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치료를 거부할 권리

하렘 소문은 재난으로 분류됩니다 · 2026.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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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는 치료를 거부하지 않았다.

도진과 세라가 계속 거짓말하는 동안만 거부했다.

그 조건은 생각보다 훨씬 아팠다.

오현주는 임시 치료실 문 앞에서 두 사람의 출동 전 문진표를 읽었다.

윤세라. 통증 3. 오른팔 사용 가능. 지휘 가능.

백도진. 수면 4시간. 식사 완료. 합의정정 가능.

현주는 세라가 버스 손잡이를 왼손으로 잡았던 시간을 기억했다. 도진은 아침부터 물 한 병 외에는 입에 댄 것이 없었다. 문진표에는 둘 다 자기 손으로 서명했다. 서명은 사실을 만들어 주지 않았다.

복도 끝 브리핑 화면에서는 서버 배송 카운트가 줄고 있었다.

공식 계정 백업 모듈 반출 예정까지 47분.

목적지는 비공개.

비용 장부를 편집한 접속 흔적이 사라지기 전에 서버 보관소에 들어가야 했다. 세라는 방탄 조끼를 입으려다 오른팔이 등 뒤로 넘어가지 않자 왼손으로 버클을 잡았다. 도진이 도우려고 다가갔다.

“접촉 동의?” 세라가 먼저 물었다.

“확인하려던 겁니다.”

“안 물었으면 확인 아니야.”

도진은 손을 내렸다. 그 손도 떨리고 있었다.

은하는 두 사람 사이에 들어가지 않았다. 치료 도구함을 닫았다.

“문진 다시.”

세라가 시계를 봤다. “출발 뒤에 해.”

“출발 중지.”

“서버가 이동해.”

“알아요.” 은하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대장 오른팔 통증 몇이에요?”

“셋.”

“팔 내릴 때?”

세라가 답하지 않았다.

은하는 도진을 봤다. “마지막 식사?”

“아침.”

현주가 시각을 확인했다. 새벽 다섯 시 사십 분부터 그와 함께 있었다. “무엇을 드셨습니까?”

도진의 대답이 한 박자 늦었다. “물.”

“물은 식사가 아닙니다.”

“계약서에는 음료도 제공 항목으로—”

“지금 계약 해석하지 마세요.” 은하가 잘랐다. “두 분 다 치료 중지. 출동 중지.”

세라가 문 쪽으로 한 걸음 갔다. 은하는 막지 않았다. 대신 의료 중지 표식을 출입 단말에 보냈다. 문이 열리지 않았다.

“지휘권으로 해제할 수 있어.”

“할 수 있어요.”

“그런데?”

“해제하면 저는 치료자가 아니라 강제 투입 인력이 됩니다. 그 상태로는 두 분 몸에 손대지 않겠습니다.”

현주는 반사적으로 예외 조항을 찾았다. 증거 소실이 임박한 경우 최소 처치 후 출동. 오래된 긴급 운영 규정에 있었다. 그 문구를 적용하면 세라는 진통제 한 대를 맞고 지휘할 수 있고, 도진은 포도당을 삼키며 차 안에서 문구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최소 처치’의 범위를 정하는 사람도 지휘자였다. 치료받는 세라가 자기 몸과 은하의 노동을 동시에 승인하는 구조였다.

현주는 예외 조항 화면을 닫았다.

닫힌 화면에 현주의 얼굴이 비쳤다. 서버를 잃으면 법무 실패였고 은하의 거절을 지우면 헌장 실패였다. 그녀는 긴급 규정에 ‘환자 지휘권과 치료자 노동 동의 미분리, 증거 소실은 의료 동의 추정 근거 아님’이라고 이의를 남겼다. 자기 이름을 넣는 동안 카운트가 1분 줄었다.

“의료 중지를 유지합니다.”

세라가 돌아봤다. “법무도?”

“법무가 아니라 제 조건입니다. 환자와 치료자가 같은 사람의 지휘권 아래에서 거절할 수 없으면 그 동의는 이 작전에 쓰지 않겠습니다.”

서버 카운트는 42분으로 내려갔다.

미나가 원격 화면을 열었다. 뒤에는 비용 장부 유출 댓글이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 그녀는 공개 창을 접고 차량 등록 자료만 띄웠다.

“백업 모듈 운송 계약 세 건. 냉장 밴 둘, 문서차 한 대. 어느 차에 서버가 있는지는 모름. 표본 셋, 확정 0.”

세라가 말했다. “좌표 보내.”

“보내지만 추적 명령은 대체 지휘자한테 받을게요. 지금 대장은 환자 칸.”

세라의 턱이 굳었다. 그래도 미나에게 명령을 반복하지 않았다.

은하는 빈 표를 열었다. 제목은 ‘분리 동의’였다.

치료받기.

몸에 닿기.

업무·출동하기.

세 칸마다 동의, 거부, 나중에 결정이 따로 있었다. 환자 칸 옆에는 치료자 칸이 똑같이 붙었다. 치료자가 접촉에 동의해도 추가 교대에 거부할 수 있고, 치료를 수락해도 출동 동의로 넘어가지 않는 구조였다.

세라가 표를 읽었다. “치료 동의. 오른팔 검사와 고정 동의. 진통 주사 거부. 접촉은 어깨·팔만. 출동은?”

“지금 고르면 안 돼요. 검사 뒤 다시.”

“나중에 결정.” 세라는 직접 눌렀다.

은하가 자기 칸을 채웠다. “검사 동의. 고정 동의. 진통 주사 제안 안 함. 사십 분 치료 뒤 삼십 분 휴식. 휴식 중 추가 호출 거부.”

세라가 눈을 들었다. “내 치료 끝나도 네가 쉬어?”

“제 몸은 치료 종료 버튼에 같이 꺼지지 않아요.”

“삼십 분이면 서버는?”

“그래서 대체 지휘자를 세우세요.”

세라는 지휘 단말을 쥔 왼손을 내려다봤다. 지휘권을 넘기면 부상 때문에 밀려났다는 기록이 남는다. 넘기지 않으면 의료 중지권은 헌장 장식이 된다.

“서버 증거 보존 작전 지휘를 오현주에게 임시 위임. 현장 구조는 없고, 법적 보존·차량 추적·퇴로 결정까지만. 합의정정 실행 권한 제외.”

현주는 즉시 받지 않았다. “기간과 반환 조건을 쓰십시오.”

“지금부터 내 재검사 통과 또는 두 시간 중 먼저 오는 때까지. 그 전에 광역 정정 필요하면 전원 재표결.”

“받겠습니다.”

세라는 지휘 단말을 현주에게 건네지 않았다. 접촉 없이 권한 토큰만 보냈다. 현주 화면 상단에 임시 지휘 범위가 네 줄로 떴다.

도진의 차례였다.

“치료 동의. 혈당 검사 동의. 접촉은 손끝 채혈만. 출동은 나중에 결정.”

은하가 물었다. “합의정정 문구 작업은 업무입니다. 지금 할까요?”

도진은 서버 카운트를 보았다. 36분.

“거부. 한 시간.”

“좋아요.”

“좋은 선택이라는 뜻입니까?”

“판정 안 합니다. 기록했다는 뜻이에요.”

은하는 치료 도구함을 열기 전에 표결 단말기를 들었다.

“의료 중지 중 작전 순서 변경. 첫째, 환자 둘 치료. 둘째, 저는 사십 분 뒤 휴식. 셋째, 현주 임시 지휘 아래 미나가 차량 위치만 확인. 넷째, 태호는 추적 차량의 퇴로와 사람 정원 확인. 다섯째, 서버 접촉은 영장 범위 확정 전 금지.”

현주는 자기 조건을 붙였다. “운송 차량을 멈출 법적 근거는 아직 없습니다. 번호·경로 보존까지만 승인하고, 강제 정차는 반대합니다.”

미나가 분석표를 올렸다. “찬성. 차량 셋을 확률로 표시하고 확정처럼 방송하지 않음.”

태호가 물류표를 올렸다. “조건부 찬성. 추적차 두 대, 각 두 명. 귀환 좌석 한 자리씩 비움.”

세라는 환자 칸에서 현장표를 들지 않았다. 대신 ‘지휘 위임 확인’만 눌렀다. 도진도 정정표를 들지 않았다.

은하가 의료표를 올렸다. “찬성. 거짓 문진 해소 전 치료·출동 분리 유지.”

현주는 법무표를 들었다. “찬성. 제 반대 이유 포함.”

작전 순서 변경 가결.

치료실 문이 잠금에서 대기 상태로 바뀌었다. 은하는 세라의 조끼를 벗기려 하지 않고 물었다. “직접 풀까요, 제가 왼쪽 버클만 풀까요?”

“왼쪽만.”

은하는 허용된 버클 하나만 만졌다. 세라는 오른팔을 검사대에 올렸다. 통증을 다시 묻자 이번에는 “여덟”이라고 답했다.

은하는 초음파 탐촉자를 들고 접촉 범위를 다시 확인했다. “어깨 앞쪽과 겨드랑이 가까운 쪽까지 봐야 해요. 둘 다 괜찮아요?”

“어깨 앞. 겨드랑이는 나중에.”

은하는 보이는 범위만 검사했다. 힘줄 주변 부종이 전날보다 늘었고, 팔을 내릴 때 신경을 누르는 각도가 있었다. 완전 파열 여부는 겨드랑이 쪽 검사 없이는 확정할 수 없었다.

“지금 확인 가능한 건 부종 증가. 확인 못 한 건 파열 여부. 선택은 둘.” 은하는 화면을 세라 쪽으로 돌렸다. “접촉 범위를 넓혀 검사하거나, 지금 범위로 고정하고 정밀 검사를 예약하기.”

“지금 범위로 고정. 정밀 검사는 두 시간 뒤.”

은하는 고정대를 감기 전에 또 물었다. “제가 감을까요, 직접 할까요?”

“네가. 오른팔만.”

세라는 여러 번 답해야 치료 하나가 끝나는 것을 답답해했지만 어느 질문도 다른 답을 훔치지 않았다. 현주는 그 순서를 그대로 기록했다.

현주는 임시 지휘 화면에서 미나의 차량 셋을 확인했다. 냉장 밴 하나가 예정 시각보다 23분 일찍 보관소를 나왔다. 목적지 칸은 비어 있었다.

“이동 확인. 정차 명령 없음. 태호, 두 대 거리 유지.”

“퇴로 확보. 사람 정원 한 자리씩 남김.”

도진의 혈당 수치는 61이었다. 은하는 주스를 건네고 마시는 것을 확인한 뒤 자기 휴식 타이머를 먼저 30분으로 맞췄다.

도진은 단맛을 이유로 절반만 마시려 했다. 은하는 맛 거부와 치료 거부를 분리해 기록하고 필요한 양을 다시 설명했다. 도진은 끝까지 마셨다. 손떨림이 줄어드는 십이 분 동안 문구 화면을 열지 않고 업무 거부 종료 조건을 ‘혈당 80 이상, 식사 완료, 한 시간 경과’로 썼다.

은하는 보조 치료사에게 환자 둘의 관찰표를 넘겼다. 보조 치료사가 “차량 도착하면 깨울까요?”라고 묻자 고개를 저었다.

“응급 악화만. 서버 이동은 제 응급이 아니에요.”

그녀는 치료실 안쪽 간이침대에 누웠다. 신발도 벗지 못한 채였지만 휴식 타이머를 취소하지 않았다. 세라는 그 모습을 보고도 조기 복귀를 명령하지 않았다.

현주가 치료실 벽의 분리 동의표를 확대했다. ‘접촉 동의는 업무 동의로 추정하지 않는다.’ 문장 끝의 세 갈래 표식이 자기 이의신청 도장과 같은 계열이었다. 작성자는 표시되지 않았다.

그녀는 의미를 붙이지 않고 원문과 시각만 보존했다.

임시 지휘 화면에는 강제 정차, 목적지 보존, 원거리 추적 세 선택지가 떴다. 서버 탑재를 입증하지 못한 채 정차시킬 수는 없었다.

현주는 운송사에 전화를 걸었다. “차량 내용은 묻지 않겠습니다. 운전자에게 경로 정보 보존과 연락 유지에 동의하는지 물어 주십시오.”

운송사는 경로 비공개를 이유로 거부했다. 현주는 개인 번호 대신 수신 시각이 남는 보존 통지를 보냈다.

“미나, 등록 자료에서 번호판만 보존. 적재물 추정 금지.”

“서버 칸 삭제. 냉장 밴 A, 경로 이상 62퍼센트.”

태호의 추적차 두 대가 갈림길에서 나뉘었다. 한 대는 앞서지 않았고, 다른 한 대는 귀환로를 막지 않았다. 현주는 세라에게 진행 상황을 보고했지만 결론을 묻지 않았다. 위임받은 판단을 다시 환자에게 떠넘기면 대체 지휘가 아니었다.

미나가 외쳤다. “냉장 밴 경로 변경. 외곽 순환로 진입.”

서버 증거는 사람들이 쉬는 동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은하는 치료 도구보다 표결 단말기를 먼저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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