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주인
포기한 선택을 다시 여는 장학생 · 2026.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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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린의 이의 신청은 이틀 만에 반각됐다. 규정 신설은 학기 중 불가, 재검토는 다음 학기.
미래는 그 통지를 조 공유함에 붙이고 아래에 한 줄 적었다. 거부권 행사 1건, 보상 없음, 반각 사유 절차.
도윤이 원장실 호출을 받은 건 그날 오후였다.
원장실에는 서류가 없었다.
도윤은 그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태호의 책상에는 기록지가 늘 쌓여 있었고, 미래의 책상에는 메모지가 층으로 있었다. 권희수의 책상에는 종이 한 장이 있었다.
“앉으세요.” 권희수가 손끝으로 의자를 가리켰다.
도윤은 앉았다. 앉으면서 이 방에 들어온 이유를 다시 확인했다. 호출이었다. 사유는 적혀 있지 않았다.
“앉으라고 한 이유부터 말하지 않겠습니다.” 권희수가 종이를 손끝으로 눌렀다. “먼저 학생이 알아야 할 숫자가 있습니다.”
“…예.”
“이번 주 도시 위험도는 십사 점 이 퍼센트입니다.”
“…예?”
“학생이 궁금해할 줄 알았습니다. 최하위 분기반은 재난 대응 순번에서 뒤에 있으니까요.” 권희수가 종이를 뒤집었다. “십사 점 이. 지난주도 십사 점 이였습니다.”
“같은 숫자입니까.”
“같습니다.” 그녀는 종이를 더 보지 않고 대답했다.
도윤은 그게 이상한지 아닌지 판단할 근거가 없었다. 도시 위험도라는 걸 계산해 본 적이 없었다. 다만 미래가 옆에 있으면 뭐라고 할지는 알았다. 소수점 첫째 자리까지 같은 값이 두 주 연속 나오는 계산은 계산이 아니라 발표라고.
“학생의 장학 동결을 풀 수 있습니다.”
말이 그렇게 바뀌었다. 도윤의 등이 의자에서 조금 떨어졌다.
“조건이 있겠죠.”
“있습니다. 특별 트랙입니다.” 권희수는 종이를 도윤 쪽으로 밀었다. “보관고 적합성 검사를 받고, 개별 지도로 전환합니다. 장학 지원은 전액 복원이고, 요양 지원 항목도 추가됩니다.”
요양 지원. 도윤은 그 네 글자에서 시선을 떼는 데 실패했다.
“7조는요.”
“해체는 아닙니다. 학생만 나옵니다.” 권희수의 말투는 위로하려는 쪽이 아니었다.
“그게 해체죠.”
“넷 중 하나가 나가면 셋이 남습니다.” 권희수의 목소리는 위협도 설득도 아니었다. 계산 결과를 읽는 목소리였다. “세 사람은 학생 없이도 진단 절차를 완성했습니다. 지난주 장치 복구 기록을 봤습니다. 절차 점수는 그 셋이 만들었습니다.”
사실이었다. 반박할 데가 없어서 도윤은 다른 걸 물었다.
그리고 반박할 데가 없다는 게 이 방의 방식이라는 것도 알았다. 권희수는 도윤이 못 하는 것을 지적하지 않았다. 도윤의 조원이 잘하는 것을 지적했다.
“적합성 검사가 뭡니까.”
“학생의 재개방이 보관고 방출과 얼마나 맞물리는지 봅니다.” 권희수가 손가락으로 종이 두 번째 항목을 짚었다. “그 과정에서 과거 검사 기록을 대조합니다. 삼 년 전 도시 검사 기록 전부에 접근합니다.”
도윤은 그 문장을 두 번 들었다. 두 번째에 손이 차가워졌다.
삼 년 전 도시 검사. 누나가 갔던 검사였다.
“누나 기록도요.” 도윤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한채은 씨는 그해 참여자입니다.” 권희수는 이름을 정확히 말했다. “대조 목록에 포함됩니다.”
도윤은 누나 편지의 마지막 줄을 기억하고 있었다. 학원에 내 기록 제출하지 마. 그 줄을 받은 게 사흘 전이었다.
지금 이 방에서 그가 서명하면, 제출이 아니라 열람이 된다. 단어가 다르다는 게 위로가 되지 않았다.
“왜 저한테 이걸 주십니까.”
“학생이 필요합니다.” 권희수가 처음으로 종이에서 손을 뗐다.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도시 위험도는 상승 중입니다. 발표하는 숫자와 별개로요.”
“그럼 발표 숫자는 뭡니까.”
“대응 가능한 범위입니다.”
“그건 위험도가 아니고 계획이잖습니까.”
“계획이 무너지면 위험도가 의미를 잃습니다.” 그녀는 그 말을 한 번도 연습하지 않은 사람처럼 하지 않았다.
“발표를 안 바꾸십니까.”
“바꾸면 대피 계획이 먼저 무너집니다.” 그녀는 그 대답을 미리 준비해 둔 사람처럼 말했다. “학생 능력은 보관고 부하를 나눌 수 있습니다. 삼십삼 초는 짧지만, 짧은 걸 여러 번 쓰는 방식이 있습니다.”
“그건 제 몸에 남습니다.”
“남습니다. 그래서 지원 항목이 붙습니다.” 그녀는 그 문장을 미안해하지 않고 말했다.
도윤은 그 순간 자기가 계산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값을 알고 서명하는 사람과 모르고 서명하는 사람 중 누가 나은지 아직 결론이 없었는데, 지금 그는 값을 정확히 보고 있었다.
전액 복원. 요양 지원. 누나 기록.
그리고 그는 종이를 처음부터 읽기로 했다. 뒷면부터 읽는 사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뒷면에는 실험 조건이 있었다. 다섯 항목이었고, 네 번째가 이랬다.
피험자의 사용 결정에 대한 제삼자 즉시 중단 요구는 실험 방해 요소로 처리한다.
도윤은 그 문장을 세 번 읽었다.
제삼자 즉시 중단 요구. 조원이 멈춰라고 말하는 것. 미래의 첫 번째 조항. 가람이 어제 손바닥을 든 것.
방해 요소.
“이 네 번째 항목, 빼 주실 수 있습니까.”
“왜요.” 권희수가 처음으로 되물었다.
“제 조원들이 저를 멈출 수 있어야 합니다.”
“실험 중에는 관찰자가 판단합니다.” 권희수가 처음으로 문장을 짧게 했다. “학생을 멈추는 사람이 여러 명이면 데이터가 흔들립니다.”
“어제 그 흔들림이 사람 하나 살렸습니다.”
“결과가 좋았던 사례를 근거로 쓰지 마세요.” 그녀의 말이 정확했고, 그래서 아팠다. “학생이 첫날 배운 게 그거였을 텐데요.”
도윤은 그 반박에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자기가 물어야 할 걸 물었다.
“원장님. 이 조항 넣으신 이유가, 데이터입니까 아니면 제가 멈추는 게 싫으신 겁니까.”
권희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서린이 하는 식으로 문장을 짧게 하지도 않았고, 태호처럼 여백에 적지도 않았다. 그냥 도윤을 봤다.
“학생은 누나 기록을 보고 싶어 합니다. 그건 압니다.”
“압니다.” 도윤이 인정했다.
“그리고 저는 학생이 지금 무엇을 포기하는지도 압니다.” 그녀가 종이를 다시 자기 쪽으로 가져갔다. “거절하시겠습니까.”
도윤은 세어 봤다. 지금 거절하면 잃는 것. 백이십칠만 원의 절반, 요양 지원, 누나의 삼 년 전 삼십삼 초.
얻는 것. 세 사람이 자기를 멈출 권한.
계산이 안 맞았다. 잃는 쪽이 더 컸다. 그는 그걸 정확히 알면서 말했다.
그리고 계산이 안 맞는데도 답이 나오는 이유를 알았다. 어제 가람이 손바닥을 들었을 때, 그 한마디가 도윤의 손을 정말로 멈췄다. 멈춘 손은 도윤 것이었지만, 멈출 수 있게 만든 건 도윤이 아니었다.
그 권한을 판 사람은 다음에 그 권한을 다시 살 수 없다.
“거절합니다.”
“이유를 적어야 합니다.” 그녀가 펜을 들었다.
“제가 저를 못 믿습니다.” 도윤이 말했다. “그게 이유입니다.”
“그건 성장의 언어입니까, 회피의 언어입니까.”
“모르겠습니다.” 도윤은 그 질문을 피하지 않았다. “근데 첫날에 저는 저를 믿었고, 사람 하나가 자기 이유를 잃었습니다.”
권희수는 그 문장을 종이에 적었다. 처음으로 뭔가를 쓰는 손이었다.
“한 가지만 알려 드리겠습니다.”
도윤은 일어나려다 멈췄다.
“한채은 씨의 그해 검사번호는 삼삼공사이입니다.”
도윤은 그 숫자를 들었다. 다섯 자리였고, 앞의 두 자리가 삼삼이었다.
“…왜 알려 주십니까.”
“학생이 거절했으니까요.” 권희수가 종이를 서랍에 넣었다. “이 숫자는 공개 항목입니다. 검사번호만으로는 아무것도 열람할 수 없습니다. 다음에 오시면 나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협박이십니까.”
“정보입니다.” 그녀가 서랍을 닫았다. “학생이 거절할 자유를 유지하려면, 무엇을 거절했는지는 알아야 합니다.”
도윤은 그 말이 옳다는 것과 그 말이 자기를 다시 이 방에 오게 만들 것이라는 걸 동시에 알았다. 그게 이 사람의 방식이었다. 협박은 거절할 수 있고, 정보는 거절할 수 없다.
복도로 나와서 도윤은 벽에 손을 짚었다. 왼손이었다. 장갑 아래에서 아무것도 뜨거워지지 않았다.
삼삼. 왼손의 선은 서른세 개다.
그는 그 두 숫자가 같다는 걸 알았고, 같다는 게 무슨 뜻인지는 몰랐다.
미래는 생활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손에 메모지가 있었다.
“원장실 갔다 왔어요?”
“어떻게 알았어.” 도윤이 걸음을 멈췄다.
“호출 기록이 조 공유 항목이에요.” 미래가 메모지를 펴지 않았다. “뭐 받았어요?”
도윤은 거짓말하려다 말았다. 이 조에서 거짓말은 한 번 해 봤고, 값을 알고 있었다.
“특별 트랙 제안 받았어. 장학 전액 복원, 요양 지원, 누나 기록 열람.”
미래의 손이 멈췄다.
“거절했어.”
“왜요?” 미래의 목소리가 조금 빨라졌다.
“뒷면 네 번째 항목에 너희가 나를 멈추는 게 방해 요소라고 적혀 있었어.”
미래는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물었다.
“그 항목이 없었으면 하셨어요?”
도윤은 그 질문이 정확하다고 생각했다. 정확한 질문에는 정확하게 답해야 한다.
“했을 거야.”
미래가 메모지를 펴서 적었다. 도윤은 그 글씨를 봤다. 조원 이탈 위험 항목이었고, 오늘 날짜가 적혀 있었다.
“적는 거야?”
“적어요. 학생이 정직하게 말했으니까 정확하게 적어요.” 미래가 펜을 닫았다. “그리고 하나 더요.”
“뭐.”
“고마워요. 이건 조항에 없는 말이에요.”
도윤은 그 말에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서 자기 방식대로 했다. 다음 순서를 제시하는 방식.
“그 숫자 하나 확인해 줄 수 있어?”
“무슨 숫자요?”
“도시 위험도. 이번 주랑 지난주 발표값.”
미래가 메모지를 다시 폈다. “왜요?”
“두 주 다 십사 점 이라고 했어. 소수점까지 같아.”
미래의 펜이 멈췄다. 멈춘 채로 삼 초쯤 있었다.
“그거 이상해요.”
“이상해?”
“위험도는 사고 건수랑 기상 변수가 들어가요. 지난주에 실습장 철거 사고 하나 있었어요.” 미래가 숫자를 적었다. “변수가 바뀌었는데 결과가 같으면, 계산이 아니라 반올림을 정해 놓은 거예요.”
“그럼 뭐가 되는데.”
“몰라요. 그래서 이건 아직 아무것도 아니에요.” 미래는 그 줄에 물음표를 붙였다. “근데 적어 둘 값은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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