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강태준을 설득하는 법

24시간마다 살인범이 바뀐다 · 2026.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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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준을 설득하는 법

09:30, 나는 예측 세 개를 종이에 썼다.

첫 번째. 10:02 관제실 예비 발전기 경고. 문라희가 왼쪽 패널 앞으로 먼저 이동한다.

두 번째. 10:40 홍상욱 원장이 보안실로 호출한다. 호출 사유는 홍상욱 봉투가 아니라 보관실 봉인 절차다.

세 번째. 11:15 의무실 카트가 오른쪽 벽에서 왼쪽 벽으로 이동한다. 오세진이 직접 민다.

강태준은 내가 쓴 종이를 바로 접지 않았다. 그는 세 문장 옆에 빈칸을 만들었다. `조건`, `개입`, `실패 시 기록`. 예측보다 빈칸이 더 많았다.

“맞힌 항목만 공개하면 협력 종료입니다.”

“틀린 것도 씁니다.”

“틀린 이유를 모르면 모른다고 씁니다.”

“그건 이미 하고 있습니다.”

그는 내 대답을 믿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봉투 두 장을 꺼냈다. 하나에는 예측 종이를 넣고, 다른 하나에는 빈 종이를 넣었다. 빈 종이는 18시 실험용이었다. 내용 없는 가짜 봉투. 종이 한 장에도 추적 태그가 붙었다. 고유라가 만든 작은 은색 점이었다. GPS가 아니라 접촉 로그를 남기는 물건이라고 했다. 벽을 통과하지 못하고, 사람 이름도 알려 주지 않는다. 어디서 누구 손에 닿았는지 일부만 남긴다.

“제한 시간은 10분 단위입니다.”

강태준이 말했다.

“왜 10분입니까.”

“당신이 예측을 이용해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최소 단위가 그 정도였습니다.”

“신뢰의 단위가 아니라 감시의 단위군요.”

“상호 감시라고 했습니다.”

그는 예측 봉투를 봉인했다. 봉투 겉면에는 내 이름과 강태준 이름이 같이 적혔다. 처음이었다. 내 진술 옆에 그의 책임이 붙었다. 그 작은 글자 두 개가 이상하게 무거웠다.

고유라가 봉투 모서리를 촬영했다. 봉인 스티커는 붉은색이 아니라 회색이었다. 눈에 잘 띄면 함정이 먼저 들킨다. 노을은 보안실 밖에서 봉투를 한 번 보고, 문자로 물었다.

`제가 보면 입력이 됩니까.`

강태준은 화면을 읽고 잠깐 멈췄다.

“됩니다. 다만 기록된 입력입니다.”

노을은 고개를 끄덕이고 자기 이름을 관찰자 칸에 적었다. 모두가 배경으로 두던 사람이 이제는 자기가 입력인지 먼저 묻고 있었다. 나는 그 이름을 보며 예측 세 개보다 더 오래 남을 변화라고 생각했다.

“문라희 박사는요.”

고유라가 물었다.

“추적하지 않습니다.”

내 대답은 빨랐다. 강태준이 바로 봤다.

“왜 빠릅니까.”

“추적하고 싶어서요.”

그는 그 대답을 적었다. `문라희 추적 욕구 있음. 10:02 검증 우선.` 감정어보다 덜 부끄러웠지만, 더 정확했다. 사람을 의심하는 마음도 입력이 된다면 적어야 했다.

10:02, 관제실 경고가 울렸다.

예비 발전기 패널의 노란 점이 깜박였다. 문라희는 누구보다 먼저 왼쪽 패널 앞으로 갔다. 그가 움직인 시각은 내 예측보다 3초 빨랐다. 고유라가 손목시계와 로컬 카메라 시간을 동시에 읽었다.

“맞았어요. 10:02:03. 패널 경고.”

내 발은 문라희 쪽으로 움직이려 했다. 3127을 먼저 말한 사람. 설계 문서라는 대체 답을 남긴 사람. 지금도 경고 전에 움직인 사람. 추궁할 이유는 충분했다.

강태준이 내 앞을 막았다.

“예측 검증이 먼저입니다.”

“그가 먼저 움직였습니다.”

“그 사실만 적습니다. 따라가지 않습니다.”

나는 멈췄다. 10분짜리 협력은 이렇게 불편했다. 하고 싶은 질문을 미루고, 먼저 약속한 항목을 확인해야 했다. 문라희는 패널을 열고, 수동 스위치를 올렸다. 그는 우리를 보지 않았다. 보지 않는 것도 행동이었다. 나는 장부에 적었다. `문라희 3초 선행. 추궁 보류.`

경고 자체는 오래가지 않았다. 문라희가 패널을 조정하자 노란 점은 사라졌다. 그는 뒤늦게 도착한 고유라에게 말했다.

“왼쪽 보조 전압이 먼저 흔들렸습니다.”

“화면 보기 전에 어떻게 아셨어요.”

고유라의 질문은 빨랐다. 문라희는 패널 옆의 작은 진동계를 가리켰다.

“진동이 먼저 왔습니다.”

그 설명은 가능했다. 패널 앞에 있던 사람만 느낄 수 있는 설명이었다. 그래서 완전히 지울 수 없었다. 강태준은 진동계 위치를 촬영하게 했다. 문라희가 거짓말을 했다면 반박할 물건이 생겼고, 사실이라면 오답 공간이 살아남았다.

10:40, 홍상욱의 호출은 정확히 왔다.

다만 수신자가 달랐다. 원래는 강태준에게 와야 했다. 강태준이 미리 보안실 대표 수신자를 고유라의 단말로 바꿔 두었다. 호출 문장은 같았지만 대화는 달라졌다.

`보관실 봉인 절차를 확인하겠습니다. 보안 책임자 동석 필요.`

고유라가 화면을 읽고 바로 말했다.

“예측은 맞았는데 결과는 바뀌었어요. 수신자를 바꿨으니까 홍 원장님이 말투를 낮췄어요.”

강태준이 내 쪽을 보았다.

“결과가 아니라 분기점.”

나는 종이에 썼다. `호출 사유 맞음. 수신자 변경으로 대화 내용 변경.` 맞았다와 틀렸다 사이에 새 칸이 생겼다. 그 칸이 중요했다. 루프는 답안지가 아니라 조건문이었다.

홍상욱은 보안실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통화만 남겼다. “기관 전체의 증거 보존”이라는 말을 두 번 썼고, 두 번째에는 주어를 뺐다. 고유라는 통화 파일을 저장했다. 백소명은 밖에서 카메라를 들다가 강태준의 시선을 보고 렌즈를 내렸다.

“수신자를 바꾼 건 입력입니까, 방어입니까.”

백소명이 테이프 밖에서 물었다.

강태준은 그에게 대답하지 않고 나를 봤다.

“둘 다입니다.”

내가 말했다.

“둘 다라는 말은 편합니다.”

“그래서 근거를 붙입니다. 홍상욱이 호출한 사실은 같고, 수신자가 바뀌면서 대화의 압력이 낮아졌습니다. 결과를 바꾼 건 방어가 아니라 수신자 변경입니다.”

강태준은 그 문장을 줄여 적었다. `같은 호출 / 다른 수신자 / 다른 압력.` 그가 내 문장을 그대로 쓰지 않고 줄였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공동 장부는 내 독백이 아니어야 했다.

11:15, 세 번째 예측은 틀렸다.

의무실 카트는 움직이지 않았다. 오세진은 카트 앞에 서 있었지만 손잡이를 잡지 않았다. 카트 바퀴 아래의 작은 물길이 사라져 있었다. 바닥이 말라 있었다.

노을이 문자로 설명했다.

`아침에 물이 고여 있어서 닦았습니다. 카트가 미끄러질 수 있어서요.`

그는 자기가 바꾼 입력을 먼저 말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다. 카트가 움직이지 않은 이유는 오세진의 마음이 바뀌어서가 아니었다. 바닥의 물이 사라졌고, 손잡이를 밀 이유가 없어졌다.

오세진은 우리를 보고 말했다.

“위험 요소는 제거된 상태였습니다.”

“누가 제거했는지 알고 있었습니까.”

강태준이 물었다.

“바닥이 말랐다는 것만 확인했습니다.”

그는 안전이라는 임상어 뒤에 숨었다. 그러나 이번 오답은 오세진을 숨겨 주지 않았다. 바닥 물 하나가 입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더 선명하게 했다. 나는 장부에 오답을 지우지 않았다. 굵은 선도 긋지 않았다. `틀림. 노을 선행 청소로 카트 이동 원인 제거.`

오세진은 그 문장을 보더니 말했다.

“위험 요소 제거는 좋은 일입니다.”

“좋은 일과 입력 변경은 같이 갈 수 있습니다.”

내가 답했다.

노을은 휴대폰에 다시 적었다.

`제가 바꾼 건 바닥입니다. 카트 안은 모릅니다.`

그 문장을 보자 세 번째 예측의 실패가 더 분명해졌다. 틀린 예측이 사람 하나를 지우는 게 아니라, 관찰 범위를 늘렸다. 노을은 바닥을 바꿨고, 오세진은 카트 안을 아직 숨겼다.

11:40, 강태준은 보안실 문을 닫았다.

테이블 위에는 예측 봉투, 오답 장부, Q-13 키 접촉 기록표가 놓였다. 그는 먼저 내 목의 키를 보았다.

“키는 넘기지 않습니다.”

내가 먼저 말했다.

“요구하지 않습니다. 대신 접촉 기록을 남깁니다. 누가 봤고, 언제 열이 났고, 언제 진동했는지. 단독 비밀 접근 금지.”

“비밀 접근이라는 말은 넓습니다.”

“한도경 파일, 윤해원 독대, 문라희 장치, 의무실 서랍. 넓게 잡습니다.”

그는 넓은 말을 싫어하면서도 일부러 넓게 잡았다. 나도 거절할 수 없었다. 내가 넓게 숨긴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위반하면.”

“협력 종료. 그리고 당신의 예측 봉투는 제 기록으로 넘어갑니다.”

“제게도 조건이 있습니다.”

강태준이 펜을 멈췄다.

“당신도 단독 판단으로 저를 격리하지 않습니다. 격리가 필요하면 사유와 시간을 먼저 씁니다.”

그는 오래 보았다. 그 요구가 마음에 들 리 없었다. 보호를 명분으로 선택권을 빼앗는 버릇이 있는 사람에게, 먼저 쓰라는 조건은 손목의 부상처럼 걸릴 것이다.

“위험하면 즉시 제압합니다.”

“제압 후 기록하지 말고, 제압 전 가능한 범위를 씁니다.”

그는 한 줄을 추가했다. `긴급 제압 예외: 사후 3분 안에 사유 기록.` 완벽하지 않았다. 그래도 전보다 나았다. 우리는 신뢰를 얻지 않았다. 서로가 틀릴 때 남길 문서를 얻었다.

고유라는 그 조건표를 보고 손을 들었다.

“저도 하나요. 기술 판단을 제 이름으로 남길게요. 대신 제가 모른다고 한 걸 나중에 알고 있었다고 쓰지 마세요.”

“승인합니다.”

강태준이 말했다.

고유라는 놀란 얼굴을 했다. 허락을 받을 줄 몰랐던 사람처럼.

“노을 씨는요.”

노을은 잠시 화면을 봤다. 그리고 짧게 썼다.

`통역 없는 회의에는 증언 안 합니다.`

강태준은 그것도 적었다. 상호 감시는 나와 강태준만의 일이 아니었다. 입력을 기록하려면, 입력을 보는 사람에게 말할 권한도 있어야 했다.

17:50, 4번 문 앞에 빈 봉투가 놓였다.

고유라는 추적 태그의 시험 신호를 확인했다. 봉투 안에는 아무 내용도 없었다. 이름도 없고, 비밀도 없었다. 강태준은 봉투를 프린터 투입함에 넣지 않았다. 직접 4번 문 인증 대기함에 넣었다. 시스템이 진짜 봉투로 오해하면 안 됐다. 사람만 오해해야 했다.

“누가 먼저 반응하는지 봅니다.”

강태준이 말했다.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

“사람과 시스템이 같이 움직일 수도 있습니다.”

고유라가 덧붙였다. 그는 화면을 확대했다. 18:00:00이 가까워졌다. 중앙망은 63초 늦었지만, 이번에는 독립 시계를 기준으로 잡았다.

17:59:59.

아무도 문 앞에 없었다. 윤해원은 보안실에, 오세진은 의무실에, 이주완은 회의실에 있었다. 문라희는 관제실. 적어도 우리가 본 위치는 그랬다.

18:00:00.

4번 문 리더가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고유라의 화면에 짧은 문장이 떴다.

`인증 완료.`

강태준은 바로 문으로 가지 않았다. 먼저 우리 위치를 확인했다. 나, 고유라, 노을, 백소명, 윤해원, 오세진. 적어도 보이는 사람들은 각자 다른 곳에 있었다. 보이는 위치와 실제 인증은 다를 수 있었다. 그걸 14화에서 배웠다.

“계정명.”

고유라가 화면을 두드렸다.

“마스킹이에요. 그런데 인증 장치가 물리 카드가 아니라 대기함 내부 토큰으로 찍혔어요.”

“가짜 봉투가 토큰이 됐습니까.”

“아뇨. 봉투에 닿은 누군가의 권한이 대기함에 먼저 들어온 거예요. 봉투는 미끼고요.”

강태준은 그 문장을 적었다. 나는 문에 손대지 않았다. 10분 단위 협력의 첫 시험이었다. 18시의 본능은 문을 열라고 했다. 조건표는 먼저 기록하라고 했다.

윤해원은 보안실 유리문 안쪽에서 그 알림을 보고 있었다. 그는 놀라지 않았다. 놀라지 않는다고 쓰고 싶지는 않았다. 대신 그가 의자에서 일어나는 데 걸린 시간을 썼다. 알림 후 2초. 너무 빨랐다.

“부원장님이 먼저 반응했습니다.”

고유라가 말했다.

“반응은 기록합니다. 의도는 아직 쓰지 않습니다.”

강태준의 목소리가 낮았다. 그 말이 이번 동맹의 첫 결론이었다. 사람을 믿어서가 아니라, 아직 확정하지 않기 위해 같이 움직인다.

내용 없는 가짜 봉투가, 누군가에 의해 문을 통과했다.

나는 그 문장을 장부에 옮긴 뒤 시간을 한 번 더 적었다. 18:00:13. 알림이 살아 있던 시간과 같았다. 봉투는 열지 않았다. 손이 닿으면, 다음 루프에서 우리가 무엇을 먼저 망쳤는지 알 수 없어진다.

“위치만 기록합니다.”

강태준이 말했다.

문 앞, 보안실, 의무실, 그리고 윤해원의 자리. 네 점을 선으로 잇자 병원 복도가 지도처럼 보였다. 선은 범인을 가리키지 않았다. 대신 다음 질문을 만들었다. 누가 저 빈 봉투가 열리기 전에 반응했는가. 누가 봉투보다 먼저 봉투의 의미를 알았는가.

고유라는 리더의 녹색 불을 확대해 저장했다. 강태준은 봉투와 우리 손 사이의 거리를 쟀다. 나는 그 숫자까지 적었다. 42센티미터.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거리도 다음 루프에서는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지금은 사소한 것부터 붙잡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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