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란 밖의 이름
안전수칙을 지키면 죽는다 · 2026.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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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란 밖의 이름
오래된 퇴실 서명부는 종이가 누렇게 변한 것처럼 보였지만, 프린터에서 막 나온 따뜻함이 남아 있었다.
맨 위에는 문세영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그 아래에는 퇴실 미확인. 날짜는 4년 전이었다. 서진은 종이를 만지기 전에 사진을 찍었다. 보라는 옆에서 자기 파일을 펼쳤다.
“이런 식으로 보충되는 거면, 오늘 명단도 섞였을 수 있어요.”
서진은 보라를 보았다. 그는 겁먹은 학생이 아니라 틀린 답안을 다시 대조하는 학생처럼 종이를 나눴다. 정민에게 좌석표, 이서현에게 등록금 납부 목록 사진, 박민재에게 출석부를 맡겼다.
“모르는 건 모른다고 쓰고, 확실한 것만 줄 치세요.”
보라의 말이었다.
서진은 지시를 빼앗지 않았다. 그는 문 쪽과 연기 경고등을 맡았다. 도윤은 계단 앞에서 등록 학생들이 더 내려가지 못하게 세웠다. 한 번 잘못 움직이면 같은 층으로 돌아오는 루프가 다시 켜졌다.
학생들은 시험 답을 맞추듯 자료를 비교했다. 누군가는 이름을, 누군가는 좌석 번호를, 누군가는 앱 알림 시간을 봤다. 전문 수사가 아니었다. 자기들이 매일 보던 표를 서로 대조하는 일이었다.
첫 오류는 박민재가 찾았다.
“이주호 이름, 우리 출석부에는 없는데 보충값이라고 되어 있어요.”
보충값.
은채가 통화 너머에서 그 단어를 들었다.
“복사실 서버 열어 봐요. 학원 프린터 설정에 자동 보충 양식이 있을 수 있어요.”
원장은 바로 말했다.
“서버는 개인정보입니다.”
보라가 되물었다.
“제 이름이 사라지는 것도 개인정보예요?”
원장은 대답하지 못했다. 서진은 복사실 문 앞에서 원장에게 열쇠를 요구했다. 원장은 손에 든 열쇠를 보이지 않게 쥐었지만, 도경의 카메라는 손만 찍고 있었다.
“강제로 열면 불법입니다.”
“그럼 직접 여세요.”
원장은 열쇠를 꽂았다.
복사실은 좁았다. 프린터 두 대와 낡은 서버 본체, 시험지 상자가 있었다. 프린터 화면에는 대기 문서 1건이 떠 있었다. 제목은 야간명단_자동보충.
은채가 화면을 보며 경로를 불렀다.
“백로학원 폴더가 아닙니다. 성안시 생활안전대응원, 폐쇄, 대피명단, 보충.”
원장은 “무료 안전 프로그램을 설치했을 뿐”이라고 했다.
서진은 그 말을 그대로 적었다. 무료 안전 프로그램. 설치자 확인 필요.
도경은 서버 화면을 찍으려다 멈췄다. 학생 이름이 한꺼번에 들어왔다. 그는 카메라를 내리고 종이 상자 옆 라벨만 찍었다. 프로그램 설치 USB가 들어 있던 상자였다. 라벨에는 성안시 생활안전 교육지원, 야간시설용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건 학원만의 문제가 아니네요.”
“아직 경로만 확인됐습니다.”
“그 경로가 기사입니다.”
서진은 도경을 보지 않고 말했다.
“학생 이름이 같이 나가면 안 됩니다.”
도경은 화면 확대 대신 라벨과 설치 날짜만 찍었다. 그는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손은 조건을 지켰다.
보라는 학생들에게 자료를 다시 나눴다. 정민은 등록금 납부표에서 자동이체 실패 표시를 찾았고, 이서현은 좌석표에서 반 변경 표시를 찾았다. 박민재는 자기 이름이 두 번 생긴 시간과 휴대전화 이동 시간을 적었다.
“우리가 수학 문제 푸는 거랑 비슷해요.”
정민이 말했다.
“답은 있는데 풀이가 틀린 거.”
보라는 “답도 틀렸어”라고 했다.
서진은 학생들이 말한 비유를 보고서에 넣지 않았다. 대신 역할 분담을 적었다. 출석부, 등록금, 좌석표, 휴대전화 로그. 학생들이 할 수 있는 범위였다. 서버 접근이나 삭제 복구는 은채가 맡았다.
은채는 파일 속성을 읽었다.
“보충값은 빈칸을 채우는 용도예요. 실제 학생 명단에 공백이 있으면, 과거 대피 명단의 미확인 이름을 끌어옵니다.”
“왜 과거 명단을 끌어옵니까.”
“모르겠습니다. 프로그램 설명에는 대피 훈련용 가상 인원이라고 되어 있어요.”
가상 인원.
서진은 그 말을 적고, 옆에 실제 호명 발생이라고 붙였다. 가상이라고 부른 것이 실제 출석에서 이름을 불렀다.
프린터가 다시 움직였다. 출력물 머리글은 백로학원이 아니었다.
성안시 재난대피 명단.
아래에는 오래된 사고 이름들이 있었다. 일부는 퇴실 완료, 일부는 미확인, 일부는 보충 인원. 보라가 손가락으로 보충 인원 열을 따라갔다.
윤하준.
서진은 그 이름을 보고 바로 펜을 멈췄다. 보라가 먼저 말했다.
“이름만으로는 아니죠.”
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생년 일부, 당시 학교, 호출 로그를 봅니다.”
목소리가 조금 늦게 나왔다. 그는 하준이라는 이름 옆에 동생이라고 쓰지 않았다. 보충 인원 윤하준. 문서 날짜 11년 전. 그렇게 적었다.
은채는 서버 로그를 더 읽었다.
“기본 데이터는 11년 전이에요. 그런데 호출 로그는 오늘 22시 50분으로 갱신됐습니다.”
22시 50분. 야간자습 출석 시작 시각과 같았다.
서진은 하준 이름 옆에 세 칸을 만들었다. 기본 데이터, 오늘 호출, 실물 확인. 첫 칸에는 11년 전이라고 썼고, 둘째 칸에는 오늘 22시 50분이라고 썼다. 셋째 칸은 비워 두었다.
비워 둔 칸을 보자 손이 다시 움직이려 했다. 그는 일부러 빈칸에 미확인이라고 썼다. 빈칸보다 미확인이 안전했다. 빈칸은 시스템이 마음대로 채웠고, 사람도 기대를 채웠다.
도윤은 그 칸을 보고 말했다.
“잘했어.”
서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칭찬을 받을 일이 아니었다. 그저 이름 하나를 아직 동생으로 만들지 않은 것뿐이었다.
원장은 윤하준이라는 이름을 몰랐다. 그 얼굴은 거짓말하는 얼굴이 아니라, 자기 학원 장부 밖의 이름이 갑자기 튀어나온 사람의 얼굴이었다.
“우리 학생 아닙니다.”
보라가 바로 물었다.
“그럼 왜 우리 출석에서 불러요.”
원장은 답하지 않았다.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직원실 문 안에 있거나, 서버 경로 어딘가에 있었다.
도윤은 미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은 두 번 가고 끊겼다. 다시 걸자 통화 중으로 바뀌었다.
“피하네.”
그의 말은 짧았지만 손은 휴대전화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보라는 직원실 쪽 문에 귀를 댔다. 서진이 말리기 전에 그는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들어가는 거 아니에요. 듣는 거예요.”
직원실 안에서 스피커가 켜졌다.
“윤하준.”
서진은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으려면 손에 뭔가가 필요했다. 그는 출력물 모서리를 잡았다. 종이가 구겨졌다.
스피커가 다시 말했다.
“윤하준.”
보라가 서진을 봤다.
“현재 음성이에요. 녹음 같지 않아요.”
서진은 그 말을 바로 받아쓰지 않았다. 녹음 같지 않다는 말은 감각이었다. 대신 직원실 스피커 현재 호명, 목격자 김보라라고 적었다.
도경은 카메라를 들었다가 서진 얼굴이 들어오자 각도를 낮췄다. 파일명은 직원실_호명_검증전. 위치 정보는 꺼져 있었다.
직원실 문 아래로 종이 한 장이 밀려 나왔다.
퇴실 확인지.
날짜는 오늘이었다. 이름 칸은 비어 있었다. 서명란도 비어 있었다. 서진이 손을 뻗으려 하자 보라가 먼저 말했다.
“본 사람이 둘 있어야 해요.”
보라의 말은 서진에게만 향한 것이 아니었다. 학생들도 들었다. 정민은 바로 옆으로 와서 섰고, 이서현은 복사실 문틀에서 한 걸음 안으로 들어왔다. 두 사람 모두 종이를 봤다.
도경은 카메라를 들었다가 학생 얼굴이 들어오자 낮췄다. 종이와 세 사람의 손끝만 화면에 잡혔다. 그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검증 전 공유 금지. 원본 보관.”
자기 자신에게 확인하는 말 같았다.
정민과 이서현이 복사실 문 앞에 섰다. 두 학생 모두 종이를 봤다. 서진은 그제야 봉투를 꺼냈다.
서명란의 첫 획이 움직였다.
윤.
잉크가 종이 위에 천천히 생겼다. 누군가 안에서 쓰는 것처럼 보였지만, 문틈 아래에는 손이 없었다.
서진은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보라가 옆에서 시간을 읽었다.
23시 22분.
두 번째 획이 이어졌다. 하.
도윤이 복도 끝에서 말했다.
“학생 먼저.”
서진은 그 말을 들었다. 이번에는 반박하지 않았다. 그는 확인지를 봉투에 넣지 않고, 투명 파일 아래에 고정했다. 아직 서명이 끝나지 않았다.
직원실 안의 목소리는 더 이상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대신 프린터가 한 장 더 출력했다. 오늘 호출 로그. 윤하준, 22시 50분, 상태 대기.
서진은 그 종이를 보고도 문손잡이를 잡지 않았다.
“학생 퇴실 먼저 확인합니다.”
그 말은 자기 자신에게도 하는 말이었다.
직원실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래서 학생들 쪽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계단 아래에서 정민이 자기 짝 이름을 확인했고, 이서현은 휴대전화 배터리가 4퍼센트라고 말했다. 작은 말들이었다. 그러나 그 작은 말들이 지금 살아 있는 학생들의 위치를 만들었다.
보라는 복사실 바닥에 자료를 세 묶음으로 나눴다. 현재 출석부, 보충 명단, 실제 좌석표. 세 묶음은 겹치지 않았다. 이름 하나가 세 종이에 모두 있으면 초록색 표시, 둘에만 있으면 노란색, 하나에만 있으면 빨간색. 그는 색연필이 없어 형광펜 뚜껑 색으로 표시했다.
“전문가처럼 하지 마세요.”
원장이 말했다.
보라는 바로 받았다.
“저희가 매일 하던 건데요. 답 맞히기.”
그 말에 학생 몇 명이 움직였다. 시험지 채점처럼 하면 할 수 있었다. 전문 서버가 아니라 자기 이름과 자리, 납부 알림, 학부모 앱을 맞히는 일이었다.
박민재는 자기 이름을 초록으로 만들지 못했다. 출석부에는 있었고, 좌석표에도 있었지만 보충 명단에는 이주호와 같이 묶여 있었다. 그는 형광펜 뚜껑을 내려놓았다.
“나 아직 반쯤 저쪽이에요?”
“현재는 노란색.”
보라가 말했다.
서진은 노란색이라는 임시 상태를 적었다. 노란색은 불안했지만 빨간색보다 나았다. 임시 상태가 보이면 고칠 수 있었다.
은채는 서버 복사본을 뜨며 말했다.
“대응원 폐쇄 폴더 접근 계정이 하나 더 있습니다. YHJ_0.”
서진의 손이 다시 멈췄다.
은채가 바로 덧붙였다.
“계정명입니다. 사람 확정 아닙니다.”
“알고 있습니다.”
서진은 알고 있다고 말했지만, 종이에 YHJ_0을 쓰는 손이 조금 눌렸다. 보라는 그 필압을 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옆에 계정명이라고 써 주었다.
도윤은 미란에게 세 번째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통화 연결음도 가지 않았다. 바로 음성사서함이었다. 그는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고 직원실 문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
“미란이 막는 게 아니라, 누가 막고 있을 수도 있어.”
“확정하지 않습니다.”
“그래.”
도윤은 짧게 답했다. 둘 다 같은 방식으로 멈췄다. 확정하지 않는 것. 그게 이번 회차의 가장 느린 행동이었다.
프린터는 한 장 더 뱉었다. 오늘 호출 로그의 하단에는 서명 대기 인원이라는 칸이 있었다. 윤하준 옆에는 대기, 문세영 옆에는 미확인, 박민재 옆에는 재분류라고 적혀 있었다. 보라는 그 셋을 보고 말했다.
“이름들이 다 같은 칸이 아니에요.”
서진은 그 말에 밑줄을 그었다. 같은 괴이가 아니라 같은 분류 방식일 수 있었다. 모든 이름을 하준으로 몰아가면 현재 학생들이 지워졌다.
직원실 문 아래 확인지의 윤 자는 마르기 시작했다. 하 자는 아직 젖어 있었다. 준 자는 나오지 않았다.
기다리는 사이 연기 경고음이 다시 빨라졌다. 학생 퇴실이 멈췄기 때문이었다.
서진은 확인지에서 눈을 떼고 계단 쪽으로 갔다. 하준 이름은 문 아래에 남았고, 학생들은 아직 복도에 있었다. 순서를 바꾸면 누군가 비용을 냈다.
계단 앞에서는 학생 둘이 서로 이름을 잘못 부르고 있었다. 한 명은 보충 명단에 들어간 옛 이름을 들었고, 다른 한 명은 현재 반 이름을 들었다. 둘 다 자기 친구를 부르는 중이었다. 서진은 어느 쪽이 진짜냐고 묻지 않았다.
“현재 출석부 이름.”
보라가 먼저 말했다.
학생은 현재 이름을 말했다. 짝 학생은 좌석 번호를 말했다. 이름 하나만으로는 흔들렸지만, 좌석과 물건이 붙자 계단 불이 노란색에서 초록으로 바뀌었다.
보라는 그걸 보고 자기 표에 표시했다.
이름 + 좌석 + 물건.
그는 세 칸을 만들었다. 학생들은 그 칸을 보고 자기 짝을 확인했다. 한 학생은 이름을 잊었지만, 짝의 분홍색 샤프를 기억했다. 다른 학생은 좌석을 틀렸지만, 아침에 빌린 지우개를 기억했다. 완벽하지 않은 기억들이 서로를 보정했다.
은채는 서버 복제율을 불렀다.
“72퍼센트. 중간에 끊기면 경로만 남습니다.”
“경로라도 남기세요.”
“원본은 대응원 폐쇄 폴더에 있습니다. 지금 학원 서버에는 캐시만 있어요.”
캐시라는 말은 학생들에게 의미가 없었다. 서진은 그것을 프린터에 남은 임시 복사본이라고 바꿔 적었다. 전문어를 이해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가 무엇을 갖고 있고 무엇이 사라질 수 있는지 보이게 하기 위해서였다.
직원실 안에서 의자가 끌리는 소리가 났다. 서진의 몸이 먼저 반응했다. 도윤이 손목을 잡지 않고, 그의 앞에 섰다.
“학생.”
한 단어였다.
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복사실에서 나온 종이를 봉투에 넣고, 보라에게 목격자 서명을 받았다. 직원실 문은 아직 열지 않았다. 오늘 날짜 서명은 진행 중이었고, 학생 대피는 진행 중이었다. 둘 중 하나를 먼저 끝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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