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오복례의 오른손은 주먹이 되지 않았다

갑오년, 전보국 주사는 군량을 훔쳤다 · 2026.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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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복례의 오른손은 주먹이 되지 않았다.

손바닥을 오므리려 할 때마다 둘째와 셋째 손가락 사이에서 뜨거운 못이 손목까지 박혔다. 피 묻은 밧줄은 도르래 아래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종을 세 번 친 뒤 아무도 그것을 치우지 않았다.

“밧줄 놔. 사람부터 세!”

목소리는 나왔지만 몸이 일어나지 않았다. 오복례가 무릎을 세우자 윤순화가 어깨를 눌렀다.

“스물셋입니다. 복례 씨까지 스물넷이고요.”

“석만이는?”

“여기 있어요.”

석만이가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예전에 부었던 무릎 쪽 바지가 다시 흙에 젖었다. 손에는 장문수가 던지고 간 빈 측정표가 들려 있었다.

“동쪽 열둘, 서쪽 열둘 맞아?”

“맞아요. 깔린 사람 없고, 박칠성 형 팔에 밧줄 자국 하나.”

오복례는 그제야 등을 판자에 붙였다. 순화가 손목 위를 천으로 묶고 손가락 끝을 하나씩 눌렀다. 엄지에는 감각이 남았고, 새끼손가락은 뒤늦게 움직였다. 가운데 두 손가락은 건드릴 때마다 속이 울렁거렸다.

“뼈가 부러졌어?”

“지금은 모릅니다. 피부터 멈추고, 씻고, 움직임을 다시 볼게요.”

“그 말은 전보 기술자한테 배웠나. 모른다는 소리가 똑같네.”

“살아 있는 사람은 보고서 양식에 잘 안 맞거든요.”

순화는 웃지 않고 상처 사이의 밧줄 가루를 집게로 꺼냈다. 오복례가 이를 물 때마다 석만이가 측정표를 구겼다.

부두 밖에서는 군량 수레의 바퀴가 한 줄로 멈춰 있었다. 공동 급수에 맞춰 옮길 가마니가 야적장에 쌓였고, 수비대 군관 둘이 작업 중지 선 앞에서 고함을 질렀다.

“휴전은 마흔여덟 시간뿐이다! 물길이 열렸을 때 옮겨야 한다!”

순화가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석만 씨, 저 선 안으로 아무도 들이지 마세요.”

“군량 명령입니다.” 군관이 대꾸했다.

“환자가 둘이고 도르래 원인이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다친 사람만 빼면 되지 않소.”

순화는 마지막 밧줄 가루를 흰 천 위에 놓았다. 부드러운 목소리 끝에 짧은 금지가 붙었다.

“안 됩니다.”

군관이 선을 넘으려 하자 석만이가 측정표를 내려놓고 양팔을 벌렸다. 오복례의 노동대 스물두 명이 그 뒤에 섰다. 누구도 밧줄을 들지 않았다.

오복례가 소리쳤다.

“높은 분들은 가마니보다 가벼워서 줄 없이도 잘 넘어오네. 한 발 더 오면 네가 축 밑에 누워!”

군관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나 바닥에는 아직 오복례의 피가 고여 있었다. 그는 발을 거뒀다.

순화가 물었다.

“다치기 직전 어떤 명령을 받았어요?”

“가마니 올리라는 명령.”

“누가, 언제요?”

오복례는 대답하려다 멈췄다. 군관 얼굴은 기억났지만 이름은 몰랐다. 종이 울리기 전 급수조가 세 번째 물통을 올렸고, 북방으로 떠날 말이 돌아섰다. 시각은 그 사이였다.

“이름은 저 양반한테 물어. 시각은 세 번째 물통이 올라온 뒤, 장문수 말이 출발하기 전.”

순화는 명부를 꺼냈다. 앞장에는 박칠성의 검지, 석만의 무릎, 최석구의 발목이 날짜와 함께 남아 있었다. 그 아래 새 줄을 만들었다.

오복례. 오른손 압착·열상. 기중 도르래 재가동 명령 뒤. 발신자 미확인. 세 번째 공동 급수 물통 뒤.

“발신자 미확인이라고?” 군관이 말했다. “내가 재개를 지시했소.”

순화가 그를 바라봤다.

“이름부터요.”

군관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관등과 이름을 댔다. 순화는 이름 옆에 그가 명령을 인정한 시각까지 적었다. 오복례의 상처가 그의 죄라는 문장은 쓰지 않았다. 치료와 추적에 필요한 순서만 남겼다.

“그 장부 내놓으시오.”

“환자 명부입니다.”

“군량 지연 조사에 필요하오.”

순화는 명부를 자기 무릎 아래에 넣었다.

“안전 점검이 끝날 때까지 환자도 명부도 여기서 나가지 않습니다.”

오복례가 붕대 감긴 손을 들어 보였다.

“나는 나가야겠는데.”

“구호소로 갈 겁니다.”

“부두가 멈췄어.”

“그래서 가야 해요.”

오복례는 멀쩡한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이번에는 허리를 반쯤 세웠다. 손끝이 심장처럼 뛰었고 눈앞 판자가 기울었다. 석만이가 팔을 받치자 그녀가 거칠게 뿌리쳤다.

“놓으라고.”

석만이가 정말 놓았다. 오복례는 그대로 다시 주저앉았다. 노동대 누구도 웃지 않았다. 그 침묵이 군관의 고함보다 아팠다.

“내가 줄을 못 잡으면 저것들이 네 말 듣겠냐?”

석만이가 말했다.

“누님이 종 세 번 쳤잖아요. 지금은 다 듣고 있어요.”

“지금 말고 다음 가마니.”

“다음도 제가 세겠습니다.”

오복례는 석만의 손을 봤다. 예전에는 자기 이름도 길게 못 써 엄지로 찍던 애였다. 지금은 측정표에 스물넷 이름과 위치를 한 줄씩 적고 있었다. 글씨는 비뚤었지만 한 사람도 ‘경상’으로 뭉뚱그리지 않았다.

“그럼 네가 맡아.”

석만이 눈을 들었다.

“뭘요?”

“종하고 사람 수. 동쪽, 서쪽 둘 다. 다른 하역대가 와도 같은 줄에 세.”

“누님이 돌아올 때까지요?”

오복례는 대답 대신 순화의 명부를 끌어당겼다. 붓을 쥘 수 없어 왼손 엄지에 먹을 묻혔다.

“돌아올 때까지라고 쓰지 마. 손이 이 꼴로 굳으면 네가 계속 해야 하니까.”

석만이 입술을 깨물었다.

“품삯은요?”

“네 몫 더 받아. 대신 나 하나 빠졌다고 스물셋 몫 깎으면 종부터 쳐.”

오복례는 군관이 아니라 부두 입구에 막 도착한 한서린을 불렀다.

“한 상전! 장부 가져와.”

서린은 피와 멈춘 수레를 한 번씩 보고 노동대용 사본을 펼쳤다. 사과부터 하지 않았다.

“치료비는 지금 선지급하겠습니다.”

“그건 전에 썼고.”

“상실 품삯은 회복 판정까지 평균 교대분으로 지급하겠습니다.”

“내 것만?”

서린이 붓을 멈췄다.

“전면 중지 동안 스물셋 전원의 대기 품삯을 지급하겠습니다.”

“다른 하역대가 검사하러 오면?”

“검사 시간도 작업으로 셉니다.”

오복례는 석만을 턱으로 가리켰다.

“작업 재개 서명은 쟤하고 노동대 검사자 둘. 상단이나 군관이 먼저 열면 다음 배도 안 내려.”

서린은 자기 사본에 먼저 쓰지 않고 노동대 사본의 빈 수정 칸을 석만 앞으로 돌렸다. 석만은 ‘임시 지휘’라고 적었다가 임시 두 글자에 줄을 그었다. 오복례는 그것을 고치지 않았다.

군관이 군수 목수를 검사자로 부르자 오복례가 왼손으로 판자를 내리쳤다.

“올리라고 한 쪽이 검사자까지 고르면 그게 검사냐?”

그녀는 사고와 누락을 장부에 바로잡았던 나옥동과 박노식을 골랐다.

“다른 하역대 한 명도 붙여.” 오복례가 말했다. “우리 줄만 봐서는 우리가 매듭 잘못한 것도 감춰.”

서쪽 나루의 늙은 밧줄장이도 나왔다. 석만은 세 이름부터 적고 군수 목수의 반대를 따로 받았다.

노동자들은 도르래 아래로 들어가지 않고 긴 갈고리로 밧줄 양끝과 나무축을 선까지 끌어냈다. 겉은 새것처럼 밝았지만 축에 감긴 안쪽은 검게 눌려 가루가 떨어졌다.

“탄 거냐?” 군관이 물었다.

박노식이 코를 가까이 댔다가 고개를 저었다.

“기름 냄새는 납니다. 불인지 마찰인지는 모릅니다.”

“새 밧줄이라고 납품받았어.” 서린이 말했다.

밧줄장이가 단면을 벌렸다. 속심 한쪽이 가늘었다. 그는 ‘속심 굵기 불균일, 검은 눌림, 기름 냄새’라고만 불렀고 석만이 그대로 적었다.

오복례는 자기 손을 보았다. 밧줄도 겉은 멀쩡했다. 속에서 무엇이 망가졌는지 모르고 무게를 올린 대가는 늘 밑에 선 사람이 냈다.

“남은 줄 전부 같은 데서 왔나?”

상단 창고지기가 번호표를 가져왔다. 같은 묶음 열두 타래 가운데 세 타래가 이미 도르래에 걸렸고 아홉은 봉함도 뜯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석만은 세 타래를 내려 격리하고, 나머지 아홉의 번호를 작업 중지표에 묶었다.

“하나만 끊어졌소.” 군관이 말했다. “안 끊어진 둘은 쓸 수 있지 않나.”

오복례가 피 묻은 헝겊을 그의 신발 앞에 던졌다.

“그럼 네 손부터 넣어.”

군관은 대답하지 않았다.

서린은 치료비 선금과 스물셋의 대기 품삯을 나눴다. 오복례는 자기 몫을 순화에게 맡기고 대기 품삯에는 석만과 나옥동의 표시를 받게 했다.

“오늘은 쟤들 손으로 해. 내가 넘긴 게 보여야지.”

석만의 표식이 노동대용 사본에 대표 표시로 남았다. 오복례는 자기가 빠진 빈칸이 아니라 다음 사람이 선 자리를 오래 봤다.

순화가 부두 구호소 수레를 불렀다. 오복례는 들것을 거부했지만 수레에는 올라탔다. 오른손을 심장보다 높게 들고 있으려니 어깨가 떨렸다. 순화가 천 끈으로 팔을 목에 걸어 고정했다.

“손가락을 못 쓰면 밧줄은?” 오복례가 물었다.

“오늘은 답하지 않겠습니다.”

“품삯 장부에는 답이 필요해.”

“상실 임금은 못 일하는 동안 지급한다고 고치세요.”

서린이 그 말을 들었다. 그녀는 ‘회복 판정까지’를 지우지 않고 옆에 ‘노동대·치료자 공동 확인, 미회복 기간 지급 지속’이라고 덧붙였다. 순화가 치료자 칸에 서명했고, 석만은 노동대 칸에 자기 이름을 적었다.

오복례는 비로소 수레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통증이 줄지는 않았다. 다만 자기 손이 돌아오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을 문장이 하나 생겼다.

순화가 붕대 끝을 묶었다.

“점검 전에는 저도 누구도 안으로 보내지 않겠습니다.”

“의원이 부두 문지기도 해?” 군관이 비웃었다.

“오늘은 합니다.”

수레 뒤에서 전보국 기별꾼 하나가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다. 손에는 먹이 마르지 않은 공개 보고 사본이 들려 있었다. 그는 군관과 서린 사이에서 누구에게 먼저 줄지 망설였다.

“다 들으라고 읽어.” 오복례가 말했다.

기별꾼이 첫 줄을 읽었다. 윤해준 발신. 마포 창고 육백 석 명령 대비 실제 확인분과 이후 지급·손실 대조.

두 번째 줄에서 목소리가 작아졌다.

“사라진 가마니, 백칠십삼.”

수비대 군관은 군량을 빼돌린 상단부터 잡으라고 고함쳤다. 상단 서기는 군이 먼저 가져간 수레가 있다고 맞받았다. 멈춰 있던 수레꾼들까지 자기 인수표를 흔들었다.

서린은 보고 사본을 달라고 손을 내밀었고, 군관도 동시에 손잡이를 잡았다. 종이 한 장이 두 사람 사이에서 팽팽해졌다.

오복례는 붕대 감긴 손을 가슴에 붙였다. 백칠십삼은 오늘 처음 생긴 구멍이 아니었다. 다만 동맹끼리 덮어 두던 숫자가 부두 한복판에서 소리를 얻었다.

“손 놔.” 그녀가 말했다.

둘 다 놓지 않았다.

오복례가 석만을 불렀다.

“종 쳐. 이번엔 장부 때문에 아무도 밧줄 못 잡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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