩니까?”

미진의 시선이 출력물의 사번에서 멎었다. 농담기가 먼저 사라졌다.

“대상이 빈 완료는 처리자가 메워요.”

“사람이요?”

“그건 끝나고 정확히 확인합시다. 유나 씨, 서버 전원 손대지 말고 출력물 잡아요. 서하 씨는 타워 뒤 전원선. 화면 말고 본체만.”

00:09.

서하는 책상 아래로 무릎을 꿇었다. 멀티탭에는 본체, 모니터, 전화기, 프린터 선이 한데 꽂혀 있었고 각 플러그 앞에 작은 개별 스위치가 달려 있었다. 아무거나 내리면 무엇을 끊었는지 증거가 사라진다. 본체 플러그에는 4번 좌석이라는 흰 라벨이 감겨 있었다. 모니터는 별도 스위치였다.

“서버를 끄는 게 빠르지 않습니까?”

“서버가 물고 있는 건 여기만이 아니에요.” 미진은 회선 패널 덮개를 열었다. “에스컬레이터, 펌프장, 공영주차장. 오늘 야간수당으로 도시 하나 감당할 생각 아니면 각자 자기 선만 뽑습니다.”

00:06.

미진은 케이블 뭉치에서 외부 회선이라고 적힌 회색 선을 찾아 손가락으로 눌렀다. 빼지 않고 서하를 봤다. 반장 승인권을 가진 사람이 신입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원본은 남깁니다.” 서하가 말했다. “화면도 티켓도 지우지 않아요.”

“좋아요. 셋에.”

유나가 프린터에서 길게 밀려 나오는 두 번째 종이를 양손으로 받쳤다. 미진이 셋을 세지 않았다. 숫자가 00:03이 되는 순간 회색 선을 뽑았다. 서하도 동시에 4번 본체 스위치를 내렸다.

모니터가 검게 꺼진 건 전원이 나가서가 아니라 입력 신호가 끊겼기 때문이었다. 우측 아래 주황색 대기등은 남았다.

센터 천장의 형광등은 그대로였다. 서버실 팬 소리도 멈추지 않았다. 유나의 컴퓨터에서는 외부 시설 상태가 정상으로 흘렀다. 4번 좌석의 전화기만 수화기를 내려놓는 소리를 냈다.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는데도.

미진은 뽑은 회선 끝을 빈 종이컵에 넣었다. 유나는 출력물을 접지 않고 책상 위에 펼쳤다. 서하는 본체 스위치가 내려간 시각과 회선이 빠진 시각을 각각 적었다. 둘을 한꺼번에 끊은 탓에 어느 쪽이 카운트를 멈췄는지는 아직 몰랐다.

“회선 그대로. 본체만 다시 올립니다.”

서하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움직이려다 손을 멈췄다. 미진과 유나를 차례로 봤다. 미진이 종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엄지를 들었다. 유나는 두 번째 출력물 가장자리에 손가락을 걸고 고개를 끄덕였다.

스위치를 올리자 팬이 돌고 회사 로고가 떴다. 부팅은 평소보다 짧았다. 로그인 화면을 거치지 않고 아까 티켓이 열렸다.

검은 창 한가운데 숫자 하나가 남아 있었다.

00:03.

카운트는 멈췄다. 파란 완료 버튼도 사라졌다. 그러나 티켓 창은 닫히지 않았다. 담당자 4721도 그대로였다.

유나가 화면을 가리켰다.

“이거, 해결은 아닌 거죠?”

“보류도 아니에요.” 서하가 말했다. “열린 채로 멈춘 겁니다.”

“첫날 업무 적응 속도 좋네요. 회사는 보통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멈춘 상태로 두는 데 석 달쯤 걸리는데.”

미진의 농담은 평소라면 웃을 자리를 찾아갔을 것이다. 유나는 입꼬리를 올리다 말았다. 프린터가 세 번째 종이를 뱉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민원 출력물이 아니었다.

출입 명부였다.

센터 출입문 옆 단말에서만 뽑을 수 있는 양식이 4번 프린터로 나왔다. 종이 교대표에는 야간조 다섯 명이 있었다. 센터 근무 강미진, 김유나, 박기태, 임서하. 다섯째 백도원은 23시 48분 현장 출동으로 표시돼 있었다. 입실 명부에 잡힐 사람은 네 명이 맞았다.

서하는 자기 이름부터 보지 않았다. 출력 시각을 확인했다. 0시 20분. 그다음 사번, 입실 시각, 서명 칸을 차례로 봤다. 모두 정상처럼 보였다.

“단말 확인하죠.”

미진이 문 쪽을 막았다.

“이름 다시 입력하지 마세요.”

“이유를 아십니까?”

“모릅니다. 모르는 이름 칸에 이름부터 넣지 말자는 거예요.”

그 말은 명령이 아니라 먼저 내놓은 한계였다. 서하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출력물과 종이 교대표, 사원증을 챙겼다. 유나는 4번 좌석을 지키며 키보드 위에 양손을 올려놓았다. 캡처가 저장되지 않자 아예 화면의 글자 수를 세고 있었다.

“담당자 사번 네 자리. 주소 영 자. 발신자 영 자. 완료까지는 셋에서 정지.”

“화면 바뀌면 말로 먼저 인계해 주세요.”

“넵. 아니, 네. 농담 끄고요.”

출입 단말은 방화문 옆 좁은 통로에 있었다. 책상 네 줄을 빠져나가려면 복사기와 서류함 사이를 지나야 했다. 평소엔 야식 상자를 나르는 길이었다. 지금은 4번 좌석을 한 번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는 유일한 동선이었다.

서하는 앞서 걷지 않았다. 미진과 나란히 움직이며 종이 교대표를 펼쳤다. 백도원의 현장 출동 줄에는 미진의 파란 서명이 있었다. 지금 밖에 있는 사람의 상태까지 건드리면 안 됐다.

“그런 티켓을 본 적 있습니까?”

“비슷한 건요.”

“언제요?”

미진은 커피 묻은 손등을 바지에 닦았다. “남상호 반장 마지막 교대.”

서하의 발이 복사기 앞에서 멈췄다.

“왜 교육 때 말하지 않았죠?”

“말하면 서하 씨가 안 열었을까요?”

“제가 고를 수는 있었겠죠.”

미진은 대답 대신 먼저 단말 화면을 가리켰다. 논쟁을 끝내려 일을 배정하는 버릇이었다. 서하는 그 손끝을 보다가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전자 명부에는 센터 입실자가 네 명으로 표시돼 있었다. 예상한 수였다. 그런데 한 사람은 이름이 짧았다.

“인원 수는 맞아요.” 서하가 단말을 가리켰다. “사람이 틀렸습니다.”

위에서부터 사번을 대조했다. 미진의 사번은 같았다. 유나도 같았다. 경비원 박기태도 같았다. 마지막 줄의 4721도 남아 있었다.

이름만 달랐다.

`임서하`가 있어야 할 칸에는 `서하`라고 적혀 있었다.

서하는 사원증 사진을 단말 옆에 댔다. 플라스틱 카드에는 임서하 세 글자가 선명했다. 종이 교대표도 같았다. 전자 명부만 한 글자를 잃었다.

단말 아래 작은 키보드에 커서가 깜박였다. 빈칸을 채우라는 입력창이 저절로 열렸다.

미진이 손을 뻗었지만 서하가 먼저 키보드 덮개를 닫았다.

“입력하지 않습니다.”

“확인하려던 거예요.”

서하는 사원증을 키보드 덮개 위에 놓았다. “확인은 물건으로 끝냅니다. 입력은 새 행동이에요.”

그녀는 출입 단말의 전원을 끄지 않았다. 화면 사진도 찍지 않았다. 유나에게 내선으로 읽어 줄 숫자를 골랐다. 현재 시각, 사번, 사라진 글자 하나. 남상호의 이름은 말하지 않았다. 아직 그 민원과 상호 사이에는 미진의 기억 말고 두 번째 증거가 없었다.

“유나 씨, 인계합니다. 0시 20분. 전자 명부 입실자 네 명. 사번 4721 유지. 이름 첫 글자 소실.”

수화기 너머에서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받았습니다. 원본 출력물 세 장. 4번 좌석 티켓 열림. 카운트 3초 정지.”

“백도원 기사 출동 상태도 보존해요. 종이만 있고 전자 입실에는 없는 게 정상입니다.”

유나는 대답 대신 종이를 한 번 두드렸다. 마이크를 통해 마른 소리가 넘어왔다. 말로 확인하는 것과 별개로 물건이 여기 있다는 신호였다.

서하는 같은 내용을 종이 교대표 여백에 썼다. 미진은 아무 말 없이 자기 사원증을 그 옆에 놓았다. 반장 서명 대신, 지금 여기에 있는 사람의 물건을 증거로 보태는 방식이었다.

그제야 서하는 티켓을 열고 처음으로 하나를 얻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완료를 누르면 무엇이 사라지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화면을 지우지 않고 선을 나눠 끊으면, 적어도 시간을 벌 수 있다. 혼자 끊었으면 서버까지 내려 다른 시설을 건드렸을 선택이었다.

임시 생존법은 정답보다 느렸고 세 사람의 손이 필요했다.

미진이 종이컵을 내려다봤다. 뽑힌 회선 끝이 식은 커피 가장자리에서 조금씩 흔들렸다.

“야근수당 계산은 살아서 퇴근한 다음에 합시다.”

그녀는 웃지 않았다.

전자 명부의 커서가 한 칸 옆으로 움직였다.

`서하`에서 `서`가 지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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