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개의 도르래
포기한 선택을 다시 여는 장학생 · 2026. 3. 6.
심사장의 장치는 소리가 네 개였다.
가람은 그걸 먼저 알았다. 도르래 넷이 하나의 판을 들어 올리는 구조였고, 넷이 같은 박자로 감기지 않으면 판이 기울어 떨어진다. 능력 사용 금지. 그러니까 손으로 감아야 한다.
판 위에는 물이 든 통이 있었다. 물이 넘치면 감점, 판이 떨어지면 탈락. 물통을 올려놓은 이유는 하나였다. 기울어졌는지 아닌지를 눈으로 볼 수 있게.
사람 넷이 각자 하나씩 잡으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사람 넷이 서로 다른 속도로 감을 거라는 것도 아는 배치였다.
“동시에 감으면 돼.” 도윤이 말했다. “셋에 시작. 하나, 둘-”
“잠깐.”
가람은 손바닥을 도르래 축에 붙였다. 넷 중 하나가 다른 셋보다 느렸다. 톱니가 하나 마모돼 있었고, 그 축은 반 바퀴마다 반 박자를 잃었다.
“세 번째가 느려. 같이 감으면 세 번째만 뒤처져서 판이 기울어.”
“그럼 세 번째를 더 빨리 감으면-”
“아니야.” 가람은 말을 끊고 나서 자기가 끊었다는 걸 알았다. 평소에는 못 하는 일이었다. “빨리 감으면 톱니가 나가. 나머지 셋이 느리게 감아야 해.”
“느리게 감으면 시간 초과인데.” 도윤이 말했다.
가람은 도윤의 목소리에서 엇박을 들었다. 초과가 무서운 게 아니었다. 자기가 제일 느린 사람의 박자를 따라야 한다는 게 무서운 소리였다.
“초과 몇 초?” 미래가 물었다.
“계산해 봐야-”
“계산할게요.” 미래가 이미 메모지를 펴고 있었다. “가람 학생, 반 박자가 몇 바퀴마다 몇 초예요?”
“반 바퀴마다. 초로는 못 말해. 박자로만 알아.”
“그럼 박자로 주세요. 제가 초로 바꿀게요.”
가람은 그 말에 잠깐 멈췄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그의 감각을 숫자로 바꿔 달라고 했다. 자기가 바꾸겠다고 한 사람은 처음이었다.
“엇박이 두 바퀴마다 한 번.”
말하고 나서 가람은 문장 끝을 삼켰다는 걸 알았다. 과부하가 오면 동사가 사라진다. 오늘은 사람이 셋 더 있어서 소리가 셋 더 많았다.
미래의 펜이 움직였다. “그럼 총 열여섯 바퀴에 엇박 여덟. 나머지 셋을 팔 퍼센트 늦추면 맞아요. 시간은 십사 초 초과. 감점 있고 통과선은 넘어요.”
“최하위 되는데.” 도윤이 말했다.
“최하위로 통과하는 것과 전원 탈락 중에 고르는 거예요.”
서린이 그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판의 마지막 구간만 보고 있었다.
“마지막 삼십 센티는 내가 고정할게.”
“능력 금지야.” 도윤이 말했다.
“검은 능력이 아니라 무게야.” 서린이 칼집을 들었다. “칼집으로 받칠 거야. 규정에 없어.”
미래가 규정집을 확인했다. “없어요. 이의 걸리면 제가 답변할게요.”
감기 시작했다. 가람이 박자를 셌다. 소리를 내지 않고, 손바닥을 축에 붙인 채 고개만 움직였다.
처음 다섯 바퀴는 조용했다. 물이 통 안에서 한쪽으로 밀렸다가 돌아왔다.
도윤은 세 번을 참았다. 세 번째에서 손이 먼저 움직이려는 걸 가람이 봤다.
“도윤아. 내 박자로.”
“…알았어.”
네 번째 엇박에서 도윤이 반 바퀴 앞서 감았다. 판이 왼쪽으로 기울었다.
“멈춰.”
가람이 말했다. 자기 목소리가 그렇게 크게 나올 줄 몰랐다.
도윤의 손이 멈췄다. 완전히. 그가 손을 뗀 자리에서 줄이 반 바퀴 되감겼고, 판이 수평으로 돌아왔다.
“거부권 한 번 썼어.” 미래가 기록했다. “가람 학생, 이유 말 안 해도 돼요.”
“말할게.” 가람이 말했다. “도윤이 빠른 게 틀린 게 아니야. 빠른 게 세 번째 축을 부러뜨리는 거야.”
그다음 열두 바퀴는 가람의 박자로 갔다.
느렸다. 가람은 그 느림이 자기 것이라는 사실을 견디는 데 열두 바퀴를 다 썼다. 남의 소리를 듣는 건 익숙했고, 남들이 자기 소리에 맞추는 건 처음이었다.
판이 올라가고, 마지막 삼십 센티에서 서린이 칼집을 밀어 넣었다. 판이 걸렸다. 종료 신호.
“통과. 십사 초 초과. 배치 등급 최하.” 심판이 읽었다.
“칼집 사용은요.” 미래가 물었다.
“기재는 하겠습니다. 위반은 아닙니다.”
아무도 기뻐하지 않았다. 미래가 정산표를 넘겼고, 서린이 칼집의 긁힘을 확인했고, 도윤은 자기 손을 봤다.
가람은 도르래 세 번째 축을 다시 만져 봤다. 톱니는 부러지지 않았다. 부러지지 않은 톱니를 확인하는 일에는 점수가 붙지 않는다.
배치표는 십 분 뒤에 붙었다. 분기 7조, 최하위 분기반, 3층 뒤편 교실.
최하위 분기반은 능력이 약한 학생들의 반이 아니었다. 안내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선택 방식이 불안정한 학생을 대상으로 하며, 실습 배정과 장학 지원의 우선순위가 낮다.
미래가 그 두 줄을 소리 내어 읽었다. “우선순위가 낮다. 이거 실습 신청할 때마다 뒤로 밀린다는 뜻이에요.”
그 옆에 개별 통지가 있었다. 한도윤, 장학 지원 오십 퍼센트 동결.
“절반이면 얼마예요?” 가람이 물었다.
“…묻지 마.” 도윤은 게시판의 다른 줄을 보고 있었다. 추가 시험 신청. 한 자리 남음. 마감 오늘.
가람은 도윤이 그 줄을 보는 방식을 봤다. 읽는 게 아니라 이미 신청한 사람처럼 보고 있었다.
“추가 시험 볼 거야?”
“봐야지. 절반은 못 버텨.” 도윤이 신청 화면 쪽으로 걸어갔다.
그때 정오 종이 울렸다.
가람은 종소리를 안 세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세지 않는다. 종은 열두 번 울리고, 사람들은 열두 번째쯤에 시간을 확인하고, 그걸로 끝난다.
가람은 셌다. 여덟, 아홉, 열, 열하나, 열둘.
끝났다.
그리고 한 번 더 울렸다.
아주 작았다. 종탑에서 온 소리가 아니라 종탑에서 온 소리의 뒷면 같았다. 가람은 고개를 들었다.
“방금 한 번 더 울렸어.”
세 사람이 그를 봤다. 도윤의 손은 신청 화면 위에 있었다.
“열두 번이었는데.” 미래가 말했다.
“열두 번 맞아. 그다음에 하나 더.” 가람은 정확히 말했다. “나만 들었어. 그러니까 이건 증거가 아니야. 내 감각이 틀릴 수도 있어.”
“그럼 왜 말했어?” 서린이 물었다.
“확인할 수 있는 게 하나 있어서.”
가람은 3층 뒤편 교실을 향해 걸었다. 종소리의 뒷면이 온 방향이었다.
교실 문은 열려 있었다. 안에는 책상이 열두 개 배정돼 있었고, 열세 번째 자리에 책상이 하나 더 있었다.
배정표에는 열두 개만 적혀 있었다.
가람은 문 앞에서 한 번 더 들어 봤다. 아무 소리도 없었다. 종의 뒷면은 이미 지나갔고, 지나간 소리는 다시 들을 수 없다.
가람은 그 책상 앞에 서서 손을 대지 않았다. 먼지가 흔들리고 있었다. 창문은 닫혀 있었다.
“먼지가 움직여. 누가 방금 지나갔거나, 아래에서 뭐가 올라와.”
미래가 들어와서 책상 높이를 봤다. “이 책상, 다른 것보다 두 칸 높아요. 키 큰 사람용으로 조절된 거예요.”
서린이 책상 아래를 봤다. “분필가루. 최근 것.”
도윤이 마지막에 들어왔다. 그는 책상 위를 봤다.
표면에 자국이 있었다. 연필로 눌러 쓴 뒤 지운 자국. 지우고 다시 쓴 자국.
강소미.
그 아래에 날짜가 있었다. 지우고 다시 쓴 날짜였고, 오늘이었다.
“손대지 마.” 가람이 말했다. “사진만 찍어.”
도윤이 손을 뻗다가 멈췄다. 왼손이었다.
“…열면 보일 텐데.”
“뭐가 보여?” 서린이 물었다.
“이 자리에서 누가 뭘 포기했는지.” 도윤은 손을 내리지 않았다. “쓴 사람이 여기 앉기를 포기했으면, 그 포기를 열면 그 사람이 다시-”
“멈춰.”
미래였다. 도윤의 손이 멈췄다. 두 번째 거부권이었고, 오늘 두 번째로 그 조항이 실제로 작동했다.
“이유 안 물어봐도 돼요.” 미래가 먼저 말했다. “근데 말할게요. 우리 지금 능력 금지 조건 안이에요. 학생 하나 열려고 조 전체 동결시킬 순 없어요.”
“누가 뭘 포기했는지도 몰라. 지금 열면 뭘 열지도 모르잖아.” 가람은 자기 손바닥을 책상에 붙이지 않았다. 붙이고 싶었지만, 그러면 자국이 하나 더 생긴다. “그리고 능력 금지 아직 안 끝났어.”
도윤이 손을 완전히 내렸다. 내리는 데 시간이 걸렸고, 걸리는 시간을 가람은 세지 않았다. 세면 나중에 그 숫자로 도윤을 판단하게 된다.
미래가 휴대 단말로 출석 시스템을 열었다. 3층 뒤편 교실, 재적 학생 명단.
열두 명이었다.
“없어요.”
“새로고침 해 봐.”
미래가 화면을 내렸다. 목록 아래쪽에 줄 하나가 있었다. 회색으로, 반쯤 지워진 상태로.
강소미.
네 사람이 그 줄을 봤다.
그리고 그 줄이 사라졌다. 누른 사람도, 새로고침도 없었다. 화면이 스스로 그 줄을 지웠고, 자리에 빈 줄 하나가 남았다.
“봤어요?” 미래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봤어.” 서린이 말했다. “네 명 다 봤어. 그럼 증거야.”
도윤이 추가 시험 화면을 다시 켰다. 마감까지 사 분 남아 있었다.
가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부탁하면 도윤이 자기 장학금을 포기할 것이고, 그건 나중에 가람의 몫으로 돌아온다. 대신 그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말하기로 했다. 감각이 아니라 요구를.
“나는 이 책상을 오늘 기록해 두고 싶어.”
“왜.” 서린이 물었다.
“내가 들은 게 맞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나 때문이야. 학교 때문도 아니고 저 사람 때문도 아니고.” 가람은 손바닥을 책상 옆 벽에 붙였다. “근데 지금 아니면 확인이 안 돼.”
미래가 시계를 봤다. “추가 시험 마감 사 분. 여기 기록은 십 분 걸려요.”
도윤이 화면을 닫았다.
“이거 먼저 보자.”
“절반 동결인데.” 가람이 말했다.
“절반 동결이야.” 도윤이 인정했다. “근데 이 자국은 오늘 날짜야. 내일 오면 없을 수도 있어.”
“그거 나 대신 정하는 거 아니지?”
도윤이 잠깐 멈췄다. 그 질문이 어디서 왔는지 아는 얼굴이었다.
“아니야. 네가 확인하고 싶다고 했고, 나는 내 시험을 포기하는 거야. 둘은 따로 적어.”
미래가 이미 적고 있었다. 이가람 요청 건, 한도윤 추가 시험 자발 포기 건. 두 줄이었다.
그때 바닥에서 진동이 왔다.
한 번, 그리고 한 번. 가람의 손바닥이 이번에는 책상 대신 바닥에 붙었다. 진동은 아래에서 왔고, 박자는 방금 들은 열세 번째 울림과 같았다.
책상 다리가 흔들렸다. 미래의 화면에서 빈 줄이 한 번 깜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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