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차의 기억
기적은 곡물을 먹는다 · 2026. 6. 4.
내가 읽은 소설에서 카일 로벤슈타인은 3학년 실기 시험에서 퇴학당한다.
주인공의 검을 부러뜨리려다 실패하고, 심판진 앞에서 규정 위반이 드러나고, 가문에서 버려진다. 그리고 두 달 뒤 왕도 뒷골목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분량은 두 문단이었다.
거울 속에는 그 카일이 있었다.
열다섯 살의 얼굴이었다. 원작에서 그가 죽는 것은 열아홉이다. 그러니까 나에게 남은 시간은 4년이다.
"도련님. 입학식 준비되셨습니까."
문밖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거울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잠깐만."
기억을 정리해야 했다. 두 종류의 기억이 있었다.
하나는 카일의 것. 로벤슈타인 백작가의 차남. 형과 비교당하며 자랐고, 열두 살에 검을 시작했고, 재능이 없다는 말을 세 명의 교사에게서 들었다.
다른 하나는 내 것. 어젯밤까지 나는 야근을 마치고 웹소설을 읽던 서른한 살이었다. 그리고 이 소설을 완결까지 세 번 읽었다.
즉 나는 앞으로 4년간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있다.
1학년 겨울, 북부 국경에서 마수 무리가 넘어온다. 2학년 봄, 아카데미 지하에서 학생 셋이 실종된다. 2학년 가을, 주인공이 각성한다. 3학년 여름, 카일이 퇴학당한다.
나는 침대에 앉아 손을 봤다. 열다섯 살의 손. 굳은살이 얕았다. 원작의 카일은 검을 진지하게 잡은 적이 없다. 재능이 없다는 말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그 말이 틀렸다는 것을 안다.
원작 후반부, 카일의 죽음을 조사하던 주인공이 알아낸 사실이 있었다. 로벤슈타인 가의 차남은 마력 회로가 일반인과 반대 방향으로 흐르는 희귀 체질이었다. 그래서 표준 교습법으로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었다.
그 문장은 작가가 후기에서 설정 보충으로 던진 것이었다. 독자들은 그걸 두고 카일이 아까웠다고 댓글을 달았다.
나는 이제 그 체질의 주인이다.
"도련님."
"나간다."
문을 열자 늙은 집사가 서 있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다. 원작에 이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름이 뭐지."
집사의 눈이 커졌다.
"...예?"
"당신 이름."
"베르난입니다. 도련님. 11년째 이 집에 있습니다."
11년. 원작의 카일은 11년 동안 이 사람의 이름을 묻지 않았다.
"베르난. 아카데미에 가져갈 짐에서 장식용 검을 빼."
"입학식에 패용하셔야 합니다."
"무게가 반밖에 안 되잖아. 연습용 실검으로 바꿔."
베르난은 잠시 나를 봤다. 그 눈에 담긴 것이 무엇인지 나는 알았다. 이 집에서 아무도 카일에게 기대하지 않았고, 카일 자신도 그랬다.
"...예. 준비하겠습니다."
마차는 정오에 출발했다. 창밖으로 로벤슈타인 영지의 밀밭이 지나갔다.
나는 무릎에 노트를 펴고 첫 줄을 썼다.
4년. 목표는 하나다. 졸업까지 간다.
그 아래에 두 번째 줄을 썼다.
원작에서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이름들.
그리고 여섯 개의 이름을 적었다. 1학년 낙제생 명단에 오르는 아이들이었다. 원작에서 그들은 배경이었다. 두 명은 자퇴하고, 한 명은 죽고, 세 명은 끝까지 언급되지 않는다.
나는 그 여섯 명이 어떤 재능을 가졌는지 알고 있었다. 작가가 외전에서 하나씩 풀었기 때문이다.
악역의 자리에서 시작한다면, 악역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하겠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패를 전부 모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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