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서이현
24시간마다 살인범이 바뀐다 · 2026.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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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 서이현
11:05, 강태준은 내 코트를 먼저 가져갔다.
사람을 구금하기 전에 물건을 분리했다. 그의 방식이었다. 코트, 가방, 휴대 단말, 새 녹음기, 손목시계. 목의 Q-13 키는 마지막에 남았다. 그는 그것을 바로 빼앗지 않았다. 손을 뻗었다가 멈추고, 내 얼굴을 보았다.
“이건 증거물입니까, 신체 부착물입니까.”
“유품입니다.”
“질문에 없는 분류입니다.”
“지금 떼면 제가 협조를 멈춥니다.”
강태준은 내 말을 협박으로 처리하지 않았다. 대신 기록했다. `Q-13 체인, 본인 거부로 현 상태 유지.` 절차는 가끔 사람을 살리고, 가끔 사람을 조인다.
코트는 보관함 위에 펼쳐졌다. 나는 안쪽 주머니를 봤다. 아무것도 없어야 했다. 내가 넣은 것은 펜과 손수건뿐이었다. 강태준은 오른쪽 안주머니, 왼쪽 안주머니, 아래쪽 봉제선을 차례로 확인했다.
왼쪽 안주머니에서 작은 금속 소리가 났다.
관리 키였다.
윤해원의 것이 아니었다. 같은 모양이지만 번호가 달랐다. 보안 관리용 예비 키. 손잡이에는 미세한 흠집이 있었고, 작은 라벨은 반쯤 벗겨져 있었다. 나는 그 키를 본 기억이 없었다.
“설명하십시오.”
“넣은 적 없습니다.”
“없는 기억입니까, 없는 행위입니까.”
강태준은 기억과 행위를 나눴다. 루프를 말하지 않아도 나를 가장 정확히 압박하는 방식이었다.
“제가 넣지 않았습니다.”
“누가 넣었습니까.”
나는 6화의 부원장실을 떠올렸다. 백소명의 카메라, 이주완의 파일, 닫힌 서랍. 이주완은 한 번 내 코트에 가까이 왔다. 봉투를 봉인하겠다며 책상 옆으로 이동할 때였다. 하지만 봤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기억 속 장면에 손이 스쳤다는 정도로 사람을 지목하면, 내가 싫어하는 불공정한 추리가 된다.
“아직 모릅니다.”
강태준은 키를 투명 봉투에 넣었다.
“아직이라는 말은 나중에 안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나중에 확인하겠다는 뜻입니다.”
“그 확인을 당신 혼자 하게 둘 이유가 줄었습니다.”
보관실 문밖에 이주완이 서 있었다. 그는 들어오지 않았다. 들어오지 않는 것이 더 정확한 위치였다. 절차상 참관이 아니고, 우연히 지나간 것도 아니며, 필요하면 봤다고 말할 수 있는 거리. 그는 문틀 바깥에서 키가 담긴 투명 봉투만 보았다.
“증거물 목록에 소유자를 적을 겁니까, 발견 위치를 적을 겁니까?”
강태준은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공식 절차가 시작되면 통지하겠습니다.”
“이미 시작된 것처럼 보여서요.”
“보이는 것과 시작된 것은 다릅니다.”
이주완은 그 말을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 언어를 들은 사람처럼 잠깐 기다렸다.
“서이현 씨. 지금 하는 모든 설명은 나중에 불리하게 쓰일 수 있습니다. 침묵도 불리하게 읽힐 수 있고요.”
“조언입니까, 경고입니까.”
“둘 다 비용이 있습니다.”
그는 내 코트를 보지 않았다. 너무 보지 않아서 오히려 봤다는 느낌이 남았다. 나는 그를 지목할 수 없었다. 그는 그 점을 알고 있었다. 접근 기회를 만든 사람은 손을 남기지 않아도 된다. 의심을 먼저 말하는 쪽이 손해를 본다.
강태준이 문을 닫았다. 이주완은 저항하지 않았다. 닫힌 문 유리에 그의 실루엣이 잠깐 남았다가 사라졌다. 그 짧은 장면도 증거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나중에 확인해야 할 행동은 됐다.
11:20, 심문실의 벽시계는 중앙망을 따랐다.
나는 손목시계를 빼앗기기 전에 시각을 봤다. 중앙 11:20:00, 손목 11:21:03. 강태준은 그 차이를 알고 있었다. 그는 중앙 시각만 적지 않았다. 내 손목시계 시간도 같이 적었다. 고유라에게 확인받은 뒤였다.
“23:52, Q-13 접근 로그.”
그는 첫 장을 밀어 놓았다. 내 이름은 없었다. 사용자명은 사망 처리된 서도윤 권한으로 남아 있었고, 접근 단말은 D-13 감사 파티션이었다. 그 자체는 내가 알고 있는 사실과 맞았다. 문제는 두 번째 장이었다.
“윤해원 부원장 접촉 기록. 23:48, 부원장실 앞. 23:56, 보정실 진입로.”
“한 번만 만났습니다.”
“어느 쪽입니까.”
“23:48은 실제입니다. 23:56은 아닙니다.”
“왜요.”
그 질문에는 답이 있었다. 23:56에 나는 D-13 감사 단말 앞에서 경보 음소거를 했고, 원본 복사율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말하면 첫 하루의 9분까지 같이 나온다. 윤해원이 죽기 전 구조 요청과 내 선택. 내가 아직 말하지 않은 선택.
“다른 장소에 있었습니다.”
“증명할 수 있습니까.”
“현재 기록으로는 어렵습니다.”
“그럼 내 앞에 있는 기록은 현재 기록입니다.”
강태준은 멍청한 방해꾼이 아니었다. 그는 가진 기록으로 가장 합리적인 결론을 냈다. Q-13 권한을 가진 사람. 코트에서 관리 키가 나온 사람. 중앙망 오차를 핑계로 알리바이와 타인의 동선을 바꾸려는 사람. 그리고 죽은 사람을 미리 말하는 사람.
그게 나였다.
“루프를 말하면 믿겠습니까.”
강태준은 펜을 멈췄다.
“그 단어를 진술로 남길 겁니까.”
나는 입을 닫았다. 그는 내 회피를 기록하지 않았다. 기록하지 않는 대신 다시 물었다.
“서이현 씨가 지금 숨기는 건 사건 해결에 필요한 사실입니까, 본인 방어에 불리한 사실입니까.”
“둘 다입니다.”
그는 처음으로 눈을 좁혔다. 좋은 대답이 아니라, 쓸 수 있는 대답을 들은 얼굴이었다.
“그럼 본인 방어에 불리한 쪽부터 확인하겠습니다.”
11:40, 나는 63초 오차를 반박으로 썼다.
반박이라고 부르기엔 좁았다. 23:56 보정실 진입로 기록이 중앙망 기준이라면 실제 시각은 23:57:03이거나, 반대로 조작된 보정 뒤의 값일 수 있다. 63초 오차가 모든 것을 무효로 만들지는 않는다. 다만 한 줄의 절대성을 깨뜨린다.
“중앙망 종속 기록만 늦습니다. 독립 장치와 맞지 않습니다. 고유라가 재현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럼 23:56 로그도 보정해야 합니다.”
“보정해도 두 번째 만남 자체는 남습니다.”
강태준은 자료를 넘겼다. 화면 캡처가 있었다. 복도 CCTV. 내 코트와 비슷한 검은 코트. 윤해원의 흰 셔츠. 화질은 낮고, 얼굴은 분명하지 않았다. 중앙 시각 23:56:12.
“이게 저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단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구금입니다.”
“구금과 단정 사이가 너무 가깝습니다.”
“사람이 죽을 수 있는 사건에서는 그렇습니다.”
그는 절차를 방패로 쓰지 않았다. 절차가 가진 폭력을 숨기지도 않았다. 그 점 때문에 더 빠져나가기 어려웠다. 나는 그가 틀렸다고 말할 수 없었다. 다만 기록이 틀렸다는 쪽으로 좁혀야 했다.
“23:56에 윤해원 부원장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걸 묻는 이유는요.”
“윤 부원장이 실제로 그 장소에 없었다면, 두 번째 만남 로그는 둘 다 조작입니다.”
강태준은 바로 윤해원을 부르지 않았다. 먼저 내 말을 적었다. `피심문자, 두 번째 접촉 로그의 양측 조작 가능성 주장.` 문장이 딱딱해질수록 내 말은 안전해지고, 동시에 멀어졌다.
“부원장님은 당신을 도우려 할 수 있습니다.”
“믿지 않아도 됩니다. 위치만 확인하면 됩니다.”
“위치를 확인하는 동안 당신은 여기 있습니다.”
“그건 예상했습니다.”
“예상.” 강태준이 되물었다.
나는 실수한 단어를 삼켰다. 너무 많이 안다는 느낌은 매번 나를 용의자로 만든다. 정보 우위는 무기가 아니라 지문이었다.
강태준은 보안요원에게 윤해원 위치 확인을 지시했다. 스피커가 꺼지지 않은 상태라, 통화 일부가 들렸다. 윤해원은 23:56이 아니라 23:50 이후 홍상욱 사무실 앞 복도에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건 윤해원의 말이었다. 홍상욱 측 수행 직원의 확인이 필요했고, 중앙 CCTV는 다시 63초 문제에 걸렸다.
“윤 부원장님 진술은 당신에게 유리합니다.” 강태준이 말했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합니다.”
“유리한 진술을 의심합니까.”
“윤 부원장은 사람을 살리려고도 하고, 사람을 움직이려고도 합니다.”
그는 그 문장을 적었다.
“피해자를 그렇게 표현하는군요.”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피해자라고만 부르면 그 사람이 한 일을 놓칩니다.”
강태준은 이번에는 바로 반박하지 않았다. 그도 윤해원이 완전한 피해자로만 남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이 나를 무죄로 만들지는 않았다.
12:00, 보관실 관찰창 너머로 내 코트가 보였다.
강태준은 나를 심문실 밖으로 데려가지 않았다. 대신 보관실 CCTV를 관찰창 화면으로 띄웠다. 코트와 가방이 각각 투명 상자에 들어 있었다. 관리 키는 별도 증거 봉투 안에 있었다. 그 배치를 보고서야 나는 6화의 장면을 다시 계산했다.
부원장실에서 이주완은 내 오른쪽에 있었다. 백소명은 문 쪽. 이주완이 파일을 펼치며 서랍 앞에 섰을 때, 내 코트는 책상 뒤 의자에 걸려 있었다. 그는 봉투를 봉인하겠다고 말하며 의자 쪽으로 반 걸음 움직였다. 그때 내 시선은 백소명의 카메라를 따라갔다.
손이 스쳤는지는 보지 못했다.
보지 못한 것을 본 것처럼 말하면 이주완만 좋은 위치에 놓인다. 그는 그런 오류를 기다리는 사람이다.
“누가 접근했습니까.” 강태준이 물었다.
“가능성은 있습니다. 확인은 안 됐습니다.”
“이름은요.”
“지금 말하면 추측입니다.”
“추측이라도 기록합니다.”
“그 사람이 변호사면, 제 추측을 먼저 고소장으로 바꿀 겁니다.”
강태준은 내 말을 듣고 아주 짧게 멈췄다.
“이주완 감사관.”
내가 말하지 않은 이름을 그가 말했다. 나는 부정하지 않았다. 부정하면 다른 거짓말이 된다.
“접근 기회는 있었지만, 넣는 장면은 못 봤습니다.”
“그렇게 적겠습니다.”
그는 적었다. 그 문장은 적어도 공정했다. 이주완이 프레임을 씌웠다고 단정하지 않는다. 키가 순간이동했다는 말도 하지 않는다. 접근 기회와 미확인. 지금은 그 정도가 한계였다.
“그럼 백소명은요.” 강태준이 물었다.
“카메라가 있었습니다. 코트에는 가까이 오지 않았습니다.”
“봤습니까.”
“제가 본 범위에서는요.”
“본 범위.”
그는 다시 되짚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보지 못한 곳은 비워 둬야 한다. 백소명은 서랍 반사를 찍으려 했고, 이주완은 봉인지를 꺼냈다. 둘 다 자기 욕망대로 움직였다. 하지만 코트에 손을 댄 기회는 이주완 쪽이 컸다. 크다는 말과 했다는 말 사이에 심문실 하나가 들어갈 만큼의 거리가 있었다.
강태준은 화면을 되감았다. 보관실 화면이 아니라 부원장실 앞 복도 화면이었다. 중앙망 기록이라 63초 오차가 붙어 있었다. 이주완이 내 코트가 걸린 의자 쪽으로 반 걸음 이동하는 장면은 보였지만, 손은 책상에 가렸다. 백소명은 카메라를 들고 문가에 있었다. 윤해원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가려졌습니다.” 강태준이 말했다.
“네.”
“가려진 곳에 당신의 무죄가 있을 수도 있고, 범행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기 있습니다.”
그는 화면을 멈췄다. 이주완의 손이 보이지 않는 바로 그 프레임. 내가 가장 싫어하는 종류의 증거였다. 모자란데, 버릴 수 없는 것.
12:10, 강태준은 마지막 장을 꺼냈다.
종이는 다른 두 장보다 새것이었다. 출력 잉크 냄새가 아직 남아 있었다. 상단에는 `Q-13 접근 연동 접촉 로그`라고 적혀 있었다. 중앙 시각과 사용자, 위치, 상대 인물이 한 줄씩 있었다.
그는 종이를 내 앞에 밀었다.
“당신은 죽기 전 윤해원을 두 번 만났습니다.”
문장 안의 `죽기 전`이 누구의 죽음을 가리키는지 묻지 않았다. 윤해원의 죽음. 첫 하루의 죽음. 내가 막으려다 다른 사람을 죽게 만든 죽음. 강태준은 그중 어느 것도 믿지 않으면서 가장 불리한 문장만 골랐다.
로그에는 23:48과 23:56이 있었다.
나는 23:56 줄의 초 단위를 보았다. 12초. 중앙망을 63초 보정하면 23:57:15가 된다. 그런데 같은 장의 Q-13 접근 시작은 23:57:03으로 찍혀 있었다. 나는 두 장소에 12초 간격으로 있을 수 없다. 중앙망 오차를 적용해도, 적용하지 않아도 모순이 남는다.
“이 줄은 늦게 만들어졌습니다.”
강태준은 나를 보았다.
“근거.”
“같은 보정 기준을 적용하면 제가 두 장소에 겹칩니다. 적용하지 않으면 Q-13 접근보다 먼저 생성된 접촉 로그가 됩니다. 둘 중 하나가 틀린 게 아니라, 한 줄이 다른 규칙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는 종이를 다시 가져가지 않았다. 내 앞에 그대로 두었다. 내가 더 볼 수 있게. 그건 작은 허가였다.
“조작이라고 주장합니까.”
“조작 가능성이 유력합니다.”
“누가요.”
나는 답하지 않았다. 이주완을 떠올렸고, 윤해원을 떠올렸고, 아직 이름이 없는 봉투를 떠올렸다. Q-13 워터마크. 열두 봉투. 첫 인증 문. 그리고 내 코트에 들어 있던 관리 키.
“아직 모릅니다.”
강태준은 펜을 내려놓았다.
“모른다는 말을 세 번째 했습니다.”
“모르는 걸 안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심문실 문을 잠갔다. 노란 표시가 붉게 바뀌었다.
붉은 표시가 켜지자 벽면 녹음등도 같이 들어왔다. 지금부터 내 말은 방어가 아니라 진술로 저장된다. 나는 그 불빛을 봤고, 강태준도 내가 봤다는 것을 알았다.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그가 말했다. “첫 하루에 윤해원 부원장의 구조 요청을 언제 들었습니까.”
질문이 너무 정확했다.
나는 숨을 고르지 않았다. 숨을 고르면 감정처럼 보인다. 대신 손가락을 탁자 아래로 접었다. 23:55:02. 경보. 음소거. 복사율 89. 내가 말하지 않은 숫자들이 순서대로 올라왔다.
“그 질문은 지금 사건과 직접 관련 있습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대답하면 다른 진술이 필요합니다.”
“대답하지 않으면 구금 사유가 강화됩니다.”
그는 선택지를 줬지만, 둘 다 좁았다. 윤해원이 살아 있고, 강태준이 살아 있고, 오세진이 살아 있는 현재에서 내가 숨긴 9분은 아직 죽은 기록처럼 남아 있었다. 죽은 기록은 사람을 살리지 못한다. 하지만 너무 빨리 꺼내면 모두가 내가 죽인 사람부터 본다.
“지금은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강태준은 그 문장을 적었다. 비난하지 않았다. 그게 더 나빴다. 그는 감정을 빼고 내 침묵을 증거로 만들었다.
“서이현 씨. 지금부터 공식 구금입니다.”
종이 위의 23:56:12가 눈에 남았다. 숫자는 좁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좁은 틈이 충분했다. 나를 용의자로 만들기에는 63초보다 작은 틈이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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