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자의 이름
기적은 곡물을 먹는다 · 2026.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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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가 깨어난 다음 날 아침, 레아 바렌은 광장에 장부판을 세웠다. 사과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사과는 한 번 입에 올리면 그것으로 끝나지만, 장부에 적힌 기록은 남아 다음 사람의 손까지 묶는다. 그녀는 사빈에게 어제의 치료 비용을 그 장부판에 옮겨 적게 했다.
곡물 열여덟 자루. 노동 백육십 인시.
부상자 열한 명의 이름. 리우 케드, 오른손 감각 손상, 회복 여부 미정.
그리고 맨 아래, 승인자 칸에 그녀의 이름을 적게 했다. 레아 바렌, 바렌 가문 인장.
그녀는 그 인장 자국을 지우지 않았다. 어제 자기가 무엇으로 승인했는지를, 공공의 인장이 아니라 가문의 인장이었다는 사실까지 그대로 남겼다.
가장 부끄러운 한 줄을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두는 것. 그것이 그녀가 아는 가장 무거운 책임의 방식이었다.
장부판은 배급대 옆, 가장 사람이 많이 지나는 자리에 세웠다. 레아는 그것을 일부러 골랐다.
구석에 세운 장부는 숨긴 장부와 같았다. 그녀는 사빈에게 글씨를 크게 쓰라 했다.
멀리서도 읽히도록. 글을 모르는 사람을 위해, 부상자 이름 옆에는 그 사람이 일하던 방아의 표식도 함께 그리게 했다.
누군가의 어머니가, 글을 몰라도 자기 아들의 방아 표식만은 알아볼 수 있도록. 사빈은 그 요구에 잠깐 손을 멈췄다.
회계관으로서 그는 글씨만 적어 왔다. 표식을 함께 그리는 것은 장부를 누구나 읽게 만드는 일이었고, 그것은 장부의 권력을 시민에게 나눠 주는 일이기도 했다.
그는 잠깐 망설였으나, 결국 표식을 그렸다. 글을 아는 자만 읽는 장부는 글을 아는 자의 권력이었다.
방아 표식까지 그린 장부는, 글 모르는 어미도 자기 아들을 찾을 수 있는 장부가 됐다. 사빈은 그 차이가 회계의 정확성을 해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손을 움직였다.
정확하면서도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장부. 그것이 오늘 그가 새로 배운 셈법이었다.
시민들이 그 장부판 앞에 모였다. 어떤 이는 미카가 살아난 것을 축하했고, 어떤 이는 부상자 이름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가족을 찾았다.
레아는 그 둘을 갈라놓지 않았다. 축하와 원망이 같은 판 앞에 서는 것이, 그녀가 만든 광장이었다.
한 노동자의 아내가 자기 남편 이름을 그 판에서 찾고는, 레아를 향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오래 서 있었다. 레아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피하면, 장부판에 적힌 그 이름이 거짓으로 굳는다.
그 아내는 끝내 한 마디만 했다.
“우리 남편 손도, 리우처럼 안 돌아오오?”
레아는 거짓 위로를 하지 않았다.
“모르오. 의원도 모른다 했소. 다만 돌아오지 않으면, 그 손이 못 하게 된 일을 영지가 대신 셈하겠소.”
그것은 약속이 아니라 기록의 확장이었다. 손이 돌아오지 않으면, 그 손으로 벌던 양식을 영지 장부가 떠안겠다는 것.
아내는 그 말을 믿는지 안 믿는지 모를 얼굴로 돌아섰다. 레아는 그 뒷모습을 보며, 자기가 만든 것이 위로가 아니라 부채 장부라는 것을 알았다.
위로는 마음을 달래고, 부채 장부는 책임을 남긴다. 그녀는 후자를 택했다.
마라가 장부판 앞으로 나왔다. 그녀는 비용 공개를 인정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낼 생각은 없었다.
“이름을 적는 건 시작이오.”
그녀가 말했다.
“다음엔, 이 이름들이 적히기 전에 막을 수 있어야 하오.”
그녀는 노동자 승인석을 요구했다. 기적을 쓰는 결정에, 비용을 내는 노동자의 자리를 하나 두라는 것이었다.
결정하는 자리와 비용을 내는 자리가 분리되어 있는 한, 같은 장부판이 계속 채워질 것이라고. 레아는 그 요구를 들었다.
그것은 자기 권한을 줄이는 요구였다. 그리고 옳은 요구였다.
귀족 대표 하나가 그 요구에 반발했다.
“노동자를 평의에 앉히면, 다음엔 농부가, 그다음엔 거지가 앉겠다 하겠소.”
그는 신분의 질서를 들었다. 마라는 그 말을 정면으로 받지 않았다.
“나는 모든 노동자를 앉히라 한 게 아니오. 비용을 내는 자리에, 비용을 내는 사람을 앉히라 한 거요. 귀족이 곡물을 내면 귀족이 앉고, 노동자가 몸을 내면 노동자가 앉소. 자리는 신분이 아니라 낸 값으로 정하면 되오.”
그것은 신분 질서를 뒤집자는 말이 아니라, 비용과 권한을 일치시키자는 말이었다. 귀족 대표는 그 논리에 곧바로 반박하지 못했다.
자기들이 사설 곡간을 지키려 들 때 쓰던 ‘낸 만큼 권리’의 논리가, 거꾸로 노동자에게 적용되고 있었다.
레아는 그 자리에서 거절도 수락도 하지 않았다. 대신 한 가지를 물었다.
“그 승인석에 앉은 노동자가, 자기 가족을 살리려 같은 일을 승인하면, 그땐 누가 막소?”
마라는 곧바로 답하지 못했다. 그것은 레아가 어제 한 일과 같은 일이었다.
누구든 자기 가족 앞에서는 약해진다. 마라는 잠시 침묵하다 답했다.
“그래서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럿이 앉아야 하오. 한 사람의 약함은 가족을 살리지만, 여럿의 약함은 서로 다른 가족을 가리키니까.”
레아는 그 답을 받아 적게 했다. 그것은 마라가 제도를 한 단계 더 정교하게 만든 순간이었다.
레아는 미카를 떠올렸다. 어제 그녀는 가문 인장으로 아들을 살렸다.
만약 그 자리에 노동자 승인석이 있었다면, 그들은 자기들의 손이 갈릴 그 치료를 승인했을까. 아마 망설였을 것이다.
그 망설임의 시간에 미카가 죽었을 수도 있었다. 레아는 그 가정 앞에서 정직하려 애썼다.
승인석은 미카를 위험에 빠뜨렸을 제도였고, 동시에 리우의 손을 지켰을 제도였다. 어느 쪽이 옳은지 그녀는 단정할 수 없었다.
다만 어제의 결정을 자기 혼자 내린 것이, 오늘 이 모든 원망의 출발점이었다. 권한을 혼자 쥐면 빠르지만, 그 빠름의 값은 늘 다른 사람이 냈다.
리우가 그 자리에 와 있었다. 감각을 잃은 오른손을 천으로 감싼 채였다.
그는 승인석 이야기를 듣고도 환호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 내가 앉아도,” 그가 마라에게 말했다.
“누나가 다치면 나도 누나를 살리는 데 서명할 거야. 사람은 다 그래.”
그것은 마라의 제도에 대한 동생의 반박이었다. 제도는 사람의 약함을 없애지 못한다.
다만 그 약함이 한 번에 한 사람에게만 쏠리지 않게 나눌 뿐이다. 마라는 동생의 말을 받아들였다.
“맞아. 그래서 막는 게 아니라 적는 거야. 누가 누구를 위해 약해졌는지, 다 적어서 다음 사람이 보게 하는 거지.”
리우는 천에 싸인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 손은 이미 한 번 적힌 비용이었다.
마라는 그 손 위에 자기 성한 손을 잠깐 얹었다. 데우려는 것이 아니라, 거기 손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려는 동작이었다.
도안이 그 대화를 들었다. 그는 승인석 요구를 경계했다.
“비상시에 여럿이 모여 서명을 받으려면 시간이 드오. 그 시간에 사람이 죽으면, 그 책임은 누가 지오?”
그것도 옳은 물음이었다. 마라가 받았다.
“그럼 그 죽음도 장부에 적으면 되오. 빨라서 살린 목숨과, 느려서 잃은 목숨을 나란히. 둘 다 적히면, 다음엔 어느 쪽이 옳았는지 사람들이 직접 보고 정하오.”
레아는 두 사람의 말을 모두 적게 했다. 속도와 절차, 어느 쪽도 공짜가 아니었다.
그녀는 그 둘의 비용을 같은 장부에 올리는 것으로, 어느 한쪽을 정답으로 선언하지 않았다.
그때 오스틴 파르가 서기관을 데리고 광장에 나타났다. 그는 장부판을 보더니, 차분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그 장부는 불법으로 수집된 정보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압수합니다.”
잠입으로 얻은 지하 자루의 정보가 그 장부에 섞여 있었다. 오스틴은 그 한 줄을 빌미로 장부판 전체를 불법으로 묶으려 했다.
비용 공개도, 부상자 이름도, 승인자의 이름도, 모두 ‘불법 증거’라는 한 단어 아래 사라질 참이었다. 레아는 그 장부판 앞을 막아섰다.
광장의 시민들이 그 사이에 끼어 있었다. 자기 가족 이름이 적힌 판을, 사람들은 쉽게 내주지 않을 얼굴이었다.
레아는 오스틴에게 물었다.
“부상자 이름이 불법이오? 곡물 수가 불법이오? 내 이름이 불법이오?”
그녀는 장부의 항목을 하나씩 짚었다.
“지하에서 얻은 한 줄을 지우라면 지우겠소. 다만 나머지는 시민이 자기 눈으로 본 것이오. 자기가 받은 빵의 무게, 자기 이웃이 다친 사실. 그건 잠입자가 가져온 게 아니라, 이 광장이 함께 본 거요.”
오스틴은 그 구분에 잠깐 멈췄다. 그는 장부 전체를 불법으로 묶으려 했으나, 레아는 불법으로 얻은 한 줄과 시민이 함께 목격한 나머지를 갈랐다.
한 줄을 지우는 것과 판 전체를 압수하는 것은 달랐다. 광장의 시민들도 그 차이를 보았다.
자기들이 본 것까지 도둑이 가져온 거짓이 되는 것을,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을 얼굴이었다. 오스틴의 서기가 펜을 멈추고 그를 보았다.
압수를 강행하면 광장이 어떻게 반응할지, 그 펜이 먼저 셈하고 있었다.
오스틴은 결국 장부판 전체를 거두지 않았다. 대신 지하에서 얻은 정보가 적힌 한 줄에만 봉인 띠를 붙이고, ‘적법성 심리 중’이라는 표를 달았다.
그것은 후퇴가 아니라 다른 전선이었다. 그는 광장에서 시민과 부딪치는 대신, 그 한 줄을 빌미로 잠입자—마라와 리우—의 신원을 요구할 명분을 챙겼다.
레아는 그것을 알아보았다. 오늘 장부판은 지켰으나, 그 대가로 마라와 리우의 머리 위에 ‘적법성 심리’라는 그늘이 드리웠다.
비용은 사라지지 않고 자리를 옮겼을 뿐이다. 레아는 그 옮겨진 비용도 장부에 적게 했다.
마라 케드·리우 케드, 교회 적법성 심리 대상. 보호해야 할 이름이, 어제보다 둘이나 더 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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