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년, 전보국 주사는 군량을 훔쳤다

1세 장의 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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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장의 전보

갑오년, 전보국 주사는 군량을 훔쳤다 · 2026. 6. 4.

세 장의 전보는 모두 육백 석을 요구했고, 먼저 보내라는 빈칸은 하나뿐이었다.

윤해준은 전보국 주사였다. 남의 명령을 글자 하나 틀리지 않게 옮기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어느 명령을 먼저 보낼지는 그의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빈칸을 비워 두면 오늘 밤 마포의 하역꾼과 궁궐 수비대가 굶고, 잘못 채우면 새벽 전에 목이 달아날 터였다.

그는 세 전보를 발신대 옆에 나란히 놓았다.

첫 장에는 탁지아문 인장이 찍혀 있었다. 군량을 현 창고에 묶어 두라는 명령이었다. 둘째는 군영 인장으로, 궁궐 안쪽 창고로 즉시 올리라고 했다. 셋째는 외국 병참 고문의 확인인이 눌려 있었고, 지정 창고에서 인계하라고 적혀 있었다. 같은 쌀을 세 곳에서 이미 자기 것처럼 불렀다.

교대 종까지 열두 분.

해준은 인장보다 종이를 먼저 보았다. 탁지아문 것은 둥근 테두리에 먹이 덜 말랐고, 군영 것은 네모진 윤곽과 압인이 유난히 깊었다. 셋째 확인인은 둘보다 작고 얕았으나 접수 시각보다 먼저 말라 있었다. 그 장의 모서리는 등잔에 닿아 손톱만큼 그을렸다. 차이가 위조를 뜻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셋 모두 진짜일 수도 있었다. 권력이 셋이면 진짜 명령도 셋이었다.

뒤쪽 전지함에서 시큼한 냄새가 났다. 전압이 내려가고 있었다. 이 회선으로 길게 묻고 답할 시간도 없었다.

“주사 나리.”

문지방에 선 전신생 조독구가 젖은 소매를 짰다. 열여섯이라 했지만 굶은 몸은 더 어려 보였다.

“마포 쪽 중계수가 다시 쳤습니다. 부두 사람들이 창고 문 앞에 모였답니다. 쌀이 안 오면 솥부터 엎겠다고요.”

“수비대는?”

“어제 저녁 배급이 반 공기였습니다. 오늘 교대 전에 안 오면 성문을 비울 수 없다고 합니다.”

해준은 남은 전지 눈금을 보았다. 마포로 한 통, 궁궐로 한 통. 확인 왕복은 못 한다.

“독구야. 이 셋 중 무엇을 먼저 보내야 한다고 배웠지?”

소년이 세 인장을 보고 곧장 눈을 내렸다.

“큰 인장 찍힌 것부터요.”

“셋 다 크다.”

“그러면 먼저 온 것부터…….”

“접수 시각은 같다.”

독구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것이 정확한 대답이었다. 해준도 몰랐다.

문밖에서 나막신 굽이 두 번 울렸다. 한서린이 문을 밀고 들어왔다. 새벽 안개를 묻힌 두루마기 아래로 작은 장부가 보였다. 그녀는 인사 대신 탁자 위 전보를 세고, 전지 눈금을 보고, 마지막으로 해준의 손을 봤다.

“아직 안 보냈군요.”

“보내면 되돌리지 못합니다.”

“안 보내도 되돌리지 못할 사람이 생깁니다.”

서린은 장부를 펼쳤다. 마포 창고 육백 석. 그 아래 다른 먹으로 마른 쌀 사백이십칠 석 추정, 젖은 가마니 재검 필요라고 적혀 있었다.

해준이 물었다. “육백이 아니라는 겁니까?”

“장부에는 육백입니다. 솥에 넣을 수 있는 건 세어 봐야 압니다. 수레는 열한 대뿐이고, 그중 세 대는 말먹이를 외상으로 못 구하면 서 있습니다. 하역꾼 품삯은 엿새 밀렸고요.”

“명령을 바꿔도 쌀이 움직이지 않을 수 있겠군요.”

“이제야 전보국 말이 아니라 사람 말을 하시네요.”

서린은 군영 전보의 문장을 손끝으로 눌렀다. “궁궐 안쪽으로 전량. 누가 냅니까?”

“국가가.”

“날짜부터 적으시죠. 국가는 장부에서 가장 늦게 도착하는 물건이니까.”

해준은 웃지 않았다. 서린도 농담을 되풀이하지 않았다. 그녀의 장부에는 수레꾼 이름과 말 사료값, 하역대별 밀린 품삯이 적혀 있었다. 명령보다 작은 글씨들이 쌀을 실제로 움직이는 조건이었다.

교대 종까지 아홉 분.

“부두와 수비대에 나누면 몇 석을 보낼 수 있습니까?”

“보낼 수 있는 것과 도착하는 것은 다릅니다. 우선 마른 가마니부터 예순을 빼겠습니다. 부두 구호소에 스물, 성문 교대조에 마흔. 나머지는 검사 뒤에 정하죠.”

“수레는?”

“제가 잠그겠습니다.”

“품삯은?”

“제가 담보를 대도 노동대가 믿을지 모릅니다.”

“그럼 왜 왔습니까?”

“주사 나리가 정말 선을 넘는지 보려고요.”

서린은 세 장 중 아무것도 집지 않았다. 대신 빈 우선부호 칸을 가리켰다. 그 작은 칸에 어느 아문도 자기 이름을 쓰지 않았다. 실패하면 발신한 사람의 손만 남게 만든 자리였다.

해준은 전보용 붓을 들었다.

“마포 창고의 육백 석을 부두 노동대와 궁궐 수비대 급식용으로 먼저 발송. 현장 검수 뒤 사용 가능 수량만 인수. 수레와 하역 인원 지급 조건은 한서린 상단이 보증.”

서린의 눈썹이 움직였다. “마지막 줄 지우세요.”

“보증하지 않습니까?”

“보증합니다. 하지만 제 이름 하나로 사람들을 부리면 아문 명령과 다를 게 없죠. 수레와 하역은 현장 대표의 동의 뒤에 집행. 품삯 금액과 지급일은 그들이 직접 기입. 그렇게 쓰세요.”

해준은 붓을 멈췄다. 문장이 길어지면 전지를 더 먹고, 전달 중 한 글자라도 깨질 가능성이 커졌다.

“그 조건이면 늦습니다.”

“빼면 빨라 보이기만 합니다. 부두에서 멈출 테니까.”

독구가 전지함을 열어 보다가 말했다. “긴 전보 한 통이면 눈금이 끝날지도 모릅니다.”

서린이 곧장 물었다. “줄일 수 있는 말은?”

해준은 명분을 지웠다. 긴급한 국정, 백성 구휼, 군심 안정. 그런 말부터 붓끝으로 그었다. 남은 것은 수량, 목적지, 검수, 동의, 지급일뿐이었다.

마흔두 자.

“됩니다.” 독구가 말했다. “답신은 못 받습니다.”

“답신을 기다릴 시간도 없다.”

해준은 우선부호 칸에 가장 먼저 보내라는 두 획을 그었다. 정해진 명령을 베끼는 손이 아니라 명령을 만드는 손이었다. 손끝이 떨려 마지막 획이 조금 길어졌다.

서린이 물었다. “원본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등잔불은 가까웠다. 세 장을 태우면 어느 인장을 거슬렀는지 당장 증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전지 소모 기록만으로는 발신 문구를 다 복원하지 못한다. 도망칠 시간도 생길지 몰랐다.

해준은 그을린 모서리의 전보를 불에서 떼어 냈다.

“없애지 않습니다.”

“그러면 주사 나리 이름이 남습니다.”

“쌀을 훔겼다는 이름만 남기면 안 됩니다. 누가 같은 쌀을 세 번 요구했는지도 남겨야 합니다.”

그는 얇은 한지를 세 장 겹치고 원문과 자신이 쓴 문구를 옮겼다. 첫 사본은 전보국 장부 사이, 둘째는 서린의 장부에 끼웠다. 셋째를 접어 독구에게 주려다 멈췄다.

소년이 먼저 손을 거두었다. “저한테 주면 잡힐 때 빼앗깁니다.”

“어디가 낫겠느냐.”

독구는 전보 묶음을 감던 붉은 실을 풀었다. 평소와 반대 방향으로 한 번 감았다가, 혀를 차고 다시 풀었다.

“마포 중계수는 글보다 매듭을 잘 숨깁니다. 제가 발신 끝에 빈 숫자 하나를 붙이면, 그 사람이 사본 자리를 마련할 겁니다.”

해준은 소년을 다시 보았다. 설명을 기다리는 아이가 아니었다. 회선을 지키는 운용자였다.

“그렇게 해라. 다만 문구는 네가 정해.”

독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붉은 실은 다시 감겼지만 첫 매듭의 순서가 어긋나 있었다.

교대 종까지 네 분.

해준이 발신 건반 앞에 앉았다. 독구는 전지를 연결하고 서린은 창가로 가 부두 쪽 심부름꾼에게 수레표를 내밀었다.

“열한 대 전부 잡아. 말먹이 없는 세 대는 빼고, 다른 상단 수레 두 대를 웃돈 주고 붙여. 오복례에게는 내가 간다고 전해.”

심부름꾼이 물었다. “관가 차용증이면 됩니까?”

“안 돼. 내 은궤를 들고 가. 뚜껑은 열지 말고 오복례 앞에서만 열어. 한 조라도 거부하면 수레도 세워.”

서린이 복도로 소리치자 기다리던 부두 심부름꾼이 들어왔다. 그는 오복례가 보낸 품삯 쪽지를 내밀었다. 빈 금액 칸에는 서린이 은전 수를 적고 지급일에는 오늘 해 지기 전이라 썼다. 심부름꾼은 두 줄을 소리 내 읽은 뒤, 동쪽·서쪽 하역조 스물넷의 이름이 적힌 명단을 넘겼다. 맨 아래에는 오복례의 손가락 먹자국이 눌려 있었다.

“복례 누님이 이 조건이면 두 조를 묶겠답니다. 부상자 몫은 따로 쓰라 했고요.”

서린은 부상 보상 칸을 더해 서명했다. “이제 사람도 확보됐습니다. 이 명단과 은궤를 함께 가져가세요.”

심부름꾼이 말했다. “손해가 큽니다.”

“그래서 누가 내는지 적는 거야.”

그녀는 수레표에 서명하고 문밖으로 밀어 냈다. 말발굽 소리가 안개 속으로 멀어졌다. 회의는 끝나지 않았지만 수레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해준이 첫 신호를 쳤다.

짧고 긴 전류가 선을 타고 나갔다. 한 자를 칠 때마다 전지 바늘이 내려갔다. 열일곱째 자에서 접점이 튀었다. 독구가 맨손으로 나사를 조이려 하자 해준이 손목을 잡았다.

“천으로 감아.”

“식으면 늦습니다.”

서린이 자기 장부의 가죽끈을 잘라 던졌다. 독구는 그것으로 손을 감고 접점을 눌렀다. 타는 냄새가 났다. 소년의 엄지 아래 살이 벌겋게 부풀었지만 신호는 이어졌다.

서른아홉째 자.

밖에서 교대 종을 치려는 줄이 당겨졌다.

마흔둘째 자.

해준은 마지막 발신표를 내렸다. 독구가 약속한 빈 숫자를 붙였다. 바늘은 붉은 선 아래로 떨어졌고 전지함은 죽은 짐승처럼 조용해졌다.

그때 교대 종이 울렸다.

발신은 끝났다. 되돌릴 수 없었다.

해준은 손바닥에 묻은 먹을 닦지 않았다. 발신 일지의 담당자 칸에 제 이름을 썼다. 윤해준. 그 아래 서린이 증인으로 서명하려 하자 그가 막았다.

“당신은 수레를 댔습니다. 위조까지 함께 했다고 적을 필요는 없습니다.”

“공동 소유를 말해 놓고 책임만 혼자 가져가시겠다고요?”

서린은 그의 손을 밀어 내고 자기 이름을 썼다. 다만 ‘명령 승인’이 아니라 ‘운송 조건 입회’라고 정확히 적었다.

“신뢰는 공짜 도장이 아닙니다. 제가 본 데까지만 책임집니다.”

해준은 그 문구를 고치지 않았다.

종소리가 세 번째 울릴 때 새 교대 주사가 들어왔다. 그는 꺼진 전지 바늘과 펼쳐진 세 전보, 발신 일지를 차례로 보았다.

“무엇을 보냈나?”

해준이 대답하기 전에 마포 방향 수신기가 마지막 남은 전류로 한 번 울렸다. 확인 답신은 아니었다. 중계수가 보낸 짧은 숫자였다.

427.

육백 석 가운데 지금 마른 것으로 확인된 쌀은 사백이십칠 석.

서린은 숫자를 읽고 장부를 닫았다. “수레부터 모자랍니다.”

새 교대 주사가 군영 인장을 들어 올렸다. “이 우선부호, 누가 썼지?”

해준은 꺼진 발신대에서 손을 떼었다.

“제가 썼습니다.”

마포로 달린 심부름꾼은 이미 한강 나루 쪽 안개 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하지만 전보국 문밖에는 그보다 빠른 발이 멈춰 섰다. 감찰 군관의 검집 끝이 문턱을 두드렸다.

“발신 일지를 봉하라.”

그가 들고 온 체포패에는, 조금 전 세 장 중 가장 깊게 눌려 있던 것과 같은 인장이 찍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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