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마다 살인범이 바뀐다

4부장님의 결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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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님의 결재선

24시간마다 살인범이 바뀐다 · 2026. 5. 7.

결재선이라는 것은 서류가 지나가는 길이다.

아스타로트는 그것을 이해하는 데 이틀을 썼다. 기안자에서 시작해 팀장, 부장, 본부장을 거쳐 대표까지 올라간다. 각 단계에서 도장이 하나씩 찍히고, 도장이 하나라도 빠지면 서류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취급된다.

마계의 명령 체계와 비슷했다. 다만 마계에서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왔고, 여기서는 아래에서 위로 올라간다.

"이거 반려됐어."

월요일 아침, 부장이 서류를 그의 책상에 놓았다. 지난주에 올린 신규 거래처 접촉 계획서였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본부장님이 형식이 안 맞는다고."

아스타로트는 서류를 봤다. 내용은 그대로였고, 붉은 펜으로 세 군데에 표시가 있었다. 세 군데 모두 문장이 아니라 칸의 위치였다.

"내용이 아니라 칸입니까."

"그래."

"내용은 통과했다는 뜻입니까."

부장이 잠시 말을 멈췄다.

"...그건 아직 안 봤을 거야."

아스타로트는 그 답에서 중요한 것을 읽었다. 형식에서 걸리면 내용은 읽히지 않는다. 즉 형식은 문을 여는 열쇠이고, 내용은 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천 년 전 그는 이 구조를 반대로 이해하고 있었다. 힘이 충분하면 문은 부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열두 개의 진 앞에서 봉인당했다.

"부장님. 지난 3년간 통과된 계획서를 볼 수 있습니까."

"뭐 하려고."

"형식을 익히려고 합니다."

부장은 그를 잠시 보다가 캐비닛을 가리켰다.

"저기 다 있어. 근데 아스타 대리."

"네."

"그거 스물세 권이야."

"오늘 안에 보겠습니다."

그날 아스타로트는 스물세 권을 읽었다. 정시에 퇴근했고, 대신 점심을 먹지 않았다.

통과된 계획서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첫 장에 숫자가 세 개 이상 있고, 둘째 장에 위험 요소가 명시되어 있고, 마지막 장에 대안이 두 개 이상 있었다.

반려된 것들은 대안이 하나였다.

이유는 명백했다. 대안이 하나인 서류에 도장을 찍는 것은 결정을 내리는 일이다. 대안이 둘이면 고르는 일이 된다. 사람들은 결정보다 선택을 편하게 여긴다.

화요일 아침, 그는 계획서를 다시 올렸다. 내용은 같았고, 칸을 맞췄고, 대안을 두 개로 늘렸다.

수요일 오후에 통과됐다.

"어떻게 했어?"

윤세라가 물었다.

"형식을 맞췄습니다."

"그게 다야?"

"그리고 결정을 선택으로 바꿨습니다."

윤세라가 그를 오래 봤다.

"아스타 대리."

"네."

"그거 여기서 15년 일한 사람도 모르는 거예요."

아스타로트는 대답하지 않았다. 천 년을 지배한 자가 이제야 배운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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