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아버지의 방문

회귀한 자금팀 대리는 망할 회사를 살리지 않는다 · 2026.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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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호는 아들의 사과를 받으러 온 게 아니었다.

외상대금 날짜와 작업자 급여일을 들고 왔다.

긴급 데스크 공개 검토석에는 납품업체 이름이 줄지어 있었다. 윤성정밀은 그중 하나였고, 그 옆에만 관계자 거래라는 표시가 붙어 있었다. 동호는 그 표시를 한 번 본 뒤 전표를 책상에 놓았다. 손을 닦고서야 종이를 만지는 버릇은 공장에서나 회의실에서나 같았다.

“가족이라서 먼저 줄 수 없다고?”

태경은 화면을 돌려 보였다. “가족이라서 먼저 줄 수 없습니다.”

“그럼 납품한 물건 값으로는?”

혜린이 전표를 넘겼다. “검수 서명과 납기표는 맞습니다. 다만 오늘 임금 잠금액을 깨고 선지급할 기준은 다른 업체에도 적용되어야 합니다.”

동호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다른 업체가 내 공차를 맞춥니까?”

“중요 공급처인 건 점수에 넣었습니다.” 태경이 말했다. “하지만 오늘 급여일이 같은 작업자들과, 멈추면 바로 고객 주문이 깨지는 납품도 같이 봐야 합니다.”

“네 표에는 내 공장 사람이 안 보이지.”

“그래서 지석 반장에게 작업자와 공정표를 받았습니다.”

“한림리빙 사람만.”

그 말에 태경은 잠시 말을 잃었다. 윤성정밀에도 사람은 있었다. 전표 한 장에는 외상대금이 적혀 있지만, 공장 바닥에는 누구의 월급이 언제 끊기는지가 따로 있었다. 가족인지 아닌지 표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윤성정밀도 같은 양식으로 올리겠습니다. 작업자 급여일, 필수 공정, 다른 대체 가능 여부.”

“오늘 안에?”

“오늘 안에 확인되는 것만.”

동호는 전표를 거두었다. “그럼 내 공장은 내가 닫는다.”

회의실 공기가 멎었다. 임원이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혜린이 먼저 손을 들었다.

“폐업 결정입니까, 검토입니까?”

“검토.” 동호가 짧게 말했다. “돈 없으면 기계는 멈춘다. 멈춘 기계를 사람 목숨처럼 붙잡을 생각은 없다.”

태경은 아버지가 협박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첫 생에서 그 말은 더 늦게 왔다. 그때 태경은 공장을 살리겠다고 돈을 끌어다 썼고, 동호는 이미 작업자에게 나갈 길을 말하지 못한 뒤였다. 지금 동호는 먼저 닫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공장을 포기하겠다는 말이 아니라, 자기 손으로 어떤 것을 남길지 정하겠다는 말이었다.

오후에 태경과 동호는 윤성정밀 공장으로 갔다. 2번 작업대 옆에는 치공구 보관함이 있었다. 낡은 열쇠 하나가 동호의 손바닥에 놓였다. 그는 보관함을 열어 쇠로 된 지그 하나를 꺼냈다. 표면에는 작은 긁힘과 도면 번호가 남아 있었다.

“이건 회사 간판이 아니라 공차 잡는 물건이다.” 동호가 말했다. “이거 없으면 같은 부품도 같은 모양으로 못 나온다.”

작업자 세 명이 작업대 앞에 서 있었다. 그들은 폐업이라는 말을 듣고도 당장 아들에게 돈을 보내 달라고 말하지 않았다. 한 사람이 물었다.

“사장님, 닫으면 저 공구는 어떻게 됩니까?”

“아직 안 정했다.”

“다른 데서 같은 공정 돌릴 수 있습니까?”

동호는 대답 대신 도면 묶음을 탁자에 올렸다. 치수, 검수 기준, 납품처 요구사항. 법인이 닫혀도 손과 도구가 이어지면, 생산 기능은 남을 수 있다. 태경은 그 말을 설명으로 듣지 않았다. 작업자들이 도면을 펼쳐 보는 손에서 봤다. 그들은 공장을 살려 달라고만 하지 않았다. 어디서 일할 수 있는지, 누가 도구를 쥘 수 있는지를 묻고 있었다.

“오늘 돈 안 들어오면요?” 한 작업자가 물었다.

동호는 급여 달력을 가리켰다. “내일 오전까지 확인한다. 안 되면 폐업 검토 들어간다. 대신 공구랑 도면은 묻어 두지 않는다.”

태경은 그 말을 막지 않았다. 아버지 공장을 살린다는 명분으로 작업자들이 기다릴 권리까지 빼앗을 수는 없었다.

저녁, 현금 데스크 화면에는 동해유통 예치금이 다시 떴다. 잠금계좌는 오늘 주문에 필요한 필수 납품 비용만 열 수 있었다. 태경은 윤성정밀 외상대금 전체를 그 칸에 넣지 않았다. 오래된 빚을 고객 돈으로 갚으면, 공개한 가족 특혜가 다른 이름으로 돌아올 뿐이었다.

“오늘 주문에 필요한 공정 비용만 분리합니다.” 혜린이 말했다. “수량, 도구 사용료, 검사 인력. 기존 외상대금은 그대로 남겨야 합니다.”

영상통화 화면에 동호가 나타났다. “일부만 받으면 내가 빚을 포기한 걸로 쓰지 마.”

“그 문구를 넣겠습니다.” 태경이 말했다.

“넣는다고 끝이 아니다. 누가 어떤 돈을 받는지 작업자도 알아야 한다.”

혜린은 지급 조건에 한 줄을 추가했다. ‘본 지급은 고객 주문에 필요한 특정 공정 비용이며, 기존 외상대금의 변제·면제·우선순위 변경을 뜻하지 않는다.’

동호는 화면을 읽고 한참 뒤 말했다. “돈은 빚이고, 공구는 선택이다.”

그는 치공구 목록과 도면 번호를 전송했다. 목록에는 어느 공정에 어떤 도구가 필요한지, 누가 사용법을 아는지까지 적혀 있었다. 태경은 파일을 받으며, 아버지가 아직 누구에게도 열쇠를 넘기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 선택은 아들의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작업자와 함께 결정할 일이었다.

윤성정밀의 오래된 외상대금은 표에 남았다. 대신 오늘 주문을 위한 좁은 공정 비용만 열렸다. 공장을 구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내일 어떤 라인을 멈출지, 어떤 손을 남길지 선택할 시간을 샀다.

동호는 영상통화를 끊지 않고 작업대 쪽을 카메라에 비췄다. 치공구 보관함, 도면 상자, 퇴근하지 못한 작업자 한 명의 손. 태경은 화면을 보며 공정 비용의 항목을 하나씩 읽었다. 특정 주문 백 개를 위한 절삭 시간, 검사 인력 두 명, 도구 사용료, 배송 전 포장. 어떤 줄에도 ‘윤성정밀 외상대금’이라는 말은 없었다.

“이걸 열면 다음 주 급여가 생깁니까?” 동호가 물었다.

“아닙니다.”

“그럼 공장을 살리는 돈도 아니네.”

“오늘 고객에게 약속한 백 개를 만들 수 있는 돈입니다.”

동호는 손바닥으로 지그의 흠집을 쓸었다. “그 차이를 작업자들한테도 말해.”

태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움을 좁게 쓰는 말은 때로 더 잔인하게 들린다. 오래된 빚은 그대로인데, 당장 필요한 비용만 열린다. 그러나 둘을 섞으면 누가 무엇을 포기했는지도 없어졌다.

작업자 대표가 카메라 밖에서 물었다. “그 백 개 만들면 그다음은요?”

동호가 답했다. “그다음은 내일 표 보고 정한다. 공장이 남는다고 약속 안 한다. 대신 너희 손이 어디로 갈 수 있는지는 같이 정한다.”

그 말은 사장의 말이라기보다, 닫힐지도 모르는 작업장을 관리하는 사람의 말이었다. 한 작업자가 도면 번호를 적었고, 다른 사람은 치공구에 붙은 자산 라벨을 사진으로 찍었다. 법인이 닫혀도 도구가 사라지지 않게 하려는 준비였다.

혜린은 지급 초안에 수취인을 윤성정밀 법인으로만 적지 않았다. 공정비 세부 내역, 검수 후 지급, 기존 채권 보존, 작업자 열람 가능이라는 네 줄을 넣었다. 동호는 네 줄을 읽은 뒤 마지막에 한 줄을 더 요구했다.

“내가 이 돈 받는다고 한림리빙 편에 선 걸로 쓰지 마.”

“그건 기록하지 않겠습니다.” 혜린이 말했다. “거래 목적만 기록합니다.”

“목적도 틀리면 내가 고친다.”

태경은 그 말에 서명칸을 동호 쪽으로 돌렸다. 오늘은 아버지가 아들의 구조안을 승인하는 날이 아니었다. 고객 주문을 위해 무엇을 만들고, 무엇을 아직 받지 못하는지 각자 이름으로 남기는 날이었다.

동호는 서명하지 않았다. 대신 ‘기존 외상대금 보존 확인’ 옆에 도장을 찍었다. 도장은 협력의 표시가 아니라, 공장을 포기할 권리까지 남긴 확인이었다.

현금 데스크의 시계는 계속 줄어들었다. 태경은 이제야 알았다. 시간을 산다는 것은 회생을 약속받는 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자기 선택을 적을 칸을 하나 더 얻는 일이었다.

공장 안쪽에서는 전기 차단기가 한 번 울렸다. 작업자들은 그 소리에 고개를 들었지만, 누구도 기계를 다시 켜지 않았다. 동호가 급여 달력을 접어 작업대에 올리자 한 사람이 말했다.

“사장님, 내일 닫는 거면 오늘 야근은 안 하겠습니다.”

동호는 즉시 대답했다. “안 해도 된다. 백 개 공정이 열리면 그 범위만 다시 묻는다.”

“그때도 거절할 수 있습니까?”

“된다.”

태경은 그 문답을 듣고, 현금표의 ‘필수 납품’이라는 말이 얼마나 쉽게 사람을 밀어낼 수 있는지 생각했다. 고객 주문이 있다고 해서 누군가의 야간을 당연하게 가져갈 수는 없다. 공정 비용을 열었다고 해서 작업자 동의까지 산 것도 아니다.

지석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한림리빙 쪽 교대안도 같은 문제로 멈췄다는 내용이었다. 필수 라인을 돌릴 수 있는 인원은 있지만, 비필수 라인을 함께 살릴 인원은 없다. 태경은 답장에 ‘비필수 라인 정지 기준을 공개 표로’라고 적었다. 아버지 공장의 도구와 한림리빙의 교대가 서로 다른 문제처럼 보여도, 둘 다 누가 남고 누가 멈출지 숨기지 않는 일에서 시작했다.

동호는 보관함을 잠그며 열쇠를 주머니에 넣었다. “공구는 오늘 안 넘긴다.”

“왜요?” 태경이 물었다.

“넘길 사람도, 받을 자리도 아직 확인 안 됐다.”

그것은 거절이 아니라 보류였다. 태경은 그 차이를 이해했다. 확인 전에는 돈도 공구도 먼저 움직이지 않는다는 원칙이, 이제는 아버지 손에서도 작동하고 있었다.

그날 밤 태경은 윤성정밀 공정비 승인 화면을 닫기 전에 한 줄을 더 적었다. ‘작업자 동의·검수 완료 전 집행 불가.’ 금액은 좁아졌고, 시간은 더 줄었다. 그래도 누군가의 선택을 지우지 않은 채 남은 시간만큼은 계산할 수 있었다.

동호는 그 문구를 읽고 도장을 찍지 않았다. 대신 내일 아침 작업자들과 다시 보겠다고 했다. 태경은 그 보류가 불안했지만, 불안을 없애려고 서명을 재촉하지 않았다. 공장과 돈 사이에 남은 것은 약속이 아니라 다음 확인 시각이었다.

그 시각까지는 누구도 대신 결정하지 않는다.

그게 오늘 남은 유일한 조건이었다.

그리고 그 조건은 가볍지 않았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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