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한림리빙은 살아남지 않았다

회귀한 자금팀 대리는 망할 회사를 살리지 않는다 · 2026.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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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리빙은 살아남지 않았다.

월급일과 주문 두 개가 살아남았다.

윤태경은 회사에서 나왔다. 손에 든 것은 출입증이 아니라, 그가 없어도 돌아간다는 확인 한 줄이었다.

채권자 워크아웃 최종 표결장은 호텔 회의실보다 낮은 천장을 갖고 있었다.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회사 로고가 찍힌 자료보다 회수율 표를 오래 봤다. 한림리빙을 통째로 살릴 수 있다는 말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법인은 너무 많은 빚과 너무 적은 신뢰를 동시에 갖고 있었다.

박혜린은 화면에 세 항목만 띄웠다. 임금 계정. 축소 주문. 기능 이전 조건.

“이 조건은 전면 회생안이 아닙니다.” 그녀가 말했다. “강제 회수를 늦추는 대신, 유지할 기능과 포기할 자산을 정하는 안입니다.”

채권자 한 명이 손을 들었다. “태경 씨가 빠진 뒤에도 믿을 근거가 있습니까?”

혜린은 태경 쪽을 보지 않았다. “개인의 평판은 근거가 아닙니다. 잠금계좌 로그, 작업자 선택표, 고객 취소 확인, 재검증 날짜가 있습니다.”

이상훈이 다음 장을 넘겼다. 윤성정밀의 치공구 임대 목록과 첫 시험생산 기록이 나왔다. 속도는 이전의 절반, 검증 대기 지그 하나, 재가공 소재 수와 안전 중단권. 보기 좋은 성공 자료가 아니었다. 그래서 일부 채권자는 더 오래 들여다봤다.

“이걸로 주문을 계속 받겠다는 겁니까?”

“가능한 주문만 받는 겁니다.” 상훈이 답했다. “고객 취소권과 납기 축소를 조건에 넣었습니다.”

“민수 씨가 가진 고객 정보는?”

혜린은 위험 목록의 빈칸을 가리켰다. “공식 인계 밖의 관계 정보는 미확인입니다. 회수됐다고 쓰지 않았고, 그 위험을 가격에 넣었습니다.”

그 말은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그러나 누군가가 모르는 것을 안다고 쓰지 않는다는 사실이, 오늘 표결에서는 드문 신용이 됐다.

전면 회수를 주장한 채권자는 조건표를 접지 않았다. “임금을 남기면 다른 채권자는 무엇을 받습니까. 간판도 통제권도 줄였는데, 위험만 남기는 안 아닙니까.”

혜린은 그 질문을 피하지 않았다. “회수액은 줄어듭니다. 대신 고객 취소와 생산 중단으로 전부 사라지는 회수보다, 검증된 주문과 임대 사용료에서 정해진 비율을 받는 안입니다.”

“태경 씨가 나가면 다시 흔들릴 겁니다.”

“그래서 태경 씨에게 권한을 주지 않습니다.”

회의실이 잠시 조용해졌다. 태경은 그 문장을 듣고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개인을 믿어서 만든 구조가 아니라는 말은, 자신이 고집해 온 답이면서도 가장 차가운 퇴장 통지였다.

상훈이 잠금계좌의 다음 확인 주체를 읽었다. 혜린, 현장 대표, 신규 재무 담당. 세 이름 중 태경은 없었다. 채권자는 그 목록을 두 번 훑었다. 한 사람이 회수 비율 옆에 사인을 했다. 찬성이라기보다, 오늘 가능한 손실을 인정한다는 표시였다.

첫 표는 반대였다. 전면 회수를 주장한 채권자가 의자를 밀었다. 두 번째 표도 보류였다. 태경은 회의실 뒤쪽 벽에 기대어 손을 모았다. 발언권은 없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가 먼저 열던 현금표가, 오늘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기 방식으로 읽히고 있었다.

마지막 표가 들어간 뒤 화면의 세 항목 중 두 개가 초록으로 바뀌었다.

임금·주문 유지.

법인 통제권 축소.

자산 임대와 재검증은 조건부로 남았다. 한림리빙이라는 간판은 채권자 관리 아래 들어갔고, 임원 보너스와 불확실한 자산은 잘려 나갔다. 누군가 울지 않았다. 다만 경리 담당자가 다음 급여 확인 날짜를 적었고, 영업 대행자는 주문 두 건의 취소 기한을 다시 확인했다.

태경은 결과표를 보며 웃지 않았다. 첫 생에서 그는 회사를 살린다는 말에 서명했다. 이번에는 회사보다 먼저 남아야 할 것들을 적고, 자기 이름이 빠진 결과표를 받았다. 손실장부의 빈 줄 하나가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장부는 방향을 알려 주지 않았다. 다만 누구에게 넘긴 손실이 남아 있는지만 보여 주었다.

오후, 생산동 사물함 앞에서 오지석은 교대표 첫 줄에 자기 이름을 썼다. 태경의 사물함 문은 열려 있었고, 안에는 구겨진 장갑 한 켤레와 지워진 이름표 자국만 남아 있었다.

“같이 나가자는 말은 안 하네요.” 지석이 말했다.

“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외부 일 한다며.”

“그 일에 여기 사람을 데려갈 권한은 없습니다.”

지석은 작업표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남을 사람은 남아야지. 교대는 누가 메웁니까.”

그는 새 운영 조건을 읽었다. 야간 작업은 작업자 동의가 있어야 하고, 축소 주문은 안전 검사를 건너뛸 수 없으며, 부족한 사람 이름은 인력 몇 명으로 바꾸지 않는다. 지석은 그 조건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답답한 표가 없는 현장은 결국 누구 한 명의 허리부터 먼저 망가진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외부 사례가 생기면 소개는 하겠습니다.” 지석이 말했다. “대신 현장 사람이 동의해야 하고, 보상 조건부터 공개하세요.”

“받겠습니다.”

“받는다는 말로 끝내지 말고.”

“문서로 남기죠.”

지석은 태경의 출입증을 받아 보안함에 넣었다. 플라스틱 카드가 금속 상자 바닥에 닿는 소리가 작았다. 그는 곧바로 교대표로 돌아가 첫 줄의 자기 이름 옆에 종료 시각을 적었다. 태경을 배웅하는 사람의 행동이 아니라, 남은 사람을 운영하는 사람의 행동이었다.

태경은 사물함 바닥에서 작업 장갑 한 짝을 꺼냈다. 짝이 맞지 않는 장갑은 버리는 편이 쉬웠다. 그러나 지석은 그것을 받아 분실함에 넣었다. “다음 교대가 찾을지도 모르니까.”

“그런 것까지 남겨야 합니까.”

“사람도 물건도 없다고 쓰기 전엔 한 번 찾습니다.”

지석은 남는 조건을 한 줄 더 적었다. 부족한 교대는 외주 인력으로 채우기 전 작업자 회의에서 공개할 것. 태경은 그 문장을 읽고 서명하지 않았다. 지석의 권한으로 남겨야 하는 조항이었다. 대신 날짜와 회의 장소를 확인했다.

“외부 일 소개는 그 조건 지켜질 때만.” 지석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알겠다는 말도 기록에 남겨요.”

태경은 휴대전화 메모에 그 문장을 옮겼다. 다음 기회가 생겨도, 사람을 데려오는 일은 자기만의 판단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해가 기울 무렵 태경은 회사 앞 버스정류장에 섰다. 조사 대상이라는 표시는 경력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면책도 없고, 다음 달 급여일도 없었다. 휴대전화에는 서윤이 보낸 미개봉 봉투 사진이 남아 있었다. 그는 사진을 열었다가, 내용은 보지 못한 채 화면을 끄려 했다.

그때 이상훈에게서 전화가 왔다.

“추천서는 아닙니다.” 상훈이 말했다. “사실확인 연락입니다. 제한 조건 아래 임금과 주문 기능을 유지한 자료가 있다고만 말할 수 있습니다.”

“그걸로 누가 일을 맡기겠습니까.”

“모르죠. 그래도 없는 말은 안 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자 모르는 번호가 다시 울렸다. 태경은 한 번 놓칠 뻔했다. 회사 밖에서 걸려오는 전화는 첫 생에 대개 빚 독촉이었다.

“윤태경 씨 맞습니까?”

“맞습니다.”

“백나린입니다. 포장재 공장 운영하고 있어요. 현금이 끊겼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소개 자료를 읽는 사람처럼 매끄러웠지만, 문장 끝은 짧았다. 태경은 버스 도착 시간을 봤다. 다음 차는 열두 분 뒤였다.

“투자 유치는 다른 분을 찾으셔야 합니다.”

“투자 말고 진단을 원합니다. 직원들 월급이랑 설비 멈출 날짜를 먼저 보고 싶어요.”

태경은 가방 안의 빈 수첩을 만졌다. 한림리빙에서는 회사 이름 뒤에 숨을 수 있었고, 이제는 그럴 간판도 없었다. 첫 의뢰가 실패하면 누구에게 책임을 넘길지도 더 선명해질 것이다.

“수임료를 먼저 정해야 합니다.”

백나린은 잠시 웃지 않았다. “살리는 값 말고, 닫을 줄 아는 값으로 부르세요.”

“자료를 먼저 받아야 합니다. 계좌 잔액, 임금일, 설비 임대 계약, 이미 넘긴 주문. 빠진 게 있으면 진단도 틀립니다.”

“그 자료를 내면 공장 소문이 납니다.”

“안 내면 제가 아는 척할 이유가 없습니다.”

나린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공장 이름을 먼저 말하려다 멈췄다. “진단은 사흘. 직원 면담은 동의한 사람만. 결과가 마음에 안 든다고 없던 일로 하진 않는 조건이면요.”

“그 조건이면 합니다.”

“수임료는.”

태경은 빈 수첩을 보았다. 사무실도 명함도 없었지만, 공짜 조언으로 다른 사람의 급여일을 결정할 권한도 없었다. 그는 하루 단위의 작은 금액과, 자료가 거짓이면 즉시 중단한다는 조건을 말했다. 나린은 액수가 아니라 중단 조항을 먼저 되물었다.

“닫으라는 결론이 나와도요?”

“그때는 누가 닫고, 무엇을 남길지부터 적습니다.”

나린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버스 정류장 건너편의 편의점 간판이 그녀의 통화 화면에 작게 비쳤다. “우리 공장은 포장만 만드는 곳이 아니에요. 직원들이 브랜드를 믿고 남았고, 거래처도 로고를 보고 주문합니다.”

“그럼 그 로고가 임금일보다 먼저인지부터 봐야 합니다.”

“그 말 들으려고 전화를 한 건 아니에요.”

“그래도 첫날에 듣습니다. 자료를 감추면 진단이 아니라 응원이 됩니다.”

나린은 짧게 웃었다가 곧 멈췄다. “내일 오전 열 시. 계좌와 임대계약은 보여 드리겠습니다. 직원 면담은 제가 정하지 않을게요.”

태경은 주소를 받아 적었다. 공장 이름 아래에 ‘대표 확인 전’, ‘직원 동의 필요’라고 덧붙였다. 첫 고객은 아직 고객이 아니었다. 다만 거절할 수 있는 자료를 들고 만나기로 한 사람이었다.

태경은 버스를 향해 한 발을 내디뎠다가 멈추지 않았다. 출입증 대신 수첩을 쥔 손이 차가웠다. 다음 정류장은 회사가 아니라, 아직 계약서도 없는 공장이었다.

버스가 정류장 앞에 멈췄다. 태경은 타지 않았다. 봉투 사진은 여전히 열리지 않은 채 화면 구석에 남아 있었다. 그는 수첩 첫 장에 포장재 공장, 현금 중단, 임금일 미확인이라고 적었다. 다음 일은 구원이 아니라, 누가 무엇을 닫을 권리가 있는지부터 묻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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