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봉인을 자르는 손

기적은 곡물을 먹는다 · 2026.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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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단의 흰 불이 솟기 전에, 레아 바렌은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눈이 어디를 향하는지 먼저 보았다. 시민들은 미카의 축복복을 보지 않았다.

그들은 제단 옆에 쌓인 곡물 자루를 보고 있었다. 후계 축복과 추수 의례가 같은 아침에 겹친 것은 교회의 자비가 아니라 일정의 궁색함이었고, 레아는 그것을 알았다.

두 행사를 하루에 몰아넣으면 향유와 초와 사제의 품이 절반으로 준다. 비용을 줄인 쪽은 신이 아니라 회계였다.

상급 사제가 미카의 이마에 금실로 짠 띠를 둘렀다. 열네 살 아들은 어깨를 곧게 폈지만 발끝은 자루 쪽으로 미세하게 틀어져 있었다.

아이도 알고 있었다. 오늘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보러 온 것은 후계자가 아니라 빵이라는 것을.

레아의 옆에서 도안이 군중의 가장자리를 눈으로 훑었다. 그는 수비대 총관의 자세로 서 있었고, 광장 끝 골목마다 사람이 몇이나 비어 있는지를 셈하는 중이었다.

빈 골목은 곧 다른 곳에 사람이 몰려 있다는 뜻이었다.

제단 뒤에서 규칙적인 소리가 났다. 발판을 밟는 소리, 혹은 무거운 바퀴가 도는 소리.

의례 음악의 북이 그 소리를 덮었지만, 한 박자씩 어긋났다. 레아는 그 어긋남을 들었다.

무엇이 어긋났는지는 묻지 않았다. 그녀는 누가 그 소리를 내는지를 알고 싶었다.

소리는 사람의 무게로 도는 것의 속도를 가지고 있었다.

미카가 곁눈으로 어머니를 보았다. 띠가 무거운지, 아이는 자꾸 고개를 바로 하려 했다.

레아는 아들의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오늘 그녀가 할 일은 아들을 안심시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이 보게 될 것을 막지 않는 것이었다.

도안이 미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아버지의 손은 아이를 진정시키는 동시에, 아이가 함부로 앞으로 나서지 못하게 붙드는 손이기도 했다.

성분이 화로에 들어갔다. 본래라면 흰 불기둥이 사람 키만큼 솟아야 했다.

시민들은 그 불을 보려고 목을 뺐다. 불은 솟지 않았다.

화로 안에서 빛이 잠깐 부풀었다가, 숨을 거두듯 내려앉았다. 재 위로 옅은 김이 올랐고, 그 김은 위가 아니라 옆으로 흘렀다.

광장이 조용해졌다. 누군가의 아이가 울었고, 그 울음이 유난히 크게 들렸다.

“중단하십시오.”

등화사제 요안이 말했다. 젊은 사제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으나 음악을 뚫었다.

그는 같은 말을 두 번 하지 않았다. 화로 곁으로 한 걸음 다가서며 손을 들었을 뿐이다.

그 손이 떨리는 것을 레아는 보았다. 두려움인지 분노인지는 그의 얼굴에서 읽을 수 없었다.

상급 사제는 그를 보지 않고 의례서를 넘겼다.

“계속하라. 불은 사람의 죄를 비춘다. 오늘 불이 약한 것은 이 광장의 죄가 무겁기 때문이다.”

제단 뒤 문틈으로 손 하나가 미끄러져 나왔다. 손바닥이 먼저, 손가락이 나중에.

그 손은 문턱을 짚으려다 미끄러졌다. 레아는 그 손이 무엇을 쥐려 했는지 보지 못했다.

손은 아무것도 쥐지 않았다. 그저 바닥의 찬 돌을 향해 펼쳐졌다.

손톱 밑에 흰 가루가 끼어 있었다.

문이 열렸다. 안에서 사람들이 무너지듯 쏟아졌다.

회색 옷을 입은 이들이었다. 누구는 무릎으로, 누구는 어깨로 돌바닥에 닿았다.

상급 사제가 ‘참회자들이 기도를 마쳤다’고 말했지만, 레아는 그 말을 듣는 대신 가장 가까운 사람 옆에 무릎을 꿇었다. 도안이 한 걸음 따라오려다, 군중 쪽을 보고 제자리에 남았다.

두 사람 다 같은 것을 셈하고 있었다. 쓰러진 자가 몇이고, 그것을 본 시민이 몇인가.

남자의 손바닥에 굳은살이 두껍게 박여 있었다. 그것은 손잡이를 같은 각도로, 같은 자리에서 오래 밀어 온 자의 손이었다.

기도로 닳은 무릎과는 다른 곳이 닳아 있었다. 그의 호흡은 얕았고, 옷섶에서 따뜻한 가루가 묻어났다.

레아는 손끝으로 그 가루를 받았다. 흰색이었고, 체온처럼 미지근했다.

곡물을 갈 때 나오는 가루와 닮았으나, 그보다 가늘었다. 그녀는 그것을 코에 대지 않았다.

무엇인지 묻기 전에, 이 사람이 살아 있는지를 먼저 확인했다. 목덜미에 손을 대니 맥이 빠르고 가늘게 뛰었다.

옆에 쓰러진 여자의 손도 같았다. 그 옆 사람도.

회색 옷을 입은 자들은 모두 같은 자리에 같은 굳은살을 가지고 있었다. 한 사람이 우연히 그렇게 될 수는 있었다.

열 사람이 같은 손을 가졌다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같은 일이었다. 레아는 그 손들을 세었다.

열둘이었다. 그녀는 숫자를 기억했다.

이름은 아직 하나도 몰랐다.

상급 사제가 회색 옷의 사람들을 가리키며 ‘참회 노역을 마친 신자’라 했다. 레아는 그 말을 받아 적지도, 반박하지도 않았다.

다만 한 가지만 물었다.

“이들의 이름과, 며칠을 여기 있었는지 적은 명부가 있소?”

상급 사제는 명부는 교회의 것이라 답했다. 그 대답이 곧 명부가 있다는 뜻임을, 레아도 도안도 알아들었다.

없는 명부를 두고 교회의 것이라 말하는 사람은 없다.

“불경한 군중 때문이오.”

상급 사제가 군중을 향해 팔을 벌렸다.

“죄가 무거워 축복이 내려앉았소. 오늘 의례는 여기까지요. 모두 집으로 돌아가 회개하시오.”

군중은 돌아가지 않았다. 그들은 곡간 문을 보고 있었다.

도안이 레아의 곁으로 왔다.

“광장에 굶은 자가 너무 많습니다.”

그가 낮게 말했다.

“문을 닫으면 오늘 밤 폭동입니다. 닫지 않아도 곡물이 부족하면 내일 폭동이고. 어느 쪽이든 사흘을 못 넘깁니다.”

요안이 그 말을 들었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의례서의 한 줄을 손가락으로 짚는 척하며 말했다.

“곡간 안에 백맥이 있습니다. 의례용이 아니라,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봉인은 교회의 것이고, 저는 그 봉인을 풀 권한이 없습니다.”

그는 자신이 풀 수 없다고 말함으로써, 누가 풀 수 있는지를 말하지 않은 채 말했다. 레아는 그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아들었다.

권한이 없다는 말은, 권한이 있는 자가 여기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도안이 레아의 소매를 짧게 잡았다.

“봉인을 끊으면 교회와의 관계는 오늘로 끝납니다. 수도에 보고가 올라갈 것이고, 변경백이 성물을 훼손했다는 말로 적힐 겁니다.”

그는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값을 먼저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끊어야 한다면, 끊으십시오. 다만 끊는 손이 당신이어야 합니다. 사제도, 저도 아니라.”

레아는 그 말의 뜻을 알았다. 책임은 나뉘지 않아야 했다.

나뉜 책임은 나중에 서로를 향한 칼이 된다.

곡간 문에는 금실로 짠 봉인이 매여 있었다. 교회의 인장이 박힌 매듭이었다.

한 번 끊으면 다시 맬 수 없는 매듭. 레아는 의례용 칼을 보았다.

방금 미카의 축복복에서 금실 띠를 자르고 다시 묶는 데 쓰인 칼이었다. 사제의 손 안에 있었다.

그 칼을 달라고 청하면, 청을 거절당할 수 있었다. 거절당한 뒤에 끊으면 그것은 강탈이 된다.

그녀는 손을 내밀지 않았다. 사제 앞으로 걸어가, 칼을 받겠다고도 말하지 않았다.

그저 칼이 놓인 의례대 쪽으로 가서 그것을 집었다. 상급 사제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변경백. 그 호칭에는 경고가 담겨 있었다.

레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은 시간을 벌어 줄 뿐이고, 시간은 지금 곡간 안의 사람들에게 없었다.

레아는 봉인 앞에 섰다. 칼날을 금실 매듭에 댔다.

매듭은 생각보다 단단했고, 칼은 한 번에 끊지 못했다. 두 번째에 실이 갈라졌다.

인장이 바닥에 떨어져 두 조각으로 굴렀다. 교회의 봉인이 끊어지는 소리는 의외로 작았다.

천이 찢어지는 소리와 비슷했다. 그 작은 소리를 광장의 모두가 들었다.

“이 곡간은 오늘부터 영지의 관리 아래 둡니다.”

레아가 말했다. 변명도, 사죄도 붙이지 않았다.

“수를 세시오. 먹을 입과 남길 종자를 나누고, 첫 자루부터 배급대로. 쓰러진 사람들은 안으로 옮기고 물을 주시오. 묻지는 마시오. 지금은.”

상급 사제가 그녀의 앞을 막아서려 했다. 요안이 그 사이로 들어가, 쓰러진 사람들을 옮길 들것을 가져오라 사제단에 명했다.

그것은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반항이었고, 동시에 누구의 눈에도 그저 자비로 보이는 행동이었다. 상급 사제는 그를 노려보았으나, 군중 앞에서 자비를 막을 수는 없었다.

사빈이 곡간 안으로 먼저 들어갔다. 그는 들어가자마자 자루의 수를 세기 시작했다.

첫 자루가 배급대 위로 올라왔다. 시민 하나가 줄 맨 앞에서 자루를 받았다.

그는 그것을 가슴에 안고, 받았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사람처럼 한참 서 있었다. 그 뒤로 줄이 움직였다.

안도가 광장에 천천히 퍼졌다. 사람들은 곡물이 손에 닿는 무게를 확인하고서야 숨을 쉬었다.

어떤 여자는 자루를 받고도 줄을 떠나지 않고, 다음 사람이 받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 안도가 채 끝까지 번지기 전에, 광장 입구에서 말발굽 소리가 났다. 왕실 전령이었다.

그는 말에서 내리지도 않고, 봉랍이 찍힌 두루마리를 펼쳐 큰 소리로 읽었다. 그의 목소리는 의례 음악보다 분명했다.

“로헤른 변경백령에 고한다. 성전 건립을 위한 십일조로, 열흘 안에 백맥 이천 자루를 수도로 보낼 것을 명한다. 어김은 반역으로 다스린다.”

레아의 손에는 아직 봉인을 끊은 칼이 들려 있었다. 곡간에는 막 첫 자루가 나간 참이었다.

사빈이 세던 수가 멈췄다. 그는 손가락을 펴 든 채 레아를 보았다.

방금 센 자루의 수와, 방금 들은 이천이라는 수 사이의 거리를 그의 표정이 먼저 말했다.

레아는 전령을 향해 걸음을 옮기지 않았다. 그녀는 곡간 문 앞에 그대로 서서, 받아 든 칼을 의례대 위에 내려놓았다.

칼날에 금실 한 가닥이 아직 걸려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떼어 내지 않았다.

열흘. 이천 자루.

로헤른의 겨울이 오기도 전에, 왕의 성전이 먼저 도착했다. 그리고 광장에는, 방금 첫 빵을 손에 쥔 사람들이 아직 줄을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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