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출근 도장은 한 번만

안전수칙을 지키면 죽는다 · 2026.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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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도장은 한 번만

서진의 출입증은 물류센터 정문에서 한 번 반려됐다. 사유는 업무 배제였다. 경비실 단말기에는 오정호가 보낸 공문 번호가 붙어 있었다.

가족 이해관계자 현장 접근 제한.

도윤은 자기 출입증을 찍지 않았다. 먼저 경비실 유리창에 공문 화면을 보이게 했다. “윤서진 기록원은 하준 사건 접촉 제한입니다. 이 현장은 물류센터 신고입니다.”

경비원은 야간 근무자였다. 이름표에는 장영식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공문을 읽고, 서진을 보고, 다시 공문을 읽었다. “저는 위에서 내려온 대로만 합니다.”

“위가 누구입니까.” 서진이 물었다.

장영식은 대답하지 않고 관리자 호출 버튼을 눌렀다. 버튼 옆에는 안내문이 있었다.

야간 출근 도장은 한 번만 찍으십시오. 두 번 찍힌 기록은 퇴근 처리되지 않습니다.

한수아는 이미 안쪽 펜스 앞에 와 있었다. 배달 가방 대신 형광 조끼를 입고 있었다. 조끼 등에는 임시상하차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펜스 너머에서 손을 흔들지 않고 휴대전화를 들어 보였다.

“여기 사람 하나가 어제 밤부터 퇴근을 못 했어요. 출근 도장 두 번 찍혔다고 오늘 밤까지 남으라는데, 이게 근로계약서에 있는 문장인지 괴담인지 모르겠어서 불렀어요.”

“왜 수아 씨가 조끼를 입고 있습니까.”

“안 입으면 안 들여보내 준대요. 일용직 등록 앱에 제 이름 올렸어요. 돈은 안 준다네요. 견학이래요.”

한수아의 말은 짧고 생활적이었다. 서진은 앱 화면을 확인했다. 이름은 한수아, 근무형태는 임시참관, 임금 칸은 0원. 그 아래 위험 동의 체크가 있었다. 이미 체크되어 있었다.

“누가 체크했습니까.”

“현장 반장이요. 안 하면 못 들어온다고 해서. 저는 체크 안 했어요.”

도윤이 펜스 잠금장치를 봤다. 안쪽에서만 열리는 구조였다. 경비실 스피커가 울렸다.

“다온생활안전 백기준 부장입니다. 늦은 시간에 오셨네요.”

백기준은 작업복 위에 패딩 조끼를 입고 나왔다. 얼굴에는 피곤한 웃음이 있었다. 그는 서진에게 먼저 인사하지 않고 경비원에게 말했다.

“장 선배, 저분들 제 책임으로 들여보내요. 단, 서진 씨는 기록만. 현장 지시는 강 처리관이 합니다.”

서진은 그 문장을 놓치지 않았다. “제 책임으로, 라고 하셨습니다. 책임 범위 적어 주세요.”

백기준의 웃음이 조금 얇아졌다. “우리 식구들 살리자고 부른 겁니다. 서류부터 들이미시면 현장 분위기 안 좋습니다.”

한수아가 바로 말했다. “분위기 때문에 사람이 퇴근을 못 하는데요.”

백기준은 수아를 보았다. “수아 씨는 우리 직원 아닙니다.”

“그래서 더 잘 보여요.”

경비문이 열렸다. 센터 안은 냉장창고와 일반창고가 붙어 있었다. 컨베이어 벨트는 멈추지 않았다. 박스가 줄지어 지나갔고, 작업자들은 손목 단말기를 찍고 박스를 팔레트에 옮겼다. 천장 전광판에는 출고율 93%, 지연 47-1분이라고 떠 있었다. 서진은 그 숫자를 확대해 찍고 의미를 붙이지 않았다.

신고자는 김문식이라는 일용직 노동자였다. 그는 휴게실 의자에 앉아 있었지만, 발목에는 작업 안전화가 그대로였다. 안전화 끈이 풀려 있었고, 양말은 젖어 있었다.

“퇴근 스캔 하셨습니까.”

김문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 번 했어요. 삑 소리도 났어요. 근데 전광판에서 제 이름이 안 빠져요. 반장이 다시 찍으래서 출근기를 찍었더니 출근이 또 됐고요.”

그는 손목 단말기를 보여 줬다. 기록은 이상했다.

22:01 출근. 22:01 출근. 03:17 퇴근 실패. 07:00 교대 대기. 22:01 출근 유지.

퇴근 실패 아래에는 사유가 있었다.

등록 구분 불완전.

서진은 물었다. “등록 구분이 뭡니까.”

백기준이 대신 답했다. “정규직, 계약직, 파견, 일용. 일용 중에서도 업체가 갈립니다. 현장에서 그걸 다 외우고 일 못 합니다.”

“그래서 시스템이 대신 분류합니까.”

“그래야 산재 처리가 됩니다.”

한수아가 웃지 않고 말했다. “산재 처리가 되는데 퇴근은 안 돼요?”

김문식은 손을 무릎에 올려놓았다. 손등에는 도장 잉크가 두 번 찍혀 있었다. 하나는 파란 출근, 하나는 같은 파란 출근. 퇴근 도장은 없었다.

휴게실 벽에는 새 수칙이 붙어 있었다.

1. 출근 도장은 한 번만 찍는다. 2. 퇴근 스캔 전 장갑을 벗지 않는다. 3. 등록 구분이 불완전한 작업자는 관리자 확인 후 퇴근한다.

세 번째 줄 아래에 작은 글씨가 있었다. 관리자 확인 전 이탈 시 무단결근 처리.

김문식은 그 줄을 가리켰다. “집에 가면 오늘 일당도 어제 일당도 날아간답니다.”

백기준이 말했다. “제가 그렇게 말한 게 아닙니다. 업체 반장이 말했겠죠.”

“부장님이 업체 반장한테 출고 지연 내지 말라 했잖아요.” 한수아가 받아쳤다.

백기준은 입을 다물었다. 서진은 두 사람 사이의 말을 전부 쓰지 않았다. 대신 출고 지연 압박, 일당 손실, 무단결근 처리 가능성이라고 적었다.

도윤은 출근기 앞에 섰다. “퇴근기를 보여 주세요.”

퇴근기는 출근기와 같은 기계였다. 화면의 버튼만 달랐다. 출근은 녹색, 퇴근은 회색. 김문식이 손목 단말기를 찍자 퇴근 버튼이 잠깐 켜졌다가 꺼졌다.

등록 구분 불완전. 관리자 확인 필요.

백기준이 자기 관리자 카드를 꺼냈다. “제가 확인하면 됩니다.”

서진이 막았다. “단독 관리자 확인으로 퇴근 처리하면 누구 책임입니까.”

“제 책임이죠.”

“그 책임이 김문식 씨 퇴근을 보장합니까, 아니면 부장님 이름으로 다른 사람을 남깁니까.”

백기준은 카드를 멈췄다. 그 질문은 그에게도 처음인 듯했다. 한수아가 옆에서 말했다. “여기선 이름 걸면 이름이 사라질 수도 있잖아요. 저번에도 그랬고.”

도윤은 김문식에게 물었다. “두 번 찍힌 순간을 본 사람.”

작업자 두 명이 손을 들었다. 하나는 정규직 조장, 하나는 일용직이었다. 정규직 조장은 이름을 말했다. 오승필. 일용직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라만.”

백기준이 곧바로 말했다. “외국인 근로자라 발음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수아가 백기준을 봤다. “사람 이름인데 발음부터 검수해요?”

라만은 자기 외국인등록증 사본을 꺼내려 했다. 서진이 손으로 막았다. “원본 번호 노출하지 마세요. 이름과 오늘 작업조만 확인합니다.”

두 목격자가 출근기 앞에 섰다. 오승필은 회사 사번이 있었고, 라만은 업체 앱 QR만 있었다. 두 사람이 동시에 김문식의 출근 기록을 확인하자 화면에 새 버튼이 생겼다.

공동 퇴근 확인.

백기준이 안도한 얼굴로 카드를 들었다. 그때 출근기 아래 프린터가 종이를 뱉었다. 김문식의 이름 아래 같은 문장이 두 번 찍혔다.

출근. 출근.

백기준은 김문식의 근로계약서를 가져오게 했다. 종이는 한 장이었고, 하단에는 업체 도장이 찍혀 있었다. 근무 시간은 22시부터 07시까지였다. 그 옆에 작은 글씨가 있었다. 작업량 미달 시 관리자의 지시에 따라 연장 가능.

한수아가 그 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연장은 돈 더 주는 거죠?”

백기준은 대답을 늦췄다. “업체별로 다릅니다.”

“그럼 퇴근 못 한 사람한테 돈이 더 붙었는지 확인해요.”

은채가 급여 예정 데이터를 열었다. 김문식의 전날 근무는 9시간으로 잡혀 있었다. 오늘은 0시간이었다. 하지만 작업 배정은 계속 들어갔다. 일은 시키고, 시간은 다음날까지 넘어가지 않았다.

“근무 시간은 멈췄는데 작업 배정은 남아 있습니다.” 서진이 말했다.

김문식이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 제가 계속 한 거예요. 안 하면 무단결근이라는데, 돈은 어제 거만 준대요.”

도윤은 출근기 옆 바닥을 봤다. 발자국이 많이 겹쳐 있었지만, 파란 잉크 자국이 한 줄로 이어져 있었다. 출근 도장을 손등에 찍은 사람들이 장갑을 끼기 전 벽을 짚은 흔적이었다. 벽에는 파란 점이 여럿 있었다. 그중 두 점은 같은 손 높이에서 겹쳐 있었다.

“두 번 찍은 사람이 김문식 씨만은 아닐 수 있습니다.”

백기준이 바로 말했다. “손 씻다가 묻은 걸 수도 있습니다.”

“가능성으로 남깁니다.” 서진은 사진을 찍었다. “손등 도장 반복 흔적. 원인 미확정.”

휴게실 냉장고에는 도시락이 네 개 있었다. 이름표가 붙은 것은 하나뿐이었다. 김문식. 나머지는 업체명과 번호만 있었다. 라만은 자기 도시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제 거, R-12.”

“이름 안 써도 됩니까.”

라만은 백기준을 보았다. 백기준이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업체에서 번호로 관리합니다. 외국인 이름 길어서 현장 표기 오류가 잦습니다.”

한수아가 말했다. “틀리면 고치면 되잖아요. 번호로 바꾸면 사람이 틀린 것도 안 보이죠.”

라만은 작은 소리로 자기 이름을 말했다. 서진은 발음대로 한글 표기와 로마자 표기를 같이 적었다. 라만은 그걸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을 쓰는 데 20초가 걸렸다. 그 20초 때문에 컨베이어가 멈추지는 않았다.

출근기 화면은 계속 공동 퇴근 확인 버튼을 유지했다. 그러나 버튼 아래에는 조건이 하나 더 떠 있었다.

관리자 1명 승인 필요.

서진은 백기준의 카드를 보았다. “관리자 1명으로 끝내면 김문식 씨만 퇴근하고 나머지는 남을 수 있습니다. 공동 확인자와 관리자 승인, 그리고 퇴근 실패자 전체 목록이 필요합니다.”

백기준은 짜증을 삼켰다. “그렇게 하면 시간이 걸립니다.”

“걸린 시간도 비용입니다. 누가 부담할지 적어야 합니다.”

한수아가 휴대전화 메모장을 열었다. “김문식 씨는 집에 누가 기다려요?”

김문식은 당황했다. “아내요. 애 둘. 작은애 유치원 데려다줘야 했는데 못 갔어요.”

서진은 가족 사정을 길게 쓰지 않았다. 퇴근 실패 현실 비용: 아동 등원, 수면, 다음 근무 가능성. 김문식은 그 문장을 보고 처음으로 자기가 계속 일한 이유 말고, 못 간 곳을 말했다.

백기준은 그 메모를 못 본 척했다. 하지만 관리자 카드가 출근기 앞에서 더 움직이지 않았다.

경비실 장영식이 무전으로 물었다. “부장님, 외부 차량 들어옵니다. 냉장 3번 상차 대기랍니다.”

백기준은 무전기를 들었다. “대기시키세요.”

“지연료 붙습니다.”

“붙어도 대기.”

그 말이 나오자 출근기 화면의 관리자 승인 필요 문구가 깜박였다. 백기준이 처음으로 출고보다 사람 쪽을 조금 먼저 둔 순간이었다. 완전한 선택은 아니었다. 그는 아직 카드도 서명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지연료라는 단어가 현장에 들어왔다.

출근기 옆에는 작은 반납함이 있었다. 작업자가 장갑과 커터칼을 넣고 나가게 만든 함이었다. 안에는 장갑이 여섯 켤레나 쌓여 있었다. 이름표는 없고 업체 코드만 있었다. 김문식은 자기 장갑을 알아봤다. 손목 안쪽에 아이 이름 첫 글자를 작게 써 두었다고 했다.

“퇴근 실패했는데 장갑은 반납됐습니다.” 서진이 말했다.

은채가 기록을 확인했다. “장비 반납은 완료, 사람 퇴근은 실패. 물건은 빠졌고 사람은 남았습니다.”

한수아가 장갑을 보며 말했다. “장갑보다 사람이 늦게 퇴근하네요.”

백기준은 그 말에 대꾸하지 못했다. 대신 장비 반납함을 잠그려 했다가 멈췄다. 잠그면 증거를 닫는 행동이 될 수 있었다. 그는 손을 떼고 장영식 경비원에게 말했다. “반납함 감시자 두 명 붙여요. 경비실 한 명, 작업자 한 명. 이름 적고.”

장영식은 라만을 보았다. 라만은 자기 이름이 감시자 칸에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업체 코드가 아니라 이름이었다. 출근기 화면의 공동 퇴근 확인 버튼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 아래에 장비 반납 완료라는 줄이 새로 떴다. 사람 퇴근 실패와 장비 반납 완료가 같은 화면에 붙었다. 독자가 볼 수 있는 불일치가 하나 더 생겼다.

서진은 출근기 옆 안내문을 떼지 않고 가장자리만 들었다. 아래에는 이전 문장이 남아 있었다. 출근 도장은 한 번만 찍으십시오,가 아니라 출퇴근 도장은 본인이 확인하십시오였다. 누군가 퇴근 확인 책임을 작업자 본인에게서 기계와 관리자로 옮기며 문장을 줄인 셈이었다. 서진은 원문 추정이라고 쓰지 않았다. 보이는 글자만 적었다. 출퇴근, 본인, 확인. 세 단어가 남아 있었다.

도윤은 김문식의 퇴근 동선을 바닥 테이프로 표시했다. 출근기, 휴게실, 장비 반납함, 퇴근기. 네 지점 중 퇴근기 앞에만 파란 발자국이 두 겹이었다. 같은 사람이 돌아와 다시 출근기로 밀린 흔적이었다. 서진은 동선 사진을 순서대로 붙였다. 말보다 바닥이 먼저 증명했다.

장영식도 그 동선 사진에 자기 이름을 썼다. 경비실이 단순 통과 지점이 아니라 출퇴근 기록의 일부가 됐다.

두 번째 도장 아래 새 줄이 인쇄됐다.

퇴근 예정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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