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문장
기적은 곡물을 먹는다 · 2026.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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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문에 파문장이 걸렸다. 거친 종이에 붉은 봉랍이 찍혀 있었고, 그 봉랍의 인장은 멀리서도 교회의 것임이 분명했다.
요안 세렌은 그 문서를 가장 먼저 읽은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문 앞에 모인 사람들 틈에서, 글을 모르는 이들을 위해 그것을 소리 내어 읽어야 할지 망설였다.
읽으면 자기 이름도 함께 읽어야 했다. 거기에는 두 사람의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
레아 바렌, 그리고 요안 세렌. 변경백과 등화사제.
한 사람은 교회 곡간 봉인을 끊은 죄로, 한 사람은 거짓 점검 명령으로 잠입자를 빼낸 죄로. 두 죄목은 무게가 달랐으나, 같은 봉랍 아래 나란히 적혀 한 묶음이 되어 있었다.
오스틴 파르는 그 둘을 파문 예고했다. 파문은 즉시 집행이 아니라 예고였다.
예고는 칼을 들되 아직 내리치지 않은 손이었다. 그 사이에 회개하면 거둘 수 있다는 단서가 붙어 있었다.
그 단서가 가장 무서웠다. 단서는 거래의 여지였고, 거래의 여지는 사람을 흔든다.
요안은 그 단서의 정확한 문구를 다시 읽었다. ‘잠입자의 신원을 밝히고 장부를 반환하면, 파문을 거둔다.’ 회개라는 종교적 단어 뒤에, 마라와 리우를 넘기라는 정치적 요구가 숨어 있었다.
오스틴은 신앙의 언어로 거래를 포장했다. 요안은 그 포장을 알아보았다.
평생 의례의 언어를 다뤄 온 그는, 거룩한 문구가 어떻게 세속의 거래를 가리는지 알았다. 그것이야말로 그가 사제로서 가장 부끄러워하는 기술이었다.
자기가 매일 쓰던 그 기술이, 이제 자기를 겨누고 있었다.
요안은 자기 이름이 적힌 그 줄을 오래 보았다. 사제로 사는 것은 그가 아는 유일한 삶이었다.
파문은 신앙을 잃는 것이 아니라, 그 신앙으로 살아온 자리를 잃는 것이었다. 빵을 받을 자격, 사람을 축복할 권한, 죽은 자를 묻을 손.
그 모든 것이 그 한 줄로 거두어질 참이었다. 요안은 사제가 아닌 자기를 상상해 보려 했다.
상상이 잘 되지 않았다. 그는 열두 살에 교단에 들어왔다.
사제가 되기 전의 자기를 기억하기에는 너무 오래 사제로 살았다. 파문은 그에게 미래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통째로 부정하는 일이었다.
그가 집전한 모든 의례, 그가 축복한 모든 아이, 그가 묻은 모든 죽음이, 파문된 사제의 손이 한 일로 다시 적힐 것이었다. 그는 두려웠다.
그 두려움을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그 두려움이 자기를 어디로 끌고 가는지를 지켜보았다.
그는 두려움을 감정명으로 부르지 않고, 자기 몸이 무엇을 하는지로 읽었다. 파문장을 읽는 동안 그의 손가락이 자기도 모르게 사제복의 단추를 만지작거렸다.
곧 벗어야 할지 모르는 그 옷을. 그는 그 손을 거두었다.
옷을 잃을 것이 두려워 옷을 만지는 자기 손이, 회개 쪽으로 먼저 걸어가고 있었다. 회개라는 단어 앞에서, 그의 발이 미세하게 그쪽으로 기우는 것을.
그는 그 기욺을 부끄러워했다. 회개하면, 그는 사제로 남는다.
빵도, 권한도, 자리도. 다만 그 대가로 마라와 리우의 이름을 넘겨야 했다.
자기 자리를 지키려 다른 사람의 이름을 파는 것. 그것은 그가 평생 교회에서 봐 온 일이었고, 평생 미워한 일이었다.
그런데 막상 자기 차례가 되자, 그 미움이 두려움 앞에서 흔들렸다. 요안은 자기가 생각보다 약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앎이, 회개를 거부하는 첫 힘이 됐다. 자기 약함을 아는 자는, 그 약함에 한 번은 저항할 수 있었다.
오스틴은 파문장에 한 가지를 더 얹었다. 귀족들에게, 새 변경백을 추대해도 좋다는 허락이었다.
파문 예고된 변경백은 정통성을 잃은 변경백이었고, 정통성을 잃은 자리는 비어 있는 자리와 같았다. 방계 귀족들이 그 허락을 기다렸다는 듯 움직였다.
미카의 상속 적격을 심사하라던 그들이, 이제 레아 자체를 끌어내릴 명분을 얻었다. 그들은 곧바로 자기들끼리 새 변경백 후보를 두고 다투기 시작했다.
끌어내릴 자리가 하나인데 노리는 자가 여럿이었다. 요안은 그 다툼을 보며, 레아가 말한 ‘넷을 한 탁자에’의 첫 조짐을 읽었다.
적은 하나로 뭉친 적이 아니라, 각자 다른 것을 원하는 여럿이었다. 여럿은 한 자리를 두고 서로를 견제했다.
종교의 파문과 가문의 정통성 다툼이, 하나로 묶였다. 요안은 그 묶임의 솜씨를 보았다.
오스틴은 종교 권력만으로 레아를 칠 수 없었다. 변경백은 교회 위에 있지 않으나, 교회 아래에만 있지도 않았다.
그래서 오스틴은 가문 정치를 끌어들였다. 파문으로 정통성을 흔들고, 그 빈자리를 방계 귀족이 채우게 했다.
교회는 칼을 들지 않고, 귀족의 손에 칼을 쥐여 줬다. 요안은 그것이 9화의 치료, 16화의 방아, 그리고 지금의 파문까지 일관된 방식임을 알았다.
교회는 늘 직접 베지 않았다. 다른 손을 빌려 벴고, 그 손에게는 명분을 줬다.
그 명분이 종교였다.
요안은 레아를 찾아갔다. 그는 자기 파문보다 먼저, 레아에게 한 가지를 말해야 했다.
“변경백, 제 이름이 그 문서에 있는 것은… 제가 한 일 때문입니다. 변경백을 끌어들이지 마십시오. 저는 회개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제 회개 거부가 변경백의 죄를 더하지 않게, 저를 따로 떼어 주십시오.”
그것은 자기를 버리라는 청이었다. 레아는 그 청을 받지 않았다.
“당신과 나를 같은 문서에 묶은 건 오스틴이오. 그가 우리를 함께 묶었으니, 우리도 함께 풀어야 하오. 당신을 떼어 내면, 다음엔 마라를, 그다음엔 리우를 하나씩 뗄 거요. 묶인 채로 버티는 게, 하나씩 잘리는 것보다 낫소.”
요안은 그 말에 잠깐 답하지 못했다. 그는 버림받기를 청했는데, 레아는 함께 묶이기를 택했다.
그것은 그가 교회에서 배운 셈과 정반대였다. 교회는 위기에 처하면 가장 약한 고리를 먼저 잘라 냈다.
한 사제를 버려 교단을 지키고, 한 노동자를 버려 장부를 지켰다. 잘린 자는 늘 가장 힘없는 자였다.
레아는 그 셈을 거부했다. 약한 고리를 자르는 대신, 묶인 채로 함께 무거워지기로 했다.
요안은 그 선택이 옳은지 확신하지 못했다. 다만 그 선택이, 그가 평생 본 교회의 셈과 다르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 다름이, 그가 회개 쪽으로 기울던 발을 다시 제자리로 돌렸다.
“그럼 어찌하실 겁니까.”
요안이 물었다. 레아는 곧바로 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파문장과 새 족보, 그리고 점거된 방아와 성문 밖 왕실 징발군을 머릿속에 나란히 놓았다. 적이 넷이었다.
교회, 방계 귀족, 왕실, 그리고 시간. 어느 하나와 싸워 이겨도, 나머지 셋이 그 틈을 노렸다.
“하나씩 싸우면 진다.”
레아가 말했다.
“넷을 한 자리에 모아야 하오. 서로 다른 요구를 가진 넷을 한 탁자에 앉히면, 그들끼리 부딪치오. 교회는 십일조를 원하고, 귀족은 자리를 원하고, 왕실은 곡물을 원하오. 그 셋을 동시에 만족시킬 답은 없소. 없는 답을 그들끼리 다투게 두고, 나는 그 사이에서 도시가 버틸 한 줄을 얻겠소.”
요안은 그 구상의 위험을 알았다. 넷을 모으면, 넷이 합심해 레아 하나를 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흩어진 채로 하나씩 맞는 것보다는, 한 탁자에서 그들의 모순을 드러내는 편이 나았다. 그것이 25화의 겨울헌장으로 가는 레아의 첫 수였다.
성당 문의 파문장 옆에, 곧 다른 종이가 걸렸다. 새 족보였다.
방계 귀족이 만든 것으로, 바렌 가문의 후계 계보에서 미카의 이름이 지워져 있었다. 빈 축복란으로 시작된 미카의 위태로움이, 이제 족보에서 이름이 지워지는 데까지 왔다.
요안은 그 족보를 보았다. 미카의 이름이 있던 자리에, 다른 방계 소년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한 아이가 멀쩡히 살아 있는데, 그 이름이 종이에서 지워졌다. 지워진 자리는 긁어 낸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매끄럽게 다시 적혀 있었다.
방계 귀족은 미카를 죽이지 않았다. 죽이면 동정을 산다.
대신 미카를 ‘없던 사람’으로 만들었다. 살아 있으되 계보에 없는 아이.
그것이 죽음보다 교묘한 제거였다. 곡물 자루에 이름이 적히는 것과, 족보에서 이름이 지워지는 것.
미카는 두 가지를 한 달 안에 다 겪고 있었다. 요안은 그 족보를 떼어 내고 싶었으나, 떼면 ‘성물 훼손’이 또 하나의 죄목으로 붙었다.
그는 대신 그 족보의 내용을 정확히 베껴 적었다. 누가 만들었고, 언제 걸렸고, 어느 이름이 어느 이름으로 바뀌었는지.
떼어 내는 대신 기록하는 것. 그것은 레아와 사빈에게서 번진 방식이었다.
분노로 찢으면 증거가 사라지고, 베껴 두면 증거가 둘이 된다. 요안은 자기가 사제의 손으로 처음 한 ‘세속의 기록’이 이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베낀 종이를 품에 넣고, 파문장과 족보를 그대로 둔 채 성당을 나왔다. 회개의 단서가 아직 그 문서에 붙어 있었고, 그는 그것을 향해 돌아서지 않았다.
성당을 나서며 요안은 미카를 떠올렸다. 곡물 자루에 이름이 적히고, 족보에서 이름이 지워진 아이.
그 아이가 깨어나 자기 이름이 계보에서 사라진 것을 알면 어떤 얼굴을 할까. 요안은 그것을 미카에게 직접 말해야 할지, 숨겨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정했다. 미카가 물으면, 거짓말은 하지 않기로.
미카는 이미 통행증의 ‘후계자’ 칸을 자기 손으로 긁어 비운 아이였다. 자기 이름이 적히고 지워지는 일을, 그 아이는 어른들보다 정확히 견딜지도 몰랐다.
요안은 베낀 족보를 품에서 한 번 더 만졌다. 지워진 이름을 다시 적을 권한은 그에게 없었다.
그러나 그 이름이 한때 거기 있었다는 것을 증언할 입은, 그에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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