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선택
포기한 선택을 다시 여는 장학생 · 2026.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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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호는 신청서를 반으로 접어 도윤 쪽으로 밀지 않았다. 책상 위에 그냥 놓았다. 밀면 권하는 게 되고, 권하면 나중에 책임의 일부가 자기에게 온다는 걸 아는 사람의 손이었다.
“장학 회복 시험은 다음 주입니다. 신청하면 넣어 줄 수 있습니다.”
“넣어 주신다는 건 통과시켜 준다는 뜻은 아니죠.” 도윤은 종이를 집지 않았다.
“아닙니다.” 태호는 다른 종이를 꺼냈다. “대신 이걸 하면 회복 심사에서 참고 항목이 하나 생깁니다. 보조 임무입니다.”
종이에는 응시번호 삼십일과 이름이 적혀 있었다. 강준.
“추적 임무입니까.”
“관찰입니다. 이 학생이 앞으로 삼 주간 어떤 선택을 하는지 기록합니다. 개입은 금지입니다.” 태호가 조항 번호를 짚었다.
도윤은 그 문장에서 개입이라는 단어의 범위를 물어보고 싶었다. 능력만 금지인지, 말도 금지인지. 물어보면 태호는 정확한 답을 줄 것이고, 정확한 답은 아마 도윤에게 불편할 것이다.
“왜 저한테 주십니까. 제가 원인인데요.”
“원인이니까 줍니다.” 태호가 초시계를 책상에 놓았다. “다른 사람이 관찰하면 학생은 결과만 듣습니다. 결과만 듣는 사람은 다음에도 같은 걸 합니다.”
“회복 시험은 그럼 못 봅니까.”
“둘 다 할 시간은 없습니다. 하나를 고르십니까, 아니면 제가 고르게 하십니까.”
도윤은 절반으로 잘린 장학 지원의 금액을 기억하고 있었다. 정확한 숫자를 기억한다는 게 지금 유리하지 않았다. 유리하지 않을 때 그의 숫자는 더 정확해진다.
도윤은 그 말을 반박하지 못했다. 반박할 문장을 세 개 만들었고, 세 개 다 자기 편의였다.
“하나 더 있습니다.” 태호가 종이 아래쪽을 짚었다. “이 학생은 학생을 평가자로 원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경우 학생이 아니라 이 학생이 평가자를 고릅니다.”
“제가 고르는 게 아닙니까.”
“학생이 고르면 관찰이 아니라 감독이 됩니다.” 태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태호는 종이 여백에 한 줄을 더 적었다. 이번에는 도윤이 그 글씨를 읽을 수 있었다. 평가관 재량 판단, 오류 가능성 있음.
“그것도 적으십니까.”
“적습니다. 제 판단이 틀리면 이 학생이 이의를 걸 근거가 필요합니다.” 태호가 펜을 놓았다. “학생 것도 아니고 제 것도 아닙니다. 저 학생 것입니다.”
관찰 일지 첫 줄은 이틀 동안 비어 있었다. 강준은 수업에 나오지 않았고, 기권한 학생의 출석은 아무도 확인하지 않았다.
사흘째에 도윤은 그를 찾았다. 찾은 장소가 문제였다.
강준은 실습동 3층의 자재 통로에서 발견됐다.
통로는 원래 학생 출입 구역이 아니었다. 좁고, 바닥에 케이블이 지나가고, 오른쪽으로 열린 하역구가 있었다. 하역구 아래는 이 층 높이였다. 도윤은 그 높이를 몸으로 알고 있었다. 열한 초 동안 남의 것으로 겪었다.
강준은 하역구 쪽 벽에 붙어서 반대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벽에 붙는 게 아니라, 하역구가 있다는 걸 계산에 넣지 않는 걸음이었다.
도윤은 케이블 위에 서서 멈췄다. 부르면 놀랄 것이고, 놀라면 오른쪽으로 반 걸음 갈 수 있었다.
대신 그는 케이블 릴을 발로 밀었다. 소리가 왼쪽에서 났다.
강준이 소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몸도 왼쪽으로 왔다.
“어. 그 분.” 강준이 상자를 고쳐 안았다.
“여기 출입 구역 아니야.”
“짐 옮겨 달라고 해서요.” 강준이 상자 하나를 들어 보였다. “선배가요.”
“그 선배 지금 어디 있어.”
“먼저 갔어요.” 강준은 그게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목소리였다.
도윤은 그 상황의 구조를 봤다. 선배는 위험한 통로에 짐을 남겼고, 위험을 잘 못 재는 애가 그 짐을 들었다. 선배는 강준이 어제까지 어떤 애였는지 모른다. 아무도 모른다. 기록에는 기권이라고만 적혀 있고, 기권 사유 칸은 비어 있다.
“그 상자 나 줘. 내가 옮길게.”
“왜요?”
“내가 옮기고 싶어서.”
“그럼 제가 뭐 해요?” 강준은 상자를 놓지 않았다. “저 이거 하기로 했는데요.”
하기로 했는데요. 그 말에는 자기가 정했다는 자부심이 조금 있었다. 도윤은 그 조금을 알아들었고, 그래서 상자를 빼앗는 게 무엇을 빼앗는 일인지도 알았다.
도윤의 왼손이 반쯤 올라갔다. 봉인은 반쯤 풀린 상태였고, 사물 대상은 증언자 동석 시 십 초. 증언자는 없었다. 그리고 강준은 사물이 아니었다.
손을 내렸다.
개입 금지. 관찰. 도윤은 그 두 단어가 지금 이 통로에서 무슨 뜻인지 알았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었다. 강준의 선택을 도윤의 선택으로 바꾸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래서 그는 세 번째 방법을 썼다.
“강준아. 하역구 저기 열려 있는 거 봤어?”
“…봤어요.”
“떨어지면 이 층이야. 안 죽어. 다리는 부러져.”
강준이 하역구를 봤다. 보고 나서 한 번 더 봤다.
“그럼 안 가는 게 좋겠네요.” 그가 하역구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
“응. 근데 너 아까 그쪽 벽에 붙어서 걸었어.”
“그랬나요.” 강준은 자기가 걸어온 자리를 봤다. 놀라지도, 무서워하지도 않았다. 새로 알게 된 사실을 확인하는 표정이었다. “몰랐어요.”
“앞으로 여기 오면, 오른쪽 말고 왼쪽 벽에 붙어. 그거 하나만 기억해.”
“왼쪽.” 강준이 그 단어를 한 번 더 발음했다. “그건 할 수 있어요.”
도윤은 그 대답을 일지에 적었다. 지시 하나는 기억한다. 이유는 묻지 않는다. 적으면서 그는 이게 개선인지 손상의 다른 얼굴인지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판단하면 다음에 또 고치려 들 것이다.
도윤은 그날 오후에 시설과에 갔다. 하역구 안전난간 설치 요청서를 썼다. 요청자 칸에 자기 이름을 쓰고, 사유 칸에 이렇게 적었다. 위험 판단이 손상된 학생이 통행 중임.
담당자가 물었다. “손상이라는 게 뭡니까?”
“제가 만든 겁니다.”
“…그것도 적을까요?” 담당자의 펜이 멈췄다.
“적어 주십시오.”
요청서는 이틀치 서류 대기열의 맨 아래로 갔다. 도윤은 다음 날도 갔고, 그다음 날도 갔다. 세 번째에 담당자가 순서를 올려 줬다. 도윤이 뭘 잘해서가 아니라, 매일 오는 사람을 상대하는 게 더 번거로웠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것도 기록했다. 관찰 일지 셋째 줄. 내가 한 일은 부탁을 세 번 한 것이다.
난간은 이틀 뒤에 설치됐다. 도윤은 그게 자기가 한 일 중에 처음으로 되돌릴 필요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안심했다는 게 문제였다.
삼 일 뒤, 강준이 도윤을 찾아왔다. 손에는 이의 신청서가 있었다.
“저 이거 내려고요.” 강준이 서류를 내밀었다.
“무슨 이의?”
“평가자 변경이요.” 그가 서류를 펼쳐 보였다. “관찰자를 바꿔 달라고요.”
도윤은 그 종이를 봤다. 신청 사유 칸이 채워져 있었다. 강준의 글씨였고, 문장이 하나였다.
이 사람은 나를 보면 계속 고치려고 한다.
“난간은 고친 게 아니야. 그건—”
“난간은 좋았어요.” 강준이 말했다. “근데 그때 상자요. 제가 옮기겠다고 했는데 형이 옮기고 싶다고 했잖아요.”
“그게 그렇게 큰 일이야?”
“큰 일은 아니에요.” 강준은 정확했다. “근데 세 번 있었어요.”
도윤은 세 번을 세어 보려고 했다. 두 번밖에 기억나지 않았다. 기억나지 않는 한 번이 아마 가장 자연스럽게 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건 위험해서.”
“그럼 위험하다고만 말하면 돼요. 제가 정할게요.” 강준은 서류를 접었다. “저 이제 위험한 거 잘 못 알아요. 그건 형 때문이에요. 그래서 알려 주는 건 고마워요. 근데 정하는 건 제가 해야죠. 안 그러면 제가 뭘로 남아요?”
도윤은 대답할 문장을 찾다가, 문장 대신 자기가 지금 하고 싶은 걸 알아챘다. 설명하고 싶었다. 오래, 정확하게, 상대가 이해할 때까지.
그는 설명하지 않았다.
“누구로 바꾸고 싶어?”
“유서린 선배요.”
“…왜.” 도윤의 목소리가 자기 생각보다 낮게 나왔다.
“그 선배는 저한테 아무것도 안 해요.” 강준이 말했다. “보기만 하고 적기만 해요. 그리고 형이 잘한 것도 적어요. 지난주에 난간 얘기 적어 놨더라고요.”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보여 줬어요.” 강준이 어깨를 조금 움직였다. “제 기록이니까 제가 볼 권리 있다고요.”
도윤은 그 사실을 몰랐다. 서린이 자기를 보고 있다는 것도, 좋은 쪽을 적었다는 것도.
“서명해 주실 수 있어요? 원래 평가자 동의가 필요하다는데.”
도윤은 펜을 받았다. 서명하면 회복 심사의 참고 항목이 사라진다. 태호는 그것도 알고 이 임무를 줬을 것이다.
절반 동결된 장학 지원은 한 학기에 백이십칠만 원이었다. 서명 한 번의 값이 그 정도였다. 도윤은 그 숫자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게 지금 얼마나 쓸모없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알아챈 게 하나 더 있었다. 그는 지금 값을 계산하고 있었다. 값을 계산한 다음에 서명하는 사람과, 값을 모르고 서명하는 사람 중에 누가 더 나은지 그는 아직 몰랐다.
서명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래 걸린 건 그다음이었다.
“강준아. 하나만 물어봐도 돼?”
“네.”
“내가 그때 안 열었으면 너 죽었어. 그건 알지?”
“알아요.” 강준이 서류를 챙겼다. “근데 그거랑 이건 다른 얘기예요. 형도 그거 두 장에 나눠서 적었잖아요.”
두 장. 도윤이 첫날 태호에게 둘 다 적어 달라고 했던 그 두 장이었다. 그때는 자기를 위한 요구라고 생각했다.
강준이 나가고 나서 도윤은 빈 책상에 앉아 있었다. 열세 번째 자리의 책상이 아니라 자기 자리였다.
창밖에서 누군가 지나갔다. 유서린이 신청서를 들고 행정실 쪽으로 가고 있었다.
도윤은 창을 열고 부르려다 말았다. 지금 부르면 물어볼 말은 하나였다. 왜 내 좋은 쪽도 적었어. 그건 강준의 기록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자기 평판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는 창을 닫고 관찰 일지를 펴서 마지막 줄을 썼다.
오늘 대상은 평가자를 직접 골랐다. 내가 아니었다.
그 아래에 한 줄 더 적었다. 이건 임무 보고가 아니라 자기한테 남기는 줄이었다.
안 고치는 게 안 하는 것과 다르다는 걸 아직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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