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취업
24시간마다 살인범이 바뀐다 · 2026. 5. 2.
봉인이 풀리는 순간, 아스타로트는 자신이 서 있어야 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불타는 평원. 갈라진 하늘. 무릎을 꿇은 인간 연합의 사령관들. 천 년 전 그가 눈을 감던 순간의 풍경이 그대로 이어져야 했다.
눈을 떴을 때 그의 앞에 있던 것은 형광등이었다.
정확히는 네 개의 형광등 중 하나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천장이었다. 그 아래에는 회색 파티션이 격자로 놓여 있었고, 파티션 위마다 사람 머리가 하나씩 솟아 있었다. 서른 개쯤. 모두 같은 방향을 보고 있었다.
"아, 깼어요?"
옆자리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아스타로트는 고개를 돌렸다. 안경을 쓴 인간 여성이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신입이 첫날부터 책상에 엎어져 자면 좀 곤란한데. 부장님 아직 안 오셔서 다행이지."
신입. 부장님. 두 단어 모두 마계의 어떤 계급 체계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스타로트는 천천히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검을 쥐던 손이 아니었다. 마디가 얇고, 손톱이 짧게 깎여 있고, 오른손 중지 옆에 굳은살이 하나 있었다. 펜을 오래 쥔 자리였다.
기억이 밀려들어 왔다. 그의 것이 아닌 기억이었다.
이 몸의 이름은 아스타. 스물아홉. 3개월 전 경력직으로 입사한 기획팀 대리. 전 직장에서 2년을 버티다 나왔고, 이곳에서는 아직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아래, 훨씬 깊은 곳에 봉인의 조건이 새겨져 있었다.
"인간 사회에서 정당한 노동으로 계약을 이행할 것."
아스타로트는 그 문장을 세 번 읽었다. 마계의 계약은 언제나 문자 그대로 작동한다. 정당한 노동. 계약의 이행. 어느 쪽도 해석의 여지가 넓지 않았다.
즉 그는 일을 해야 한다. 이 자리에서.
"저기, 신입 아니라 대리예요."
그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옆자리 여성이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어? 목소리 왜 그래요."
천 년 만에 쓰는 성대였다. 아스타로트는 헛기침을 했다.
"오래 안 써서."
"3개월 동안 말 안 하고 살았어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모니터를 봤다. 화면에는 표가 하나 열려 있었다. 숫자가 빼곡했고, 열의 제목은 대부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마지막 열의 합계가 위쪽 요약과 맞지 않는다는 것은 한눈에 보였다.
천 년 동안 마계의 병력과 보급을 관리한 자에게 숫자가 맞지 않는 표는 익숙한 형태의 문제였다.
그는 손을 움직였다. 낯선 도구였지만 기억이 남아 있는 몸이었다. 열을 하나 추가하고, 수식을 넣고, 어긋난 셋을 찾아냈다.
3분이 걸렸다.
"어."
옆에서 소리가 났다. 여성이 몸을 기울여 그의 화면을 보고 있었다.
"그거 어제 내가 두 시간 봤는데."
"세 군데가 틀렸습니다. 이월분이 두 번 들어갔고, 한 건은 부호가 반대입니다."
"...아스타 대리."
"네."
"3개월 동안 이런 거 할 수 있는데 왜 가만히 있었어요?"
아스타로트는 잠시 생각했다. 정확한 답은 이 몸의 전 주인이 자신감을 잃은 상태였다는 것이지만, 그것은 설명할 이유가 없는 사정이었다.
"이제 하려고 합니다."
그때 사무실 입구에서 소란이 일었다. 사람들의 등이 일제히 곧아지는 것이 파티션 위로 보였다. 아스타로트는 그 반응의 성격을 알았다. 지배자가 들어올 때 아래 것들이 보이는 반응이다.
"부장님 오셨다."
옆자리 여성이 낮게 말하고 자기 자리로 몸을 돌렸다.
아스타로트는 다가오는 존재를 살폈다. 배가 나온 중년 인간. 마력은 전무했다. 전투력으로 환산하면 마계 최하급 병졸의 십분의 일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서른 명이 그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구조였다. 마왕은 그 구조를 이해하기로 했다.
"아스타 대리."
부장이 그의 옆에 섰다.
"네."
"오늘 저녁에 시간 좀 비워둬. 팀 회식."
"몇 시에 끝납니까."
사무실이 조용해졌다. 아스타로트는 그 침묵의 질이 방금 전과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두려움이 아니라 놀람이었다.
"...뭐?"
"몇 시에 끝나는지 물었습니다. 다음 일정을 잡아야 해서."
부장의 얼굴이 천천히 붉어졌다. 그러나 아스타로트는 물러날 이유를 찾지 못했다. 계약의 조건은 정당한 노동이었다. 노동 시간 외의 술자리는 계약서 어디에도 없었다.
천 년의 봉인에서 깨어난 첫날, 마왕은 결심했다.
야근은 하지 않는다. 회식은 1차까지만 간다. 그리고 자신이 속한 팀의 성과는 반드시 지킨다.
그것이 이 세계에서 그가 세운 첫 번째 규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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