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열두 개의 봉투

24시간마다 살인범이 바뀐다 · 2026.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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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개의 봉투

17:20, 부원장실 서랍은 잠겨 있지 않았다.

잠금 장치는 닫힌 소리만 냈고, 걸쇠는 반쯤 물려 있었다. 윤해원은 키를 오른쪽 상의 주머니에 넣는 사람이다. 문을 나설 때마다 주머니 위를 누르고, 서랍을 잠근 뒤에는 손끝으로 당겨 확인했다. 그런데 이 서랍만 당긴 흔적이 없었다.

나는 손잡이를 잡기 전에 문틈을 보았다.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유리창에는 태풍 때문에 낮은 회색만 붙어 있었다. 강태준은 보안실 쪽 호출을 받으러 갔고, 윤해원은 홍상욱과 10분 면담 중이었다. 10분이라는 말은 윤해원이 직접 정했다. 그가 정한 시간은 보통 넉넉하지 않았다.

서랍은 손가락 한 마디만큼 열렸다.

안쪽에는 봉투가 있었다.

열두 장. 모두 같은 크기, 같은 흰색, 같은 왼쪽 위 번호. 이름만 달랐다. 강태준, 오세진, 홍상욱, 문라희, 고유라, 노을, 배준호, 정무겸, 백소명, 이주완, 한도경, 윤해원. 이름들은 가나다순도 직급순도 아니었다. 첫 줄 네 장은 문 번호처럼 보이는 숫자와 같이 묶여 있었다. 4, 7, 12, 1. 숫자가 사람보다 앞에 있었다.

나는 봉투를 꺼내지 않았다. 꺼낸 순간 위치가 바뀐다. 위치가 바뀌면 윤해원이 내가 무엇을 봤는지보다 무엇을 만졌는지 먼저 알 것이다.

봉투 오른쪽 아래에는 작은 절취선이 있었다. 열기 쉽도록 만든 선이 아니라, 한 번 열면 다시 맞출 수 없게 만든 선이었다. 강태준 봉투의 절취선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세진 봉투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들어가 있었다. 사람마다 다르게 찢기도록 설계된 모양이었다. 내용이 아니라 개봉 흔적을 남기는 장치. 그 정도까지 보면, 이건 보관물이 아니었다. 누가 열었는지, 어떤 방향으로 열었는지까지 나중에 따질 수 있는 물건이었다.

나는 이름 순서를 손가락으로 세지 않았다. 눈으로만 세었다. 열두 명. 이 연구원에 고립된 사람 수와 맞았다. 그런데 번호는 열둘보다 적게 보였다. 4, 7, 12, 1 다음에는 번호가 없고 작은 점만 있었다. 점 세 개, 빈칸 하나. 이름은 있는데 문이 없는 봉투와, 문은 있는데 이름이 없는 봉투가 섞여 있었다.

가장 아래에 이름 없는 봉투가 한 장 있었다. 종이는 더 얇았다. 빛이 뒤에서 들어오자 안감의 결이 보였다. 겉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번호도 없고, 이름도 없었다.

문밖에서 렌즈 덮개가 열리는 작은 소리가 났다.

나는 서랍을 닫지 못했다. 닫으면 소리가 난다. 열어 둔 채로 몸을 돌렸다.

백소명이 문틀에 기대어 서 있었다. 목에는 홍보팀 임시 출입증이 걸려 있었고, 손에는 작은 카메라가 있었다. 카메라의 빨간 점은 켜져 있었다. 그는 문 안으로 들어오기 전에 렌즈를 먼저 들이밀었다.

“부원장 없는 방에서 열린 서랍. 제목은 좋네요.”

“촬영 허가는 누가 했습니까.”

“홍보 영상 작가입니다. 빈 방 스케치 정도는 허가받았죠.”

“빈 방이 아닙니다.”

백소명은 웃지 않았다. 웃으면 민폐 기자가 되고, 웃지 않으면 일하는 사람으로 남는다. 그는 그 경계를 잘 알았다.

“그럼 더 좋네요. 사람이 들어간 방은 편집점이 생기거든요.”

그의 카메라는 내 얼굴보다 서랍을 먼저 향했다. 나는 손바닥으로 렌즈를 가렸다. 렌즈가 손바닥에 닿기 전, 그는 이미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반응이 빨랐다.

“서랍 안쪽은 촬영하지 마십시오.”

“그 안쪽이 오늘 죽을 사람을 살립니까, 아니면 죽은 사람을 설명합니까?”

질문 안에 기사 제목이 들어 있었다. 그는 홍보 영상 작가라고 말했지만, 질문은 홍보팀의 것이 아니었다. 홍보는 살아 있는 사람을 예쁘게 세운다. 백소명의 질문은 죽은 사람의 위치를 먼저 잡았다.

“그 질문을 누구에게 들었습니까.”

“질문은 제가 만듭니다. 답은 사람들이 흘리고요.”

그가 다시 렌즈를 들었다. 이번에는 내 손이 아니라 서랍의 반사 쪽이었다. 책상 유리에 봉투 가장자리가 비쳤다. 백소명은 직접 찍지 않고도 찍을 수 있는 각도를 찾고 있었다.

“홍보 영상이면 왜 렌즈가 사람보다 서랍을 먼저 봅니까.”

“사람은 나중에 인터뷰하면 됩니다. 물건은 치워지면 끝이에요.”

“누가 치울 거라고 생각합니까.”

“여기 있는 사람 전부요.”

그는 말을 빠르게 던지고 내 반응을 봤다. 질문 안에 이미 제목이 들어 있었다. `치워지는 증거`. 윤해원이 원하는 공개인지, 백소명이 원하는 특종인지, 이주완이 원하는 거래인지 아직 구분되지 않았다. 다만 백소명은 이 방에 빈손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렌즈가 있었고, 제목이 있었고, 자기가 찍히는 위험을 감수할 욕망도 있었다.

나는 서랍을 닫았다. 일부러 천천히 닫았다. 닫는 동안 백소명의 렌즈는 내 손, 손잡이, 서랍 틈을 차례로 따라왔다.

“카메라 끄세요.”

“기록이 없으면 나중에 말이 바뀝니다.”

“동의 없는 기록은 증거가 아니라 약점입니다.”

그 문장은 내 것이 아니었다. 강태준이나 이주완이 더 잘 쓸 말이었다. 나는 말하고 나서야 내 문장에 법률 냄새가 섞였다는 것을 알았다.

문밖에서 다른 구두 소리가 멈췄다.

이주완은 손에 검은 파일을 들고 있었다. 재단 법무감사관이라는 명패는 이미 그의 목소리보다 먼저 방 안에 들어왔다. 그는 백소명의 카메라와 내 손, 닫힌 서랍을 차례로 보았다.

“그 문장을 기록에 남길 겁니까?”

내가 아니라 백소명에게 한 말이었다.

백소명은 카메라를 내리지 않았다.

“남기면 곤란한가요?”

“곤란한 사람보다 무효가 되는 증거가 먼저입니다. 사적 촬영, 무권한 접근, 원본 위치 훼손. 셋 중 하나만 있어도 상대방은 웃으면서 배척 신청을 할 겁니다.”

이주완은 봉투를 보지 못했는데도 봉투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처럼 말했다. 아니, 정확히는 봉투가 아니라 원본 통제권을 보았다. 그는 시체보다 서명, 죽음보다 증거능력을 먼저 보는 사람이다.

“감사관님은 왜 오셨습니까.”

“부원장실의 감사 문서를 봉인하러 왔습니다.”

“윤 부원장 허가가 있습니까.”

“허가가 필요하다는 문장은 어느 규정에 있습니까?”

그는 조건문으로 대답했다. 백소명과 정반대였다. 백소명은 질문에 제목을 숨겼고, 이주완은 문장마다 빠져나갈 괄호를 넣었다.

나는 책상과 두 사람 사이에 섰다.

“지금은 아무도 봉투를 열지 않습니다.”

둘의 시선이 동시에 내게 왔다. 내가 봉투라는 단어를 먼저 꺼냈다. 실수였다. 백소명의 카메라가 아주 조금 내려갔다. 렌즈가 아니라 귀가 움직인 사람처럼.

“봉투가 있군요.” 백소명이 말했다.

이주완은 내 말을 바로 물지 않았다. 대신 책상 서랍의 손잡이를 보았다.

“서이현 씨가 먼저 본 겁니까?”

“봤습니다. 열지는 않았습니다.”

“그 차이를 나중에 증명할 수 있습니까?”

“지금 카메라를 끄면 어렵겠죠.” 백소명이 말했다.

이주완은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당신 촬영물이 더 위험합니다. 봉투를 열었다는 증거가 아니라, 봉투가 열릴 수 있었다는 소문을 만들 테니까.”

백소명의 손가락이 녹화 버튼 위에서 멈췄다. 그는 카메라를 껐다. 완전히 포기한 것이 아니라, 지금 켜 둔 채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나중에 꺼내 쓸 장면이 더 크다고 판단한 얼굴이었다.

17:30, 방 안의 셋은 모두 서랍을 보지 않는 척했다.

보지 않는 척하는 순서는 달랐다. 백소명은 벽의 사진을 찍는 척하며 유리 반사를 썼다. 이주완은 파일철을 펴고 서류 모서리를 맞추며 서랍 손잡이와 내 위치를 재고 있었다. 나는 문밖 발소리를 세었다. 윤해원은 10분 면담이라고 했다. 10분은 지났다.

“봉투를 봉인하겠습니다.” 이주완이 말했다.

“봉인하면 누가 열 수 있습니까.”

“절차상 지정된 보관자가 열 수 있습니다.”

“지정자는요.”

“그 문장을 지금 만들 수 있습니다.”

그는 웃지 않고 말했다. 농담이 아니라 제안이었다. 어느 쪽이 이기든, 문장을 가진 사람이 원본을 가진다. 이주완은 봉투 내용보다 봉투를 열 권한을 먼저 원했다.

그는 파일에서 얇은 봉인지를 꺼냈다. 빨간 실이 붙은 종이였다. 서랍에 붙이면 열 때 찢어진다. 법률 문서에서는 보전이고, 지금 이 방에서는 선점이었다. 봉인지가 붙는 순간, 나와 백소명은 훔쳐본 사람이 되고, 이주완은 지킨 사람이 된다. 같은 행동도 먼저 붙인 이름에 따라 역할이 달라진다.

“그걸 붙이면 봉투 순서도 바뀝니다.”

“순서가 법적 효력보다 중요합니까?”

“오늘은 그럴 수 있습니다.”

이주완은 내 말을 바로 비웃지 않았다. 그는 모르는 말을 들으면 무시하지 않고, 자신에게 유리한 조항이 있는지 먼저 찾았다. 눈이 서랍에서 내 목의 Q-13 체인으로 내려갔다가 올라왔다.

“그 문장을 기록에 남기면, 서이현 씨가 순서 변경 가능성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증거가 됩니다.”

“그럼 적지 마세요.”

“그 선택권은 제게 있습니다.”

그는 봉인지를 아직 붙이지 않았다. 붙이지 않는 동안에도 우리 셋은 봉인된 것처럼 움직이지 못했다.

백소명이 카메라를 가방에 넣으며 말했다.

“참 편하네요. 아직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는데, 누가 가져갈지부터 정하고.”

“내용을 알아야만 통제가 필요하다고 믿는 건 취재원의 나쁜 습관입니다.”

“저 취재원 아닙니다.”

“그럼 더 나쁜 습관이군요.”

두 사람의 말은 서로를 찔렀지만, 같은 쪽을 향했다. 서랍. 열두 봉투. 이름 없는 봉투. 누가 먼저 여느냐. 3화의 4번 문처럼, 사람의 첫 행동이 종이를 움직였고 종이가 사람을 움직였다.

문이 열렸다.

윤해원은 홍상욱과 함께 오지 않았다. 혼자였다. 오른쪽 상의 주머니 위에 손이 한 번 내려앉았다. 관리 키가 거기에 있다는 확인. 그는 방 안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놀라지 않은 것이 아니라, 놀랄 시간을 뒤로 미룬 것처럼 보였다.

“세 분 모두 제 사무실에 계시는군요.”

“열린 서랍이 있었습니다.” 내가 말했다.

“열려 있었습니까, 열었습니까.”

질문은 정확했다. 나는 피하지 않았다.

“틈이 있었고, 제가 당겼습니다. 안쪽 봉투는 열지 않았습니다.”

윤해원은 내 말을 받아들인 뒤 백소명과 이주완을 보았다.

“촬영했습니까?”

백소명이 답했다.

“얼굴과 방 일부만요. 서랍 안쪽은 아직.”

“아직이라는 말은 불필요합니다.”

윤해원은 손을 내밀었다. 백소명은 카메라를 주지 않았다. 대신 저장 카드를 꺼내 두 손가락으로 잡았다.

“원본 압수는 거절합니다. 복사본 열람은 조건부로 가능하고요.”

윤해원은 이번에는 이주완을 보았다.

“감사관님은 봉인하러 오셨겠죠.”

“열람 전 보전이 필요합니다.”

“보전과 소유는 다릅니다.”

“소유라고 말한 적 없습니다.”

윤해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짧은 끄덕임은 네가 아직 그 단어를 쓰지 않았다는 인정이었다.

그는 서랍 앞에 섰다. 관리 키를 꺼내지 않았다. 서랍은 잠긴 상태가 아니었으니까. 대신 손바닥으로 서랍 윗면을 눌렀다.

“이 봉투는 내용보다 순서가 먼저입니다.”

“순서요?” 백소명이 물었다.

“누가 먼저 여느냐에 반응합니다.”

이주완이 바로 끼어들었다.

“반응이라는 표현은 법률 문서에 부적합합니다. 기계적 처리입니까, 사람의 판단입니까?”

“둘 중 하나로 줄이면 틀립니다.”

“그럼 설명이 필요합니다.”

“설명하면 먼저 여는 사람을 바꾸게 됩니다.”

윤해원은 우리 셋 모두에게 같은 거리를 두었다. 그는 봉투를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봉투를 사람 쪽으로 밀어 넣은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누가 다칠지는 정확히 모르는 사람. 그 모순이 방을 좁게 만들었다.

“그럼 이미 바뀌었습니다.” 내가 말했다.

윤해원은 나를 보았다.

“무엇이요.”

“여기 세 명이 봉투를 봤습니다. 백소명 씨는 촬영 각도를 찾았고, 이주완 감사관은 봉인지를 꺼냈습니다. 저는 무지 봉투를 봤습니다. 누가 먼저 여느냐 전에, 누가 먼저 욕심냈는지가 바뀌었습니다.”

백소명이 카메라 가방 지퍼를 끝까지 닫지 않았다. 이주완은 봉인지 끝을 엄지로 눌렀다. 윤해원은 둘의 손을 차례로 봤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 얼굴이 아니라, 손이 다음에 갈 곳을 보는 얼굴이었다.

“맞습니다.” 윤해원이 말했다. “그래서 더 늦었습니다.”

“늦었다는 말은 이미 정해진 시간이 있다는 뜻입니다.”

“서이현 씨는 시간 말을 너무 빨리 믿습니다.”

그는 나를 찔렀고, 동시에 시간을 숨겼다. 18시 첫 인증. 4번 문. 지난 루프의 강태준 봉투. 나는 그 이름들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방 안에서 미래 루프의 단어를 꺼내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건이 지금 사람을 밀 수 있었다.

나는 물었다.

“부원장님이 만든 겁니까.”

“일부는요.”

“전부가 아니라는 말입니까.”

“서이현 씨는 전부라는 단어를 너무 빨리 씁니다.”

그는 서랍을 열었다. 이번에는 내가 본 것보다 더 넓게 열렸다. 열두 봉투가 빛 아래로 나왔다. 백소명은 카메라 없이도 눈으로 찍었다. 이주완은 이름 순서를 기억하려는 사람처럼 입술을 움직였다.

윤해원은 맨 아래 이름 없는 봉투를 꺼냈다.

“이건 누구 겁니까.” 내가 물었다.

“아직 아무의 것도 아닙니다.”

“사람이 아닙니까?”

윤해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름 없는 봉투를 열지 않고, 책상 램프 쪽으로 들었다. 종이는 얇았고 안쪽 결이 물결처럼 올라왔다. 처음에는 종이 섬유인 줄 알았다. 윤해원이 각도를 조금 바꾸자 안감 한가운데 문자가 떠올랐다.

Q-13.

잉크가 아니었다. 워터마크였다. 빛을 등지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글자.

백소명이 숨을 들이켰다가 바로 멈췄다. 이주완은 손을 내밀지 않았다. 윤해원은 봉투를 내게 주지도, 다시 서랍에 넣지도 않았다.

나는 목의 키를 만졌다. 검은 조각은 따뜻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방 안의 모든 시선이 그쪽으로 내려갔다.

이름 없는 봉투 안쪽에서 Q-13이 물처럼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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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평점 9.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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