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후계자의 피

기적은 곡물을 먹는다 · 2026.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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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 바렌은 끝내 피난을 거부했다. 도안이 통행증을 다시 내밀었을 때, 미카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끝내 도망치는 후계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대신 그는 쓸모 있는 일을 하겠다고 했다.

성무 정지로 어수선한 배급소에서, 미카는 배급표 묶음을 나르는 일을 맡았다. 그것은 작은 일이었으나, 미카는 자기가 도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 마음에는 열네 살의 허영도 섞여 있었다. 후계자가 직접 배급을 돕는다는 그림이, 자기 자격을 증명해 줄 것 같았다.

도안은 미카를 붙잡으려 했다.

“네가 다치면, 오늘 내가 막은 모든 게 헛것이 된다.”

그가 말했다.

미카는 “안 다쳐요. 표만 나르는데요”라고 답했다.

아이의 자신감은 위험을 셈하지 못하는 자신감이었다. 도안은 그것을 알았으나, 통행증으로 아이를 묶어 둘 수도 없었다.

미카는 이미 한 번 통행증의 ‘후계자’ 칸을 긁어 비운 아이였다. 도망이 아니라 증명을 택한 아이를, 다시 도망시키는 것은 그 선택을 부정하는 일이었다.

도안은 경비 둘을 미카 곁에 붙이는 것으로 타협했다. 그러나 어수선한 광장에서, 경비 둘은 곧 군중에 밀려 미카에게서 떨어졌다.

배급소 앞 광장에 두 군중이 밀려들었다. 성무 정지 해제를 요구하는 신자들과, 배급을 먼저 받으려는 시민들.

그 사이에 방계 귀족의 사병들이 끼어 있었다. 누구도 처음부터 사람을 죽이려 온 것은 아니었다.

신자들은 죽은 가족을 묻고 싶었고, 시민들은 굶주린 아이를 먹이고 싶었고, 사병들은 자기 주인의 위세를 세우고 싶었다. 세 무리의 다른 절박함이 한 광장에서 부딪쳤다.

미카는 그 한가운데서 배급표를 나르고 있었다.

신자 하나가 “죽은 내 어미를 묻게 해 달라”고 외쳤다.

그 외침은 분노가 아니라 애원이었다. 다른 신자가 성당 문을 두드렸다.

시민 하나는 그들에게 “당신들 의례 때문에 우리 배급이 늦어진다”고 받아쳤다.

두 절박함이 부딪쳤다. 죽은 자를 묻으려는 자와, 산 자를 먹이려는 자.

누구도 틀리지 않았고, 그래서 누구도 물러서지 않았다. 방계 사병들은 그 혼란을 자기 주인의 기회로 보았다.

그들은 질서를 잡는 척하며, 실은 누가 이 광장의 주인인지를 보이려 했다. 미카는 그 셋 사이를 배급표를 들고 지났다.

아이의 눈에는 세 무리가 모두 그저 ‘밀치는 어른들’로만 보였다. 그 절박함의 결을 읽기에, 미카는 아직 어렸다.

경비가 미카에게 안쪽으로 들어가라 했다. 위험하니 물러서라고.

미카는 그 지시를 무시했다. 자기가 물러서면, 도울 수 있다는 증명이 무너진다고 생각했다.

그는 배급표를 든 채 군중 사이로 더 들어갔다. 바로 그때, 사병 하나가 군중을 위협하려 쇠뇌를 들었다.

위협 사격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밀치는 통에 그의 조준이 틀어졌다.

쇠뇌살이 빗나가, 군중 사이의 미카에게 박혔다.

그 사병은 미카를 노리지 않았다. 그는 사실 누구도 정확히 노리지 않았다.

머리 위로 쏘아 겁을 주려던 화살이, 떠밀린 그의 팔을 따라 아래로 휘었다. 사고였다.

그러나 사고에도 책임은 분명히 있었다. 위협 사격을 명한 자, 쇠뇌를 든 자, 군중을 그 지경까지 몬 성무 정지.

책임은 한 사람에게 모이지 않고, 여러 손에 나뉘어 있었다. 나뉜 책임은 가장 약한 자리로 흘러 모였다.

그 자리에 열네 살 미카가 있었다. 미카는 자기에게 박힌 것이 무엇인지 처음에는 몰랐다.

배급표 묶음이 손에서 떨어졌고, 종이들이 광장에 흩어졌다. 흩어진 배급표 위로, 미카가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군중이 그제야 멈췄다. 방금까지 서로를 밀치던 신자와 시민과 사병이, 쓰러진 아이 앞에서 한 박자 얼어붙었다.

쇠뇌를 든 사병의 얼굴이 가장 하얗게 질렸다. 그는 위협만 하려 했고, 사람을, 그것도 후계자를 맞힐 생각은 없었다.

미카는 처음에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그가 먼저 본 것은, 자기 축복복의 금실에 피가 번지는 것이었다.

후계 축복이 취소된 그 옷. 시종들이 금실을 풀다 만 그 옷을, 미카는 오늘 다시 꺼내 입었다.

후계자처럼 보이고 싶어서. 그 금실 위로 자기 피가 번지는 것을, 미카는 멍하니 보았다.

금실과 피가 섞이는 색을, 그는 통증보다 먼저 보았다.

피는 금실을 따라 번졌다. 금실이 짜인 결을 타고, 피가 작은 강처럼 갈래를 만들었다.

미카는 그 무늬가 이상하게 아름답다고, 흐려지는 정신으로 생각했다. 그러다 통증이 왔다.

늦게, 그러나 한꺼번에. 그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비명 대신, 자기 옷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어머니가 이 옷을 보면 뭐라 하실까.

죽을지도 모르는 순간에, 아이는 어머니의 꾸중을 걱정했다. 그 어린 걱정이, 그가 아직 아이라는 증거였다.

어른들은 죽음 앞에서 유언을 생각하지만, 아이는 어머니의 얼굴을 생각했다.

그가 쓰러진 자리에 배급표가 흩어져 있었다. 그 종이들에는 굶주린 사람들의 이름과 받을 곡물의 양이 적혀 있었다.

미카는 흐린 눈으로 그 종이 하나를 보았다. 누군가의 이름, 누군가의 빵.

자기 피가 그 종이 위로 번져, 한 사람의 이름을 가렸다. 미카는 그것이 미안했다.

자기 때문에 저 사람의 배급이 늦어질까 봐. 그 마음은 통증 속에서도 또렷했다.

그는 손을 뻗어 그 종이를 피에서 빼내려 했으나, 손이 닿지 않았다. 누군가의 빵 위에 자기 피를 남긴 채로, 미카는 그 자리에 누웠다.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미카는 자기를 둘러싼 어른들의 말을 파편으로만 들었다.

오스틴의 목소리.

“치료 성분은 준비되어 있습니다. 다만 사용 승인과 장부 반환이 필요합니다.”

요안의 목소리.

“일반 치료로는… 시간이 부족합니다.”

미카는 그 말들이 자기를 두고 거래하는 말이라는 것을 절반쯤 알아들었다. 자기 목숨이 장부와 맞바꿔지는 협상의 한가운데에, 자기가 누워 있었다.

소리들이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했다. 미카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찾았으나, 어머니는 말이 없었다.

어른들의 거래 소리 속에서, 어머니의 침묵만이 다른 무게로 들렸다. 미카는 그 침묵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것 같았다.

어머니는 지금 셈하고 있었다. 늘 그랬듯이.

아들의 목숨과 도시의 원칙을 같은 저울에 올리고. 미카는 어머니가 자기 때문에 그 저울 앞에 섰다는 것이 미안했다.

통증보다, 그 미안함이 먼저 그를 흐릿하게 만들었다. 누군가 그의 손을 잡았다.

따뜻한 손. 어머니의 손인지, 요안의 손인지 알 수 없었다.

미카는 그 손을 마주 쥐려 했으나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오스틴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차분하고, 서두르지 않는 목소리.

“시간이 갈수록 아드님의 피가 줍니다, 변경백. 결정은 변경백의 몫입니다. 다만 결정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결정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미카는 그 말이 얼마나 잔인한지를 흐린 정신으로도 느꼈다. 그는 어머니를 몰아붙이지 않았다.

다만 시간을 가리켰다. 시간이 어머니 대신 아들을 죽이게 두고, 자기는 그저 기다리는 척했다.

미카는 그 자가 칼을 들지 않고도 사람을 베는 방식을 보았다. 그리고 그 칼끝이 지금 자기 어머니를 향해 있었다.

마라의 목소리도 멀리서 들렸다. 그녀는 무언가에 반대하고 있었다.

“이렇게 한 아이를 살리려고 장부를 넘기면, 다음엔 누가 또 다칠 때마다 같은 거래를 해야 하오.”

그 말은 옳았다. 미카는 흐린 정신으로도 그것이 옳다는 것을 알았다.

자기 목숨이 그 거래의 첫 번째 선례가 된다는 것도. 그러나 그는 살고 싶었다.

옳은 것과 살고 싶은 것이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부딪쳤다. 미카는 자기가 이 거래의 비용이면서, 동시에 그 비용을 거부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죽어 가는 자는 거래를 거부할 힘이 없었다.

흐려지는 와중에도, 그는 어머니를 찾았다. 흐린 시야 속에서, 레아가 무언가에 인장을 찍는 것이 보였다.

미카는 그것이 공공 인장이기를 바랐다. 그러나 어머니의 손에 들린 것은 바렌 가문의 인장이었다.

공공의 것이 아니라, 가문의 것. 어머니가 자기 원칙을 어기고 있었다.

모두에게 같은 규칙을 적용하던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가문 인장을 꺼냈다. 미카는 그것을 막고 싶었으나, 입이 움직이지 않았다.

종이가 접히며, 미카의 시야도 함께 닫혔다. 마지막으로 그가 본 것은, 가문 인장이 치료 승인서에 눌리는 모습이었다.

그 인장이 눌리는 소리는 작았다. 밀랍이 종이에 닿아 눌리는, 평소라면 들리지도 않을 소리.

그러나 미카는 그 소리를 들었다. 흐려지는 감각 속에서, 그 작은 소리만은 또렷했다.

어머니가 자기를 살리기 위해, 자기가 평생 지켜본 그 원칙을 어기는 소리. 미카는 살고 싶었다.

동시에, 어머니가 자기 때문에 무너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두 마음이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부딪쳤다.

그는 ‘하지 마세요’라고 말하고 싶었고, ‘살려 주세요’라고도 말하고 싶었다. 어느 말도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가문 인장이 종이에 완전히 눌리고, 어머니가 그 종이를 오스틴 쪽으로 미는 것이 흐릿하게 보였다. 그리고 미카가 본 마지막은, 어머니의 얼굴이 아니라 그 인장 자국이었다.

바렌가의 문장이, 치료 승인서 위에 붉게 찍혀 있었다. 공공의 장부가 아니라, 한 가문이 자기 아들을 위해 찍은 자국.

미카의 눈이 감겼다. 광장의 소리가 멀어지고,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손이 그의 이마에 닿는 감각만 남았다.

그 손은 떨리고 있었다. 늘 흔들리지 않던 어머니의 손이, 처음으로 미카 앞에서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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