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의 약탈
기적은 곡물을 먹는다 · 2026.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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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아래 길로 들여온 곡물을, 도시로 마지막 한나절을 남기고 무리가 덮쳤다. 수송대를 습격한 것은 도적이 아니라 이웃이었다. 마라 케드는 잡힌 자들의 얼굴에서 그 사실을 먼저 읽었다. 그들은 굶주린 농민이었고, 토르 마을 너머 작은 마을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손에 든 것은 군용 무기가 아니라 밭에서 쓰던 낫과 도리깨였다. 옷은 여러 겹이었으나 다 해졌고, 몇은 신발 대신 천을 발에 감고 있었다. 약탈자라기에는, 약탈에 너무 서툴고 너무 굶주려 있었다. 같은 겨울을 나는 같은 굶주린 자들이, 같은 곡물을 두고 서로를 쳤다. 적이 멀리 있는 낯선 자가 아니라 옆 마을 사람이라는 것. 마라는 그 씁쓸함을 칼보다 무겁게 느꼈다. 그녀는 평생 빈손동맹을 외쳤다. 가진 것 없는 자들이 손을 잡아야 한다고. 그런데 오늘, 가진 것 없는 자들이 서로의 빈손을 쳤다. 굶주림은 연대를 가르쳤으나, 더 깊은 굶주림은 연대를 부쉈다. 마라는 그 모순 앞에서 자기 구호가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손을 잡는 것은, 그 손에 쥘 것이 조금이라도 있을 때였다. 쥘 것이 하나도 없으면, 사람은 옆 사람의 손에 든 것을 빼앗았다. 그녀는 그 사실을 미워하지 않으려 애썼다. 미워하면, 빼앗은 자를 적으로 돌리게 되고, 그러면 그들을 굶긴 진짜 손은 멀쩡히 숨었다.
습격은 짧게 끝났다. 도안의 수비대가 호송 중이었고, 굶주린 농민들은 무기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죽기를 각오한 자들이었다. 곡물을 빼앗지 못하면 자기 마을이 굶어 죽는다는 것을 아는 자들. 죽기를 각오한 자는 약해도 위험했다. 그들은 진형도, 무기도 없었다. 그저 곡물 수레를 향해 몸으로 달려들었다. 낫과 몽둥이, 그리고 맨손. 수비대는 그런 적을 베는 훈련을 받지 않았다. 적이 군인이면 베기 쉬웠으나, 적이 굶주린 농민이면 칼을 든 손이 먼저 망설였다. 그 망설임 때문에 수비대 하나가 다쳤고, 망설임이 끝난 뒤 농민 둘이 쓰러졌다. 도안은 부하들에게 생포 우선을 명했다. 굶주린 이웃을 베어 봐야, 그 시신이 또 다른 마을의 분노가 됐다. 그는 끊긴 다리에서 매복대를 생포했던 것처럼, 여기서도 죽이기보다 묶기를 택했다. 다만 그때의 적은 왕실 위장대였고, 이번의 적은 진짜 굶주린 농민이었다. 같은 생포라도 손에 닿는 무게가 달랐다. 묶인 농민 하나가 도안의 발치에서, 빼앗으려던 곡물 자루를 끝까지 놓지 않았다. 손가락이 자루 끈에 얼어붙은 듯 떨어지지 않았다. 도안은 그 손을 억지로 떼지 않고, 잠깐 그대로 두었다. 그 손이 쥔 것은 곡물이 아니라, 자기 마을의 겨울이었다. 나머지는 붙잡혔다. 마라는 그 붙잡힌 자들을 어떻게 할지가, 이 싸움의 진짜 문제임을 알았다.
브렌 토르가 도착했다. 그는 그 농민들이 어느 마을에서 왔는지 알았다. 토르 마을과 오래 곡물을 두고 다퉈 온 이웃이었다. 브렌은 단호했다. 난민의 입경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 마을을 들이면, 그 뒤로 열 마을이 옵니다. 우리 곡물로는 우리 마을도 봄을 못 넘깁니다. 저들을 들이면, 저들과 우리가 같이 죽습니다. 그의 말은 잔인했으나, 셈은 틀리지 않았다. 곡물은 한정돼 있었고, 입은 무한히 늘 수 있었다. 한 입을 더 들이는 일은 셈하기 쉬웠으나, 그 한 입이 열 입을 부르는 일은 셈하기 어려웠다. 브렌은 손가락으로 자기 마을 곳간의 남은 자루 수를 꼽아 보였다. 이백 자루 남짓. 그것으로 토르의 아이들이 봄까지 먹으려면, 하루에 몇 자루를 헐어야 하는지 그는 이미 세어 두었다. 그 셈에 이웃 마을의 입이 더해지면, 남는 것은 모두가 조금씩 덜 먹다 함께 굶는 봄이었다.
마라는 그 셈에 다른 셈으로 맞섰다. 저 사람들도 누군가의 이웃이오. 오늘 저들을 막으면, 다음 겨울엔 우리가 막힐 차례요. 굶주린 자를 막는 선을 한 번 그으면, 그 선은 점점 우리 쪽으로 좁혀지오. 오늘 옆 마을을 막은 손이, 내일은 옆집을 막고, 모레는 옆방을 막소. 한번 긋기 시작한 선은 멈추는 법을 모르오. 그것은 연대의 논리였다. 마라는 그 논리를 빈손동맹에서 배웠다. 혼자서는 감독 하나도 못 막던 노동자들이, 손을 잡자 방아를 멈췄다. 그 경험이 그녀에게 연대를 가르쳤다. 그러나 노동자의 연대는 같은 작업장 안의 일이었고, 마을과 마을의 연대는 빈 곡간을 사이에 둔 일이었다. 같은 처지라도, 나눌 것이 없으면 손을 잡기 어려웠다. 마라는 그 차이를 알면서도, 손을 놓는 것보다는 잡는 편을 끝까지 택했다. 굶주림 앞에서 마을마다 문을 닫으면, 결국 모두가 고립돼 하나씩 죽는다는 것. 두 논리가 부딪쳤다. 브렌의 지역 이기주의는 자기 마을을 살리는 정당한 셈이었고, 마라의 연대론은 모두를 살리려는 위태로운 이상이었다. 어느 쪽도 곡물을 늘리지는 못했다. 마라는 브렌의 셈을 반박하지 못했고, 브렌은 마라의 두려움을 반박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같은 광장에서, 같은 붙잡힌 농민들을 두고, 서로 다른 미래를 보았다. 브렌은 문을 닫은 마을이 봄까지 버티는 그림을 보았고, 마라는 문을 닫은 마을들이 하나씩 고립돼 무너지는 그림을 보았다. 어느 그림도 지금 광장의 곡물 자루 수만으로는 판가름 나지 않았다. 봄이 와야 어느 쪽 그림이 맞았는지 알 수 있었고, 봄은 아직 멀었다. 미래가 둘로 갈린 자리에서, 결정은 현재의 곡물 수가 아니라 어느 미래를 믿느냐의 문제가 됐다. 그리고 그 믿음의 값은, 틀렸을 때 사람의 목숨으로 치러졌다.
레아 바렌이 그 둘 사이에서 선택해야 했다. 그녀는 어느 논리도 정답으로 선언하지 않았다. 대신 붙잡힌 농민들을 배급 명단에 넣었다. 다만 조건을 달았다. 그들을 손님이 아니라 일손으로 받는다는 것. 얼음 아래 수송로의 짐꾼으로, 기도방아의 교대 인력으로. 먹는 입을 늘리는 대신, 일하는 손도 함께 늘리는 것. 굶주린 자를 적선으로 받으면 곡물만 줄지만, 일손으로 받으면 그 손이 다음 곡물을 만들었다. 다만 그 한 줄에도 위험은 있었다. 일손이 늘면 당장 먹일 입도 늘었다. 그들이 만들 곡물이 그들이 먹을 곡물을 따라잡기까지, 도시는 한동안 더 굶어야 했다. 레아는 그 시차의 비용도 장부에 적게 했다. 좋은 절충에도 값이 있었고, 그 값을 숨기면 다음에 더 큰 값으로 돌아왔다. 마라의 연대와 브렌의 셈을, 레아는 일하는 입이라는 한 줄로 묶으려 했다.
브렌은 그 절충에 완전히 만족하지 않았다. 일손이 된 이웃이 정말 일할지, 아니면 곡간을 노릴지 알 수 없었다. 마라도 완전히 만족하지 않았다. 굶주린 자를 일손으로만 받는 것은, 그들의 절박함을 노동으로 값을 매기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두 사람 다 그 절충을 받아들였다. 완벽한 답이 없을 때, 모두가 조금씩 불만인 답이 가장 오래갔다. 레아는 그것을 겨울헌장에서 이미 배웠다. 그녀는 붙잡힌 농민들에게 직접 말했다. 동정도, 위협도 아닌 셈으로. 너희를 손님으로 받으면 곡물이 줄고, 우리 시민이 너희를 미워한다. 너희를 일손으로 받으면 곡물이 늘고, 시민이 너희를 동료로 본다. 어느 쪽을 택할지는 너희 손에 달렸다. 일할 거냐, 얹혀살 거냐. 농민들은 그 말 앞에서 잠깐 자존심과 굶주림 사이에서 망설였다. 그러나 굶주림이 자존심보다 컸다. 그들은 일손이 되기로 했다. 레아는 그들의 이름을 배급 명단이 아니라 노동 명단에 올렸다. 적선받는 자가 아니라 일하는 자로. 그 한 칸의 차이가, 그들을 도시의 짐에서 도시의 손으로 바꿨다.
붙잡힌 농민들을 명단에 올리던 중, 사빈이 한 사람을 불러 세웠다. 그자의 품에서 종이 한 장이 나왔다. 왕실 징발표였다. 그 농민의 마을도, 왕실에 곡물을 징발당한 마을이었다. 그들이 굶주린 까닭이 흉작만이 아니라, 왕실 징발 때문이기도 했다. 굶주린 이웃을 친 손 뒤에, 그 이웃을 굶긴 더 큰 손이 있었다. 마라는 그 징발표를 받아 들었다. 표에 찍힌 마을 이름이, 사빈이 외운 그 사라진 마을 목록과 겹쳤다. 곡물이 사라진 마을의 사람들이, 굶주려 옆 마을을 치고, 그 죄로 붙잡혀 도시의 일손이 됐다. 한 줄의 징발표가, 그 모든 고리를 조용히 이어 주었다.
마라는 그 징발표를 레아에게 보였다. 레아는 그것을 오래 보았다. 굶주린 이웃을 친 죄로 붙잡힌 자들이, 실은 왕실 징발의 피해자이기도 했다. 죄와 피해가 한 사람 안에 함께 있었다. 그녀는 그 둘을 따로 적게 했다. 수송대 습격 가담과 왕실 징발 피해 마을 출신. 죄만 적으면 그들은 약탈자로만 남고, 피해만 적으면 습격이 정당화됐다. 둘 다 적어야, 그들이 왜 그 자리에 섰는지가 온전히 남았다. 죄를 지운 피해자도, 피해를 지운 죄인도, 둘 다 절반의 기록이었다. 사람은 한 칸으로 적히지 않는다는 것을, 레아의 장부는 또 한 번 증명했다. 사빈이 그 두 줄을 같은 사람의 이름 아래 나란히 적었다.
브렌은 그 징발표를 보고 잠깐 말이 없었다. 그가 막으려던 이웃이, 자기 마을과 같은 손에 굶긴 자들이었다. 왕실은 토르 마을의 종자도, 이 이웃 마을의 곡물도 같은 방식으로 가져갔다. 다른 마을이라 믿고 서로 친 두 마을이, 실은 같은 손에 털린 한 처지였다. 브렌은 그 사실 앞에서 자기 지역의 경계가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마라의 연대론이 옳아서가 아니라, 적이 같다는 것이 드러나서였다. 그는 일손이 된 이웃 농민 하나에게 무뚝뚝하게 물었다. 너희 마을, 종자는 남았냐. 농민은 고개를 저었다. 브렌은 더 묻지 않았다. 종자가 사라진 마을의 봄을, 그는 자기 마을의 빈 종자 자루로 이미 알았다. 빈 자루의 무게는 어느 마을이든 같았다. 가벼웠고, 그 가벼움이 가장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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