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접힌 출근표

회귀한 자금팀 대리는 망할 회사를 살리지 않는다 · 2026. 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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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석은 게시판 앞에서 출근표를 세 번 접었다 폈다.

새벽 여섯 시, 생산동 형광등은 아직 절반만 켜져 있었다. 밤새 들어온 고객 예치금은 잠금계좌에 묶였고, 태경의 표에는 최소 인원 열여덟 명이 파랗게 칠해져 있었다. 지석의 손에는 이름 열다섯 개가 적힌 교대표가 있었다.

“김문섭은 안 옵니다. 허리 때문에 야간 못 선다고 어제 말했습니다.”

태경은 고개를 들었다. “대체 인원은?”

“박준호는 프레스 자격이 없고, 이선우는 사흘째 연속 근무입니다. 넣으면 오늘은 돌아갈지 몰라도 내일 사고 납니다.”

지석은 빈칸을 손톱으로 두드렸다. 태경의 표에는 숫자 하나였다. 지석의 표에는 세 사람의 사유와 자격, 마지막 퇴근 시각이 있었다. 어느 쪽도 거짓은 아니었다. 다만 하나는 사람을 일괄로 세고, 다른 하나는 사람이 견딜 수 있는 시간을 세고 있었다.

“열여덟 명으로 계산했잖아요.” 태경이 말했다.

“계산이 틀린 게 아닙니다. 이름이 빠졌습니다.”

지석은 2번 라인으로 걸어갔다. 전원함 앞에 붉은 정지 표찰이 걸렸다. 그는 표찰 뒤쪽에 작업자 이름을 적었다. 김문섭, 박준호, 이선우. 그리고 ‘대체 불가 공정: 치공구 교체’라고 썼다.

태경이 뒤따라왔다. 기계는 멈춰 있었지만 금속 냄새와 기름 냄새는 남아 있었다. 2번 라인의 지그는 윤성정밀에서 만들어 납품한 것이었다. 동호가 전날 넘긴 도면 사본의 모서리에도 같은 품번이 찍혀 있었다.

“이걸 빼면 1번 라인으로 일부 돌릴 수 있습니까?”

“반만요.” 지석이 대답했다. “치공구를 옮기는 데도 사람과 시간이 듭니다. 전량은 못 합니다.”

“그럼 고객에게 말해야겠네요.”

지석은 그 말이 바로 나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보통은 목표 숫자를 다시 묻거나, 누가 더 남을 수 있는지부터 물었다. 그는 잠시 태경의 얼굴을 봤다.

“말만 하면 끝나는 게 아닙니다. 수량 낮추면 예치금 일부 돌려줘야 합니다.”

“알아요.”

“임금도 줄어듭니다.”

“그래서 당신 표대로 계산하겠습니다.”

지석은 대답 대신 2번 라인의 스위치를 내렸다. 소리가 멎자, 다른 라인의 모터 소음이 더 또렷해졌다. 멈춘 것은 한 줄의 생산량이었고, 살아남은 것은 억지 야간조가 아니었다.

오전 여덟 시, 생산관리실 화면에는 고객사 구매팀의 박성우 과장이 떠 있었다. 그의 뒤로도 회의실 유리가 보였다. 박 과장은 자료를 넘기다 말고 수량 칸에서 손을 멈췄다.

“어제 계약한 물량이 아닙니다.”

“맞습니다.” 태경이 말했다. “야간조가 빠졌고, 설비를 무리하게 돌리지 않겠습니다.”

“그건 귀사 사정이죠.”

지석은 화면 옆에 서서 종이 한 장을 들었다. 태경이 시선을 주자 지석이 말했다.

“1번 라인은 오늘 필수 품목 이백 개, 내일 백오십 개 가능합니다. 2번 라인은 정지합니다. 억지로 돌리면 품질 보증 못 합니다.”

박 과장의 표정이 굳었다. “그렇게 줄이면 저희도 조립 일정이 무너집니다.”

“그래서 선택지를 드립니다.” 태경이 화면을 넘겼다. “필수 품목만 받으시고 나머지 예치금은 오늘 반환받으시거나, 전량 취소하실 수 있습니다. 전량을 약속하고 지키지 않는 선택은 하지 않겠습니다.”

회의실 바깥에서 누군가 문을 열었다 닫는 소리가 화면 너머로 들렸다. 박 과장은 잠시 마이크를 끄고 다른 사람과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지석은 그 틈에 자기 표를 다시 봤다. 빈칸은 사라지지 않았다. 대신 1번 라인의 이름 옆에는 각자의 시작 시각이 적혀 있었다.

박 과장이 돌아왔다.

“필수 품목만 받겠습니다. 대신 납기와 검사 기준을 다시 쓰죠. 예치금 중 잔액은 돌려받겠습니다.”

“오늘 안에 수정 조건서 보내겠습니다.” 태경이 답했다.

“그리고 다음 주 물량은 확답하지 마세요.”

“확답하지 않겠습니다.”

통화가 끝나자 태경은 약속 생산량 칸을 지웠다. 새 숫자를 입력하기 전에 지석에게 키보드를 밀었다.

지석은 화면 한가운데 남은 빈칸을 보다가 생산동 쪽 창을 열었다. 바람과 함께 용접 냄새가 얇게 들어왔다. 아래에서는 최은숙이 장갑을 끼며 누군가와 말을 나누고 있었다. 그녀는 오늘 주간만 가능하다고 했고, 그 말은 태경의 첫 표에는 ‘1’로만 들어가 있었다.

“은숙 씨는 네 시 전에 나가야 합니다.” 지석이 말했다. “아이 픽업이 있어서요. 그다음엔 권민호가 검사 공정을 받습니다. 민호는 포장 못 합니다.”

태경은 계산기를 끄지 않았다. “그 순서면 운송 상차가 늦어집니다.”

“그러면 운송도 시간 바꿔야죠. 사람을 시간에 맞추지 말고, 오늘은 시간을 사람한테 맞추면 됩니다.”

말을 하고 나서 지석은 자기 말이 너무 단정적이었다는 걸 알았다. 현장에서는 그렇게 밀어붙이면 됐지만, 운송 기사와 고객의 창고에도 시간이 있었다. 그는 다시 화면을 가리켰다.

“아니, 내가 정할 일만은 아니네요. 상차 가능한 마지막 시간을 확인해 주세요. 그 안에 못 맞추면 수량을 한 번 더 줄이겠습니다.”

태경은 바로 물류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결을 기다리는 동안 지석은 교대표에서 최은숙의 이름을 지우지 않고, 옆에 ‘16:00 퇴근’이라고 썼다. 잠시 뒤 태경이 수화기를 가렸다.

“상차는 다섯 시 반까지. 운송사는 한 대만 보낼 수 있습니다.”

“그럼 포장 수량은 백오십보다 적습니다.”

“얼마죠?”

지석은 멈춘 라인과 검사 공정을 다시 계산했다. 그 숫자는 자존심을 깎는 숫자였다. 그는 오래 망설이지 않았다.

“백삼십.”

태경은 고객에게 다시 메일을 보냈다. 이미 한 번 낮춘 숫자를 다시 고치는 일은 불편했다. 답장은 십 분 뒤에 왔다. 필수 품목 백삼십, 오후 다섯 시 반 상차, 그 외 예치금 반환. 고객은 친절한 문장을 쓰지 않았다. 다만 수정 조건서에 전자 서명을 했다.

지석은 그 서명을 보고서야 숨을 내쉬었다. 목표를 낮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운송비는 한 대분으로 남고, 원재료 한 묶음은 창고에 남았다. 그 남은 돈이 누구의 임금으로 갈지, 누구의 외상대금이 계속 기다릴지는 여전히 표 안에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오늘 공장에서 누군가가 다칠 이유는 하나 줄었다.

“현장 수량, 직접 넣으세요.”

지석은 손을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넣으면 내가 책임집니다.”

“그래서요.”

그는 이백과 백오십을 입력하고, 아래에 ‘2번 라인 정지. 야간 거부 반영’이라고 썼다. 태경은 그 옆에 자금 승인 책임자로 서명했다. 두 서명은 같은 칸에 있지 않았다. 하나는 무엇을 만들 수 있는지, 다른 하나는 무엇을 위해 돈을 쓸 수 있는지 적는 칸이었다.

오후가 되자 잠금계좌 잔액표가 다시 열렸다. 부분 환불 뒤 남은 돈은 생각보다 얇았다. 원재료 대금, 운송비, 오늘 확정된 교대의 임금. 화면 하단에는 윤성정밀 외상대금이 붉은색으로 남아 있었다.

이상훈은 은행 쪽 화면에서 안경을 벗었다. “규정상 지급은 예약까지만 가능합니다. 내일 오전, 실제 근무 명단과 계좌 명의가 맞아야 합니다.”

“오늘 나온 사람부터 먼저 넣으면 안 됩니까?” 지석이 물었다.

“근무 확정자, 대기 보상 대상, 거부자는 분리해야 합니다.” 이상훈이 손가락을 세었다. “첫째, 오늘 투입 확정자. 둘째, 회사 지시로 대기한 사람. 셋째, 근무를 거부했거나 아직 확정되지 않은 사람. 세 목록이 섞이면 전체 지급이 멈춥니다.”

지석은 불쑥 의자를 당겼다. “거부했다고 해서 임금을 떼자는 겁니까?”

“아닙니다. 지급 사유를 나누자는 겁니다. 거부자에게도 이미 발생한 임금이나 대기 보상이 있으면 그 근거로 넣습니다. 없는 근무를 만든다고 쓰면 내일 모두 못 받습니다.”

지석의 손이 멈췄다. 그는 종이 명단 맨 위의 김문섭 이름을 보았다. 야간은 거부했지만, 전날 정비를 마치고 대기 지시를 받은 시간은 있었다.

“그럼 문섭 형은 대기 보상으로 넣습니다. 본인이 확인하게 할게요.”

태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도 본인 확인 없이는 넣지 않겠습니다.”

지석은 명단을 세 갈래로 나눴다. 손이 빠른 이에게는 단순히 ‘근무’라고 쓰고 싶었지만, 오늘은 사유까지 적었다. 작업 시작 시각, 대기 지시 시각, 확인 서명. 한 줄이 길어질수록 숫자는 줄어들었다. 대신 그 숫자를 누가 부정할지 그는 알 수 있었다.

태경은 최종 요청서를 읽었다. “임원 보너스 항목은 그대로 보류. 윤성정밀 외상대금도 보류. 필수 원재료와 확정·대기 임금만 신청.”

그 말이 끝나자 지석이 고개를 들었다.

“공장 쪽에 설명은?”

“내가 합니다.”

“아니요.” 지석은 명단을 접지 않았다. “오늘은 내가 작업자한테 설명했습니다. 윤성정밀에는 아버지한테 직접 말해야죠. 당신 표에서 빠진 건 내 이름도 아니고, 그쪽 돈도 아닙니다.”

태경은 잠시 붉은 항목을 보았다. “맞습니다. 내가 말하겠습니다.”

이상훈은 결재선을 확인했다. “내일 오전 아홉 시 예약 지급입니다. 명단이 바뀌면 즉시 통보하십시오. 구두 수정은 인정되지 않습니다.”

“문자로 받겠습니다.” 지석이 말했다. “확인 답장까지 붙여서.”

그는 게시판으로 돌아가 새 종이를 붙였다. ‘오늘 교대 확정’, ‘대기 보상 확인’, ‘내일 지급 예약’. 작업자들은 종이 앞에서 자기 이름을 찾았다. 누군가는 수량이 줄었다는 데 불만을 말했고, 누군가는 밤을 안 서도 된다는 데 한숨을 쉬었다. 지석은 어느 쪽도 달래지 않았다. 바뀐 교대와 지급 기준을 한 줄씩 읽어 주었다.

태경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윤동호였다.

“임금은 내일 나간다며.”

“네.”

“그럼 내 전표는?”

태경은 게시판의 이름들을 바라봤다. “그대로 남습니다. 고객 돈으로 덮지 않습니다.”

잠시 숨소리만 들렸다.

“그 말을 네 입으로 했으니,” 동호가 말했다. “내일 공장 문은 내가 정한다.”

통화는 짧게 끊겼다. 태경은 휴대전화를 내렸다. 게시판 맨 아래, 지급 예약표 마지막 줄 아래에도 윤성정밀 미지급 항목은 붉게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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