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에다는 어머니의 초상화보다 먼저 씨앗 자루를 들었다

파산 공작령의 아이를 난로에서 꺼냈습니다 · 2026. 10. 22.

조회수 0

에다는 어머니의 초상화보다 먼저 씨앗 자루를 들었다. 종자 저장고 바닥에는 해빙수가 발목까지 차 있었고, 벽에 기대 둔 가족 초상 네 점은 아직 마른 선 위에 있었다. “초상은 나중입니다. 보리부터 위로 올려요.” 그렇게 말한 뒤에도 그녀의 시선은 가장 작은 액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스물다섯째 날 이른 아침, 마라의 바람개비 셋 중 남쪽 담 것이 돌지 않았다.

테오는 담 아래로 갈색 물이 흐른다고 알렸다. 도란이 남쪽 배수구의 얼음을 깨자 갇혀 있던 물이 창고 쪽으로 밀렸다.

종자 저장고 문 아래에서 첫 물줄기가 나왔을 때 에다는 왕립 행정학교의 보충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오전에는 도란의 경력 확인, 오후에는 노아의 진료 동행 날짜 선택이 있었다.

“저장고가 잠깁니다!”

에다는 펜을 놓고 뛰었다. 복도 끝에서 한 번 멈춰 인수인계판을 뒤집었다. 자기가 맡지 않기로 한 진료 준비와 아침 약 확인 칸에는 이미 에다 이름이 없었다. 저장고 비상 담당은 공란이었다.

문을 열자 찬물이 장화 안으로 들었다. 저장고 낮은 선반에는 봄보리 열두 자루, 귀리 아홉 자루, 콩 여섯 자루가 놓여 있었다. 높은 선반에는 회계 장부 상자 둘과 리번 가문 초상 네 점이 세워져 있었다. 씨앗 자루 아래쪽은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다.

카시안이 뒤따라와 가장 가까운 큰 초상에 손을 뻗었다.

“저건 선대 영주의 공식 초상이다. 젖으면 복원할 수 없다.”

에다는 보리 자루의 젖은 솔기를 눌렀다.

“이쪽은 젖으면 봄에 먹을 수 없어요.”

“위에 있는 물건부터 빼면 길이 열린다.”

“초상을 들고 나갈 길은 씨앗 자루를 밟아야 열리겠죠.”

목소리는 공손해졌고 문장은 짧아졌다. 카시안은 선대 초상에서 손을 뗐다.

도란이 삽과 밧줄을 들고 들어왔다. 그는 에다에게 지시를 기다리지 않았다. 문턱 바깥의 진흙을 한 번 보고 남쪽 벽을 두드렸다.

“물을 퍼내면 계속 들어옵니다. 담 배수구와 이 벽 홈이 이어져 있소. 문으로 자루를 빼는 동안 둘은 바깥 도랑을 끊어야 해.”

“벽을 깨나요?” 카시안이 물었다.

“지금 벽을 깨면 지붕 받침이 내려앉소. 바깥에 임시 도랑, 안에는 선반 다리 받침. 둘 다 해야 합니다.”

도란은 견습 둘에게 삽을 주고 남쪽 담으로 보냈다. 병사들을 부르지 않았다. 오르센이 북문 보급 변경을 맡은 첫날이었고, 약품 수령과 식량 통지를 다시 멈출 이유가 없었다. 대신 지붕 조합에서 오전 배수 담당으로 잡혀 있던 두 사람을 돌렸다. 그 시간만큼 서쪽 공동 수면실의 기와 교체가 반나절 늦어진다고 공개판에 적게 했다.

“누가 안을 정하지?” 도란이 물었다.

카시안이 대답하려 했지만 에다가 먼저 물에 젖은 목록을 들었다.

“종자와 장부는 제가 분류하겠습니다. 운반 지휘는 마리에게 요청하고, 초상은 소유자 선택으로 남겨요.”

“네가 다 분류할 필요는 없다.” 카시안이 말했다.

“제가 저장 순서표를 만들었으니까 첫 분류는 할 수 있어요. 단, 오전 경력 증명 약속 전까지만 합니다. 그 뒤에는 린에게 인계해요.”

에다는 끝나는 시각을 문 위에 분필로 썼다. 두 시각. 그 아래 인계자는 린, 운반 책임은 마리, 배수는 도란과 견습 둘. 카시안에게는 높은 선반 장부 상자를 내리는 일만 배정했다.

첫 보리 자루를 들어 올리자 밑바닥이 찢어졌다. 젖은 낟알이 검은 물 위로 쏟아졌다. 마리가 빈 빨래 바구니를 밀어 넣었다. 나디와 지나가 양쪽에서 천을 받쳐 낟알을 건졌다.

“마른 거랑 섞지 마!” 마리가 소리쳤다.

에다는 바닥에 세 구역을 만들었다. 물에 잠긴 자루, 솔기만 젖은 자루, 아직 마른 자루. 콩과 귀리를 같은 바구니에 넣지 않았다. 각 구역 앞에 수량과 시간을 적었다. 누구든 씨앗을 살리겠다고 자기 이름 없이 밤일까지 떠맡지 않도록 다음 건조 담당과 임금 칸도 함께 만들었다.

카시안이 장부 상자 하나를 들고 나갔다. 두 번째를 내리자 뒤에 세워 둔 작은 초상이 보였다. 손바닥 두 개만 한 그림이었다. 정식 예복이 아니라 낡은 푸른 옷을 입은 여자가 웃고 있었다. 에다의 어머니였다.

큰 초상 네 점 목록에는 그 그림이 없었다. 에다가 열 살 때 서랍에서 찾아 작은 틀에 넣은 것이었다.

“이건 네 방으로 먼저 가져가라.” 카시안이 말했다.

에다는 젖은 콩 자루를 들고 있었다.

“지금은 아니에요.”

“작아서 한 손이면 된다.”

“그 한 손으로 콩 자루 솔기를 받쳐야 해요.”

카시안의 얼굴이 굳었다. 에다는 그 표정을 보고 자기가 또 모든 욕망을 지우는 쪽으로 가고 있음을 알아챘다. 학교 지원서에도, 휴식표에도, 노아의 돌봄표에도 같은 버릇이 있었다. 필요한 일을 다 끝낸 뒤 원한다고 말하겠다는 버릇. 그때까지 원하는 것이 남아 있기를 기대하는 버릇.

그녀는 콩 자루를 마리에게 넘겼다.

“이 초상은 제가 남길게요.”

“그럼 지금 가져가.” 카시안이 말했다.

“아니요. 구조 순서는 바꾸지 않아요. 다만 폐기 목록에도 넣지 마세요. 제 선택 표시를 붙일 겁니다.”

에다는 젖지 않은 붉은 끈을 작은 액자 고리에 묶었다. ‘에다 개인 소유, 종자 운반 뒤 회수’라고 썼다. 큰 가문 초상에는 누구의 선택인지 표시가 없었다. 카시안은 선대 초상 두 점에 자기 이름을 붙였다. 나머지 두 점은 소유자 결정 전까지 높은 선반에 남겼다.

“전부 구할 수 있는데 왜 남겨 두지?”

“전부 구할 손이 없으니까요.”

“내가 들겠다.”

“카시안 리번 경은 장부 상자와 문턱 받침 담당입니다. 임의로 일을 늘리면 또 다른 칸이 빕니다.”

풀네임과 직함이 나오자 도란이 고개를 들었다. 카시안은 반박 대신 문턱 받침에 쐐기를 박았다.

바깥에서는 임시 도랑이 첫 물을 받았다. 흙이 너무 물러 삽날이 자꾸 무너졌다. 도란은 창고 벽과 도랑 사이에 있던 오래된 석판을 떼려 했다. 그 석판은 저택 화단의 장식 경계였다.

세레나가 도착해 물었다.

“저걸 빼면 화단 흙이 내려옵니다.”

“그 흙을 막자고 종자고를 잠기게 둘 순 없소.”

“대체 자재는요?”

도란은 서쪽 수면실 지붕에 쓸 얇은 판석 더미를 가리켰다.

“저걸 가져오면 지붕이 반나절이 아니라 하루 늦소. 장식 경계석을 쓰면 화단 한 줄이 무너지고 끝이오.”

세레나는 자기 예산표를 펼치지 않았다. 화단 관리인 사나를 불러 흙과 약초 뿌리 손실을 확인하게 했다. 사나는 남쪽 약초 두 줄은 다른 밭으로 옮길 수 있고 장식 수선은 여름까지 미뤄도 된다고 말했다.

“화단 경계석을 쓰죠.” 세레나가 말했다. “손실은 저택 장식 항목에 기록하고, 약초 이식 두 시각은 유급으로.”

도란은 고개만 끄덕이고 석판을 뺐다. 세레나의 허락을 기다려 현장 판단을 내린 것이 아니라, 자재 선택과 비용을 주민에게 확인시킨 뒤 자기 책임으로 삽을 댔다.

임시 도랑이 열리자 저장고 물 높이가 손가락 한 마디 내려갔다. 아이들 작업장의 바람개비는 여전히 결론 도구가 아니었지만, 테오가 처음 본 갈색 물길은 배수 담당 기록에 들어갔다. 발견 공로는 노아 이름으로 합쳐지지 않았다.

에다의 두 시각이 끝날 때까지 마른 자루 열세 개가 위층 빈 식당으로 옮겨졌다. 솔기만 젖은 아홉 자루는 천을 갈아 감고 처마 밑 건조대로 갔다. 물에 잠긴 다섯 자루는 낟알을 펼쳐 발아와 곰팡이를 따로 검사하기로 했다. 바닥에서 쏟아진 보리 한 자루 분량은 절반도 건지지 못했다.

“전부 살렸다고 쓰지 마세요.” 에다가 린에게 말했다.

린은 인계표 첫 줄을 고쳤다. ‘종자 스물일곱 자루 이동’ 대신 ‘마른 열셋, 젖은 아홉, 잠긴 다섯, 보리 유실 한 자루 추정’이라고 썼다.

“건조 담당은?”

“지나와 나디 첫 교대. 그다음은 아직 두 명 비었어요.”

“제 이름은 넣지 마세요. 저는 경력 증명 받으러 갑니다.”

입 밖으로 내자 마음이 먼저 저장고로 돌아가려 했다. 젖은 씨앗을 누구보다 잘 분류한 사람은 에다였다. 하지만 잘한다는 이유로 끝까지 남으면 서른 날 뒤 대체 시험은 시작하기도 전에 실패였다.

마리가 빈 두 칸을 보았다.

“린은 기록을 하고 나는 세탁 건조를 봐야 해. 사나한테 밭 사람 둘을 물어보마.”

“임금과 오후 휴식 확인도요.”

“알아. 네가 없어도 묻는다.”

에다는 장화를 벗어 물을 쏟고 마른 신발을 빌리는 시간도 인계표에 적었다.

도란은 창고 문 밖에서 경력 증명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보다 반 시각 늦었지만 떠나지 않았다. 그는 젖은 장갑을 벗고 서류를 읽었다.

“여기 ‘영지 배수 체계를 지휘함’은 빼시오.”

에다가 눈썹을 올렸다.

“제가 쓴 문장이 아니에요. 추천 양식의 예시입니다.”

“오늘도 당신이 지휘한 건 종자 분류 두 시각이오. 도랑은 내가 했고, 화단 손실은 사나가 확인했소.”

“그렇게 적어 주세요.”

도란은 ‘종자 재고 분류 기준 작성·두 시각 현장 인계·유실 수량 공개’라고 썼다. 화려하지 않았지만 실제 경력이었다. 에다는 그 문장을 줄이지 않았다.

증명서가 마르는 동안 그녀는 다시 저장고로 갔다. 일을 이어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붉은 끈을 찾기 위해서였다. 작은 초상은 처음 둔 높은 선반에 그대로 있었다. 물은 더 내려갔지만 바닥은 아직 검었다.

카시안이 선대 초상 두 점을 회랑에 세워 두고 기다렸다.

“네 것은 내가 들지 않았다.”

“고마워요.”

에다는 자기 손으로 작은 액자를 들었다. 어머니의 웃는 얼굴 가장자리에는 물 한 방울도 닿지 않았다. 그것이 씨앗보다 중요해서가 아니었다. 씨앗을 먼저 구한 뒤에도 자기가 원하는 하나를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공개판에는 구한 것과 잃은 것이 함께 남았다. 마른 종자 열세 자루, 젖은 아홉, 잠긴 다섯, 보리 한 자루 유실 추정. 서쪽 지붕 반나절 지연, 화단 장식 한 줄 철거, 약초 이식 두 시각. 가문 초상 둘은 카시안 선택, 작은 초상 하나는 에다 선택이었다.

에다는 액자를 서류 가방에 넣지 않았다. 경력 증명서와 개인 물건이 같은 증거가 되지 않게 품에 따로 안았다.

오후 진료 동행표 앞에서 노아가 물었다.

“누나는 오늘도 저장고에 있어?”

“아니. 인계했어.”

“그럼 이 날짜 골라도 돼?”

에다는 가능한 두 날짜 중 학교 수업이 없는 날을 가리켰다.

“그날은 내가 갈게. 오늘 씨앗을 구한 대가로 가는 건 아니고, 내가 고른 약속이라서.”

노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날짜에 자기 확인만 남겼다.

창밖에서는 임시 도랑이 계속 갈색 물을 흘려보냈다. 에다의 방 벽에는 큰 가문 초상 대신 손바닥 두 개만 한 어머니의 그림 하나가 걸렸다.

이번 화가 재미있었나요?

좋아요와 평점은 언제든 변경할 수 있습니다.

독자 평점 아직 없음

댓글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