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오후 두 시가 조금 지나 다빈의 휴대전화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증거분석관은 빠진 말을 듣는다 · 2026.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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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두 시가 조금 지나 다빈의 휴대전화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발신번호는 저장되어 있지 않았고, 문장은 짧았다.

‘USB를 돌려준다. 대신 네가 숨긴 아이 이름을 보내.’

다빈은 화면을 바로 끄지 않았다. 서진은 맞은편 의자에서 그 문장을 읽으려 하지 않고 다빈의 손만 보았다. 손가락이 화면 가장자리를 누르고 있었다. 민우가 경찰 신분으로 협상을 맡겠다고 하자 다빈은 고개를 저었다.

“제가 답할게요.”

“상대는 수사팀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더 안 돼요. 제가 대신 답하면 아이 이름을 지키는 사람이 또 바뀌어요.”

여름은 탁자 위에 선택지를 놓았다. 답하지 않기, USB 존재 증명을 요구하기, 즉시 보관함을 열어 압수하기. 각각의 위험이 적힌 종이를 다빈 앞으로 밀었다. 다빈은 세 장을 한참 읽었다. 민우는 ‘압수’ 옆에 손을 올렸지만, 서진이 그 손을 보았다. 민우는 결국 손을 거두었다.

“한 시간 뒤에 게시한다고 했어요.” 다빈이 말했다. “그 전에 USB가 있는지 확인해야 해요. 이름은 어떤 조건에도 넣지 않을 거고요.”

그녀는 수사팀이 써 준 답변을 열었다. ‘귀하는 증거물의 존재를 입증하라. 미성년자 신원은 거래할 수 없다.’ 다빈은 문장을 지웠다. 그리고 직접 썼다.

‘파일이 있다는 걸 보여 주세요. 사람 이름은 보내지 않습니다. 보관함에 넣고 번호만 보내면, 제가 다음 조건을 말하겠습니다.’

민우가 말했다. “너무 강하게 나가면 상대가 없앨 수 있습니다.”

“없애고 싶으면 어떤 문장도 기다리지 않을 거예요.”

다빈은 전송 버튼을 눌렀다. 답은 오 분 뒤에 왔다. 보관함 번호와 봉인된 검은 케이스 사진, 그리고 파일 목록의 일부였다. 파일명은 가려져 있었지만 생성 날짜는 사건 전날이었다. 백상호는 끝까지 이름을 요구했다.

서진은 사진을 확대했다. 케이스 옆에 파란 삼각형이 찍힌 영수증이 놓여 있었다. 고객번호의 마지막 네 자리가 16화에서 확인한 결제와 같았다. 그러나 사진은 합성될 수 있고, 번호는 다른 결제의 복사본일 수 있었다. 그녀는 그 사실을 다빈에게 먼저 말했다.

“사진은 존재 가능성을 높여요. 소유를 증명하지는 않아요.”

“알아요. 그래서 보관함을 열지 않을 거예요.”

다빈은 보관함 번호를 제삼기관에 전달했다. 자신이 정한 기관의 담당자에게 공동수탁을 요청하고, 수사팀은 출입 영상과 결제 토큰만 확보하기로 했다. 그녀는 이름을 보호하는 것과 증거를 숨기는 것이 같지 않다는 설명을 직접 덧붙였다.

오후 두 시 반, 백상호는 진술실에 먼저 와 있었다. 그는 의자에 기대어 서진을 보자 입꼬리를 올렸다.

“원음을 들으면 금방 끝날 텐데요. 왜 안 듣습니까?”

서진은 그의 앞에 회색표를 놓았다. 능력 사용 칸은 비워 두었다.

“끝나는 것과 맞는 건 다릅니다.”

“당신은 내가 무엇을 숨기는지 알 수 있잖아요.”

“알 수 있는 것처럼 느끼는 겁니다.”

백상호는 잠깐 말을 멈췄다. 그는 진술을 계정 도용으로 시작했다. 메시지는 자신이 보낸 것이 아니고, 보관함 번호는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빌렸다고 했다. 서진은 중간에 끼어들지 않았다. 대신 문장 끝의 띄어쓰기와 ‘반납처리’라는 붙여쓰기 습관을 따로 표시했다.

민우가 결제 토큰 표를 꺼냈다. 보관함을 예약한 계정은 백상호 명의였고, 결제 수단의 고객번호 일부가 사진 속 영수증과 일치했다. 백상호는 시설업체 직원 여러 명이 그 계정을 쓸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경민이 가져온 비상키 GPS 기록에는 사건 전날 백상호의 작업 시간만 남아 있었다.

“공유 계정입니다.” 백상호가 말했다. “그걸로 사람을 묶을 수는 없죠.”

“그래서 계정 하나로 묶지 않습니다.” 서진이 답했다. “문장 습관, 결제, 접근 시간, 장비 시험을 따로 적고 있습니다.”

백상호의 표정이 처음으로 굳었다. 그는 서진의 수첩을 보며 물었다.

“능력을 안 쓰고도 그렇게 자신 있습니까?”

“자신 있는 게 아니라, 틀리면 틀린 고리를 찾을 수 있게 만드는 겁니다.”

진술실 밖에서 다빈이 보관함 관리기관과 통화하고 있었다. 한경민은 회사 관리코드를 입력하면 보관함을 원격 차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 권한을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출입문 앞에 카메라를 세우고, 다빈이 지정한 기관 직원이 도착할 때까지 누구도 케이스를 만지지 않도록 관리 직원에게 요청했다.

“전원을 끄면 더 안전하지 않습니까?” 민우가 물었다.

“전원을 끄는 사람이 우리라는 기록이 남습니다. 지금은 열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중요해요.”

경민은 자신의 관리 소홀 확인란에도 서명했다. 그 서명이 끝나자 보관함 화면이 깜박였다. ‘원격 초기화 요청’이라는 문구가 떴다가 사라졌다. 요청 계정은 백상호 명의였다. 다빈은 화면을 촬영하고, 제삼기관 직원에게 같은 영상을 즉시 전송했다.

진술실에서 백상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그는 화면을 뒤집었지만, 서진은 벨소리보다 그가 질문을 바꾼 순간을 보았다.

“다빈이 보관함을 열었습니까?”

“그걸 왜 묻죠?”

“USB가 제 손에 있다는 걸 확인해야 하니까요.”

“계정 도용이라면서요.”

백상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민우는 원격 초기화 실패 로그를 프린트해 그의 앞에 놓았다. 백상호는 로그의 시간을 읽고도 서명하지 않았다. 그에게도 선택은 남아 있었다. 침묵하거나, 계정이 왜 그 보관함을 알고 있었는지 설명하거나.

다빈은 보관함 앞에서 봉인 번호를 읽었다. 제삼기관 담당자가 같은 번호를 복창했다. 한경민은 그 과정을 촬영했고, 민우는 촬영 기기의 시간이 외부 서버와 동기화됐는지 확인했다. 서진은 그 기록을 보고도 안심하지 않았다. 증거가 안전하다는 것과 증거가 어떤 내용을 담는지는 아직 다른 문제였다.

저녁이 되자 백상호는 새로운 메시지를 보냈다.

‘아이 이름을 안 보내면, 네가 왜 언니의 시간을 바꿨는지 공개한다.’

다빈은 화면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메시지를 지우지 않고 보존 요청을 눌렀다. 그녀는 서진에게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서진도 묻지 않았다. 질문을 미루는 것은 이번에는 무관심이 아니라, 다빈이 말할 범위를 스스로 정하게 하는 일이었다.

서진은 진술실로 돌아와 회색표의 능력 칸을 다시 확인했다. 여전히 비어 있었다. 대신 메시지의 오타, 보관함 결제 토큰, 비상키 GPS, 원격 초기화 실패가 네 줄로 남았다. 네 줄은 백상호의 동기를 완성하지 못했지만, 그가 거래의 주체로 움직였다는 사실을 각각 다른 방향에서 밀어 올렸다.

백상호가 유리문 너머로 말했다.

“그 17초를 들으면 알 수 있습니다.”

서진은 문을 열지 않았다. 다빈이 제삼기관의 봉인 확인서에 서명하는 소리가 복도 끝에서 들렸다. 그 소리가 멈춘 뒤, 보관함 화면에는 백상호 계정의 두 번째 초기화 실패가 찍혔다. 보관함을 지키는 동안 다빈은 언니의 파일에 아이의 이름뿐 아니라 안전점검을 통과시킨 방법과 침묵한 사람들의 기록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름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시간을 거짓으로 말했고, 그 결과 경민이 범인으로 몰렸다는 사실도 인정했다.

“제가 잘못한 건 맞아요. 그렇다고 아이 이름을 넘겨야 하는 건 아니죠.”

“맞아요. 잘못한 것과 지켜야 할 것이 서로를 없애지는 않아요.”

진술실 안에서 백상호는 다시 계정 공유를 주장했다. 민우는 그 주장을 그대로 받아 적고, 공유 계정이라면 왜 사건 전날 특정 시간에 비상키 시험이 두 번 늘었는지 물었다. 백상호는 정기 점검이었다고 답했다. 경민의 작업표에는 정기 점검이 없었다. 그가 작업표를 누락했을 가능성은 남아 있었지만, 누락을 인정한 사람은 이미 자신의 관리 책임을 제출한 상태였다.

“작업표를 고친 건 누구입니까?” 민우가 물었다.

“모릅니다.”

“그럼 왜 정기 점검이라고 말했습니까?”

백상호는 입을 다물었다. 자백은 나오지 않았지만, 대안 설명 하나가 스스로 무너졌다. 서진은 그 순간을 문장으로 고정했다. ‘정기 점검이라는 명칭을 뒷받침할 독립 작업표 없음. 진술자는 근거를 제시하지 않음.’

여름은 외부 검토자에게 자료를 전송하며 능력 출력은 제출 목록에서 제외했다. 서진이 원음에서 느꼈던 공백은 수사의 방향을 바꾸는 단서가 될 수 있지만, 독립 확인이 없는 감각은 상대방에게 절차 오염으로 공격받을 수 있었다. 서진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안 쓰는 게 맞아요.”

민우가 그녀를 보았다. “전에는 쓰고도 기록하지 않았죠.”

서진은 그 말에 바로 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책상 위에 새 양식을 놓았다. 능력 사용 여부, 출력 단어, 잃은 단어, 독립 검증을 받은 시각. 앞으로는 사용하지 않은 날도 공란으로 남기지 않기로 했다. 사용하지 않았다는 선택도 사건의 경로를 바꾸기 때문이다.

밤 열 시, 제삼기관에서 보관함 공동 봉인이 완료됐다는 확인서가 왔다. USB는 열리지 않았고, 케이스의 외부 해시만 기록됐다. 파일명과 내용은 비공개였다. 그럼에도 생성 시각과 최근 접근 시각은 살인 전후의 시간표와 맞물렸다. 백상호 계정의 접근 실패는 내용이 아니라 행동의 흔적이었다.

다빈은 확인서를 읽고 자신의 서명 아래 한 줄을 추가했다.

‘향후 공개 여부는 제보자 본인 또는 보호기관의 판단에 따른다.’

경민은 그 문장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경민이 먼저 사과할 수도 있었지만, 다빈은 아직 그 말을 받을 준비가 없었다. 서진은 그 거리를 억지로 좁히지 않았다.

진술실의 시계가 열한 시를 넘겼다. 백상호는 끝내 USB가 무엇인지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다빈의 이름을 여러 번 말하며 그녀의 거짓말을 수사의 장애로 만들려 했다. 민우는 그 말을 반박하지 않고, 어느 부분이 공식 기록에서 정정되어야 하는지 표시했다. 사람의 비밀을 공격하는 말과 사건 증거는 같은 무게로 다룰 수 없었다.

서진은 마지막으로 네 줄의 독립 기록을 묶었다. 비상키 시험은 백상호의 단독 작업 시간에 늘었다. 결제 토큰은 그가 관리한 계정으로 보관함에 연결됐다. 원격 초기화는 백상호 계정에서 실패했다. USB 외부 해시는 사건 전날 생성된 파일 묶음과 일치했다. 어느 한 줄도 살인을 단독으로 증명하지 못하지만, 네 줄을 동시에 만족하는 대안은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백상호는 유리창 너머로 서진을 불렀다.

“당신도 가족 때문에 이 일을 하는 거잖아.”

서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의 욕망을 증거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보관함 화면에 남은 두 번째 실패 시각을 적었다. 다음 단계는 원문을 열어 사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확보한 기록이 서로의 빈칸을 어떻게 메우는지 확인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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