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없는 사람 없이

안전수칙을 지키면 죽는다 · 2026. 6. 21.

조회수 9

없는 사람 없이

장명수가 두 번째 줄을 읽기도 전에 404동의 엘리베이터 문들이 모두 열렸다. 1호기 앞에는 여전히 1304호 문패가 반복되는 복도가 있었다. 하지만 오른쪽 끝 문패 하나가 깜박이며 1204로 돌아왔다.

방송실 마이크에서는 장명수의 숨소리가 크게 났다.

서진은 문 밖으로 나가지 않고 수첩을 폈다.

“호명은 주소, 현재 상태, 목격자 두 명을 같이 붙입니다. 이름만 반복하지 않습니다.” 도윤이 문틈을 잡고 말했다. “빨리 해.” “빠르게 하되 비어 있는 칸을 만들지 않습니다.” 수아는 자기 손바닥의 이름을 확인하고 카메라를 켰다.

이번에는 저장 표시가 사라지지 않았다.

장명수는 택배대장의 첫 줄을 다시 읽었다.

“1301호, 수령인 성명 삭제됨. 당시 실제 거주자. 목격 기록, 택배대장.” 인터폰 하나가 켜졌다. 잠에서 덜 깬 주민 목소리가 “여기 1201호인데요”라고 했다.

은채가 원격으로 말했다.

“1301 표기가 1201 인터폰과 연결됩니다. 벽면 표시 하나 정상화.” 복도 왼쪽 문패의 1304가 1201로 바뀌었다.

숫자가 변하는 소리는 없었다.

그냥 스티커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붙어 있었다.

서진은 그 변화를 적었다.

바뀐 문패를 보고 수아가 말했다.

“이름보다 주소가 먼저 돌아오네요.” “둘 다 필요합니다.”

방송은 길어졌다.

장명수는 현재 탑승자 다섯 명을 다시 불렀고, 각 세대는 인터폰으로 현재 인원을 답했다. 어떤 세대는 짜증을 냈고, 어떤 세대는 왜 새벽에 이름을 말해야 하느냐고 했다.

서진은 답을 강요하지 않았다.

“현재 방 안에 계신 분 성함과 옆에서 듣는 분 한 명만 확인해 주세요.” 은채는 응답 시간을 기록했다.

도윤은 문 밖 복도 깊이를 확인했다.

같은 1304호 문패는 응답이 늘 때마다 하나씩 평범한 호수로 바뀌었다. 민규는 자기 어머니와 통화하면서 “나 여기 있어. 수아 누나도 있어”라고 말했다.

수아는 그 말을 듣고 화면을 잠깐 내렸다.

수아의 이름을 부를 차례에 방송이 끊겼다.

마이크 표시등이 꺼지고 관리소장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방송 중단. 확인되지 않은 내용입니다.” 동시에 엘리베이터 천장 스피커가 말했다. “외부 출입자는 탑승 인원에 포함하지 않습니다.” 수아는 이번에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 배달 앱을 열었다.

주문번호가 돌아와 있었다.

기사명은 아직 공란이었다.

“반만 돌아왔어요.” 서진은 관리소장에게 말했다.

“공식 점검 명단을 여십시오. 외부 출입자 칸이 아니라 실제 현장 인원 칸입니다.” “계약직이 지시할 사안 아닙니다.” “그럼 책임자가 지시하십시오.”

소방 점검관이 도착한 것은 그때였다.

관리실 영상통화 화면에 주황색 조끼와 헬멧이 들어왔다.

점검관은 장황하게 묻지 않았다.

“전원 대피 명령. 404동 엘리베이터 사용 중지. 관리 책임자 서명.” 관리소장은 “확인 절차가”라고 시작했다.

점검관은 종이를 밀었다.

“절차 때문에 부른 겁니다. 지금 서명 안 하면 직권으로 붙입니다.” 서진은 수첩의 세 조건 옆에 소방 점검관 도착이라고 적었다.

권한은 말보다 늦게 오지만, 오면 문장을 바꿨다.

관리소장은 펜을 들었다.

손끝이 떨렸지만 서명란을 피하지는 못했다.

서진은 관리소장이 과거 축소 보고와 현재 인원 누락을 같은 문서에 쓰게 했다. “2018년 옥상 세대 대피 인원 미확인. 2026년 404동 1호기 탑승자 한수아 미탑승 처리.” 관리소장은 “확정 표현은 곤란합니다”라고 했다. 점검관이 “그럼 미확인으로 쓰고 사용 중지 붙입니다”라고 답했다.

서진은 수아를 봤다.

“이름 방송 동의 범위 다시 확인합니다.” 수아는 손바닥을 펼쳤다. “한수아. 배달기사. 1호기 탑승자. 번호랑 주소 빼고요.” 장명수가 방송을 되찾았다.

“현재 1호기 탑승자 한수아. 배달기사. 목격자 윤서진, 최민규.”

수아의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배달 앱 계정명이 돌아왔다.

출입 로그에는 00:16 공동현관 통과가 생겼다.

단체 채팅방에도 한수아가 다시 초대됐다.

첫 메시지는 사과가 아니었다.

‘배달기사님도 있었나요?’였다.

수아는 그 화면을 보고 웃지 않았다.

“돌아와도 이 정도네요.” 민규가 들고 있던 캔커피를 내밀었다. “누나가 준 거.” 수아는 캔을 받지 않고 민규 손에 다시 쥐여 줬다. “나가면 새 걸로 사.” 민규는 이번에는 기억한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베이터 표시창이 13에서 1로 떨어졌다.

숫자가 내려가는 동안 아무도 환호하지 않았다.

문은 실제 1층 로비에서 열렸다.

로비 바닥에는 주민들의 슬리퍼 자국과 소방 호스가 섞여 있었다. 장명수는 방송실에서 내려오지 못한 채 영상통화로만 보였고, 관리소장은 점검관 옆에서 사용 중지 문서에 두 번째 서명을 했다.

도윤은 먼저 사람 수를 셌다.

“서진, 수아, 민규, 장명수는 화면, 나. 다섯.” 서진은 “장명수 반장님은 현장 방송실”이라고 고쳤다. 도윤은 “살아 있으면 됐어”라고 하려다 멈췄다.

살아 있다는 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사건이었다.

그는 대신 말했다.

“네 위반 때문에 건물 전체가 열렸어.” 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고 보고서 첫 줄에 적었다.

최초 대응자 윤서진은 수칙 위반으로 전체 위험 확산 가능성을 만들었음.

404동 출입문에는 긴급 사용 중지 스티커가 붙었다.

주민들은 임시 숙소 안내 문자를 받았다.

어느 집은 약 봉투를 챙기지 못했고, 어느 집은 반려동물을 찾느라 계단을 다시 오르려 했다.

점검관은 못 올라가게 막았다.

관리소장은 주민들에게 둘러싸여 보험과 숙소 비용을 설명했다. 수아는 배달 세 건이 지연 처리되고 계정이 임시 정지됐다는 알림을 받았다. 장명수는 영상 속에서 경비 모자를 벗어 책상 위에 놓았다.

구출은 비용을 지우지 않았다.

서진은 그 비용을 보고서 둘째 줄에 적었다.

사용 중지, 임시 이주, 배달 손실, 고용 위험.

방송으로 이름을 읽는 일은 주문처럼 작동하지 않았다. 잘못 읽으면 문패가 돌아가지 않았고, 목격자 없이 이름만 부르면 인터폰이 끊겼다. 1207호 남자는 자기 집에 혼자 있다고 했지만 뒤에서 여자가 “나도 있어”라고 말하자 복도 문패가 잠깐 1304로 되돌아갔다.

서진은 방송실의 장명수에게 다시 읽게 했다.

“1207호 현재 거주자 두 명, 목격자 상호 확인.” 장명수는 같은 문장을 천천히 반복했다.

그제야 문패가 1207로 고정됐다.

수아가 말했다.

“대충 부르면 또 빠지는 거네요.” 서진은 “네. 이름만으로는 부족합니다”라고 답했다.

관리소장은 서명 직전까지 비용을 말했다.

건물 사용 중지가 붙으면 엘리베이터 보수비, 임시 숙소, 소방 재점검, 보험 재심사, 입주자대표회의 손해배상이 이어진다고 했다. 주민 한 명은 영상통화 너머에서 “그럼 우리 집값은요”라고 물었다.

수아가 바로 쏘아붙이지 않았다.

그는 자기 앱의 복구된 주문목록을 보고 있었다.

밀린 배달 세 건의 취소 수수료가 기사 부담으로 표시됐다. “집값도 돈이고, 제 계정 정지도 돈이에요.” 그 말은 싸우자는 말보다 계산표에 빠진 칸을 넣으라는 말에 가까웠다. 점검관은 사용 중지 문서 아래에 임시 대피 비용 담당 부서 칸을 추가했다.

민규의 어머니가 로비에 도착했다.

그는 아들을 끌어안으려다가 손등의 한 글자를 보고 멈췄다.

한.

민규는 “한수아 누나 이름”이라고 설명했다. 어머니는 수아에게 고맙다고 말하려다가, 배달기사라는 단어 앞에서 호칭을 고르지 못했다.

수아가 먼저 말했다.

“괜찮아요. 저도 여기 탔으니까요.” 감사와 책임이 섞이면 누가 누구에게 빚졌는지 흐려졌다. 서진은 그 장면을 보고 보고서에 ‘민규 보호자, 수아 탑승 사실 직접 확인’이라고 적었다. 감정은 문서 한 줄로 줄어들었지만, 그 한 줄이 다음 삭제를 막을 수 있었다.

도윤은 구출 뒤에도 칭찬하지 않았다.

그는 1층 로비 바깥으로 나가기 전 엘리베이터 앞에 안전띠를 붙였다. “네가 다섯 명이라고 말해서 수아가 버텼다. 그건 맞아.” 서진은 펜을 멈췄다. “그리고 건물 전체 문이 열렸습니다.” “그것도 맞아.” 도윤은 두 문장을 나란히 놓았다.

어느 하나로 다른 하나를 지우지 않았다.

서진은 그 방식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보고서 첫 줄의 자기 책임은 지우지 않았다.

은채는 붉은 편집선을 한 번 더 분석했다.

“색상값이 404동 카드와 성안선 카드에서 일치합니다. 원본 인쇄가 아니라 동일한 편집 레이어로 보입니다.” 서진은 “S.M. 이니셜은요”라고 물었다. “해상도 부족. S와 M 사이에 점이 하나 있습니다. 서미란 팀장으로 단정 불가.” 단정 불가라는 말이 오히려 오래 남았다. 미란은 다음 현장 주소만 보냈고, 장명수는 방송실에서 내려오며 해고 통보 문자를 받았다.

그는 문자를 보여 주며 “생각보다 빠르네요”라고 했다. 수아가 “일 빠른 데가 있었네”라고 답했다.

둘은 웃지 않았다.

수아는 로비 밖으로 나가자마자 1102호 고객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음이 세 번 울리고, 상대는 “아까 배달 완료 아니었어요?”라고 물었다.

앱에는 복구된 시간과 삭제됐던 시간이 섞여 있었다.

수아는 “음식은 못 드셨죠. 환불 처리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상대는 한참 뒤에 “그럼 기사님 손해예요?”라고 물었다.

수아는 대답하지 못했다.

서진은 그 통화를 들으며 사건 종료가 곧 회복이 아니라는 걸 다시 확인했다.

이름은 돌아왔지만 손해는 자동 복구되지 않았다.

장명수는 해고 문자를 받은 뒤에도 방송실 상자를 정리했다. 그는 초기 공지와 수정 공지를 따로 봉투에 넣고, 봉투 겉면에 날짜를 썼다. 서진이 “원본 훼손하지 마세요”라고 하자 장명수는 “이제 안 버립니다”라고 답했다.

그 말은 작은 결심이었다.

수아는 장명수에게 “아저씨, 다음에 또 모른 척하면 제가 영상 올립니다”라고 했다. 장명수는 “그땐 먼저 말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둘 사이의 동맹은 다정하지 않았다.

다만 서로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았다.

은채는 404동 사건의 최종 로그를 세 묶음으로 나눴다.

첫째, 수아가 삭제된 시간.

둘째, 초기 공지가 복구된 시간.

셋째, 관리소장 서명 뒤 앱과 출입 기록이 돌아온 시간.

세 묶음은 완전히 맞물리지 않았다.

이름을 방송했다고 바로 모든 것이 돌아오지 않았고, 서명이 붙은 뒤에도 손해는 남았다.

서진은 그 불일치를 마음대로 해석하지 않았다.

보고서에는 복구 시점 상이, 추가 확인 필요라고 썼다. 은채가 “좋은 말로 하면 보수적이고, 나쁜 말로 하면 답답합니다”라고 했다. 서진은 “이번엔 답답한 쪽이 낫습니다”라고 답했다.

주민들은 버스로 임시 숙소에 이동했다.

누군가는 관리소장에게 욕을 했고, 누군가는 장명수에게 왜 이제 말했느냐고 했다.

장명수는 변명하지 않았다.

“그때 말했어야 했습니다.” 같은 문장을 여러 번 말했다.

수아는 그 장면을 찍지 않았다.

대신 장명수가 들고 있는 공지 봉투를 찍었다.

“사람 얼굴보다 이게 오래 가요.” 도경이 있었다면 좋아했을 말이라고 서진은 생각했다.

생각만 했다.

첫 사건은 끝났지만, 문서와 얼굴 중 무엇을 공개할지의 문제는 다음 사건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서진은 성안선으로 이동하기 전 수아에게 보고서 사본을 보내도 되는지 물었다. 수아는 “내 이름 들어간 부분은 저한테 먼저 보내요”라고 했다. 동의는 구조 뒤에 붙는 예의가 아니라 다음 기록의 조건이었다.

서진은 전송 보류, 당사자 확인 후 공유라고 적었다.

미란에게서 추가 지시는 없었다.

대신 현장 배정표만 갱신됐다.

404동은 종료가 아니라 관찰 대상으로 바뀌었고, 성안선 막차는 신규 현장으로 올라왔다.

서진은 종료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

첫 사건은 끝났지만 수칙은 다른 카드로 이동했다.

그 차이를 적어 두지 않으면 다음 보고서가 또 사람을 안심시키는 문장으로만 남을 것이다.

은채가 카드 원본 사진을 복원해 보냈다.

한 명 적게 답할 것이라는 문장 아래 붉은 편집선이 있었다.

선은 인쇄가 아니라 스캔 위에 덧그은 표시였다.

모서리에는 작은 이니셜이 남아 있었다.

S.M.

서진은 바로 서미란에게 물었다.

“팀장님, S.M.이 누구입니까.” 답장은 17초 뒤 왔다.

성안선 막차, 00:58, 3량 앞칸.

승객 자극 금지.

이니셜에 대한 답은 없었다.

도윤이 메시지를 보고 현장 가방을 들었다.

“바로 간다.” 서진은 카드 사진을 확대했다. 다음 현장 카드 첫 줄에도 같은 붉은 편집선 아래 문장이 숨어 있었다.

한 명 적게.

이번 화가 재미있었나요?

좋아요와 평점은 언제든 변경할 수 있습니다.

독자 평점 9.0 (1)

댓글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