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수정 전 문서

안전수칙을 지키면 죽는다 · 2026.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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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전 문서

셔터가 올라간 높이는 손바닥 하나만큼이었다. 도윤은 바로 엎드려 안쪽을 보지 않았다. 먼저 로비 의자를 끌어와 셔터 밑에 끼웠다. 셔터가 내려오면 의자 등받이가 먼저 부러질 위치였다.

“들어가지 마.”

서진은 투명 파일을 확인했다. 0번 번호표는 아래 절반만 남았다. 하준의 이름은 찢긴 쪽에 있었고, 남은 부분에는 발급 시간과 질문만 있었다.

책임자는 누구입니까?

김태민은 어머니 옆에 앉아 있었다. 박현주는 여전히 아들의 얼굴을 바로 보지 못했지만, 볼펜을 손에 쥐고 있었다. 번호표 37번은 투명 파일 안에서 젖은 자국을 말리고 있었다. 출입증 이름은 김태까지 돌아왔다.

“저 사람들 먼저 내보내야 합니다.” 도윤이 말했다.

“문 밖으로 나가면 원부가 닫힐 수 있습니다.” 미란이 답했다.

“그럼 여기 앉혀 두고 창구 안으로 들어가자고?”

“아니요. 역할을 나눠야 합니다.”

미란은 자기 말을 듣고도 잠깐 멈췄다. 명령이 아니라 제안처럼 들리게 고친 듯했다. “김태민 씨 쪽은 강도윤 처리관이 지키십시오. 윤서진 기록원은 저와 창구 내부 보관함을 확인합니다. 이정배 주무관은 로비 출입자와 당직 협조 기록만 씁니다. 박은채 분석관은 원부 화면을 유지합니다.”

서진은 바로 동의하지 않았다. “팀장님과 제가 둘만 들어가면 안 됩니다.”

“둘이 아닙니다. 이 문은 열린 상태고, 강도윤 처리관이 시야를 유지합니다. 내부 물건은 손대기 전 바깥에서 촬영합니다.”

도윤이 짧게 물었다. “수틀리면 끌어내도 됩니까.”

“됩니다.”

미란이 그렇게 말하자 셔터가 5센티미터 더 올라갔다. 안쪽에서 허락을 들은 것처럼 움직였다. 서진은 그 반응을 기록했다.

0번 창구 안은 일반 창구와 달랐다. 민원인 쪽 유리창은 포스터로 가려져 있었고, 직원 쪽 책상에는 오래된 접수 원장이 놓여 있었다. 책상 위에는 번호표 절단기가 있었다. 마트 쿠폰 자르는 작은 기계처럼 생겼다. 기계 옆에는 고무인이 세 개 있었다.

접수. 미접수. 보정.

서진은 고무인을 만지지 않았다. 카메라 줌으로 글자를 찍었다. 미란은 보관함 위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책상 아래 철제 서랍이었다. 잠금장치는 없었지만 손잡이에 붉은 실이 감겨 있었다.

“봉인입니까.”

“봉인처럼 보이게 한 표시입니다. 법적 효력은 없습니다.”

“효력이 없으면 누가 그렇게 했습니까.”

“효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사람.”

미란의 답은 길지 않았다. 서진은 붉은 실의 매듭, 먼지, 손잡이 주변의 긁힌 자국을 찍었다. 도윤이 바깥에서 말했다. “왼쪽 벽. 포스터 뒤.”

서진이 고개를 돌렸다. 창구 안쪽 벽에도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민원 만족도 조사 안내였다. 포스터 아래쪽이 들떠 있었고, 그 틈에 흰 종이 모서리가 보였다.

미란이 먼저 손을 대지 않았다. “윤서진 기록원이 확인하십시오. 저는 손을 뒤로 둡니다.”

“왜요.”

“제가 만지면 의미가 붙을 수 있습니다.”

서진은 그 말을 그대로 적었다. 팀장 본인 접촉 회피. 사유 미확인.

포스터를 들어 올리자 작은 보관함 열쇠가 테이프로 붙어 있었다. 열쇠고리에는 숫자 0이 아니라 빈 네모가 그려져 있었다. 서진은 열쇠를 바로 쓰지 않고 바깥의 도윤에게 보였다. 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목격.”

이정배 주무관도 떨리는 글씨로 적었다. 열쇠 발견, 23시 37분.

서랍 안에는 원장 세 권이 있었다. 현재 원장, 미접수 원장, 수정 전 원장. 세 번째 원장은 표지가 낡았고, 왼쪽 위에 버전 0이라고 적힌 라벨이 붙어 있었다. 라벨은 새것이었다. 낡은 표지 위에 오늘 붙인 것처럼 접착면이 하얬다.

서진은 원장을 꺼내지 않고 표지만 찍었다. 미란이 숨을 길게 들이마셨다. 숨소리 말고 다른 설명은 없었다.

“아시는 물건입니까.”

“형식은 압니다.”

“내용은요.”

“확인 전입니다.”

서진은 그 답을 받아들였다. 확인 전이라는 말은 숨김일 수도 있고, 정확한 태도일 수도 있었다. 지금은 판정할 수 없었다.

수정 전 원장의 첫 장에는 수칙이 있었다.

전 민원 책임자 배정 1. 실종 신고는 신고자 자격과 주소가 불완전해도 임시 접수한다. 2. 임시 접수자는 당직 책임자와 현장 확인자 2명이 함께 보관한다. 3. 접수 전 실종자는 민원인을 대신 세우지 않는다. 4. 책임자는 이름과 날짜를 남긴다.

네 줄 모두 검은 펜이었다. 두 번째 장에는 같은 수칙이 복사되어 있었고, 빨간 줄이 여러 번 그어져 있었다. 1번의 임시 접수는 미접수로 바뀌어 있었다. 2번의 당직 책임자와 현장 확인자 2명은 삭제되어 있었다. 4번의 이름과 날짜는 공란 유지로 바뀌었다.

서진은 한 줄씩 읽지 않았다. 사진을 찍고, 바뀐 위치만 번호로 표시했다. 은채가 화면 너머에서 말했다. “전 민원 책임자 배정이면 원래는 모든 민원에 책임자를 붙이는 구조였어요. 지금 시스템은 책임자가 비어야 돌아가게 바뀐 겁니다.”

“해결 조건으로 쓰지 마세요.” 미란이 말했다.

“왜요.”

“옛 수칙이 항상 옳았던 건 아닙니다. 전원 임시 접수는 잘못 쓰면 무차별 호명입니다. 하준 같은 사람을 더 많이 묶을 수 있습니다.”

서진은 원장을 덮지 않았다. “그래도 지금보다 낫다는 뜻입니까.”

“그 질문에 제가 답하면 안 됩니다.”

“팀장님은 이미 답을 알고 계신 것처럼 말합니다.”

미란은 이번에도 바로 부정하지 않았다. “일부만 압니다.”

수정 전 원장 뒤쪽에는 접수 사례가 붙어 있었다. 서진은 전체를 넘기지 않고, 책갈피가 꽂힌 두 장만 확인했다. 하나는 11년 전 8월 17일이었다. 다른 하나는 오늘 날짜였다. 두 장 모두 같은 위치에 빈 네모가 있었다.

민원 책임자.

11년 전 장에는 빈 네모 옆에 누군가 눌러쓴 흔적이 있었다. 이름을 쓰려다 덮은 자국 같았다. 오늘 날짜 장에는 그런 흔적도 없었다. 처음부터 비우도록 만든 양식이었다.

“양식이 바뀌었습니다.” 서진이 말했다.

은채가 원격 화면으로 사진을 받았다. “옛 양식은 지우개나 수정액 흔적이 있고, 오늘 양식은 필드 자체가 비활성입니다. 같은 공란이라도 원인이 달라요.”

미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초기에는 사람이 이름을 지웠고, 나중에는 이름을 못 쓰게 만들었습니다.”

“누가요.”

“그 질문에 지금 답하면 증거보다 말이 앞섭니다.”

서진은 답답함을 감정 단어로 쓰지 않았다. 대신 원장의 사진 순서를 바꿨다. 11년 전 공란, 오늘 공란, 수정 전 수칙, 빨간 줄, 재출력 로그. 말보다 순서가 먼저였다.

책상 오른쪽 서랍에는 반송 봉투들이 있었다. 받는 사람 칸은 대부분 비어 있었고, 보내는 사람 칸에는 민원지원과가 찍혀 있었다. 한 봉투에는 윤하준 이름이 희미하게 보였다. 서진은 봉투를 열지 않았다. 겉면만 찍었다.

“열지 않습니까?” 미란이 물었다.

“이 장면에서 새 하준 증거를 늘리면 원부 확인이 흐려집니다.”

도윤이 바깥에서 짧게 웃었다. “잘 배웠네.”

서진은 대꾸하지 않았다. 봉투 옆에는 작은 카드가 있었다.

본인 확인 불가 시 기준 음성 대조.

그 문장을 보는 순간, 서진의 손이 멈췄다. 하준의 목소리를 대조할 수 있다는 뜻인지, 대조당했다는 뜻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카드도 열지 않았다. 사진만 찍고, unknown으로 남겼다.

미란은 그 선택을 막지 않았다. 대신 벽면의 낡은 스위치를 껐다. 창구 안쪽 형광등이 하나 꺼지고, 책상 아래 다른 불빛이 보였다. 작은 녹음기였다. 녹음기 화면에는 재생 시간이 00:17로 멈춰 있었다.

“재생하지 마세요.” 미란이 말했다.

“아직 누르지 않았습니다.”

“하준 목소리일 가능성이 있어도, 여기서 재생하면 원부가 본인 확인으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

서진은 녹음기를 찍었다. 재생하지 않음. 본인 확인 유도 가능성. 이 문장을 쓰는 동안 손끝이 느려졌다. 도윤이 바깥에서 시간을 불렀다.

“23시 42분. 셔터 조금 더 내려간다.”

미란은 서랍 속 원장 세 권의 위치를 그대로 둔 채, 수정 전 수칙 복사본만 만들었다. 복사기 유리판에 원장을 펼칠 때도 손가락이 글자 위를 누르지 않았다. 그는 책등과 여백만 눌렀다. 그렇게 조심하는 사람이 왜 빨간 줄을 그었는지, 서진은 아직 묻지 않았다.

복사본이 나오자 원본의 빈 네모 부분에 검은 점 하나가 더 찍혀 있었다. 원본에는 없던 점이었다. 복사기가 공란을 공란으로 두지 못하고 표시한 것처럼 보였다.

은채가 말했다. “빈 필드가 이미지로 넘어오면서 객체로 잡혔어요. 시스템이 공란을 항목으로 인식합니다.”

“그럼 공란도 기록 대상입니다.”

서진은 복사본 여백에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여백에 직접 쓰면 원본과 섞일 수 있었다. 대신 별도 메모지에 적어 붙였다. 공란 자체가 처리 항목으로 반응. 원인 미확정.

바깥의 김태민 사건도 창구 안쪽과 연결되어 있었다. 원장 한쪽 여백에 37이라는 숫자가 연필로 적혔다가 지워진 흔적이 있었다. 서진은 그 숫자를 크게 찍지 않았다. 현재 사건에서 필요한 만큼만 남겼다.

“번호표를 찢는 기계가 원부 여백에도 반응합니다.” 은채가 말했다. “37번 기록이 방금 생겼다가 지워진 게 아니라, 원래 있던 흔적을 다시 읽는 걸 수도 있어요.”

“둘 다 가능성으로 남깁니다.”

미란은 수정 전 원장 속지를 넘기다 말고 멈췄다. 속지 하단에는 오래된 직인이 있었다. 성안시 생활안전대응원 출범 전의 구청 직인이었다. 이 사건이 처음부터 대응원만의 일이 아니었다는 뜻일 수 있었다. 그러나 서진은 기관 확장 해석을 쓰지 않았다.

“직인 확인. 관할 이력 미확정.”

미란이 작게 말했다. “그렇게 쓰는 게 맞습니다.”

서진은 그 말도 기록하지 않았다. 맞다는 평가보다 사진 한 장이 더 필요했다.

바깥에서 박현주가 말했다. “태민아?”

이름 세 글자가 처음으로 완전히 나왔다. 김태민이 바로 대답하려다 입을 막았다. 도윤이 대신 말했다. “여기 있습니다. 직접 대답은 천천히.”

전광판에 김태민의 이름이 잠깐 켜졌다가 꺼졌다. 번호표 37번의 1명 보정 문구에는 얇은 줄이 그어졌다.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부분 복구.” 은채가 말했다. “원부 상태가 미접수에서 임시 확인으로 바뀌었습니다. 담당자는 이정배 협조, 현장 확인자는 강도윤, 윤서진. 책임자는 여전히 공란.”

책임자 공란이라는 말이 나오자 0번 창구 안쪽 복사기가 켜졌다. 종이가 한 장 나왔다. 서진은 바깥으로 들고 나가기 전에 사진을 찍었다. 출력물은 수정 전 문서의 마지막 장이었다.

하단에 작은 인쇄 로그가 있었다.

재출력: 오늘 23시 07분. 요청자: S.M. 수정자: S.M.

그 아래 오늘 날짜 옆에 다른 서명이 있었다. 윤하준. 글씨는 20화에서 본 확인서와 닮았지만, 서진은 닮았다고만 적었다. 같은 사람이라고 쓰지 않았다.

도윤이 바깥에서 말했다. “나와.”

“아직 원장 확보가 안 됐습니다.”

“서진아.”

도윤은 이름을 불렀다. 명령보다 강했다. 셔터가 조금씩 내려오고 있었다. 의자 등받이가 밀리며 소리를 냈다. 미란이 원장을 들려는 손을 멈췄다.

“원본은 두고 갑니다. 수정 전 수칙과 공란 원장 표지만 복사본으로 확보합니다.”

“원본을 두면 사라질 수 있습니다.”

“원본을 가져가면 원부 닫힘으로 처리될 수 있습니다.”

서진은 이를 악물지 않았다. 대신 복사본과 촬영 파일, 출력 로그를 투명 파일에 넣었다. 미란은 서랍을 닫지 않고 붉은 실만 옆으로 빼 두었다. 닫은 사람이 책임자가 되는지 알 수 없었다.

복사본을 만들고 나서도 원본은 서랍 안에 그대로 있었다. 서진은 서랍을 닫지 않은 상태와 붉은 실 위치를 다시 찍었다. 누군가 나중에 원본을 옮기면, 최소한 지금 손잡이가 어디까지 열려 있었는지는 남아야 했다.

이정배 주무관은 바깥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저 서랍을 지켜야 합니까?”

“혼자 지키지 마세요.” 서진이 답했다. “원본 감시는 별첨으로 남깁니다.”

그 말에 전광판이 짧게 깜박였다. 별첨이라는 단어가 아직 시스템에 없는 것처럼, 화면은 한 번 빈 네모를 띄웠다가 꺼졌다.

둘이 창구 밖으로 나오자 셔터가 내려왔다. 의자 등받이가 부러지고, 셔터는 바닥에서 3센티미터를 남겨 멈췄다. 안쪽에서 번호표 절단기가 한 번 눌리는 소리가 났다.

서진은 출력물 하단을 다시 보았다. S.M. 이니셜 옆 오늘 날짜 아래에 재출력 횟수가 찍혀 있었다.

2회.

첫 번째는 23시 07분. 두 번째는 지금이었다. 두 기록 사이 요청자 칸은 모두 S.M.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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