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8시 12분
24시간마다 살인범이 바뀐다 · 2026. 5. 11.
조회수 11
같은 8시 12분
08:11:58.
나는 커피 머신 앞에서 검은 유리를 보고 있었다.
천장 스피커는 아직 울리지 않았다. 유리 안에는 내 얼굴보다 먼저 흰 가운의 소매가 들어왔다. 오세진은 약품실 쪽 문을 닫고 식당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발소리는 커피 머신의 압력음에 묻혔다. 반사는 실제보다 1초 빨랐다. 아니, 유리가 빠른 것이 아니라 내가 어느 쪽을 먼저 보는지 바뀐 것뿐이었다.
08:12:00.
“현재 시각, 08시 12분. 태풍 경계 단계는 유지됩니다.”
문장은 같았다. 억양도 같았다. 마지막 `유지됩니다`의 `다`가 스피커 안에서 납작하게 눌리는 것까지 같았다. 나는 왼쪽 손목에 펜으로 작은 선을 그었다. 방송 전 반사 확인. 반복 가능.
윤해원은 창가 두 번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컵은 오른손 앞, 손잡이는 안쪽. 서류철은 컵 왼쪽에 3센티 정도 떨어져 있었다. 그는 손목시계를 보지 않았다. 대신 서류철의 첫 장을 한 번 밀어 맞췄다. 어제와 같은 동작이었다. 그 동작을 어제라고 불러도 되는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노을은 카운터 안에서 컵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는 식당 입구를 등지고 있었고, 오세진의 발소리는 들을 수 없는 위치였다. 대신 커피 머신 검은 유리에 비친 움직임은 볼 수 있었다. 노을은 오세진이 들어오기 전에 컵 하나를 안쪽으로 돌렸다. 흰 가운보다 컵이 먼저였다. 그의 세계에서는 소리보다 방향이 빨랐다.
나는 내 앞 접시 옆에 놓인 스푼을 보았다.
첫 번째 날, 스푼은 오른쪽 칸에 있었다. 지금도 오른쪽이었다. 작은 입력을 바꾸려면 사람보다 물건이 낫다. 사람은 이유를 묻고, 물건은 묻지 않는다.
나는 스푼을 왼쪽 칸으로 옮겼다.
금속이 접시에 닿는 소리는 작았다. 그러나 노을의 손이 멈췄다. 그는 내 얼굴을 보지 않고, 먼저 스푼을 보았다. 컵 손잡이를 고치려던 손이 방향을 바꿔 내 쪽으로 왔다. 문자판이 식탁 위로 밀려왔다.
`스푼 칸은 오른쪽. 컵은 그대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노을은 스푼을 오른쪽으로 돌려놓았다. 그 사이 창가 쪽 작은 컵 하나가 테이블 가장자리까지 밀려 있었다. 첫 번째 날에는 그 컵이 떨어졌다. 깨지는 소리를 듣고 윤해원이 고개를 들었다. 나는 그 순서를 기억했다.
이번에는 컵이 떨어지지 않았다.
노을이 스푼 때문에 먼저 움직였고, 그 손이 컵을 밀어 넣었다. 깨진 컵은 없었다. 윤해원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같은 08시 12분에서 한 가지가 달라졌다. 달라진 원인은 내가 만든 스푼의 위치였다. 우연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작고, 너무 정확했다.
깨진 컵이 없자 다음 문장도 사라졌다.
첫 번째 날, 윤해원은 유리 조각이 자기 구두 끝까지 튀자 “노을 씨, 손대지 마세요. 제가 치우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노을은 그 말을 듣지 못했고, 나는 윤해원의 입 모양과 손짓을 같이 봤다. 지금 윤해원은 서류철을 읽고 있었다. 노을은 내 스푼을 고친 뒤 카운터로 돌아갔다. 사라진 것은 컵 하나가 아니라, 윤해원이 움직일 이유였다.
나는 빈 줄을 손목 아래에 그었다. 예측 실패. 내 행동이 만든 실패.
이 검사는 생각보다 불편했다. 맞는 예측은 내 기억을 증명했다. 틀린 예측은 이 하루가 내 기억을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어느 쪽도 안전하지 않았다. 나는 컵을 떨어뜨린 적 없는 사람들 사이에 앉아, 혼자 깨진 소리를 기억했다.
노을이 다시 문자판을 내밀었다.
`컵 깨졌어요?`
나는 놀라서 그를 보았다. 그는 내 입 모양이 아니라 내 손목의 빈 줄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바닥을 한 번 내려다보았다. 깨진 컵을 찾는 동작이었다. 그는 소리를 듣지 못했지만, 내가 소리를 기다렸다는 것은 봤다.
나는 문자판에 짧게 썼다.
`아니요. 확인했습니다.`
노을은 내가 무엇을 확인했는지 묻지 않았다. 컵을 제자리로 밀어 넣고, 카운터 안쪽의 젖은 천을 접었다. 보이지 않는 질문을 넘기는 방식도 정보였다.
나는 두 번째 선을 손목에 그었다. 입력 변화. 결과 변화.
“손목에 기록하십니까?”
윤해원이 말했다.
나는 펜 뚜껑을 닫았다.
“잊지 않으려고요.”
“잊어야 할 일정이 많지는 않을 텐데요. 오늘은 브리핑과 접근권 확인뿐입니다.”
공손한 문장이었다. 그러나 `오늘`을 말할 때 시선이 내 목의 Q-13으로 한 번 내려갔다. 그는 내가 키를 가진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사실은 루프 때문이 아니어도 가능했다. 서도윤의 가족이 Q-13을 가져올 수 있다고 예상했다면.
나는 컵을 들지 않았다. 커피의 표면은 흔들리지 않았다. 내 손목의 펜 선 두 개만 마르고 있었다.
09:00, 브리핑룸의 중앙 화면은 태풍 경로를 띄웠다. 홍상욱은 아직 들어오지 않았고, 고유라가 노트북 케이블을 들고 테이블 아래로 들어가 있었다. 첫 번째 날 그는 케이블을 잘못 꽂고, “아, 이 포트가 사람 가리네요”라고 말했다. 지금도 같은 자세였다.
나는 그가 말하기 전에 말했다.
“왼쪽 포트입니다.”
고유라가 테이블 아래에서 고개만 내밀었다.
“제가 아직 틀리지 않았는데요?”
“틀릴 예정이었습니다.”
“그건 기술적으로 좀 억울한 표현인데요.”
그는 케이블을 왼쪽 포트에 꽂았다. 화면이 바로 켜졌다. 첫 번째 날 12초 늦게 켜졌던 화면이었다. 나는 세 번째 선을 그으려다 멈췄다. 내가 바꾼 것은 스푼뿐이었는데, 이번 변화는 내 말 때문에 생겼다. 사람에게 주는 정보도 입력이었다.
고유라는 화면 위의 발전기 알림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십오 분 뒤에 예비 발전기 점검 경고 뜹니다. 이건 진짜 버그 아니고, 버그처럼 생긴 일정 알림입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와요.”
“09시 15분.”
그가 눈을 깜박였다.
“맞아요. 누가 말했어요?”
“일정표요.”
일정표에는 없었다. 나는 대답을 짧게 잘랐다.
문라희는 브리핑룸 뒤쪽 안전 패널 옆에 서 있었다. 알림이 뜨기 20초 전, 그는 이미 패널 덮개를 열고 있었다. 손목시계를 보지 않았다. 중앙 화면도 보지 않았다. 09:14:42에 왼쪽 두 번째 스위치를 내려놓고, 09:15:00에 발전기 알림이 떴다.
고유라가 말했다.
“와, 박사님. 그거 알림 보고 움직인 거 아니죠?”
문라희는 스위치 위치를 확인한 뒤에야 답했다.
“알림은 사람에게 늦게 옵니다. 장비는 먼저 소리를 냅니다.”
근사값을 싫어하는 사람의 답이었다. 첫 번째 날에도 들은 문장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다만 이번에는 알림보다 손이 먼저였다. 나는 문라희의 얼굴이 아니라 스위치 위치를 기록했다. 의심은 형용사로 남기면 쓸모가 없었다.
브리핑이 끝난 뒤 고유라가 내 옆으로 붙었다.
“일정표에 없는데 09시 15분을 어떻게 알았어요?”
그는 빠르게 말했고, 질문 세 개를 한 번에 삼키려다 첫 번째만 골랐다. 나는 테이블 위 화면을 가리켰다.
“예비 발전기 점검은 매일 같은 시간이라고 했잖아요.”
“제가 그 말을 한 건 알림 뜬 다음인데요.”
“그 전에 다른 사람이 했을 수도 있죠.”
“누가요?”
고유라는 바로 반박하지 않았다. 대신 노트북 로그를 열어 09:15 항목을 확인했다. 사람을 설득하려는 것이 아니라 기록을 확인하는 손이었다. 그 점은 마음에 들었다. 그는 내 말보다 로그를 먼저 믿었다.
“오늘 처음 보는 사람한테 이런 말 이상한 거 아는데요. 앞으로 뭘 맞히실 거면, 저한테 먼저 걸지 마세요. 제가 틀린 것처럼 보이거든요.”
“미안합니다.”
“미안하면 다음 예측은 틀려 주세요.”
농담처럼 들렸지만, 고유라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나는 그 문장을 손목의 세 번째 선 옆에 적지 않았다. 사람을 변수로 보기 시작하면, 미안하다는 말도 실험 조건이 된다.
10:30, 기상 관제실의 창은 바깥을 보여 주지 않았다. 태풍이 유리 전체를 물로 칠해 놓은 것 같았다. 배준호는 화면 세 개를 번갈아 보며 풍선 송신 일정을 설명했다. 그는 말할 때마다 가능성과 확률을 나눴다.
“풍선은 하루 한 번 띄웁니다. 통신은 열리면 17초 정도. 정확히 17초는 아니고, 오늘 조건이면 그 근처입니다.”
“어제도 그랬습니까?”
그가 나를 보았다.
“어제요?”
나는 실수를 바로잡았다.
“최근 기록요.”
배준호는 파일을 열었다. `17.1`, `16.8`, `17.0`. 숫자는 장식이 아니었다. 섬 밖과 연결되는 시간이 17초뿐이라면, 그건 날씨 정보가 아니라 출구의 길이였다. 아직 출구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무엇을 내보낼지도, 내보낸 것이 돌아오지 않는지도 몰랐다.
Q-13 키가 셔츠 안쪽에서 따뜻해졌다.
코어 방향은 관제실 아래였다. 나는 몸을 조금 돌렸다. 열은 사라지지 않았다. 키를 손바닥 밖으로 빼자, 검은 표면이 창의 빗금을 비쳤다. 빗금 사이에 흰 실험복 하나가 지나갔다. 실제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유리 반사인지, 내부 화면인지, 내 기억이 겹친 것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 확인할 수 없는 것은 기록하지 않았다. 대신 손을 놓았다. 키는 피부에 닿을 때만 뜨거웠다.
11:10, 윤해원이 복도 모퉁이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렸다는 표현은 아직 강했다. 그는 서류철을 든 채 벽시계 아래에 서 있었고, 내가 지나가자 한 걸음 옆으로 움직였다. 막는 동작은 아니었다. 지나갈 길은 남아 있었다. 하지만 길이 남았다는 사실이 더 명확한 초대였다.
“서이현 씨는 오늘 아침에 제가 무슨 말을 할지 알고 계셨습니까.”
나는 주변을 보았다. 복도 끝에는 강태준이 보안 단말에 서명하고 있었다. 들을 거리는 아니었다. 노을은 식당 안쪽에 있었고, 오세진은 의무실 방향으로 사라졌다.
“일부는요.”
“그럼 제가 다음에 할 말을 맞혀 보시겠습니까.”
윤해원은 공손했다. 공손함은 물러설 수 있는 문장을 만든다. 그는 시험하고 있었고, 틀리면 웃으며 일정 얘기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나는 첫 번째 날의 문장을 떠올렸다. `D-13 접근권 확인은 오후로 미뤄도 됩니다.` 이미 아침에 들었다. 그다음 복도에서 그는 서도윤의 이름을 꺼내지 않았다. 대신 내 키를 봤다. “그 물건은 어디서 받으셨습니까.”였던가. 아니면 “서도윤 씨의 가족이십니까.”였던가. 기억은 출처를 섞고 있었다.
“Q-13을 어디서 받았는지 묻겠죠.”
윤해원의 눈썹이 아주 조금 내려갔다.
“정확히는, 누가 넘겼는지 물으려 했습니다.”
어미가 달랐다. 질문의 방향도 달랐다. 나는 맞혔고, 틀렸다.
“왜 알고 있습니까?”
이번에는 그가 물러설 수 없는 문장을 썼다. 그의 시선이 내 목으로 내려갔다. Q-13은 셔츠 안에 있었지만, 체인은 보였다.
“그 문장을 어떻게 알았죠?”
복도 끝의 보안 단말이 짧게 울렸다. 강태준이 고개를 들었다. 윤해원은 내 대답을 기다렸고, 나는 손목의 세 선 중 두 번째 선을 엄지로 문질렀다. 스푼 하나가 컵 하나를 살렸다. 사람에게 던진 문장 하나가 윤해원의 질문을 바꿨다.
“녹음한 적 없습니다.”
내가 먼저 방어했다.
윤해원은 그 말을 놓치지 않았다.
“저는 녹음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짧은 문장이었다. 윤해원은 내가 숨긴 단어를 꺼내 탁자 위에 올리듯 말했다. 나는 허리 벨트 쪽으로 손을 내렸다가 멈췄다. 새 녹음기는 숙소 책상 위에 있었다. 첫 번째 날의 녹음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존재하지 않는 물건을 확인하려는 손짓을 윤해원이 봤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군요.” 그가 말했다. “서이현 씨가 저를 미리 조사했거나, 제가 아직 하지 않은 말을 들은 적이 있거나.”
“세 번째도 있습니다.”
“말해 보시죠.”
“제가 틀렸을 가능성.”
윤해원은 바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내 손목의 선 세 개를 보았다. 맞은 것과 틀린 것을 나누는 표시라는 것까지는 몰라도, 세는 사람의 습관은 알아본 듯했다.
“틀린 사람은 보통 표시를 늘리지 않습니다.”
강태준이 복도 끝에서 걸어오기 시작했다. 보안 단말을 닫는 소리가 났다. 윤해원은 그쪽을 보지 않고, 내 목의 체인만 보았다.
“오늘 오후 D-13 접근 전까지, 그 키를 누구에게도 보이지 마세요.”
“왜요?”
“그 사실이 맞다면, 키보다 키를 가진 사람이 먼저 움직일 겁니다.”
윤해원은 설명을 더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질문이 남았다. 그가 루프를 기억하는지, 아니면 서도윤의 계획만 알고 있는지. 어느 쪽이든 그는 살아 있는 피해자였고, 피해자는 나를 시험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아직 그를 살릴 방법보다, 그가 무엇을 아는지 먼저 재고 있었다.
윤해원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내 목의 체인을 한 번 더 보았다. 키를 숨기라는 말보다 그 시선이 오래 남았다.
이번 화가 재미있었나요?
좋아요와 평점은 언제든 변경할 수 있습니다.
독자 평점 8.5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