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가짜 봉투

24시간마다 살인범이 바뀐다 · 2026.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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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봉투

18:01, 강태준은 4번 문을 열지 않았다.

문은 이미 인증 완료 상태였다. 문제는 누가 인증했는지였다. 화면의 계정명은 검은 막대로 가려져 있었고, 물리 카드 로그는 3초 늦게 들어왔다. 고유라는 중앙망 시간을 지우고 로컬 저장 순서를 먼저 세웠다.

“태그는 살아 있어요. 봉투가 프린터에서 나온 게 아니라 대기함에서 움직였어요.”

“좌표는.”

“좌표 아니에요. 접촉 순서만 남아요. 대기함, 문 안쪽 금속면, 누군가의 장갑, 다시 공기 중.”

강태준은 봉투를 따라가지 않았다. 그는 인증 로그를 먼저 봉인했다. 나도 움직이지 않았다. 16화의 조건 때문이었다. 사람을 쫓고 싶을수록, 먼저 기록해야 했다.

18:05, 윤해원이 4번 문으로 왔다.

그는 보안실에서 나온 직후였다. 걸음은 빠르지 않았다. 그런데 곧장 왔다. 망설인 흔적이 없었다. 그는 문 앞의 빈 대기함을 보고 나서야 우리를 봤다.

“무엇을 넣었습니까.”

“종이요.”

내가 말했다.

“내용은.”

“없습니다.”

윤해원의 손이 처음으로 멈췄다. 공손한 표정은 유지됐지만, 손끝이 대기함 가장자리를 한 번 눌렀다.

“내용 없는 입력은 결정 트리를 오염시킵니다.”

“결정 트리라는 말을 드디어 쓰네요.”

그는 내 말을 받아 주지 않았다.

“이건 장난이 아닙니다.”

“사람이 죽는 절차를 만든 쪽에서 할 말은 아닙니다.”

강태준이 둘 사이에 섰다.

“두 분 모두 문장 짧게. 윤해원 부원장, 이 대기함이 움직이면 왜 바로 알 수 있습니까.”

윤해원은 답하지 않았다. 대신 대기함 안쪽을 보았다. 거기에는 우리가 붙인 태그의 아주 작은 은색 가루가 남아 있었다. 그는 그걸 보고서야 우리가 내용보다 이동을 본다는 것을 알았다.

18:12, 윤해원은 부원장실로 돌아가지 못했다.

강태준이 복도에서 진술을 받았다. 공개된 공간이었다. 백소명은 노란 테이프 바깥에 있었고, 고유라는 단말을 들고 있었다. 윤해원은 사람들의 위치를 한 번씩 확인했다. 그는 언제나 듣는 사람을 세고 말한다.

“18시 첫 인증은 정보 순서를 바꿉니다.”

“사망자를 바꾼다는 뜻입니까.”

내가 물었다.

“정보 순서가 사람의 선택을 바꾸고, 선택이 결과를 바꿉니다. 그 이상은 제 의도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의도하지 않은 결과면 책임이 줄어듭니까.”

“줄어들지 않습니다. 다만 살인 행위와 정보 설계는 분리해야 합니다.”

그 말은 맞았다. 그래서 더 듣기 싫었다. 윤해원은 조종자였지만, 공격자라고 단정하면 다른 손을 놓친다. 피해자가 살아서 자기 설계의 경계를 주장하는 장면은 시신보다 복잡했다.

강태준이 물었다.

“가짜 봉투가 어디로 갈지 알고 있었습니까.”

“내용이 없으면 원래는 폐기됩니다.”

“그런데 움직였습니다.”

“누군가 폐기 규칙보다 먼저 가로챘다는 뜻입니다.”

그는 처음으로 우리와 같은 쪽을 보았다. 문 안쪽. 대기함이 비어 있는 자리.

“폐기 규칙을 누가 바꿀 수 있습니까.”

강태준이 물었다.

윤해원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그는 내 쪽을 보지 않고 고유라의 단말을 보았다.

“부원장 권한, 원장 권한, 감사관 임시 권한. 그리고 예외 거래.”

“예외 거래가 Q-13입니까.”

“그 이름은 아직 쓰지 마십시오.”

“이미 워터마크는 봤습니다.”

“워터마크와 기능은 다릅니다.”

그는 선을 그었다. 기능을 말하지 않으면서도, 기능이 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나는 더 묻고 싶었다. 하지만 가짜 봉투는 지금 움직이고 있었다. 윤해원의 지식보다 봉투의 물리 경로가 먼저였다.

백소명은 그 대화를 찍지 않았다. 강태준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말로 물었다.

“부원장님은 사람을 구하려고 봉투를 만든 겁니까, 사람을 움직이려고 만든 겁니까.”

윤해원은 잠깐 눈을 감았다.

“둘을 분리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 대답은 가장 나쁜 종류의 정직함이었다.

18:20, 관제실에서 고유라가 접촉 순서를 띄웠다.

태그는 완벽하지 않았다. 대기함 다음에는 장갑 표면, 그다음에는 금속 트레이, 그다음에는 섬유. 섬유는 가운일 수도 있고, 코트일 수도 있었다. 신호는 복도에서 두 번 튀었고, 한 번 끊겼다가 다시 붙었다.

“GPS처럼 쓰면 안 돼요.”

고유라가 먼저 말했다.

“누가 그렇게 쓰자고 했습니까.”

강태준이 물었다.

“제가 그러고 싶어서요.”

그는 자기 유혹을 먼저 말하고 화면을 줄였다. 접촉 순서만 남기자 길이 보였다. 4번 문, 관제실 앞 복도, 의무실 방향. 계정명은 아직 가려져 있었다. 하지만 물건은 의무실 쪽으로 갔다.

“인증 직전 우선순위가 바뀌었습니다.”

고유라가 다른 로그를 열었다.

“4번 문 대기함이 먼저였는데, 18시 직전에 7번 문 권한이 한 번 끼어들었어요. 이름은 안 떠요. 마스킹.”

윤해원이 화면을 보았다.

“그건 제 단말에서 한 게 아닙니다.”

“믿어 달라는 말입니까.”

“검증해 달라는 말입니다.”

그 문장은 내 방식과 닮아 있었다. 싫다고 해서 틀린 말은 아니다.

고유라는 로그를 두 줄로 나눴다. 하나는 물리 태그, 하나는 인증 우선순위. 물리 태그는 의무실 쪽으로 갔다. 인증 우선순위는 7번 문 권한을 한 번 거쳤다. 두 선은 같은 사람이 아닐 수 있었다.

“하나로 합치면 편한데 틀릴 가능성이 커요.”

그가 말했다.

“분리합니다.”

강태준이 바로 받았다.

윤해원은 그 말을 듣고 입술을 얇게 눌렀다. 자기 설계가 분리되어 해부되는 것을 보는 얼굴이었다. 그는 정보 순서가 사람을 움직인다고 했다. 이제 사람들은 그 정보 순서를 다시 움직여 그를 보고 있었다.

“누가 7번 문을 먼저 넣었습니까.”

내가 물었다.

“계정명은 가려졌습니다. 대신 권한 형식은 남아요. 임시 감사 권한.”

고유라가 말했다.

이주완의 이름이 떠올랐다. 하지만 떠올랐다고 쓰면 안 된다. 나는 장부에 `임시 감사 권한 가능성`이라고만 적었다.

18:35, 태그 신호는 의무실 앞에서 약해졌다.

오세진은 의무실 안에 있었다. 그는 약품 재고표를 보고 있었다. 오른손은 떨리지 않았다. 너무 떨리지 않는 손도 기록해야 했다. 강태준은 문을 열기 전에 오세진에게 밖으로 나오라고 했다.

“무슨 일입니까.”

오세진은 임상어를 준비한 목소리였다.

“방 출입 봉쇄합니다. 사람을 체포하는 게 아닙니다.”

강태준은 먼저 선을 그었다. 오세진은 그 선을 들은 뒤에야 손을 들었다. 방 밖으로 나온 그는 가운 주머니를 비워 보였다. 봉투는 없었다.

태그 신호는 문 안쪽에서 마지막으로 잡혔다. 강태준은 오세진을 벽에 세우고, 나를 문 밖에 세웠다. 단독 행동 금지. 내가 만든 조건이 나를 막았다.

오세진은 벽에 선 채 물었다.

“의무실을 봉쇄하면 환자가 생겼을 때 누가 책임집니까.”

“지금 봉쇄 이유를 기록합니다.”

강태준이 말했다.

“기록이 환자를 살리지는 않습니다.”

그 말은 맞았다. 오세진은 맞는 말을 방패로 쓰는 사람이었다. 강태준은 방패를 빼앗지 않고 범위를 적었다.

“응급 호출은 허용. 서랍 접근은 입회. 카트리지 이동 금지.”

오세진은 그 조건을 듣고 더 이상 항의하지 않았다. 항의하지 않는 것도 기록해야 했다. 그는 서랍을 지키려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미 서랍 안에 일이 끝난 사람처럼 보였다.

18:42, 약품 서랍이 열렸다.

오세진이 열지 않았다. 강태준이 장갑을 끼고 열었다. 고유라가 촬영했다. 서랍 아래 틈에서 빈 봉투가 나왔다. 우리가 넣은 종이는 접힌 상태 그대로였다. 태그는 봉투 모서리에 붙어 있었다. 내용 없는 봉투가 여기까지 온 것이다.

서랍 안에는 같은 외형의 카트리지들이 줄지어 있었다. 라벨은 모두 바깥을 향했다. 한 개만 반대였다. 표식이 안쪽으로 돌아가 있었다.

강태준은 바로 꺼내지 않았다. 먼저 서랍 전체를 촬영하고, 카트리지 사이 간격을 자로 쟀다. 고유라는 그 행동을 답답해했지만 참았다. 답답한 절차가 나중에 누군가의 변명을 줄인다.

“왜 반대인지 묻습니까.”

오세진이 문밖에서 말했다.

강태준이 답했다.

“아직 묻지 않습니다. 먼저 기록합니다.”

오세진은 입을 닫았다. 질문이 오지 않으면 방어 문장도 나오지 않는다. 그 침묵이 더 많은 것을 남겼다.

윤해원은 의무실 문밖에서 서랍을 보지 못했다. 강태준이 일부러 그의 위치를 뒤로 물렸다. 피해자에게 자기 약품 서랍을 보여 주는 것과, 증거를 보존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었다. 윤해원은 항의하지 않았다. 그의 손은 의자 팔걸이를 잡고 있었다.

나는 뒤집힌 카트리지를 보며 장부를 폈다. 17화의 보상은 범인 이름이 아니라 방향이었다. 봉투는 의무실로 왔다. 태그는 서랍 아래서 멈췄다. 물건 하나는 반대로 꽂혀 있었다. 세 가지가 같은 장소를 가리켰다.

나는 바로 말하지 않았다. 5화의 주머니, 12화의 섬유, 14화의 코트 안감이 순서대로 떠올랐다. 물건은 사람이 무심코 고치는 방향을 기억한다.

강태준이 물었다.

“이 중 어느 것이 문제입니까.”

“아직 문제라고 쓰지 마세요. 방향이 다른 것만 씁니다.”

오세진은 문밖에서 서랍을 보지 않았다. 보지 않는 쪽이 더 오래 남았다. 그의 오른손이 가운 주머니 밖에서 한 번 떨렸다.

가짜 봉투는 약품 서랍 밑에 있었고, 같은 카트리지 중 하나만 거꾸로 꽂혀 있었다.

강태준은 서랍을 닫지 않았다. 닫는 순간 누가 나중에 “원래 그랬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열린 상태 그대로 봉인 테이프를 붙이고, 사진을 네 장 찍었다. 정면, 위쪽, 라벨 방향, 서랍 아래 빈 봉투.

오세진은 그 과정을 끝까지 보지 않았다. 시선이 자꾸 윤해원 쪽으로 갔다. 윤해원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자기 이름이 붙은 응급 물품이 증거가 되는 장면을 보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얼굴을 해석하지 않으려고, 나는 그의 손을 봤다. 손은 의자 팔걸이를 잡고 있었고, 손톱 끝이 하얘졌다.

“이 서랍을 아는 사람은 몇 명입니까.”

강태준이 물었다.

오세진이 답했다.

“의무실 권한자와 보호 대상 본인, 보안 책임자.”

“보호 대상 본인?”

윤해원이 말했다.

“응급 카트리지는 제가 직접 위치를 확인합니다. 심장 질환이 있으니까요.”

그 말은 새로운 길을 만들었다. 오세진만 아는 서랍이 아니었다. 윤해원도 안다. 강태준도, 기록상으로는 안다. 의심이 넓어졌다. 그러나 넓어진 의심은 독자를 속이는 것이 아니라, 너무 이른 단정에서 구해 냈다.

고유라가 태그 로그 마지막 줄을 확대했다. 신호는 서랍 아래에서 끊겼다. 누가 넣었는지는 없었다. 대신 넣은 뒤 7초 동안 서랍이 닫혀 있었다는 접촉 간격만 남았다.

“7초면 충분합니까.”

내가 묻자 오세진의 오른손이 살짝 움직였다.

강태준은 그 손을 보며 말했다.

“충분한지 묻지 않습니다. 실제 다음 행동을 봅니다.”

다음 행동은 의무실 감시였다. 봉투는 의무실을 가리켰고, 서랍은 방향이 다른 물건을 품고 있었다. 아직 손은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다음 화가 필요했다.

감시는 체포가 아니었다. 강태준은 그 차이를 먼저 고지했다. 의무실 출입구에는 고유라가, 약품 냉장고 쪽에는 내가, 복도 사각에는 강태준이 섰다. 윤해원은 보호 대상이라는 이유로 안쪽 침상에 앉혀졌다. 그 배치가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었다. 보호라는 말은 자주 격리와 닮는다.

“부원장님을 미끼로 쓰자는 겁니까.”

윤해원이 물었다.

강태준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열린 서랍에 붙인 봉인 테이프 번호를 읽었다.

“미끼로 쓰지 않기 위해 기록합니다. 누가 당신 몸을 먼저 절차로 바꾸는지 보려고요.”

윤해원은 웃지 않았다. 카트리지를 아는 사람이 넓어진 만큼, 그걸 이용할 수 있는 사람도 넓어졌다. 오세진의 오른손만 따라가면 쉬웠다. 쉬운 선은 아직 너무 짧았다. 우리는 그 짧은 선 끝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의무실 시계는 18:11을 가리켰다. 다음 교대까지 4분. 오세진은 원래대로라면 그 시간에 약품 재고 서명을 해야 했다. 고유라는 서명판을 복사해 두고 원본을 제자리에 놓았다. 누가 원본을 집는지 봐야 했다. 강태준은 카메라 각도를 바꾸지 못하게 보안실에 통보했다. 각도가 바뀌면 움직임을 잡을 수 있어도, 왜 바뀌었는지는 또 다른 의심이 된다.

노을은 문틀 뒤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아이에게 숨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12화에서 그의 눈이 본 것을 기억했다. 보이는 사람에게 보지 말라고 하면, 다음에는 우리에게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손가락으로 입술을 가리킨 뒤 장부를 들어 보였다. 말하지 않아도 기록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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