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윤성정밀 간판이 내려왔다

회귀한 자금팀 대리는 망할 회사를 살리지 않는다 · 2026.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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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정밀 간판이 내려왔다.

치공구는 트럭에 올라갔다.

두 장면 사이에서 가장 오래 걸린 것은 운송이 아니었다. 누가 열쇠를 받을지 정하는 표결이었다.

윤동호는 세무 민원실 번호표를 손바닥에서 접었다 폈다. 폐업 신고 창구 앞에는 자기보다 먼저 온 사람들이 세 명 있었다. 한 사람은 카페 간판이 찍힌 서류봉투를 들었고, 한 사람은 택배 상자를 발로 밀어 두었다. 문을 닫는 일은 모두 비슷해 보였지만, 각자 남기는 빚의 모양은 달랐다.

창구 직원이 자산 목록을 다시 밀어 주었다.

“이 치공구는 법인 소유입니까, 개인 소유입니까?”

동호는 목록 중간의 작은 지그 번호를 봤다. 손잡이 한쪽에 오래전 자신이 찍은 표식이 있었다. 그러나 표식이 소유 증빙은 아니었다. 처음 만들 때 회사 돈으로 산 강재가 섞였고, 수리비도 몇 번은 법인 계좌에서 나갔다. 그는 ‘개인’ 칸에 체크하려다 펜을 멈췄다.

“검증 대기로 두죠.”

“이전이 늦어질 수 있습니다.”

“도면대로요. 내 거라고 말할 근거가 없으면 못 옮깁니다.”

직원은 다른 항목을 넘겼다. 체납 세금, 미지급 퇴직금, 미수금, 압류 가능 자산. 폐업 신고는 가게 문을 잠그는 절차일 뿐, 그 뒤의 정산까지 없애 주지 않았다. 동호는 퇴직금 예정액 옆에 작업자 이름을 하나씩 다시 적었다. 돈이 모자란다는 말보다 먼저, 누구의 돈이 모자라는지 남겨야 했다.

접수증이 출력되자 그는 명함을 꺼냈다. ‘윤성정밀 대표 윤동호’라고 적힌 종이였다. 그는 명함을 찢지 않았다. 서랍 가장 안쪽에 넣었다. 사장이라는 직함이 사라져도 미지급 항목은 함께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종이가 먼저 알고 있었다.

민원실을 나오기 전, 동호는 퇴직 정산 확인서의 빈칸을 다시 봤다. 한 사람은 새 조합으로 가겠다고 했고, 한 사람은 몸이 더 버티지 못한다며 퇴직을 택했다. 같은 공장에서 일했어도 다음 달의 선택은 같지 않았다. 동호는 둘의 이름을 한 줄로 묶지 않았다. 새 조합으로 가는 사람에게도 퇴직금 정산은 남고, 나가는 사람에게도 마지막 급여일은 남는다. 일자리가 이어진다는 말은 개인의 퇴직을 지워 주지 않았다.

그는 미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랍 두 번째 칸에 명함 넣었어.”

“알아요.”

“세무 접수는 됐고. 지그 하나는 못 뺐다.”

미정은 잠시 말이 없었다. “저녁은요?”

“늦어.”

“늦는 건 알겠고, 먹을 건 드세요.”

동호는 대답 대신 접수증의 시간을 사진으로 보냈다. 생활을 말하는 데도 그는 늘 물건과 시각을 먼저 보냈다. 미정은 사진 아래에 _확인_이라고만 답했다. 그 한 단어가 허락도 위로도 아니라는 걸, 동호는 알고 있었다.

공장 마당에는 오후 햇빛과 철 냄새가 섞여 있었다. 작업자들은 접이식 의자에 둘러앉아 임차 주체 두 곳의 조건표를 보고 있었다. 한쪽은 태경이 연결한 업체였다. 보증금과 첫 두 달 임금은 안정적이지만, 본사 승인 없이는 도면을 고칠 수 없었다. 다른 한쪽은 지석과 작업자들이 만든 작은 임차 조합이었다. 돈은 얇고, 주문도 당장 많지 않았다. 대신 작업 중지권과 교대표, 도면 사용 범위가 현장 표결로 정해졌다.

태경은 마당 끝에 서 있었다. 한림리빙 출입증을 반납한 뒤라서, 정장 주머니가 전에보다 가벼워 보였다. 그는 조건표를 들고 동호에게 다가왔지만 먼저 말하지 않았다.

지석이 작업자 이름을 불렀다. “기계는 누가 끄고, 누가 다시 켤지부터 봅시다. 돈만 보고 찍을 사람은 없겠죠.”

한 작업자가 태경 쪽 업체를 가리켰다. “거긴 월급은 제때 준다잖아요.”

“대신 누가 도면을 바꿉니까?” 지석이 물었다.

“본사 기술팀.”

“우린?”

“의견 내는 거고.”

다른 작업자가 작은 조합의 표를 들었다. “여긴 돈이 없어요. 첫 달 주문 하나 끊기면 바로 흔들립니다.”

동호는 말하지 않았다. 아들이 소개한 업체가 틀렸다고 말할 근거도 없었다. 안정적인 급여는 실제로 사람을 살린다. 하지만 간판이 바뀌는 순간 도면과 교대를 어디서 결정하는지도 실제였다. 그는 손을 닦은 뒤에야 조건표를 집었다.

“공차는 누가 책임지나.”

지석이 작은 조합 쪽을 가리켰다. “작업자 대표와 새 임차 대표가 같이 서명합니다. 불량 나면 납품을 멈출 권한도요.”

“수리비는.”

“사용료에서 먼저 적립. 모자라면 공개.”

동호는 태경에게 시선을 돌렸다. 태경은 고개만 끄덕였다. 찬성도, 설득도 아니었다. 표결에 필요한 말이 더 없다는 뜻이었다.

작업자들은 종이를 접어 투표함에 넣었다. 지석이 개표할 때, 동호는 공장 문에 걸린 빈 간판 자리를 보았다. 윤성정밀이라는 이름이 떨어져 나간 자리에는 오래된 나사 구멍만 남아 있었다. 그 구멍은 어느 조합의 이름도 지지하지 않았다.

작은 임차 조합이 세 표 차이로 선택됐다.

투표함 옆에는 반대표 세 장이 남아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은 보증금이 얇은 곳에서는 가족에게 빚을 질 수 없다며 태경 쪽 업체를 원했다. 지석은 그 표를 접어 보관 봉투에 넣었다. 다수가 선택했다고 반대의 이유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새 조합 대표는 반대표를 낸 작업자에게 첫 두 주만 시험 근무를 하고, 그 뒤에는 다시 떠날 수 있다는 확인서를 건넸다. 동호는 그 문서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확답할 수 없는 일을, 확답처럼 만들지 않았다는 뜻으로 손만 닦았다.

트럭 상차가 시작되자 채권자 대리인이 공장 문 앞에 나타났다. 그는 자산 목록 사본을 들고 지그 번호를 확인했다. “이건 검증 대기라면서요. 왜 싣습니까?”

“안 싣습니다.” 동호가 말했다.

대리인은 트럭 위의 상자를 가리켰다. 동호는 상자를 하나씩 열어 도구 번호를 대조했다. 이전 허가가 난 치공구와 검증 대기 지그는 모양이 비슷했지만, 표식 아래 숫자가 달랐다. 지석이 작업자들에게 상자를 내리게 했다. 트럭 출발은 스무 분 늦어졌다. 새 조합은 그 스무 분만큼 임대 첫날의 작업 시간을 잃었다.

“이거 하나 빼면 공정이 안 맞습니다.” 새 대표가 말했다.

“그래도 못 갑니다.” 동호가 답했다. “도면대로.”

태경은 아무 말 없이 채권자 대리인의 확인란을 읽었다. 아버지가 자기에게 고개를 돌리지 않는 것이 전보다 덜 서운한지, 더 서운한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동호가 공장을 살리기 위해 또 다른 빚을 숨기지 않는다는 사실은 기록으로 남았다.

태경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자금은 더 얇아집니다.”

“알아.” 동호가 말했다.

“첫 주문이 취소되면.”

“그럼 닫는 순서도 새로 정하겠지.”

동호는 열쇠 꾸러미에서 표시가 붙은 치공구함 열쇠를 골랐다. 지그 하나는 검증 대기라 트럭에 싣지 못했다. 그는 그 열쇠를 따로 주머니에 넣었다. 넘길 수 없는 것을 숨기는 대신, 넘기지 못했다고 적는 쪽을 택했다.

“도면은 동의한 범위만.”

“네.” 새 임차 대표가 말했다.

“작업자 바꾸려면 표부터.”

“네.”

동호는 열쇠를 대표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아들에게 주는 것도, 자기 회사 이름을 연장하는 것도 아니었다. 일을 계속할 사람들이 자기 규칙으로 쓸 열쇠였다. 태경은 뒤에서 양도 목록의 서명란만 확인했다.

저녁, 새 임대 작업장은 천장이 낮고 조명 두 개가 깜빡였다. 지그와 도면이 자리를 바꾸는 동안 숙련 작업자 한 명은 퇴직 서류를 들고 나갔다. 남은 사람들은 예전 공정 순서를 그대로 따르려 했지만, 첫 가공품의 모서리가 허용 범위를 벗어났다.

동호는 불량품을 손바닥에 올렸다. “0.3 밀리.”

지석이 줄자를 내려놓았다. “기계가 흔들립니다.”

“기계는 안 흔들려. 우리가 순서를 잘못 잡았지.”

그는 직접 기계를 잡지 않았다. 도면 위에 측정 순서를 그렸고, 새 대표가 절삭 속도를 낮추자고 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 같으면 동호가 손을 밀어 넣고 다시 맞췄을 것이다. 오늘은 그럴 수 없었다. 공장도, 작업자도, 열쇠도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갔다.

두 번째 가공품도 미세하게 틀어졌다. 세 번째는 재가공 끝에 게이지 안으로 들어왔다. 지석이 검사 게이지를 들고 한참 보더니 작업표에 ‘통과’라고 적었다. 생산 속도는 예전의 절반이었다. 트럭은 한 대만 움직일 수 있고, 야간은 하지 않기로 한 상태였다.

하지만 통과 줄 아래에는 재가공 시간과 폐기한 소재 수가 같이 적혔다. 새 대표는 그 숫자를 보고 다음 물량을 줄이겠다고 말했다. 지석은 바로 반대하지 않았다. 대신 어떤 작업자가 오전 교대를 더 할 수 있고, 누가 안전상 더는 못 하는지를 이름으로 불렀다. 생산을 늘리는 선택은 한 사람의 허리와 다른 사람의 귀가 시간을 먼저 바꿔야 했다.

동호는 작업자 대표가 적은 안전 중단권 문구를 읽었다. 기계 소리가 불안정하면 새 대표도 라인을 세울 수 있다는 조항이었다. 공장을 자기 이름으로 돌릴 때는 이런 문구가 불편했다. 오늘은 그 불편한 문구가 있어야 열쇠를 넘긴 일이 덜 거짓말이 됐다.

새 대표가 동호에게 물었다. “이 정도면 고객한테 보낼 수 있습니까?”

동호는 답하기 전에 작업표를 보았다. “검사 기록 붙이고. 납기는 줄여서.”

“예전처럼은 못 합니다.”

“예전처럼 망하면 안 되지.”

그 말은 칭찬도 위로도 아니었다. 다만 간판 없이 첫 부품 하나를 만든 사람들이 받아야 할 조건이었다. 동호는 기계를 껐다. 검사 게이지와 작업 기록지를 새 대표에게 넘겼다. 손에서 빠져나간 것은 열쇠만이 아니었다.

밖에서 태경의 휴대전화가 짧게 울렸다. 그는 시험 생산 사진을 가족 단체방에 보내려다 멈췄다. 화면 위에는 서윤이 보낸 미개봉 봉투 사진이 아직 남아 있었다. 태경은 사진을 지우지 않고, 생산 사진도 보내지 않았다.

동호는 트럭에 남은 검증 대기 지그를 돌아봤다. 그 물건 하나 때문에 내일 다시 세무서와 채권자에게 설명해야 했다. 공장은 닫혔고, 일은 다른 곳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남은 청구서는 아직 자기 이름으로 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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